[리뷰] ‘재생산 정의’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인구 통제
이은수 여성학 연구자
<On Infertile Ground> [ref] Sasser, J. S. (2018). On Infertile Ground: Population Control and Women’s Rights in the Era of Climate Change. New York University Press. [/ref] 는 기후위기 시기, 전 세계적인 환경 이슈가 인구 문제와 재생산 정의에 서로 연결되어, 세계 곳곳의 인구통제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드러내고 있다. 저자 Jade S. Sasser는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출생률과 육아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의 말과 너무 달랐던 것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혔다(p. 150). 그만큼 이 책은 서구 백인 중심의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이 글로벌 사우스 지역 여성의 재생산을 타겟으로 인구통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구를 줄이자’는 말에 크게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다면, 이 책은 기후 위기 시대에 수많은 환경 운동 사이에 가려진 제국주의적 인구통제 역사의 반복을 상기시키기는 데 귀중한 역할을 한다.
누가 낳을 만한 사람이며, 누가 낳으면 안되는 사람인가: 환경을 위한 ‘과학’과 ‘여성 역량강화’의 함정
책의 제목 “불임의 땅에서(On Infertile Ground)”의 ‘불임(infertility)’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기후 위기 시대 ‘불모의 땅’에서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는 ‘불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단어의 유사성만큼 꽤 매끄럽게 들리지만, 실상은 아주 많은 맥락들이 감춰진 울퉁불퉁한 논리이다. 저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 같던 인구 통제 서사와 담론들이 기후 변화의 위기 담론/서사와 결합하여 정당화의 논리를 갖춘 채 되살아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 과학은 자주 가치 중립적이고 탈정치적으로 보이는 정당화의 전략으로 사용된다. 세계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담론과 기후 위기 시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연결 짓는 데 동원된 수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그러했고, 바로 그 과학에 근거한 주장들이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인구를 통제해야 한다는 담론에 힘을 실었다. 저자는 ‘인구 증가에 따른 지구의 자원과 수용력 문제’라는 논리에 기반한 신멜서스주의 사상의 역사를 추적하며, 인구 문제를 기후 변화의 핵심적인 원인처럼 지적하는 많은 생태학, 생물학 연구와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고한다. 이러한 과학은 당대 지배적 과학 패러다임, 문화적 신념, 재정적 기회나 제약과 같은 특정한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구성된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의 근거로 활용되어 인구-환경 옹호자들의 주장의 정치적 토대를 가리고 이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인구-환경 옹호자들은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여성을 통해 출산율을 조정할 것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매년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국가와,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미 전세계적인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환경 옹호 운동은 출산율 감소를 위한 서구적 여성 역량 강화 담론을 통해 결국 글로벌 사우스(특히, 아프리카)를 서구의 개입과 구원이 필요한 끝없는 실패의 땅으로 그리는 서사를 재생산한다(pp.10-11).
또한, 기후 위기 담론에서 비롯한 아포칼립스가 묘사하는 인구 담론은 절대 연령, 인종, 젠더, 국가에 있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 시대 인구학적 연구는 청년층이 많은 인구의 연령구조를 테러나 반군 조직 등 국가 안보 및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구로 간주하고 인구 통제의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이론들은 청년 인구 비율이 높은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을 ‘타자’로 만들어내고 이미 테러와 부착되어 있던 중동, 아프리카, 무슬림과 같은 집단에 대한 인종화 프레임을 작동시킨다(p. 46). 결국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학은 무엇이 ‘위험한 인구’인지 제시하지만, 사실 특정 국가에 부착되었던 기존의 가난하고 공격적인 ‘타자화’ 이미지를 동원하고 강화하며 인구 통제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인구 옹호 작업에 정당성을 더한 또 다른 도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에 대한 ‘임파워먼트’이다. 이 책의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은 강압적인 인구 통제나 인구학적 목표가 아니라,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의 자발적인 피임, 교육 접근성, 소득창출 기회 등 권리기반의 해결책을 지지한다. 즉, 여성을 환경이라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의 생식능력과 환경을 책임지는 “성적 청지기(sexual steward)”로 세워 전 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이 피임약에 자발적으로 접근해 이상적인 가족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얼핏 보면 여성의 피임약 접근성을 높이는 등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성적 청지기 모델에 나타나는 여성은 임신할 수 있는 생식능력이 있고, 일부일처제 결혼 관계 안에서 성관계를 가지고, 정확하게 피임약을 사용하고, 자녀를 2명 이하로만 원하며, 환경적 가치에 따라 개인의 선택으로 가족 계획을 세우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구성된다(p.12).
따라서, 인구-환경 옹호 운동은 여성을 이러한 ‘성적 청지기’로 만들어 내기 위해, 전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를 지원하는 활동을 강조하는데,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재생산 정의’ [ref] 이 글에서는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된 용어인 ‘재생산 정의’를 반인종주의/반인구주의적 맥락의 재생산 정의와 구분하여 쓰기 위해 작은 따옴표로 표시한다. [/ref] 라는 용어가 특정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대체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재생산 정의는 재생산 정치를 둘러싼 오랜 억압의 역사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고 구상해 온 용어이자, 분명하게 반인종주의와 반인구주의를 토대로 태어난 운동이다. 인종과 계급의 관점을 교차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언어가 다시 인구주의적 입장에서의 ‘재생산 정의’, ‘사회 정의’와 같은 보편적 수준의 용어로 뭉뚱그려져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를 지원해야 할 여성, 이러한 지원 정책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여성, 이러한 인구-환경 옹호 활동을 통해 통제해야 할 인구는 서구의 시선에 맞춰 정해져 있다. 저자는 인구통제가 절대 과거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방식의 인구통제 정치를 재생산 ‘정의’,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목표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경험과 삶을 몰맥락적으로 그려내고,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후 위기와 ‘재생산 정의’를 이야기하며, 환경 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자궁, 특히 가난하거나 주변화된 여성으로부터 찾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을 결국 재생산의 역할에만 가두는 결론을 만들어낸다(p. 149).
한국의 저출생은 그럼 환경 친화적인가?
어쩌면 인구-환경 옹호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및 아시아 몇 국가들의 저출생 현상은 바람직한 환경주의이자 ‘재생산 정의’에 도달한 결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절대 단순한 사회 정의 실현의 일면으로 볼 수 없다. 한국에서 임신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기혼 이성 부부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비혼 여성 및 동성커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재생산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임신중단권 또한 2019년 헌법불일치 판정 이후 제대로 된 진전없이 멈춰 있는 상태이며, 임신을 중지 또는 유지할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시점에서 오히려 재생산 정의에 대한 고민 없이 익명출산(보호출산) 제도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진정한 재생산 권리에 대한 보장 없이 출산율만 높이려는 한국 정부의 저출산 정책 기조와, 이에 대항하여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투쟁하는 시공간에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을 위한 자발적인 출산 통제와 인구 감소’를 의미하는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의 ‘재생산 정의’는 마치 한국의 저출생 현상을 새롭게 설명하는 언어로 무분별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 재생산 정의를 말하는 수많은 주장들 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날 선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특정 맥락에서의 정치적 운동이 마치 보편적인 ‘정의’처럼 표명되고 있지는 않는지, 재생산 정의를 누가 어떻게 호명하고 사용하는지, 어떤 프레임워크가 통제되어야 할 인구, 재생산할 수 있는 사람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기후 정의를 위한 모두의 노력이 시급한 지금, 환경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자궁으로 환원하는 인구학적 논리에서 벗어나고, 기후 변화와 재생산 정의를 단순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연결하거나 해석하지 않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리뷰] ‘재생산 정의’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인구 통제
이은수 여성학 연구자
<On Infertile Ground> [ref] Sasser, J. S. (2018). On Infertile Ground: Population Control and Women’s Rights in the Era of Climate Change. New York University Press. [/ref] 는 기후위기 시기, 전 세계적인 환경 이슈가 인구 문제와 재생산 정의에 서로 연결되어, 세계 곳곳의 인구통제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드러내고 있다. 저자 Jade S. Sasser는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출생률과 육아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의 말과 너무 달랐던 것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혔다(p. 150). 그만큼 이 책은 서구 백인 중심의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이 글로벌 사우스 지역 여성의 재생산을 타겟으로 인구통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구를 줄이자’는 말에 크게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다면, 이 책은 기후 위기 시대에 수많은 환경 운동 사이에 가려진 제국주의적 인구통제 역사의 반복을 상기시키기는 데 귀중한 역할을 한다.
누가 낳을 만한 사람이며, 누가 낳으면 안되는 사람인가: 환경을 위한 ‘과학’과 ‘여성 역량강화’의 함정
책의 제목 “불임의 땅에서(On Infertile Ground)”의 ‘불임(infertility)’은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기후 위기 시대 ‘불모의 땅’에서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는 ‘불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단어의 유사성만큼 꽤 매끄럽게 들리지만, 실상은 아주 많은 맥락들이 감춰진 울퉁불퉁한 논리이다. 저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 같던 인구 통제 서사와 담론들이 기후 변화의 위기 담론/서사와 결합하여 정당화의 논리를 갖춘 채 되살아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 과학은 자주 가치 중립적이고 탈정치적으로 보이는 정당화의 전략으로 사용된다. 세계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담론과 기후 위기 시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연결 짓는 데 동원된 수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그러했고, 바로 그 과학에 근거한 주장들이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인구를 통제해야 한다는 담론에 힘을 실었다. 저자는 ‘인구 증가에 따른 지구의 자원과 수용력 문제’라는 논리에 기반한 신멜서스주의 사상의 역사를 추적하며, 인구 문제를 기후 변화의 핵심적인 원인처럼 지적하는 많은 생태학, 생물학 연구와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고한다. 이러한 과학은 당대 지배적 과학 패러다임, 문화적 신념, 재정적 기회나 제약과 같은 특정한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구성된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과학’의 근거로 활용되어 인구-환경 옹호자들의 주장의 정치적 토대를 가리고 이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인구-환경 옹호자들은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여성을 통해 출산율을 조정할 것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매년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국가와,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미 전세계적인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환경 옹호 운동은 출산율 감소를 위한 서구적 여성 역량 강화 담론을 통해 결국 글로벌 사우스(특히, 아프리카)를 서구의 개입과 구원이 필요한 끝없는 실패의 땅으로 그리는 서사를 재생산한다(pp.10-11).
또한, 기후 위기 담론에서 비롯한 아포칼립스가 묘사하는 인구 담론은 절대 연령, 인종, 젠더, 국가에 있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 시대 인구학적 연구는 청년층이 많은 인구의 연령구조를 테러나 반군 조직 등 국가 안보 및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구로 간주하고 인구 통제의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이론들은 청년 인구 비율이 높은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을 ‘타자’로 만들어내고 이미 테러와 부착되어 있던 중동, 아프리카, 무슬림과 같은 집단에 대한 인종화 프레임을 작동시킨다(p. 46). 결국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학은 무엇이 ‘위험한 인구’인지 제시하지만, 사실 특정 국가에 부착되었던 기존의 가난하고 공격적인 ‘타자화’ 이미지를 동원하고 강화하며 인구 통제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인구 옹호 작업에 정당성을 더한 또 다른 도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에 대한 ‘임파워먼트’이다. 이 책의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은 강압적인 인구 통제나 인구학적 목표가 아니라,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의 자발적인 피임, 교육 접근성, 소득창출 기회 등 권리기반의 해결책을 지지한다. 즉, 여성을 환경이라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의 생식능력과 환경을 책임지는 “성적 청지기(sexual steward)”로 세워 전 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이 피임약에 자발적으로 접근해 이상적인 가족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얼핏 보면 여성의 피임약 접근성을 높이는 등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성적 청지기 모델에 나타나는 여성은 임신할 수 있는 생식능력이 있고, 일부일처제 결혼 관계 안에서 성관계를 가지고, 정확하게 피임약을 사용하고, 자녀를 2명 이하로만 원하며, 환경적 가치에 따라 개인의 선택으로 가족 계획을 세우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구성된다(p.12).
따라서, 인구-환경 옹호 운동은 여성을 이러한 ‘성적 청지기’로 만들어 내기 위해, 전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를 지원하는 활동을 강조하는데,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재생산 정의’ [ref] 이 글에서는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된 용어인 ‘재생산 정의’를 반인종주의/반인구주의적 맥락의 재생산 정의와 구분하여 쓰기 위해 작은 따옴표로 표시한다. [/ref] 라는 용어가 특정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대체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재생산 정의는 재생산 정치를 둘러싼 오랜 억압의 역사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고 구상해 온 용어이자, 분명하게 반인종주의와 반인구주의를 토대로 태어난 운동이다. 인종과 계급의 관점을 교차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언어가 다시 인구주의적 입장에서의 ‘재생산 정의’, ‘사회 정의’와 같은 보편적 수준의 용어로 뭉뚱그려져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를 지원해야 할 여성, 이러한 지원 정책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여성, 이러한 인구-환경 옹호 활동을 통해 통제해야 할 인구는 서구의 시선에 맞춰 정해져 있다. 저자는 인구통제가 절대 과거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방식의 인구통제 정치를 재생산 ‘정의’,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목표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경험과 삶을 몰맥락적으로 그려내고,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후 위기와 ‘재생산 정의’를 이야기하며, 환경 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자궁, 특히 가난하거나 주변화된 여성으로부터 찾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을 결국 재생산의 역할에만 가두는 결론을 만들어낸다(p. 149).
한국의 저출생은 그럼 환경 친화적인가?
어쩌면 인구-환경 옹호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및 아시아 몇 국가들의 저출생 현상은 바람직한 환경주의이자 ‘재생산 정의’에 도달한 결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절대 단순한 사회 정의 실현의 일면으로 볼 수 없다. 한국에서 임신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기혼 이성 부부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비혼 여성 및 동성커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재생산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임신중단권 또한 2019년 헌법불일치 판정 이후 제대로 된 진전없이 멈춰 있는 상태이며, 임신을 중지 또는 유지할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시점에서 오히려 재생산 정의에 대한 고민 없이 익명출산(보호출산) 제도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진정한 재생산 권리에 대한 보장 없이 출산율만 높이려는 한국 정부의 저출산 정책 기조와, 이에 대항하여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투쟁하는 시공간에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을 위한 자발적인 출산 통제와 인구 감소’를 의미하는 인구-환경 옹호주의자들의 ‘재생산 정의’는 마치 한국의 저출생 현상을 새롭게 설명하는 언어로 무분별하게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 재생산 정의를 말하는 수많은 주장들 속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날 선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특정 맥락에서의 정치적 운동이 마치 보편적인 ‘정의’처럼 표명되고 있지는 않는지, 재생산 정의를 누가 어떻게 호명하고 사용하는지, 어떤 프레임워크가 통제되어야 할 인구, 재생산할 수 있는 사람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기후 정의를 위한 모두의 노력이 시급한 지금, 환경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자궁으로 환원하는 인구학적 논리에서 벗어나고, 기후 변화와 재생산 정의를 단순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연결하거나 해석하지 않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