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식민주의에 맞서, 에너지정의와 재생산정의로
공혜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무국장

출처: 열린원전운영정보 https://npp.khnp.co.kr/
한국에는 26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1960년대 말, 부산 기장의 바닷가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마을에 큰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공사를 위해 불도저가 들어오자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막아섰다. 그것이 공장이 아니라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려졌다. 결국 주민들은 집단으로 이주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발전소와 송전탑은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막무가내로 지어졌다. 핵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한 1978년,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현 전원개발촉진법)이 제정됐다. 더 많은 전기를 더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탑, 변전소 같은 전기 설비를 지을 때 필요한 허가 절차를 줄이고, 땅을 소유자의 동의 없이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었다. 그렇게 한국에는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울진에 총 26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되었고, 4기가 더 건설되고 있다.
2026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대규모 기업 투자를 유치해 호남, 충청, 영남 등 전국에 산업 거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산업들이 필요로 하는 부지와 물, 그리고 전기다. 처음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의 예상 전력수요만 27.7GW로, 핵발전소 26기의 설비용량을 모두 합한 약 26GW와 맞먹는 규모다. 정부는 산업단지에 필요한 땅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토지 소유자와의 협의와 강제수용을 위한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발전설비와 송전망, 댐과 관로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허가 단축과 규제 완화, 재정, 금융, 세제 지원과 인력 양성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메가특구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공장과 발전소가 들어선 뒤에는 환경오염과 생업 피해를 겪는다. 공장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에는 발전소가 들어서고, 그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또 다른 지역에는 송전탑이 세워진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앞에 거부할 권리는커녕, 제대로 의견을 묻고 듣는 과정도 없이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다. 기업과 공장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말이 무색하게,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사업은 그동안 경제성장과 개발을 위해 지역을 어떻게 착취하고 수탈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라늄 채굴부터 핵폐기물 처분까지-핵 식민주의의 착취와 수탈
착취와 수탈은 우라늄을 캐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 우라늄의 상당량은 원주민이 오랫동안 살아온 땅에서 채굴되어 왔다. 많은 원주민이 생계를 위해 광산에서 일했지만, 우라늄과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우라늄 광산에서 일한 노동자들에게서 폐암과 호흡기 질환의 위험이 높게 나타났고, 광산 주변 지역공동체에서는 유산과 사산 등 재생산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채굴된 우라늄은 광산을 떠나 전 세계로 이동하지만, 채굴로 인한 오염과 피해는 삶의 터전과 몸에 남아 폐광 이후에도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이렇게 채굴된 우라늄은 발전에 맞게 가공되거나, 농축되어 한국에 수입된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주변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제한구역’이 생기는데, 경주에 있는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원자로에서 반경 914m까지가 제한구역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제한구역 밖은 안전할까? 발전소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사는 나아리 주민들의 소변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이 중에는 당시 5세 어린이와 청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ref]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843.html[/ref] 2005년부터 2020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암 발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월성 핵발전소 반경 10km 내 주민의 암 발생률은 인근 지역보다 44% 높게 나타났다. [ref]https://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6[/ref] 그럼에도 제한구역 밖에 사는 주민들의 이주를 지원하거나 보상하는 법은 없다. 주민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수용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핵발전소가 바로 옆이라는 이유로 집과 땅을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발전소만이 아니다. 핵발전 이후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강한 방사선과 열을 내뿜는다. 핵폐기물이 다시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드는 데에는 약 30만 년이 걸리고, 최소 10만 년 이상은 인간의 생활권과 격리하여 안전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처분할 시설이 아직 없고, 지금까지 발생한 폐기물은 핵발전소 부지 안의 임시 저장 시설에 쌓여 있다. 임시저장시설의 포화가 예상되면서 핵발전소 부지 안에 새로운 저장시설을 추가로 지으려고 하는데, 주민들은 발전소의 위험에 더해 핵폐기물의 위험까지 지역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핵폐기물의 문제는 지금 핵발전소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끝나지도 않는다. 어디에 처분시설을 지을 것인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수만 년 뒤까지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세대에게까지 남겨진다.
우라늄을 채굴하는 곳에서부터 핵발전소가 들어선 곳,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처분해야 할 곳까지, 핵으로 인한 위험과 피해를 떠안고 살아가는 건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사용하는 지역이 다르고, 이익을 얻는 사람과 오염과 폐기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다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도시와 그 부담을 떠안는 지역 사이의 불평등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반복된다. 그리고 그 부담을 더 많이 감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우라늄을 채굴할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울지, 핵폐기물을 보관할지, 그 무엇도 논의하거나 결정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결코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

핵 식민주의에 맞서, 에너지정의와 재생산정의로
핵산업계와 정부는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의 에너지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심화되는 기후재난은 핵발전소 가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핵분열로 발생하는 열을 식히려면 냉각수가 필요한데, 폭염과 가뭄으로 냉각수가 부족해지거나 수온이 높아지면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춰야 한다. 또한 폭우, 태풍, 홍수와 같은 재난은 핵발전소의 안전에 새로운 위험을 더한다.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약 10년에서 15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만 따져서 핵발전을 '무탄소'라고 부를 수 없다.
‘핵’은 단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라늄 채굴부터 폐기물 처분까지 방사성 물질은 공기와 물, 땅을 오염시키고, 이 모든 단계에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그 땅에서 공동체를 일궈나가고 세대를 이어가며, 먹고 자고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방사능과 함께한다. 핵은 삶의 터전과 몸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것을 넘어, 한 사회와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영향은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만 년 이후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규모의 문제라는 것이다.
재생산권리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안전하고 존엄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포함한다. 또한 재생산정의는 재생산에 관한 결정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두지 않고, 그 결정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까지 함께 묻는다. 그래서 핵 식민주의에 재생산정의로 맞서자는 것은 단지 방사능이 임신과 출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만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원하는 관계들을 맺고, 안전한 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이상 어떤 곳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지역으로 만들지 않을 것, 누군가의 삶과 몸을 착취하지 않을 것, 경제성장이나 전쟁을 위해 수탈하지 않을 것을 함께 요구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 체계와 에너지 부정의에 맞서는 것, 핵은 언제나 특정한 땅과 몸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이미 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공동체가 삶을 회복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하자는 것, 핵을 둘러싼 국가와 인종, 젠더, 계급과 사회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에너지 체계를 어떻게 정의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서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핵 식민주의에 맞서, 에너지정의와 재생산정의로
공혜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무국장
출처: 열린원전운영정보 https://npp.khnp.co.kr/
한국에는 26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1960년대 말, 부산 기장의 바닷가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마을에 큰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공사를 위해 불도저가 들어오자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막아섰다. 그것이 공장이 아니라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려졌다. 결국 주민들은 집단으로 이주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발전소와 송전탑은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막무가내로 지어졌다. 핵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한 1978년,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현 전원개발촉진법)이 제정됐다. 더 많은 전기를 더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탑, 변전소 같은 전기 설비를 지을 때 필요한 허가 절차를 줄이고, 땅을 소유자의 동의 없이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었다. 그렇게 한국에는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울진에 총 26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되었고, 4기가 더 건설되고 있다.
2026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대규모 기업 투자를 유치해 호남, 충청, 영남 등 전국에 산업 거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산업들이 필요로 하는 부지와 물, 그리고 전기다. 처음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의 예상 전력수요만 27.7GW로, 핵발전소 26기의 설비용량을 모두 합한 약 26GW와 맞먹는 규모다. 정부는 산업단지에 필요한 땅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토지 소유자와의 협의와 강제수용을 위한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발전설비와 송전망, 댐과 관로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허가 단축과 규제 완화, 재정, 금융, 세제 지원과 인력 양성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메가특구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공장과 발전소가 들어선 뒤에는 환경오염과 생업 피해를 겪는다. 공장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에는 발전소가 들어서고, 그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또 다른 지역에는 송전탑이 세워진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앞에 거부할 권리는커녕, 제대로 의견을 묻고 듣는 과정도 없이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다. 기업과 공장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말이 무색하게,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사업은 그동안 경제성장과 개발을 위해 지역을 어떻게 착취하고 수탈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라늄 채굴부터 핵폐기물 처분까지-핵 식민주의의 착취와 수탈
착취와 수탈은 우라늄을 캐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 우라늄의 상당량은 원주민이 오랫동안 살아온 땅에서 채굴되어 왔다. 많은 원주민이 생계를 위해 광산에서 일했지만, 우라늄과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우라늄 광산에서 일한 노동자들에게서 폐암과 호흡기 질환의 위험이 높게 나타났고, 광산 주변 지역공동체에서는 유산과 사산 등 재생산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채굴된 우라늄은 광산을 떠나 전 세계로 이동하지만, 채굴로 인한 오염과 피해는 삶의 터전과 몸에 남아 폐광 이후에도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이렇게 채굴된 우라늄은 발전에 맞게 가공되거나, 농축되어 한국에 수입된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주변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제한구역’이 생기는데, 경주에 있는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원자로에서 반경 914m까지가 제한구역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제한구역 밖은 안전할까? 발전소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사는 나아리 주민들의 소변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이 중에는 당시 5세 어린이와 청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ref]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843.html[/ref] 2005년부터 2020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암 발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월성 핵발전소 반경 10km 내 주민의 암 발생률은 인근 지역보다 44% 높게 나타났다. [ref]https://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6[/ref] 그럼에도 제한구역 밖에 사는 주민들의 이주를 지원하거나 보상하는 법은 없다. 주민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수용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핵발전소가 바로 옆이라는 이유로 집과 땅을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발전소만이 아니다. 핵발전 이후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강한 방사선과 열을 내뿜는다. 핵폐기물이 다시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드는 데에는 약 30만 년이 걸리고, 최소 10만 년 이상은 인간의 생활권과 격리하여 안전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처분할 시설이 아직 없고, 지금까지 발생한 폐기물은 핵발전소 부지 안의 임시 저장 시설에 쌓여 있다. 임시저장시설의 포화가 예상되면서 핵발전소 부지 안에 새로운 저장시설을 추가로 지으려고 하는데, 주민들은 발전소의 위험에 더해 핵폐기물의 위험까지 지역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핵폐기물의 문제는 지금 핵발전소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끝나지도 않는다. 어디에 처분시설을 지을 것인지,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수만 년 뒤까지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세대에게까지 남겨진다.
우라늄을 채굴하는 곳에서부터 핵발전소가 들어선 곳,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처분해야 할 곳까지, 핵으로 인한 위험과 피해를 떠안고 살아가는 건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사용하는 지역이 다르고, 이익을 얻는 사람과 오염과 폐기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다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도시와 그 부담을 떠안는 지역 사이의 불평등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반복된다. 그리고 그 부담을 더 많이 감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우라늄을 채굴할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울지, 핵폐기물을 보관할지, 그 무엇도 논의하거나 결정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결코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
핵 식민주의에 맞서, 에너지정의와 재생산정의로
핵산업계와 정부는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의 에너지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심화되는 기후재난은 핵발전소 가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핵분열로 발생하는 열을 식히려면 냉각수가 필요한데, 폭염과 가뭄으로 냉각수가 부족해지거나 수온이 높아지면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춰야 한다. 또한 폭우, 태풍, 홍수와 같은 재난은 핵발전소의 안전에 새로운 위험을 더한다.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약 10년에서 15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탄소만 따져서 핵발전을 '무탄소'라고 부를 수 없다.
‘핵’은 단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라늄 채굴부터 폐기물 처분까지 방사성 물질은 공기와 물, 땅을 오염시키고, 이 모든 단계에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사람들은 그 땅에서 공동체를 일궈나가고 세대를 이어가며, 먹고 자고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방사능과 함께한다. 핵은 삶의 터전과 몸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것을 넘어, 한 사회와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영향은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만 년 이후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규모의 문제라는 것이다.
재생산권리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안전하고 존엄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포함한다. 또한 재생산정의는 재생산에 관한 결정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두지 않고, 그 결정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까지 함께 묻는다. 그래서 핵 식민주의에 재생산정의로 맞서자는 것은 단지 방사능이 임신과 출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만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원하는 관계들을 맺고, 안전한 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이상 어떤 곳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지역으로 만들지 않을 것, 누군가의 삶과 몸을 착취하지 않을 것, 경제성장이나 전쟁을 위해 수탈하지 않을 것을 함께 요구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 체계와 에너지 부정의에 맞서는 것, 핵은 언제나 특정한 땅과 몸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이미 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공동체가 삶을 회복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하자는 것, 핵을 둘러싼 국가와 인종, 젠더, 계급과 사회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에너지 체계를 어떻게 정의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서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