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익명출산이 아니에요”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시립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와의 보호출산제 간담회
사진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미혜, 시립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국현
셰어 셰어는 현재 보호출산제폐지연대에서 보호출산제 대응 활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권리 보장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익명(보호)출산제의 ‘위기임신’ 상담 중심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졌어요. 7월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익명으로 출산하면 아동이 시설로 가게 되는 것도 문제인데요. 이 과정에서 아동은 무조건 원가정에서 먼저 양육되어야 하고, 원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된다는 논의가 강조돼요.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양육자의 사정으로 원가정 양육을 할 수 없거나, 피양육자가 원치 않는 경우에 어떤 대안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특히 양육자가 청소년인 경우에는 주거, 노동, 돌봄을 둘러싼 열악하고 복합적인 상황에서 여러 사정이 발생하고, 아동 학대나 방치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하고. 그럴 때 양육자와 피양육자 모두 각각의 시설로 다시 수용되어 버리는 상황도 발생하는 것 같아요. 보호출산제 문제를 지적할 때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함께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 간담회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셰어 최근 미혜님이 아동탈시설의 대안에 대한 고민 속에서 원가정 보호 원칙에 관한 고민을 나눠주셨는데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미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시설보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라고 권고했어요. 한국에서는 아동 보호 시설에 있어서 대형 양육시설이 가장 큰 예산 규모를 차지하고, 이해관계도 있으니 이런 논의들이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현 정부에서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을 계획하지만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도 않고 여전히 탈시설을 위한 정책적 시도는 미비해요.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요구안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저희는 청소년 주거권을 생각하면서 청소년이 누구와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청소년이 다양한 형태로 살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데 아동의 범위에 영유아부터 청소년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영유아의 탈시설을 생각할 때 또 다른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중에 영유아의 경우 원가정에서의 보호가 중요하게 얘기되기도 한 거죠. 애초가 부모가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 탈가정하거나 시설로 가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원가정 복귀 및 지원이 중요하게 얘기되기도 하는 거예요. 물론 그런 주장에 동의하기도 하고요.
셰어 청소년 주거권 활동을 하면서 하고 계신 고민도 이야기 해주세요.
미혜 저희는 가정폭력이나 가족이랑 더 이상 살기가 어려운, 살지 못하겠다는 또는 살지 않기로 마음먹은 탈가정 청소년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그 가정에서 탈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참으면서 사는 건 죽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청소년 쉼터에서는 첫 번째 기능이 원가정 복귀를 지원하는 것이에요. 쉼터가 일시 보호하고 있다가 부모와 화해를 하거나, 아동 폭력 신고 이후 여러 절차를 거쳐서 결국 원가정으로 돌아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 정부의 입장인 거죠. 그런데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고 있거든요. 결국에는 원가족이랑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청소년들이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용하지만, 다시 경찰이나 시설을 통해서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니까 이제 제도권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잠적해 버리는 등의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해요.
또한 사회의 대다수가 청소년은 혈연가족과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나에게서 문제를 찾게 되거나, 현재의 삶이 행복해도 늘 뭔가가 부족한 존재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결국 우리의 고민이 가족구성권까지 연결이 되기도 했어요.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가족이나 공동체와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시설이 아닌 ‘원’가정 지원을 통한 원가정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 있을 수 있지만, 독립해서 사는 것도 보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내부의 논의를 거쳐서 이번 토론회에 제시된 탈시설 로드맵에서는 ‘원가정 복귀나 지원’이 ‘가정 보호’로 열리게 되기도 했어요. 1인 가구나 동성 부모나 다양한 형태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긴 했지만, 이런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속 논의하며 만들어가야 할 거예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와 구성의 가족이 보여지지 않으니 혹은 보고 있지 않으니 청소년들 역시 혈연 가족 아니면 잘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스스로 만들고 있는 가족을 지원하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고요. 기대하기 어렵다 포기하기도 하고요. 우리 역시 더 상상하며 제도화를 요구해야 하는데, 아직 논의를 만들어 갈 길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셰어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을까요?
국현 셰어와 간담회를 하게 되면서 저희도 보호출산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게 말이 되냐 이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었는데요. 보호출산제에서 ‘위기임산부’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희가 만나는 분들도 ‘위기 10대 여성’이라고 정책에서 규정이 되니까, 이럴 때마다 항상 ‘위기는 무엇인가. 세상이 위기이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보호출산제가 정의하는 위기 임산부라고 할 때,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맥락도 너무 다양하잖아요. 이 위기 십대 여성에 대해서도 제도는 위기를 굉장히 선별하거든요. 자원이 한정돼 있고,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는 계속해서 선별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위기 임산부 또한 지원 과정에서 선별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저희가 만나는 10대 여성들은 탈가정했거나 일부는 보육원에서 자랐거나 쉼터에서 자란 10대 여성들인데, 이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해요. 임신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고, 무책임한 남성에게 화가 나고 막막하기는 하지만, 막상 진료도 받고, 초음파도 보고, 이런 과정 속에서 사실은 내가 ‘나를 버린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위기 상황을 아이에게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있어요. 조건과 환경과 맥락들을 고려한다면 키우고 싶기도 하고, 안 키우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죠. 선택권 자체가 없어서 낳으려고 하는 여성도 분명히 있겠죠. 그런데 보호출산제가 말하고 상정한 ‘아이를 낳아서 죽이려고 하는 어떤 여성’은 누구인가, 누구로 대표된 사람인가. 비혼, 비출산을 선호하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나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할 것 같다는 인식들도 드러나고요. 나무에서 만난 10대 여성들은 내 가족도 갖고 싶고, 그러나 밉기도 하고,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막상 낳았는데 방치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해요. 이런 다양한 맥락들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애를 안 낳거나 낳아서 갖다 버리는 이 철없는 위기 엄마들’에게 “우리가 기회를 주겠다”는 느낌이어서 10대 여성들이 어떻게 이 정책을 받아들일지, 이 정책에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이미 10대 여성들은 지원 정책에 아무도 기대지 않거든요. 원래 기존에 있었던 임신, 출산, 양육 혹은 임신중지에 대한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혹은 제도나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던 삶에서 갑자기 내가 아이를 낳는지에 대해서만 지원이 확 들어왔을 때 이걸 잘 이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기존에 있는 다양한 제도들이 많은데 기존 지원 정책에서도 탈락된 이들이 이걸 잘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10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 시설에 가거나, 아이와 자기의 안전을 위해 남성 보호자를 만들어야 되니까 남자친구를 계속 바꿔서 사귀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1차 아버지, 2차 아버지가 계속 생기고, 또 둘째, 셋째 아이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이 계속요. 그런데 남성들은 자기 아이로 하지 않고, 결혼도 안 한 상태니까 그 10대 여성의 자녀만 늘어나는 거죠. 그리고 10대 여성은 베이비 박스가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의외로 저희가 만난 ‘위기’ 10대 여성들은 자기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숨기고 싶어서 비밀로 출산을 해야겠다 하지도 않아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막막한 게 아니라, 키우기 어려운 것,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지, 그 사실 자체를 숨겨야 돼가지고 임신중단을 하고 싶다, 이런 경우는 없었어요.
셰어 정부가 생각하는 ‘진짜 숨겨야 되는 여성’은 누구일까요(한숨)
국현 그러니까요. 정부가 어떤 여성을 상정하고 정책을 만들었는지, 예를 들면 뉴스에 나오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 몰래 아이를 낳는 그런 극단적 상황만 생각했나? 근데 나라가 숨겨주면 부모가 모를까요? 탈가정한 10대 여성에게 원가정으로 계속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되게 임시방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만난 10대 여성들은 숨기고 싶지 않아 했어요. 나 아이가 있다, 입양 보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괴로움과 슬픔을 토로하기도 하고, 같이 나누고 싶어 하지 그걸 비밀로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으로 숨기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위한 비밀이지? 이걸로 이익을 보는 건 그런 관계 기관이나 베이비박스 위탁기관, 국가밖에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정리가 잘 안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해 봤을 때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청소년 당사자보다는 보호자나 시설 입장에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보통 청소년들과 보호자나 시설의 입장이 다를 때 갈등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면 종교적인 이유로 어떤 시설에서는 임신중지를 지원 못 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십대여성이 안 낳겠다고 하면 기관에서는 임신중지 절차를 알아봐야 하는데, 종교적 문제나 제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지원하기가 힘들고. 일단 낳아야 한다고 하면 청소년들은 시설을 나가버리고, 연락이 끊겨버리기도 하고요. ‘낳아서 베이비박스에 보내면 되잖아’ 이렇게 설득하면 사실 실무자나 보호자는 ‘임신중단’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서 편하잖아요. 임신중단을 지원하는 것 보다 이게 더 절차가 잘 되어 있으니까요. 갈등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어떤 ‘욕구들’이 표출되는 건데 보호출산제로 인해 이런 갈등들이 시설이나 가정 안에서 다 덮여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대 여성 당사자의 선택권이나 목소리가 강화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시설이나 보호자의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만들어 주는 거죠. 기존에 이미 청소년들에게 너네 이런 좋은 제도도 있는데 왜 가출하고, 일도 안 해 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호출산제가 있는데 왜 지운다 그래 이렇게 또 청소년을 비난하는 논리가 발생할 게 뻔히 그려져요. 저희에게 청소년들이 임신중지 상담하면서도 말하는 것 자체가 되게 어렵고, 두렵고, 혼나지 않을까,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연락하는데, 이런 시도조차 없어질 수 있겠구나 했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정말 비밀과 보호를 원하는 ‘위기’ 여성들이 누굴지 제대로 알아보기나 했을까? 모르겠어요. 보호출산제는 시설 출신의 혹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거나, 기초수급자이거나, 장애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부모나 시설의 필요 때문에 임신한 당사자의 권리를 오히려 제한하게 할 확률이 오히려 더 높은 것 같아요. 보호출산이 나의 ‘선택권’이지 않게 되는 거죠. 10대 청소년의 의사나 결정권을 늘 누군가가 대리하는 상황에서 보호출산제가 더 합법적으로 청소년의 재생산 결정권을 강제 대리하게 될 상황이 염려가 많이 되어요. 또 제가 만났던 10대 여성들은 오히려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보낼 경우 더 괴롭게 살아갈 것 같아요. 보육원에 보내도 계속해서 그 부채감과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단 말이에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비밀로 마음 편히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는, ‘비밀’이 마치 익명 투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맥락이 아니거든요. 누구나 다 자기 삶을 회복하길 바라고, 자녀를 데려와서 내 가정을 꾸리고 싶은 10대 여성들도 많았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화목한 원가정을 되게 강조하는 사회니까 나도 당연히 갖고 싶은 거예요.
셰어 이 모든 논의의 출발이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로부터 나와서 정당화하고 있고, 익명 출산이 없으면 아이를 낳아서 결국 죽일 거다 이렇게 논리가 연결되는 거거든요. 결국 탈가정한 청소년이나 혼외 관계에서 출산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죽일 여성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제도가. 그런데 실제로 이 여성들의 상황과 어떤 욕망이 있는지 지금 보고 있지 않은 거죠.
미혜 그리고 어떤 청소년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지금 내 생활이 너무 불안정하고, 위기의 상황인데, 이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될지 의논할 데가 없는 거죠. 그리고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기관들도 많은데, 임신한 당사자의 욕구와 권리가 중요하기보다는 출산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언하며 계획하기도 하죠. 상담을 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데가 없으니까, 모든 지원은 시설 중심으로만 되어 있으니까, 결국엔 시설로 가게 되고요. 시설 밖에서 출산하거나, 임신중지하거나, 양육하거나 이런 선택지는 사실 길이 없는 거예요.
장애 여성이나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놓여져 있는 위치가 취약하고 또는 엄청 대상화하기도 하죠. 당사자가 결정 못 한다고 생각하고 미성숙하니까 누군가가 대리 결정을 해줘야 된다고 판단하면서 강제로 입양을 보내기도 해요. 특히 청소년은 보호자 동의가 모든 순간에 필요하다고 하니까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심지어 나의 폭력의 가해자인 부모가 나의 결정을 대신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2차, 3차의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요. 그러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저출산 때문에 여성을 도구화하여 임신중지 하지 말고 낳아라. 정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현 되게 계급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여성들은 보호출산이 필요 없잖아요. 위기임산부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건데, 저는 가난하고 자원이 없는 여성들에게 출생률을 늘리는 것에 공헌하라고 하는 느낌이 들어요.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원과 정보가 있는 여성일 테고. ‘위기임산부’라는 대상을 특정한 것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보호출산제로 낳게 하고, 임신중지가 가능한 사람과 이런 정보와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보호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양분화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예요.
미혜 한편으로는 청소년은 성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건가 질문이 들어요. 학교 성교육도 기껏해야 피임 교육이잖아요. 임신하면 당연히 학교를 못 다니는 것이 전제고요. 청소년은 임신할 수 없는, 출산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그냥 말하면 혼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셰어 맞아요. 그리고 주로 청소년들은 숨기고 싶겠지, 말하면 혼나니까, 낳으면 버리겠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버리느니 익명하게 하자고요. 청소년이 키우는 것보다 시설이 낫다는 전제도 있는 것 같아요.
미혜 시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궁금해하거나 고민하지 않고요.
국현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자원이나 지원을 받게 되었을 때, 이러한 자원들이 이 사람들의 심리적인,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위해 제대로 쓰이지 못해요. 그동안 안정적인 경제 상황이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아이 양육이나, 본인의 안전과 건강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요. 자원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들을 해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거죠.
미혜 때로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건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되는지, 양육자 간의 관계나 서로에 대한 돌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전반적인 컨설팅이라던가, 일상적으로 계속 의논하고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게 없이 그냥 단편적으로 현금 지원하거나, 먹을 거는 먹을 거대로, 의료비는 의료비대로 그냥 알아서 자기가 각각의 지원을 찾아다녀야 해요. 그러니까 여러 곳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고, 결국 포기하게 되거나 흩어지게 되는 거죠. 또한, 기관이나 단체마다 운영하는 방식이나 청소년과 소통하는 태도나 활동 관점이 다르기도 한 거예요. 주로 비청소년이 운영하는 곳이니 위계적인 구조나 통제적인 방식, 관리적인 지원이나 시스템으로 돌아가니 청소년이 믿고 의지하며 의논하기 쉽지 않기도 해요. 센터나 기관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지원이 다 끊기는 것도 문제고요.
셰어 두 분이 모두 ‘위기임신’이라는 프레임으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신 것 같아요. 청주넷에서는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주거권 맥락에서의 활동과 고민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미혜 주거권이라는 게 누구는 집이 필요하고, 누구는 집이 필요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청소년 주거권하면 사람들이 청소년한테 집 주면 위험하다부터 얘기하기 시작해요. 청소년에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주거권 보장의 영역 안에 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해 저희도 처음에는 필요한 지원이나 서비스, 이 사람에게 맞는 맞춤 지원 방향으로 이야기했었는데, 지금은 지역 안에서 어떻게 서로 돌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은 청소년분들과 ‘집’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왔던 집, 원가정을 떠나 남의 집이든 시설이든 살아온 집의 의미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뭐가 필요한지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이 사회가 집이 없는 채로 시설 중심으로 지원하고, 청소년 보호 정책 안에는 주거가 없고, 주거 정책 안에 청소년이 없다는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이었거든요.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 결국에는 그 안에서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구성원들과 같이 살아갈까, 어떻게 하면 함께 돌보면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단순히 어떤 지원이나 서비스로만 되는 문제가 아니고 결국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셰어 청주넷의 현재 요구는 무엇이에요?
미혜 일단은 청소년도 주거 정책 제도 대상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특히 10대 청소년의 경우는 시설 아니면 전혀 대안이 없잖아요. 얼마 전에 정부에서 ‘집에 살거나, 시설에 살거나, 그 밖의 아동청소년은 없다’고 해서 ‘무슨 말이죠?’ 되물었어요. 이번에 아동복지법이 바뀌었거든요. 그동안에는 19세에 만기 퇴소한 사람들만 자립 지원이 가능했는데, 이제 중소 퇴소한 청소년도 가능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 해당 연령이 15세 정도로 얘기가 됐는데 15세부터는 자립 지원 신청을 못 하고 18세부터 신청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15세에 시설에서 나와서 18세가 될 때까지 아무 지원도 못 받고 길에서 살라는 거냐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래요. 청소년쉼터에 가면 된대요. 보육시설에서 나와서 쉼터를 가라니… 시설이나 원가정에 있지 않은 청소년은 이 사회에 없는 존재로 얘기하는 게 말도 안 되잖아요. 그리고 주거 취약계층으로 주거 지원을 하는데요, 3개월 이상 비적정 주거에서 살면 주거를 지원해야 하는데 청소년은 쉼터에 2년 이상 거주를 해야지 지원을 받을 수 있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10대들이 시설이나 누군가의 보호 안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아동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셰어 마지막으로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과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미혜 국가는 출산율이 낮아 많이 낳으라고만 하는데, 그러면 사실 낳아서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원을 해야죠. 부모가 없어서 거리에서 살 수밖에 없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런 지원이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이 분들은 출산과 양육을 하고 있는데 이 상황 자체를 아동학대라고 하면서 부모가 되어버린 청소년들을 또 다시 가해자로 취급하고 있어요. 사회는 계속 원가정에서 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 살면 어느 집에서 태어나더라도 적어도 기본적인 삶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는데, 부모가 폭력적이고 부모가 잘못했으니까 결국엔 계속 가정으로 책임을 돌리기도 하잖아요. 국가가 잘 돌볼 궁리는 하지 않은 채 계속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핑계를 대는 게 반복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면 누구나 낳아서 기를 수 있도록 가능한 다양한 지원 체계를 만드는 국가의 책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국현 결국엔 임신, 출산, 양육이 모두 여성 한 사람의 문제로 가게 되고, 시설이나 기관, 제도들은 다 여성 중심으로 되어 있잖아요. 보호출산제의 취지는 산모와 영유아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라는데, 결국 여성 책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만들 것 같아요. 이런 게 진짜 낡은 남성중심적 사고로 만든 법이라는 생각이 팍팍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낳기만 해’로 만든 법이 가져올 파장은 여성들의 계급과 경제적인 차이들을 더 양분화해서 취약한 여성들의 몸과 재생산권을 도구화하는 게 아닐까 해요. ‘위기임산부’의 권리를 함께 주장해 주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되게 어려운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심리적인 지원과 상담도 필요하고요. 비밀로 출산하지 않고 내가 가족이 생겼다는 걸 드러내고 싶고, 아이와 잘 살고 싶은 10대들도 있어요. 이 여성들이 잘 양육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누구보다 잘할 사람들이고, 잘하려고 할 텐데. 그런 거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게 뭘까 라고 생각해 보면, 이들의 전반적인 삶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익명출산이 아니에요”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시립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와의 보호출산제 간담회
사진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미혜, 시립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국현
셰어 셰어는 현재 보호출산제폐지연대에서 보호출산제 대응 활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권리 보장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익명(보호)출산제의 ‘위기임신’ 상담 중심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졌어요. 7월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익명으로 출산하면 아동이 시설로 가게 되는 것도 문제인데요. 이 과정에서 아동은 무조건 원가정에서 먼저 양육되어야 하고, 원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된다는 논의가 강조돼요.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양육자의 사정으로 원가정 양육을 할 수 없거나, 피양육자가 원치 않는 경우에 어떤 대안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특히 양육자가 청소년인 경우에는 주거, 노동, 돌봄을 둘러싼 열악하고 복합적인 상황에서 여러 사정이 발생하고, 아동 학대나 방치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하고. 그럴 때 양육자와 피양육자 모두 각각의 시설로 다시 수용되어 버리는 상황도 발생하는 것 같아요. 보호출산제 문제를 지적할 때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함께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 간담회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셰어 최근 미혜님이 아동탈시설의 대안에 대한 고민 속에서 원가정 보호 원칙에 관한 고민을 나눠주셨는데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미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시설보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라고 권고했어요. 한국에서는 아동 보호 시설에 있어서 대형 양육시설이 가장 큰 예산 규모를 차지하고, 이해관계도 있으니 이런 논의들이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현 정부에서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을 계획하지만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도 않고 여전히 탈시설을 위한 정책적 시도는 미비해요.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요구안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저희는 청소년 주거권을 생각하면서 청소년이 누구와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청소년이 다양한 형태로 살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데 아동의 범위에 영유아부터 청소년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영유아의 탈시설을 생각할 때 또 다른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중에 영유아의 경우 원가정에서의 보호가 중요하게 얘기되기도 한 거죠. 애초가 부모가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 탈가정하거나 시설로 가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원가정 복귀 및 지원이 중요하게 얘기되기도 하는 거예요. 물론 그런 주장에 동의하기도 하고요.
셰어 청소년 주거권 활동을 하면서 하고 계신 고민도 이야기 해주세요.
미혜 저희는 가정폭력이나 가족이랑 더 이상 살기가 어려운, 살지 못하겠다는 또는 살지 않기로 마음먹은 탈가정 청소년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그 가정에서 탈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참으면서 사는 건 죽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청소년 쉼터에서는 첫 번째 기능이 원가정 복귀를 지원하는 것이에요. 쉼터가 일시 보호하고 있다가 부모와 화해를 하거나, 아동 폭력 신고 이후 여러 절차를 거쳐서 결국 원가정으로 돌아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 정부의 입장인 거죠. 그런데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고 있거든요. 결국에는 원가족이랑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청소년들이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용하지만, 다시 경찰이나 시설을 통해서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니까 이제 제도권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잠적해 버리는 등의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해요.
또한 사회의 대다수가 청소년은 혈연가족과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나에게서 문제를 찾게 되거나, 현재의 삶이 행복해도 늘 뭔가가 부족한 존재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결국 우리의 고민이 가족구성권까지 연결이 되기도 했어요.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가족이나 공동체와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시설이 아닌 ‘원’가정 지원을 통한 원가정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 있을 수 있지만, 독립해서 사는 것도 보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내부의 논의를 거쳐서 이번 토론회에 제시된 탈시설 로드맵에서는 ‘원가정 복귀나 지원’이 ‘가정 보호’로 열리게 되기도 했어요. 1인 가구나 동성 부모나 다양한 형태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긴 했지만, 이런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속 논의하며 만들어가야 할 거예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와 구성의 가족이 보여지지 않으니 혹은 보고 있지 않으니 청소년들 역시 혈연 가족 아니면 잘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스스로 만들고 있는 가족을 지원하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고요. 기대하기 어렵다 포기하기도 하고요. 우리 역시 더 상상하며 제도화를 요구해야 하는데, 아직 논의를 만들어 갈 길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셰어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을까요?
국현 셰어와 간담회를 하게 되면서 저희도 보호출산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게 말이 되냐 이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었는데요. 보호출산제에서 ‘위기임산부’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희가 만나는 분들도 ‘위기 10대 여성’이라고 정책에서 규정이 되니까, 이럴 때마다 항상 ‘위기는 무엇인가. 세상이 위기이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보호출산제가 정의하는 위기 임산부라고 할 때,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맥락도 너무 다양하잖아요. 이 위기 십대 여성에 대해서도 제도는 위기를 굉장히 선별하거든요. 자원이 한정돼 있고,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는 계속해서 선별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위기 임산부 또한 지원 과정에서 선별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저희가 만나는 10대 여성들은 탈가정했거나 일부는 보육원에서 자랐거나 쉼터에서 자란 10대 여성들인데, 이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해요. 임신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고, 무책임한 남성에게 화가 나고 막막하기는 하지만, 막상 진료도 받고, 초음파도 보고, 이런 과정 속에서 사실은 내가 ‘나를 버린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위기 상황을 아이에게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있어요. 조건과 환경과 맥락들을 고려한다면 키우고 싶기도 하고, 안 키우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죠. 선택권 자체가 없어서 낳으려고 하는 여성도 분명히 있겠죠. 그런데 보호출산제가 말하고 상정한 ‘아이를 낳아서 죽이려고 하는 어떤 여성’은 누구인가, 누구로 대표된 사람인가. 비혼, 비출산을 선호하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나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할 것 같다는 인식들도 드러나고요. 나무에서 만난 10대 여성들은 내 가족도 갖고 싶고, 그러나 밉기도 하고,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막상 낳았는데 방치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해요. 이런 다양한 맥락들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애를 안 낳거나 낳아서 갖다 버리는 이 철없는 위기 엄마들’에게 “우리가 기회를 주겠다”는 느낌이어서 10대 여성들이 어떻게 이 정책을 받아들일지, 이 정책에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이미 10대 여성들은 지원 정책에 아무도 기대지 않거든요. 원래 기존에 있었던 임신, 출산, 양육 혹은 임신중지에 대한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혹은 제도나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던 삶에서 갑자기 내가 아이를 낳는지에 대해서만 지원이 확 들어왔을 때 이걸 잘 이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기존에 있는 다양한 제도들이 많은데 기존 지원 정책에서도 탈락된 이들이 이걸 잘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10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 시설에 가거나, 아이와 자기의 안전을 위해 남성 보호자를 만들어야 되니까 남자친구를 계속 바꿔서 사귀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1차 아버지, 2차 아버지가 계속 생기고, 또 둘째, 셋째 아이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이 계속요. 그런데 남성들은 자기 아이로 하지 않고, 결혼도 안 한 상태니까 그 10대 여성의 자녀만 늘어나는 거죠. 그리고 10대 여성은 베이비 박스가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의외로 저희가 만난 ‘위기’ 10대 여성들은 자기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숨기고 싶어서 비밀로 출산을 해야겠다 하지도 않아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막막한 게 아니라, 키우기 어려운 것,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지, 그 사실 자체를 숨겨야 돼가지고 임신중단을 하고 싶다, 이런 경우는 없었어요.
셰어 정부가 생각하는 ‘진짜 숨겨야 되는 여성’은 누구일까요(한숨)
국현 그러니까요. 정부가 어떤 여성을 상정하고 정책을 만들었는지, 예를 들면 뉴스에 나오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 몰래 아이를 낳는 그런 극단적 상황만 생각했나? 근데 나라가 숨겨주면 부모가 모를까요? 탈가정한 10대 여성에게 원가정으로 계속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되게 임시방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만난 10대 여성들은 숨기고 싶지 않아 했어요. 나 아이가 있다, 입양 보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괴로움과 슬픔을 토로하기도 하고, 같이 나누고 싶어 하지 그걸 비밀로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으로 숨기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위한 비밀이지? 이걸로 이익을 보는 건 그런 관계 기관이나 베이비박스 위탁기관, 국가밖에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정리가 잘 안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해 봤을 때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면 청소년 당사자보다는 보호자나 시설 입장에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보통 청소년들과 보호자나 시설의 입장이 다를 때 갈등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면 종교적인 이유로 어떤 시설에서는 임신중지를 지원 못 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십대여성이 안 낳겠다고 하면 기관에서는 임신중지 절차를 알아봐야 하는데, 종교적 문제나 제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지원하기가 힘들고. 일단 낳아야 한다고 하면 청소년들은 시설을 나가버리고, 연락이 끊겨버리기도 하고요. ‘낳아서 베이비박스에 보내면 되잖아’ 이렇게 설득하면 사실 실무자나 보호자는 ‘임신중단’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서 편하잖아요. 임신중단을 지원하는 것 보다 이게 더 절차가 잘 되어 있으니까요. 갈등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어떤 ‘욕구들’이 표출되는 건데 보호출산제로 인해 이런 갈등들이 시설이나 가정 안에서 다 덮여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대 여성 당사자의 선택권이나 목소리가 강화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시설이나 보호자의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만들어 주는 거죠. 기존에 이미 청소년들에게 너네 이런 좋은 제도도 있는데 왜 가출하고, 일도 안 해 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호출산제가 있는데 왜 지운다 그래 이렇게 또 청소년을 비난하는 논리가 발생할 게 뻔히 그려져요. 저희에게 청소년들이 임신중지 상담하면서도 말하는 것 자체가 되게 어렵고, 두렵고, 혼나지 않을까,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연락하는데, 이런 시도조차 없어질 수 있겠구나 했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정말 비밀과 보호를 원하는 ‘위기’ 여성들이 누굴지 제대로 알아보기나 했을까? 모르겠어요. 보호출산제는 시설 출신의 혹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거나, 기초수급자이거나, 장애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부모나 시설의 필요 때문에 임신한 당사자의 권리를 오히려 제한하게 할 확률이 오히려 더 높은 것 같아요. 보호출산이 나의 ‘선택권’이지 않게 되는 거죠. 10대 청소년의 의사나 결정권을 늘 누군가가 대리하는 상황에서 보호출산제가 더 합법적으로 청소년의 재생산 결정권을 강제 대리하게 될 상황이 염려가 많이 되어요. 또 제가 만났던 10대 여성들은 오히려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보낼 경우 더 괴롭게 살아갈 것 같아요. 보육원에 보내도 계속해서 그 부채감과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단 말이에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비밀로 마음 편히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는, ‘비밀’이 마치 익명 투표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맥락이 아니거든요. 누구나 다 자기 삶을 회복하길 바라고, 자녀를 데려와서 내 가정을 꾸리고 싶은 10대 여성들도 많았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화목한 원가정을 되게 강조하는 사회니까 나도 당연히 갖고 싶은 거예요.
셰어 이 모든 논의의 출발이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로부터 나와서 정당화하고 있고, 익명 출산이 없으면 아이를 낳아서 결국 죽일 거다 이렇게 논리가 연결되는 거거든요. 결국 탈가정한 청소년이나 혼외 관계에서 출산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죽일 여성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제도가. 그런데 실제로 이 여성들의 상황과 어떤 욕망이 있는지 지금 보고 있지 않은 거죠.
미혜 그리고 어떤 청소년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지금 내 생활이 너무 불안정하고, 위기의 상황인데, 이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될지 의논할 데가 없는 거죠. 그리고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기관들도 많은데, 임신한 당사자의 욕구와 권리가 중요하기보다는 출산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언하며 계획하기도 하죠. 상담을 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데가 없으니까, 모든 지원은 시설 중심으로만 되어 있으니까, 결국엔 시설로 가게 되고요. 시설 밖에서 출산하거나, 임신중지하거나, 양육하거나 이런 선택지는 사실 길이 없는 거예요.
장애 여성이나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서 놓여져 있는 위치가 취약하고 또는 엄청 대상화하기도 하죠. 당사자가 결정 못 한다고 생각하고 미성숙하니까 누군가가 대리 결정을 해줘야 된다고 판단하면서 강제로 입양을 보내기도 해요. 특히 청소년은 보호자 동의가 모든 순간에 필요하다고 하니까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심지어 나의 폭력의 가해자인 부모가 나의 결정을 대신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2차, 3차의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요. 그러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저출산 때문에 여성을 도구화하여 임신중지 하지 말고 낳아라. 정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현 되게 계급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여성들은 보호출산이 필요 없잖아요. 위기임산부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건데, 저는 가난하고 자원이 없는 여성들에게 출생률을 늘리는 것에 공헌하라고 하는 느낌이 들어요.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원과 정보가 있는 여성일 테고. ‘위기임산부’라는 대상을 특정한 것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보호출산제로 낳게 하고, 임신중지가 가능한 사람과 이런 정보와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보호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양분화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예요.
미혜 한편으로는 청소년은 성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건가 질문이 들어요. 학교 성교육도 기껏해야 피임 교육이잖아요. 임신하면 당연히 학교를 못 다니는 것이 전제고요. 청소년은 임신할 수 없는, 출산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그냥 말하면 혼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셰어 맞아요. 그리고 주로 청소년들은 숨기고 싶겠지, 말하면 혼나니까, 낳으면 버리겠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버리느니 익명하게 하자고요. 청소년이 키우는 것보다 시설이 낫다는 전제도 있는 것 같아요.
미혜 시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궁금해하거나 고민하지 않고요.
국현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자원이나 지원을 받게 되었을 때, 이러한 자원들이 이 사람들의 심리적인,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위해 제대로 쓰이지 못해요. 그동안 안정적인 경제 상황이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아이 양육이나, 본인의 안전과 건강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요. 자원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들을 해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거죠.
미혜 때로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건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되는지, 양육자 간의 관계나 서로에 대한 돌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전반적인 컨설팅이라던가, 일상적으로 계속 의논하고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게 없이 그냥 단편적으로 현금 지원하거나, 먹을 거는 먹을 거대로, 의료비는 의료비대로 그냥 알아서 자기가 각각의 지원을 찾아다녀야 해요. 그러니까 여러 곳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고, 결국 포기하게 되거나 흩어지게 되는 거죠. 또한, 기관이나 단체마다 운영하는 방식이나 청소년과 소통하는 태도나 활동 관점이 다르기도 한 거예요. 주로 비청소년이 운영하는 곳이니 위계적인 구조나 통제적인 방식, 관리적인 지원이나 시스템으로 돌아가니 청소년이 믿고 의지하며 의논하기 쉽지 않기도 해요. 센터나 기관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지원이 다 끊기는 것도 문제고요.
셰어 두 분이 모두 ‘위기임신’이라는 프레임으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신 것 같아요. 청주넷에서는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주거권 맥락에서의 활동과 고민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미혜 주거권이라는 게 누구는 집이 필요하고, 누구는 집이 필요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청소년 주거권하면 사람들이 청소년한테 집 주면 위험하다부터 얘기하기 시작해요. 청소년에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주거권 보장의 영역 안에 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해 저희도 처음에는 필요한 지원이나 서비스, 이 사람에게 맞는 맞춤 지원 방향으로 이야기했었는데, 지금은 지역 안에서 어떻게 서로 돌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은 청소년분들과 ‘집’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살아왔던 집, 원가정을 떠나 남의 집이든 시설이든 살아온 집의 의미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뭐가 필요한지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이 사회가 집이 없는 채로 시설 중심으로 지원하고, 청소년 보호 정책 안에는 주거가 없고, 주거 정책 안에 청소년이 없다는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이었거든요.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 결국에는 그 안에서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구성원들과 같이 살아갈까, 어떻게 하면 함께 돌보면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단순히 어떤 지원이나 서비스로만 되는 문제가 아니고 결국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셰어 청주넷의 현재 요구는 무엇이에요?
미혜 일단은 청소년도 주거 정책 제도 대상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특히 10대 청소년의 경우는 시설 아니면 전혀 대안이 없잖아요. 얼마 전에 정부에서 ‘집에 살거나, 시설에 살거나, 그 밖의 아동청소년은 없다’고 해서 ‘무슨 말이죠?’ 되물었어요. 이번에 아동복지법이 바뀌었거든요. 그동안에는 19세에 만기 퇴소한 사람들만 자립 지원이 가능했는데, 이제 중소 퇴소한 청소년도 가능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 해당 연령이 15세 정도로 얘기가 됐는데 15세부터는 자립 지원 신청을 못 하고 18세부터 신청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15세에 시설에서 나와서 18세가 될 때까지 아무 지원도 못 받고 길에서 살라는 거냐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래요. 청소년쉼터에 가면 된대요. 보육시설에서 나와서 쉼터를 가라니… 시설이나 원가정에 있지 않은 청소년은 이 사회에 없는 존재로 얘기하는 게 말도 안 되잖아요. 그리고 주거 취약계층으로 주거 지원을 하는데요, 3개월 이상 비적정 주거에서 살면 주거를 지원해야 하는데 청소년은 쉼터에 2년 이상 거주를 해야지 지원을 받을 수 있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10대들이 시설이나 누군가의 보호 안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아동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셰어 마지막으로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과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미혜 국가는 출산율이 낮아 많이 낳으라고만 하는데, 그러면 사실 낳아서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원을 해야죠. 부모가 없어서 거리에서 살 수밖에 없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런 지원이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이 분들은 출산과 양육을 하고 있는데 이 상황 자체를 아동학대라고 하면서 부모가 되어버린 청소년들을 또 다시 가해자로 취급하고 있어요. 사회는 계속 원가정에서 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 살면 어느 집에서 태어나더라도 적어도 기본적인 삶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는데, 부모가 폭력적이고 부모가 잘못했으니까 결국엔 계속 가정으로 책임을 돌리기도 하잖아요. 국가가 잘 돌볼 궁리는 하지 않은 채 계속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핑계를 대는 게 반복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면 누구나 낳아서 기를 수 있도록 가능한 다양한 지원 체계를 만드는 국가의 책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국현 결국엔 임신, 출산, 양육이 모두 여성 한 사람의 문제로 가게 되고, 시설이나 기관, 제도들은 다 여성 중심으로 되어 있잖아요. 보호출산제의 취지는 산모와 영유아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라는데, 결국 여성 책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만들 것 같아요. 이런 게 진짜 낡은 남성중심적 사고로 만든 법이라는 생각이 팍팍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낳기만 해’로 만든 법이 가져올 파장은 여성들의 계급과 경제적인 차이들을 더 양분화해서 취약한 여성들의 몸과 재생산권을 도구화하는 게 아닐까 해요. ‘위기임산부’의 권리를 함께 주장해 주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되게 어려운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심리적인 지원과 상담도 필요하고요. 비밀로 출산하지 않고 내가 가족이 생겼다는 걸 드러내고 싶고, 아이와 잘 살고 싶은 10대들도 있어요. 이 여성들이 잘 양육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누구보다 잘할 사람들이고, 잘하려고 할 텐데. 그런 거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게 뭘까 라고 생각해 보면, 이들의 전반적인 삶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