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09월[이슈2] 재생산 정의로 나아가는 정의로운 전환과 돌봄노동

재생산 정의로 나아가는 정의로운 전환과 돌봄노동

 

선지현(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

 

최근 5년간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138명(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보고된 질병관리청 자료)이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 고령층이 73.2%로 압도적으로 많다. 어르신들이 사망한 곳은 논밭이나 집이다. 우리는 기후재난이라고 하면 산불이나 침수 현장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죽음은 농촌의 논밭에서, 에어컨을 켜지 못한 방 안에서 홀로 있다가 일어난다. 이런 죽음은 현재의 재난대응체계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이 위험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폭염 속에 그 집의 문을 두드리는 생활지원사와 요양보호사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정의로운 전환 논의에서 이들의 노동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정의로운 전환이 고용대책을 넘어 '어떤 전환인가', '누가 위험한가',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될 때, 비로소 이렇게 보이지 않던 노동이 드러날 수 있다.


7631aef8cc1a8.jpg

 

정의로운 전환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오염된 땅을 위한 기금이 있다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기금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 미국에서 오염 부지 정화를 위한 슈퍼펀드법이 만들어지자 노동운동이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대책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지역사회와 사회체제의 전환을 함께 묻는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원칙이 되었다. 고용대책 요구에서 출발한 개념이 운동의 경험 속에서 그 내용을 넓혀온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요구는 발전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됐고, 여기에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사회적 투쟁으로 발전했다. 사실 이 투쟁은 발전노동자 전체라기보다는 비정규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더라도 정규직의 고용은 전환배치 등으로 유지되지만,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대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전소에서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감당하며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2018년 태안화력에서 김용균이, 2025년 6월 같은 발전소에서 재하청 노동자 김충현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비정규직 문제와 결합돼 있다.


발전 비정규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은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6년 2월 '김충현 협의체'는 한전KPS의 경상정비 하청노동자 593명을 한전KPS가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8월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물론 직접고용은 당초 약속한 시한을 넘기며 이행이 지연되고 있다. 특별법도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정의로운 탈석탄법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다단계 하도급의 가장 아래에 있던 노동자들이 스스로 전환의 주체로 나서 이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흐름이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석유화학이아 철강처럼 공장 폐쇄와 해고가 이어지는 곳에서도 논의는 정규직 고용대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비정규노동자들은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발전 비정규직의 투쟁이 오히려 예외처럼 보일 정도다.


전환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노동도 여전히 많다. 노조가 없는 1, 2차 하청노동자, 발전소 앞 식당이나 기숙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는 해당 산업의 노동자로 잡히지 않는다. 이들의 고용이 어떻게 될지 우리 사회는 관심이 별로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중고령 여성이라는 점이다. 전환 대책이 해당 산업의 공식 고용을 기준으로 짜이다 보니, 산업의 주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은 대책의 대상으로조차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런 노동을 드러내려면 전환 논의가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만나야 한다. '여기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전환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비가시화된 노동을 가시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 흐름은 아직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후정의운동을 이어가는 중심 문제의식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질문의 한가운데에 돌봄노동이 있다.

 

기후재난과 돌봄노동


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필수노동'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의료와 돌봄노동이 대표적이다.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돌보며 삶을 지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필수노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는 이 질문을 더 절박하게 만든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5년 20.3%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2019~2023년 자연재난 사망자의 58%는 폭염 때문이었다. 고령화와 폭염이 만나는 지점에 돌봄이 있다.


돌봄노동은 대표적인 여성 일자리다. 이들 상당수는 경력이 단절된 중장년 여성이다. 사실 돌봄이 저임금노동으로 머무는 것은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돌봄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온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숙련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돌봄노동자의 건강 문제조차 일 때문이 아니라 나이 탓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돌봄노동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대표적인 저임금·불안정노동이다. 2028년에는 돌봄 인력이 11만 7천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돌봄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고, 단시간 노동을 하는 방문요양보호사의 월 임금은 80만 원 수준이다. 노인맞춤돌봄 생활지원사는 주로 50대 여성이고, 개별 복지관과 하루 다섯 시간짜리 기간제 계약을 맺는다. 인력난은 결국 이런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재난 대응에서도 돌봄노동자는 빠져 있다. 고용노동부 필수업무 종사자 지원위원회는 폭염 재난 속에서도 필요한 필수업무 직종으로 생활지원사 등 노인돌봄 인력을 꼽았다. 그리고 이들이 방문과 이동이 잦은데도 휴게 장소나 보호구 지원이 미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발표된 정부의 2026년 폭염대책에서 중점관리 대상은 건설, 물류·택배, 조선, 공공분야였다. 그런데 돌봄노동은 시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용자의 집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80%가 넘는다. 이 규정은 사업주가 관리하는 작업장을 전제로 만들어져, 이용자의 집을 오가며 일하는 돌봄노동자에게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용자의 집이 사업장이라는 것은 폭염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돌봄노동자는 닫힌 공간에서 이용자와 1대1로 일한다. 한 조사에서는 요양보호사의 40% 이상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고, 가해자 대부분은 서비스 이용자였다. 피해 이후 기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도 가장 많았다. 폭염이든 성희롱이든 집이라는 일터에서 여성 돌봄노동자를 보호할 장치가 비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한 상황에서 방문을 중단하거나 조정할 권한이 노동자에게 없다는 것이다. 판단의 책임은 노동자가 지는데 결정의 권한은 없다.


이런 조건의 바탕에는 돌봄을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해오던 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 있다. 2024년 돌봄을 포함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582조 원으로 GDP의 22.8%에 이르고, 그중 73.1%를 여성이 담당한다. 그러다보니 시설이 감당하지 못하면 부담은 재가로, 재가가 끊기면 가정의 책임으로 내려간다. 산업전환으로 소득이 줄어든 가정도 유료 돌봄부터 줄인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대개 여성이 일을 줄이거나 그만두는 방식으로 메워진다. 정의로운 전환이 실패하면 그 실패는 여성의 돌봄 부담 증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전환 대책에서 이 문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기후위기 시대, 노동 개념을 다시 묻다


돌봄이 전환 논의에서 빠지는 것은 우리가 쓰는 '노동'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20세기를 거치며 노동은 임금을 매개로 한 공식 고용관계로 좁아졌다. 사용자가 불분명하고 눈에 보이는 생산물이 남지 않는 돌봄은 그 개념에서 계속 밀려났다.


그 점에서 장훈교(2023, 『탈석탄화 지역의 녹색전환 일자리 창출 방안 기초연구: 영국의 경험, 한국의 현재, 대안의 탐색』,녹색전환연구소)의 논의는 의미가 있다. 그는 노동력을 상품이 아니라 공통자원으로 재정의하고, 이를 기후위기 국면에 적용한 '전환필수노동'을 통해 무엇을 보호하고 창출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 답으로 제시되는 것이 돌봄, 생태복원, 에너지 절감형 노동이다. 이는 노동의 가치를 임금이 아니라 그 노동이 인간과 생태계에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돌봄은 탄소 배출이 적고, 대체가 불가능하며, 지역에 뿌리내리고,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노동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보호하고 늘려야 할 노동의 한가운데에 돌봄이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조건 그대로 돌봄 일자리를 늘리면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난다. 결국 핵심은 일자리를 몇 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노동을 어떤 조건으로 보호하고 창출할 것인가에 있다.


dc97877c090f9.jpg

 

재생산정의로 나아가는 전환


재생산정의는 선택지가 없는 사람에게 선택할 권리는 공허하다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낳을 권리와 함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에서 아이를 기를 권리를 주장했다. 이 개념은 성별만이 아니라 인종과 계급이 겹치는 자리에서 누가 선택지를 갖지 못하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 이 질문은 저임금 돌봄을 떠맡은 중고령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주여성 돌봄노동자를 들여와 인력난을 메우려는 논의에도 마찬가지다. 돌봄의 가치를 높이지 않은 채 더 싼 노동력을 찾는 방식은 전환이 아니라 부정의의 재생산이다.


이 문제의식은 정의로운 전환 운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예를 들어 '재훈련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라'는 보상과 선택의 언어는 많은 노동자에게 실제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결국 전환은 '살던 곳에서'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문제다. 그리고 그 조건의 중심에 돌봄이 있다.


발전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은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던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나마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와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위험에 놓인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돌봄노동자다. 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지 않는 전환은 정의로울 수 없다.



셰어의 활동 소식과 성·재생산에 관한 뉴스를 받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셰어의 뉴스레터를 
신청해 보세요. 알찬 소식으로 가득찬 뉴스레터를 월 1회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