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이슈]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를 단단하게 연결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

[이슈]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를 단단하게 연결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 


공혜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사무국장


셰어와 함께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너가 어떻게 셰어에…?’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시작으로 탈핵, 에너지전환, 기후위기와 관련한 운동을 이어왔고, 이제 탈핵, 기후위기 안 한다며 10년만에 ‘타 분야’로 이직했다. 그러나 셰어도 기후정의운동에 함께하는 바람에 결국 완벽한 이직에는 실패했다. 이번 이슈페이퍼를 통해 그동안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이어져온 운동의 변화를 돌아보고,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를 연결 짓는 작업을 시작해 보려 한다.


들어가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이후 에너지와 관련된 사회운동은 핵발전 반대와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의 전환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특히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은 ‘위험한 핵'을 둘러싼 문제를 넘어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겪어온 국가폭력과 국책사업의 실체를 밝혔고, 대규모 발전과 송전으로 이뤄진 전력시스템의 부정의를 드러냈다. 전국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에 함께 연대했으며 핵발전과 화력발전의 대안으로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탈핵, 탈송전탑 운동이 활발했던 당시에도 밀양 주민들에 대한 국가폭력을 넘어 탈핵을 주제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영역과의 접점을 만들기 어려웠고, 연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그동안 나의 운동에 대한 경험과 고민, 영역을 넘나드는 질문이자,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를 연결 짓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탈핵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에너지, 탈핵, 기후 문제는 너무 어렵고, 나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멀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도 소수자로서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실 내가 기후위기의 피해자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활동가들도 있었고, "기후정의와 체제전환 운동이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어 ‘연대'는 하고 있지만, 나의 운동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눠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이번 호 이슈페이퍼를 통해 여러분과 기후정의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자 하며, 탈핵과 기후정의를 위한 ‘연대’를 넘어 ‘정의’를 위한 우리의 운동으로서 다양한 논의들이 연결되고, 확장되길 바란다.


@womenintimes
출처 https://fosfeminista.org/media/climate-change-is-a-sexual-and-reproductive-health-and-rights-issue/


기후위기로 인해 심화되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부족


2015년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내로 제한하자는 국제사회의 파리협정 이후 2023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4도 상승했다. 남은 건 0.1도 라는 숫자로는 잘 와 닿지 않지만, 우리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일상이 되어간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모두가 기후위기 겪고 있지만,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보고서가 기후위기로 인해 여성, 빈곤층, 유색인종과 원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등 소수자들에 대한 교차적인 차별과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ref]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and Climate Justice Messaging Guide(2023) https://docs.google.com/document/d/1LKe3aVnnrVdAnKNcxQSiZlp1cVQqFw6ikYbBhFfPPhQ/edit [/ref]


무분별한 개발은 삶의 터전과 생태계를 파괴시켰고, 개발과 이상기후로 인해 삶의 공간을 잃은 사람들은 이주민 또는 난민이 되거나 이주노동으로 내몰렸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성폭력, 젠더 기반 폭력의 위험이 증가했으며, 빈곤과 식량 불안으로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성과 재생산 건강 역시 이상기후로 인해 임산부와 아동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생태계 파괴로 인해 월경 위생에 위협을 받고, 코로나19와 더불어 복합적인 재난 상황에서는 피임이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 서비스 접근이 어려워졌으며, HIV를 포함한 성매개감염 예방과 치료에도 장벽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공적 돌봄 시스템의 공백과 값비싼 돌봄 서비스는 여성과 소수자들의 돌봄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에 2019년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위기’로 선포하기 시작했고, 한국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가속화한 부정의를 짚으며 위기 대응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기후재난에 대한 경험과 부정의를 교차적으로 분석한 사례들은 주로 남반부 저개발 국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한국에서는 아직 기후위기에 관한 경험들이 활발하게 나눠지거나, 피해에 대한 교차성을 다루고 분석하는 연구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올해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 [ref]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 전문읽기 https://srhr.kr/announcements/?idx=16405611&bmode=view [/ref] 과 ‘N개의 기후정의선언문' [ref] <N개의 기후정의 선언대회> 자료집 https://srhr.kr/materials/?idx=17389319&bmode=view [/ref] 과 같이 각 운동 영역에서 기후위기의 원인과 현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대안을 촉구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윤석열 정부는 녹색성장이라는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모조리 지워냈고, 탄소배출 감축은 커녕 기후위기 대안으로 핵발전 비중을 높이는 ‘핵 강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올해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미국,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등 한국을 포함한 22개국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 핵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2020년 대비 3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문을 채택했다. 많은 국가가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없을 뿐더러 위기의 원인인 경제 성장과 개발을 위한 착취와 돌봄의 공백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취약한 당사자 나열하기를 넘어, 구체적인 ‘전환’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경제성장과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체제를 지목한다. 한국은 박정희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이 전력, 석탄 등 에너지 공급원 확대, 핵발전소 건설, 식량자급을 위한 농업생산력 증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가족계획과 인구 통제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 외에도 새마을운동, 고속도로 건설, 수출 중심의 산업 확장이 이어졌고, 이는 기후위기를 포함한 사회의 여러 위기들을 가속화했지만 경제성장의 기조는 흔들림 없이 이어져왔다.


특히 한국은 경제성장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여성의 몸과 재생산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취급해왔다. 1960년대엔 산아제한 정책으로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며 무료로 피임시술을 해줬지만, 저출산 위기라는 현재에는 낙태죄가 폐지된 지 4년이 넘었음에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저출생 위기에 이어 돌봄의 위기가 발생하자 이주여성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으로 돌봄 노동을 전가하려 한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국가의 저출생 위기를 걱정하는 한편, 동시에 빈곤국가의 인구 증가를 위기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인구 증가율이 높은 빈곤국가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산업화된 국가에 비해 훨씬 낮다. 이에 재생산정의 운동은 인구 조절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또다시 여성과 소수자의 몸과 재생산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위기의 반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재생산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경제, 환경 등의 구조와 각자의 삶에 대한 맥락이 반영되어야 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이폭력, 강압, 차별, 낙인 없이 자신의 몸과 성 재생산에 관련하여 건강과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께 불평등과 차별, 착취를 종식시켜 나가기를 제안한다. 불평등과 차별, 착취를 종식시켜 나가는 운동은 영역간의 연대를 넘어 공통의 운동으로서 다양한 논의들이 연결되고 확장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에 ‘기후위기 최전선'이 등장하며 기후위기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을 드러내는 일은 '기후위기'라고 이름붙여진 현재의 상황이 단지 함께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이며, 현재의 위기에는 이 세계의 구조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들의 피해'만을 힘주어 부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또다시 기후위기를 특정한 소수자 집단이 겪는 피해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온난화를 북극곰이 처한 문제로만 인식했던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누군가가 겪는 피해를 해결하는 일로만 인식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여성, 장애인, 농민, 성소수자 등이 각자의 삶의 맥락에서 다른 경험을 하듯 소수자 집단 안에서도 기후위기가 미치는 영향은 다르며, 따라서 우리는 개별적인 집단의 경험으로서만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들을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체제의 문제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찾아내고 드러내야 한다.


지난 5년간의 기후운동을 통해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이며, 탄소배출 감축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가속화한 원인인 국가와 기업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불평등한 현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는 구호가 터져나오며 각계 시민사회 운동 진영의 구체적인 운동으로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N개의 기후정의 선언대회>는 그간 각각의 영역에서 다져온 문제의식이 체제에 대한 연결점으로서  점차 구체화되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셰어도 기후정의와 재생산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벼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의 체제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어떠한 모습으로 전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와 논쟁이 필요하다. 함께 진정한 ‘전환’으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고민이 더 많이 부딪히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셰어 기후정의 선언문] 누군가를 초대할 수 없는 한국사회, 우리가 기후정의와 함께 재생산정의를 촉구하는 이유 

https://bit.ly/4aBzP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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