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시월(셰어 기획운영위원)
2025년 10월, 해초는 한국인 최초로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마들린호(Thousand Madleens to Gaza, TMTG)’에 올라탔다. 그녀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국이 가자 지구 학살에 가담하고 공모한 책임이 크다는 생각에 이 항해에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ref]뉴스앤조이, “평화 활동가 해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종교 전쟁 아닌 집단 학살’”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400110[/ref] 2026년 5월에 해초와 동현, 한국계 미국인 활동가 승준이 다시 한 번 구호물자를 싣고 가자로의 항해에 나섰다.[ref]시사IN, ““항해는 실패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한다면””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01[/ref] ‘마들린호’의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활동은 그보다 앞서 2025년 6월, 스웨덴의 기후정의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참여하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청소년 활동가로 먼저 알려진 툰베리는 생태 파괴의 근본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는 데까지 나아갔고, 이제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운동의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생태주의 운동과 풀뿌리 반제국주의·반군사주의 운동이 가자를 향하는 배 위에서 만나는 장면은, 서로 별개의 투쟁처럼 보이는 두 운동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1.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출처: 도서출판 두번째테제 웹페이지 http://secondthesis.com/portfolio/팔레스타인의파괴는지구의파괴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The Destruction of Palestine Is the Destruction of the Earth)』 (2025)를 이번 이슈 페이퍼의 리뷰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이 연결성에 대해 더 나아간 논의를 제공해줄 것 같아서였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의 식민지배·군사점령·집단학살은 주로 반제국주의와 반군사주의의 언어를 통해 논의되어 왔고, 팔레스타인의 파괴를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의 관점에서 사유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들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의 한국어 번역본이 작년 출간된 이후 이 책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말과 글을 접할 수 있었다.[ref]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927기후정의행진X팔레스타인긴급행동 포럼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 한국 석유공사는 가자지구 가스전 수탈을 멈춰라” https://www.facebook.com/palestinekorea/posts ; 덩야핑, 한겨레, “가자지구는 전지구적 생태학살의 리허설이다 [왜냐면]”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218095.html ; 윤은성, 경향신문, “나크바 이후, 기후정의”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142021005#ENT[/ref] 왜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파괴가 지구의 파괴라는 것일까?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은 어떻게 맞물려있는가? 또, 셰어의 재생산 정의 운동은 이것들과 어떻게 연결성을 찾을 수 있을까?
책과 저자 소개
저자인 말름은 스웨덴의 저널리스트이자 연구자로서, 현재 룬드 대학교(Lund University)의 인문 생태학 및 인문 지리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 시점에는 누가 봐도 기후 문제를 본인의 연구와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사람인데, 그는 자기 자신을 “팔레스타인을 거쳐 기후라는 문제에 도달한 사람”(175)이라고 서술한다. 1990년대 말에 점령된 팔레스타인에서 생활해본 경험 이후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과 연대를 이어왔고, 나중에서야 기후가 자신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을 때도 그것에 접근하는 태도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배운 저항의 정신에 의해 틀 지어졌다고 말이다.

이미지 2. 안드레아스 말름 (출처: Verso Books의 Author Page https://www.versobooks.com/en-gb/blogs/authors/malm-andreas )
말름은 가자에서의 집단학살이 다시금 본격화된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인 2024년 4월 4일, 레바논에 있는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그 강연록을 미국의 좌파 출판사인 버소(Verso)의 블로그에 게시했다가[ref]https://www.versobooks.com/en-gb/blogs/news/the-destruction-of-palestine-is-the-destruction-of-the-earth[/ref] 곧이어 책으로 출간했다.[ref]Andreas Malm, The Destruction of Palestine Is the Destruction of the Earth, Verso, 2024 https://www.versobooks.com/en-gb/products/3400-the-destruction-of-palestine-is-the-destruction-of-the-earth?srsltid=AfmBOoquQEnvWKT70cPLj4tgOefgMS8LfryBiuZnmUS909geNGfDTrnV[/ref] 이 책을 번역한 것이 도서출판 두번째테제의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이다. 생태환경 분야의 책들을 옮겨온 추선영이 번역했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로서 한국에서의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운동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덩야핑이 추천사를 썼다.
정착 식민주의의 기저에 있는, 화석연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지금까지 우리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고, 정착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구조 하에서 집단학살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짚어왔다. 북미와 유럽의 유대인들이 중동에 정착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당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선주민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단학살을 통한 팔레스타인인의 절멸은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선주민이 살았던 흔적까지 지워내야 하기 때문에, 건물과 식생에 대한 파괴도 수반되곤 한다. 따라서 이 모든 파괴와 학살은 2023년 10월 7일의 투판 알아크사(Tufan al-Aqsa)[ref]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내건 공식 작전명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주로 “알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서구 언론에서는 “October 7” 혹은 “October 7 attacks”로 지칭되는 경우가 많다.[/ref]가 아니라 1948년 시오니스트 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과 나크바(Nakba)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정전(ceasefire)을 넘어서 식민주의 종식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달성되어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말름은 그보다 한 층 더 깊이 발을 내딛어보자고, 정착 식민주의의 기저에 있는 것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말이다. 말름이 보기에, “팔레스타인에서의 정착민 식민주의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적이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100) 정착 식민주의는 제국들(말름은 과거에는 영국, 현재는 그 바톤을 이어받은 미국을 주로 지목하고 있다)이 시온주의 사상을 만들어내고, 시온주의 식민 당국인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제국의 지원이라는 이 구조는 “화석연료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비상한 힘에 의해 구축되었고 계속해서 그러한 방식으로 기능해왔다.” (101) 따라서 팔레스타인에서의 파괴와 학살을 가능케 한 구조의 발전 과정이 “지구 온난화의 시간적 형태 그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7) 말름은 화석제국(fossil empire)이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의 파괴의 공통된 뿌리라고 주장한다.[ref]말름은 Fossil Capital: The Rise of Steam Power and the Roots of Global Warming, Verso, 2016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쓰던 당시 별도의 연구, 예를 들면 후속작으로서의 Fossil Empire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2023년부터의 가자 지구 집단학살을 계기로 실제로 이 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ref]
이렇게 초점을 정착 식민주의에서 화석제국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말름은 보다 앞선 1840년에 주목한다. 이때 이미 대영제국의 주요 설계자인 파머스턴 경의 서한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겠다는 구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서한은 영국이 증기선을 투입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도시 아크레를 폐허로 만드는 전승을 올린 직후에 쓰여졌다. 행복감에 젖은 채, 파머스턴 경은 (아크레 뿐 아니라 전체)팔레스타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와 같은 곳이며, 화석연료로 구동되는 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그 땅을 차지해야한다고 적었다. 이것을 말름은 팔레스타인의 파괴와 지구의 파괴가 첫번째로 맞물리는 순간이었다고 본다. 석탄, 내연기관, 증기선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 상부 구조인 시온주의 사상이 제국의 것으로서 처음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실제 착수되지 않은 아이디어 단계였지만 말이다.
말름은 다음 두 세기 동안을 1840년 처음 수립된 각본이 실행에 옮겨지고 더욱 고조·확대되어온 과정이라고 개괄한다. 1920-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하는 동안, 영국이 추진한 핵심 산업 프로젝트는 이라크에서 퍼 올린 원유를 요르단강 서안 지구 북부와 갈릴리를 거쳐 하이파에 자리 잡은 정제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감귤류 농사를 더이상 지을 수 없게 되었다. 1948년 전후한 나크바 동안,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석유 이권을 가장 염두에 두고서 시온주의자들과 아랍 사람들 중 누구와 손 잡을 것인지를 논의했다. 미국 석유 회사들은 이스라엘을 이 지역의 동맹으로 삼음으로써 원유 매장지에 대한 통제를 간접적으로 강화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에서의 집단학살도 마찬가지로, 석유국가(petrostate) 네트워크에 의해 틀지어졌다. 지금 화석연료 생산의 확장을 이끄는 나라는 물론 미국이지만, 이스라엘은 가스 및 원유 부문에서 자신의 위상을 점차 높여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가스시장에 위기가 찾아오자, 이스라엘은 다른 EU국가로의 중요한 가스 및 원유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말름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제국들이 2023년 10월 7일의 투판 알아크사에 분노한 것은, 이 작전으로 인해 가자 북부와 인접한 타마르(Tamar) 가스 채굴 플랫폼의 가동이 중단된 데에서도 기인한다고 짚는다. 타마르 가스전에 관여한 주요 기업 중 하나가 미국의 통합 에너지 기업인 셰브론(Chevron)이다. 셰브론은 10월 7일로부터 5주가 지나 가자 지구 북부가 거의 초토화되자 타마르 가스전 가동을 재개했고, 2024년 2월 생산량 증대를 위한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정상화(normalization)의 정치생태학
잠시 말름이 이 책의 도입부에 언급했던 두 가지 사건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가자 지구에서 자행되고 있는 파괴와 학살이다. 현재 시점으로 7만 3천 5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유례 없이 노골적인 폭력이 퍼부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들의 죽음에는 냉담하고 무심한 반응들이 돌아온다. 두 번째는 이 집단학살이 시작되기 한 달 전에 리비아를 강타한 폭풍 다니엘로 인한 참사다. 기후 변화로 인한 거센 폭풍우로, 하룻밤 사이에 약 1만 1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는 1948년 나크바로 인해 피난 나오게 됐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폭풍에 자신의 친척을 잃은 팔레스타인인 파예즈 아부 암라(Fayez Abu Amra)는 이 재해를 “두 번째 나크바”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 언론은 이 사상 초유의 기후 재난에 주목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폭풍 다니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이 무관심과 냉담함이야말로,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활동과 기후 정의 활동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벽일 거라고 생각한다. 화석자본과 화석제국은 현재의 구조를 정상화한다. 석탄, 석유, 또는 가스의 채굴은 누군가를 해칠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비록 그것이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기후 재난으로 돌아오고, 그 피해가 글로벌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지만 말이다. 중심부(metropole)에서의 나의 일상은 저 먼 서아시아에서의 죽음과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동”은 늘 분쟁에 휩싸인 곳이고 아랍인들과는 동일시해본 적 없지 않은가. 말름은 AI로 인해 학살의 의도성과 무심함 사이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음을 짚는다. ‘가스펠(Gospel)’, ‘라벤더(Lavender),’ ‘아빠는 어디에(Where’s Daddy)’ 등의 AI 프로그램이 설정해준 표적을 인간이 승인하는 데에 투여하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표적 1명 당 ‘허락’되는 ‘부수적’ 죽음의 숫자가 커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을, 다음에는 지구를 파괴하는 현상 유지를 신성화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상화의 정치생태학이다.” (p.113)
책의 후반부에서 말름은 ‘정상화의 정치생태학(political ecology of normalization)’이 불러올 파괴적인 결과를 강조한다. 그저 평소와 다름 없는 업무(business as usual)라는 말로 화석연료 기반시설의 건설과 인종화된 식민지 건설을 계속해서 승인하면, 이는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파괴할 것이며 결국 지구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는 화석연료와 식민지에 대한 투자를 끝내지 않은 채로는, 정부간 협상이든 국제기구의 노력이든 이데올로기적인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X 기후 정의 X 재생산 정의
정리하자면, 이 책에서 말름은 첫째,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정착 식민주의를 지탱하는 심층 구조라고 주장한다. 정착 식민주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의 생태 및 문화에 대한 파괴로 표출된다. 화석자본은 지구 온난화의 근본 원인이다. 즉, 팔레스타인의 파괴와 지구의 파괴는 같은 구조적 원인을 가진다. 둘째, 이스라엘 외의 다른 여러 국가들로도 시야를 넓히기를 제안한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이스라엘과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함께 수행하는 초국적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말름은 영국과 미국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고 ‘서구’를 호명하고 있지만, 한국이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셋째, 각지의 기후 정의 활동가와 좌파들은 팔레스타인 저항 행동을 지지해야 한다.

이미지 3. All Oppression is Connected (출처: New Mexico Women.org https://newmexicowomen.org/happy-intersectional-pride-month/all-oppression-is-connected/)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의 파괴가 원인을 공유한다는 말름의 주장은, 모든 억압이 연결되어 있다는 교차성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진정으로 교차적인 저항 운동을 조직해내려면 지난한 과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젠더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이것들과 어떻게 맞물릴까? 이 책이 새롭게 열어젖혀준 연대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말름을 페미니스트 혹은 퀴어 앨라이라고 보긴 어렵기에,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에는 ‘젠더’ ‘페미니즘’ ‘퀴어’는 물론이고 ’여성’이라는 단어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남아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차적인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의 몫이 아닌 우리의 과제로 삼는 자세일 것이다.
셰어는 재생산 정의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에서의 식민지배·군사점령·집단학살에 접근해왔다. 선주민의 절멸을 향해 달려가는 정착 식민주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재생산 억압을 수반하게 된다고,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 정의도 없다고 외쳤다.[ref]나영, “[2024년 3월 이슈페이퍼]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정의 - 점령과 학살의 끝에 내몰린 생존의 조건 속에서” https://srhr.kr/issuepapers/?idx=18995471&bmode=view; 시월, “[후기] 제4회 재생산 정의 X 평화 세미나: 팔레스타인 편” https://srhr.kr/announcements/?idx=93985192&bmode=view;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후기] 퀴어팔레스타인연대K48 주최 <2026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 부수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 포럼” https://srhr.kr/announcements/?idx=171499770&bmode=view
[/ref] 북미의 모호크(Mohawk) 선주민 페미니스트 오드라 심슨(Audra Simpson)은 이때의 재생산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재생산 정의와 기후 정의가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준다. 그녀는 The State Is A Man (2016)에서,[ref]Simpson, Audra. "The State is a Man: Theresa Spence, Loretta Saunders and the Gender of Settler Sovereignty." Theory & Event 19, no. 4 (2016)[/ref] 정착 식민주의 하에서 선주민 여성의 몸이 빈번하게 폭력의 타겟이 되는 것이 단지 그 몸이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착 식민주의 정권에게 그 몸은 “가장 위험하게는 다른 정치적 질서”를 상징한다. “다른 삶의 형태, 다른 주권(sovereignty), 다른 형태의 정치적 의지”인 것이다. 즉, 몸과 땅의 연결은 여성의 몸을 자연이나 대지와 동일시하는 본질주의적인 은유라기보다, 삶과 관계와 세계를 재생산해나가는 특정한 방식으로서 재사유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에서 말름은 화석자본과 화석제국의 멘탈리티, 즉 사람과 땅을 점유하고 추출하고 파괴하는 것으로서 접근하는 소유적(possesive) 관점을 규명해내는 데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압적 권력의 관점이 그러하다면, 저항의 관점은 어떠해야 할까. 팔레스타인의 사람과 땅, 그리고 지구의 생태를 각각 별개의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그 모든 것을 삶과 관계와 세계를 재생산하는 조건으로 사유해보는 게 아닐까? 아포칼립스의 상상력이 대체로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가리는 효과를 낸다는 걸 고려하면, 팔레스타인 해방 X 기후 정의 X 재생산 정의의 기획은 인류 멸망의 공포보다는 우리가 어떤 정치적 공동체와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에 의해 추동되길 바란다.
[리뷰]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시월(셰어 기획운영위원)
2025년 10월, 해초는 한국인 최초로 ‘가자로 향하는 천 개의 마들린호(Thousand Madleens to Gaza, TMTG)’에 올라탔다. 그녀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국이 가자 지구 학살에 가담하고 공모한 책임이 크다는 생각에 이 항해에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ref]뉴스앤조이, “평화 활동가 해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종교 전쟁 아닌 집단 학살’”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400110[/ref] 2026년 5월에 해초와 동현, 한국계 미국인 활동가 승준이 다시 한 번 구호물자를 싣고 가자로의 항해에 나섰다.[ref]시사IN, ““항해는 실패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한다면””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01[/ref] ‘마들린호’의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활동은 그보다 앞서 2025년 6월, 스웨덴의 기후정의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참여하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청소년 활동가로 먼저 알려진 툰베리는 생태 파괴의 근본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는 데까지 나아갔고, 이제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운동의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생태주의 운동과 풀뿌리 반제국주의·반군사주의 운동이 가자를 향하는 배 위에서 만나는 장면은, 서로 별개의 투쟁처럼 보이는 두 운동이 사실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1.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출처: 도서출판 두번째테제 웹페이지 http://secondthesis.com/portfolio/팔레스타인의파괴는지구의파괴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The Destruction of Palestine Is the Destruction of the Earth)』 (2025)를 이번 이슈 페이퍼의 리뷰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이 연결성에 대해 더 나아간 논의를 제공해줄 것 같아서였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의 식민지배·군사점령·집단학살은 주로 반제국주의와 반군사주의의 언어를 통해 논의되어 왔고, 팔레스타인의 파괴를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의 관점에서 사유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들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의 한국어 번역본이 작년 출간된 이후 이 책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말과 글을 접할 수 있었다.[ref]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927기후정의행진X팔레스타인긴급행동 포럼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 한국 석유공사는 가자지구 가스전 수탈을 멈춰라” https://www.facebook.com/palestinekorea/posts ; 덩야핑, 한겨레, “가자지구는 전지구적 생태학살의 리허설이다 [왜냐면]”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218095.html ; 윤은성, 경향신문, “나크바 이후, 기후정의”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142021005#ENT[/ref] 왜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파괴가 지구의 파괴라는 것일까?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은 어떻게 맞물려있는가? 또, 셰어의 재생산 정의 운동은 이것들과 어떻게 연결성을 찾을 수 있을까?
책과 저자 소개
저자인 말름은 스웨덴의 저널리스트이자 연구자로서, 현재 룬드 대학교(Lund University)의 인문 생태학 및 인문 지리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 시점에는 누가 봐도 기후 문제를 본인의 연구와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사람인데, 그는 자기 자신을 “팔레스타인을 거쳐 기후라는 문제에 도달한 사람”(175)이라고 서술한다. 1990년대 말에 점령된 팔레스타인에서 생활해본 경험 이후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과 연대를 이어왔고, 나중에서야 기후가 자신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을 때도 그것에 접근하는 태도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배운 저항의 정신에 의해 틀 지어졌다고 말이다.
이미지 2. 안드레아스 말름 (출처: Verso Books의 Author Page https://www.versobooks.com/en-gb/blogs/authors/malm-andreas )
말름은 가자에서의 집단학살이 다시금 본격화된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인 2024년 4월 4일, 레바논에 있는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그 강연록을 미국의 좌파 출판사인 버소(Verso)의 블로그에 게시했다가[ref]https://www.versobooks.com/en-gb/blogs/news/the-destruction-of-palestine-is-the-destruction-of-the-earth[/ref] 곧이어 책으로 출간했다.[ref]Andreas Malm, The Destruction of Palestine Is the Destruction of the Earth, Verso, 2024 https://www.versobooks.com/en-gb/products/3400-the-destruction-of-palestine-is-the-destruction-of-the-earth?srsltid=AfmBOoquQEnvWKT70cPLj4tgOefgMS8LfryBiuZnmUS909geNGfDTrnV[/ref] 이 책을 번역한 것이 도서출판 두번째테제의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이다. 생태환경 분야의 책들을 옮겨온 추선영이 번역했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로서 한국에서의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운동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덩야핑이 추천사를 썼다.
정착 식민주의의 기저에 있는, 화석연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지금까지 우리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고, 정착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구조 하에서 집단학살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짚어왔다. 북미와 유럽의 유대인들이 중동에 정착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당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선주민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단학살을 통한 팔레스타인인의 절멸은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선주민이 살았던 흔적까지 지워내야 하기 때문에, 건물과 식생에 대한 파괴도 수반되곤 한다. 따라서 이 모든 파괴와 학살은 2023년 10월 7일의 투판 알아크사(Tufan al-Aqsa)[ref]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내건 공식 작전명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주로 “알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서구 언론에서는 “October 7” 혹은 “October 7 attacks”로 지칭되는 경우가 많다.[/ref]가 아니라 1948년 시오니스트 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과 나크바(Nakba)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정전(ceasefire)을 넘어서 식민주의 종식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달성되어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말름은 그보다 한 층 더 깊이 발을 내딛어보자고, 정착 식민주의의 기저에 있는 것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말이다. 말름이 보기에, “팔레스타인에서의 정착민 식민주의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적이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100) 정착 식민주의는 제국들(말름은 과거에는 영국, 현재는 그 바톤을 이어받은 미국을 주로 지목하고 있다)이 시온주의 사상을 만들어내고, 시온주의 식민 당국인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제국의 지원이라는 이 구조는 “화석연료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비상한 힘에 의해 구축되었고 계속해서 그러한 방식으로 기능해왔다.” (101) 따라서 팔레스타인에서의 파괴와 학살을 가능케 한 구조의 발전 과정이 “지구 온난화의 시간적 형태 그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7) 말름은 화석제국(fossil empire)이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의 파괴의 공통된 뿌리라고 주장한다.[ref]말름은 Fossil Capital: The Rise of Steam Power and the Roots of Global Warming, Verso, 2016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쓰던 당시 별도의 연구, 예를 들면 후속작으로서의 Fossil Empire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2023년부터의 가자 지구 집단학살을 계기로 실제로 이 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ref]
이렇게 초점을 정착 식민주의에서 화석제국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말름은 보다 앞선 1840년에 주목한다. 이때 이미 대영제국의 주요 설계자인 파머스턴 경의 서한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겠다는 구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서한은 영국이 증기선을 투입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도시 아크레를 폐허로 만드는 전승을 올린 직후에 쓰여졌다. 행복감에 젖은 채, 파머스턴 경은 (아크레 뿐 아니라 전체)팔레스타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와 같은 곳이며, 화석연료로 구동되는 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그 땅을 차지해야한다고 적었다. 이것을 말름은 팔레스타인의 파괴와 지구의 파괴가 첫번째로 맞물리는 순간이었다고 본다. 석탄, 내연기관, 증기선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 상부 구조인 시온주의 사상이 제국의 것으로서 처음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실제 착수되지 않은 아이디어 단계였지만 말이다.
말름은 다음 두 세기 동안을 1840년 처음 수립된 각본이 실행에 옮겨지고 더욱 고조·확대되어온 과정이라고 개괄한다. 1920-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하는 동안, 영국이 추진한 핵심 산업 프로젝트는 이라크에서 퍼 올린 원유를 요르단강 서안 지구 북부와 갈릴리를 거쳐 하이파에 자리 잡은 정제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감귤류 농사를 더이상 지을 수 없게 되었다. 1948년 전후한 나크바 동안,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석유 이권을 가장 염두에 두고서 시온주의자들과 아랍 사람들 중 누구와 손 잡을 것인지를 논의했다. 미국 석유 회사들은 이스라엘을 이 지역의 동맹으로 삼음으로써 원유 매장지에 대한 통제를 간접적으로 강화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에서의 집단학살도 마찬가지로, 석유국가(petrostate) 네트워크에 의해 틀지어졌다. 지금 화석연료 생산의 확장을 이끄는 나라는 물론 미국이지만, 이스라엘은 가스 및 원유 부문에서 자신의 위상을 점차 높여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가스시장에 위기가 찾아오자, 이스라엘은 다른 EU국가로의 중요한 가스 및 원유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말름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제국들이 2023년 10월 7일의 투판 알아크사에 분노한 것은, 이 작전으로 인해 가자 북부와 인접한 타마르(Tamar) 가스 채굴 플랫폼의 가동이 중단된 데에서도 기인한다고 짚는다. 타마르 가스전에 관여한 주요 기업 중 하나가 미국의 통합 에너지 기업인 셰브론(Chevron)이다. 셰브론은 10월 7일로부터 5주가 지나 가자 지구 북부가 거의 초토화되자 타마르 가스전 가동을 재개했고, 2024년 2월 생산량 증대를 위한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정상화(normalization)의 정치생태학
잠시 말름이 이 책의 도입부에 언급했던 두 가지 사건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가자 지구에서 자행되고 있는 파괴와 학살이다. 현재 시점으로 7만 3천 5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유례 없이 노골적인 폭력이 퍼부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들의 죽음에는 냉담하고 무심한 반응들이 돌아온다. 두 번째는 이 집단학살이 시작되기 한 달 전에 리비아를 강타한 폭풍 다니엘로 인한 참사다. 기후 변화로 인한 거센 폭풍우로, 하룻밤 사이에 약 1만 1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는 1948년 나크바로 인해 피난 나오게 됐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폭풍에 자신의 친척을 잃은 팔레스타인인 파예즈 아부 암라(Fayez Abu Amra)는 이 재해를 “두 번째 나크바”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 언론은 이 사상 초유의 기후 재난에 주목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폭풍 다니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이 무관심과 냉담함이야말로, 팔레스타인 해방 지지 활동과 기후 정의 활동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벽일 거라고 생각한다. 화석자본과 화석제국은 현재의 구조를 정상화한다. 석탄, 석유, 또는 가스의 채굴은 누군가를 해칠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비록 그것이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기후 재난으로 돌아오고, 그 피해가 글로벌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지만 말이다. 중심부(metropole)에서의 나의 일상은 저 먼 서아시아에서의 죽음과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동”은 늘 분쟁에 휩싸인 곳이고 아랍인들과는 동일시해본 적 없지 않은가. 말름은 AI로 인해 학살의 의도성과 무심함 사이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음을 짚는다. ‘가스펠(Gospel)’, ‘라벤더(Lavender),’ ‘아빠는 어디에(Where’s Daddy)’ 등의 AI 프로그램이 설정해준 표적을 인간이 승인하는 데에 투여하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표적 1명 당 ‘허락’되는 ‘부수적’ 죽음의 숫자가 커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을, 다음에는 지구를 파괴하는 현상 유지를 신성화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상화의 정치생태학이다.” (p.113)
책의 후반부에서 말름은 ‘정상화의 정치생태학(political ecology of normalization)’이 불러올 파괴적인 결과를 강조한다. 그저 평소와 다름 없는 업무(business as usual)라는 말로 화석연료 기반시설의 건설과 인종화된 식민지 건설을 계속해서 승인하면, 이는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파괴할 것이며 결국 지구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는 화석연료와 식민지에 대한 투자를 끝내지 않은 채로는, 정부간 협상이든 국제기구의 노력이든 이데올로기적인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X 기후 정의 X 재생산 정의
정리하자면, 이 책에서 말름은 첫째,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정착 식민주의를 지탱하는 심층 구조라고 주장한다. 정착 식민주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의 생태 및 문화에 대한 파괴로 표출된다. 화석자본은 지구 온난화의 근본 원인이다. 즉, 팔레스타인의 파괴와 지구의 파괴는 같은 구조적 원인을 가진다. 둘째, 이스라엘 외의 다른 여러 국가들로도 시야를 넓히기를 제안한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이스라엘과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함께 수행하는 초국적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말름은 영국과 미국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고 ‘서구’를 호명하고 있지만, 한국이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셋째, 각지의 기후 정의 활동가와 좌파들은 팔레스타인 저항 행동을 지지해야 한다.
이미지 3. All Oppression is Connected (출처: New Mexico Women.org https://newmexicowomen.org/happy-intersectional-pride-month/all-oppression-is-connected/)
기후위기와 팔레스타인의 파괴가 원인을 공유한다는 말름의 주장은, 모든 억압이 연결되어 있다는 교차성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진정으로 교차적인 저항 운동을 조직해내려면 지난한 과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젠더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이것들과 어떻게 맞물릴까? 이 책이 새롭게 열어젖혀준 연대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말름을 페미니스트 혹은 퀴어 앨라이라고 보긴 어렵기에,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에는 ‘젠더’ ‘페미니즘’ ‘퀴어’는 물론이고 ’여성’이라는 단어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남아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차적인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의 몫이 아닌 우리의 과제로 삼는 자세일 것이다.
셰어는 재생산 정의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에서의 식민지배·군사점령·집단학살에 접근해왔다. 선주민의 절멸을 향해 달려가는 정착 식민주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재생산 억압을 수반하게 된다고,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 정의도 없다고 외쳤다.[ref]나영, “[2024년 3월 이슈페이퍼]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정의 - 점령과 학살의 끝에 내몰린 생존의 조건 속에서” https://srhr.kr/issuepapers/?idx=18995471&bmode=view; 시월, “[후기] 제4회 재생산 정의 X 평화 세미나: 팔레스타인 편” https://srhr.kr/announcements/?idx=93985192&bmode=view;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후기] 퀴어팔레스타인연대K48 주최 <2026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 부수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 포럼” https://srhr.kr/announcements/?idx=171499770&bmode=view
[/ref] 북미의 모호크(Mohawk) 선주민 페미니스트 오드라 심슨(Audra Simpson)은 이때의 재생산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재생산 정의와 기후 정의가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준다. 그녀는 The State Is A Man (2016)에서,[ref]Simpson, Audra. "The State is a Man: Theresa Spence, Loretta Saunders and the Gender of Settler Sovereignty." Theory & Event 19, no. 4 (2016)[/ref] 정착 식민주의 하에서 선주민 여성의 몸이 빈번하게 폭력의 타겟이 되는 것이 단지 그 몸이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착 식민주의 정권에게 그 몸은 “가장 위험하게는 다른 정치적 질서”를 상징한다. “다른 삶의 형태, 다른 주권(sovereignty), 다른 형태의 정치적 의지”인 것이다. 즉, 몸과 땅의 연결은 여성의 몸을 자연이나 대지와 동일시하는 본질주의적인 은유라기보다, 삶과 관계와 세계를 재생산해나가는 특정한 방식으로서 재사유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에서 말름은 화석자본과 화석제국의 멘탈리티, 즉 사람과 땅을 점유하고 추출하고 파괴하는 것으로서 접근하는 소유적(possesive) 관점을 규명해내는 데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압적 권력의 관점이 그러하다면, 저항의 관점은 어떠해야 할까. 팔레스타인의 사람과 땅, 그리고 지구의 생태를 각각 별개의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대신, 그 모든 것을 삶과 관계와 세계를 재생산하는 조건으로 사유해보는 게 아닐까? 아포칼립스의 상상력이 대체로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가리는 효과를 낸다는 걸 고려하면, 팔레스타인 해방 X 기후 정의 X 재생산 정의의 기획은 인류 멸망의 공포보다는 우리가 어떤 정치적 공동체와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에 의해 추동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