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보호하지 않을 보호(익명)출산제, 무책임한 국가가 불러올 무책임한 미래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이 법은 경제적ㆍ심리적ㆍ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을 지원하고 그 태아 및 자녀인 아동의 안전한 양육환경을 보장함으로써 생모 및 생부와 그 자녀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7월 19일부터 시행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약칭: ‘위기임신보호출산법’)’ 제1조에 명시된 이 법의 제정 목적이다. (이 글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실질적으로는 익명출산제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하 ‘익명출산제’라고 쓰겠다.)
법의 목적이 무색하게도 정작 아동권리 단체, 입양인 단체, 비혼모/한부모 단체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아동과 여성의 권리가 바로 이 법에 의해 침해될 것을 우려하며 익명출산제의 도입과 법 제정을 반대해 왔다. 아무리 사전 상담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당사자의 사회경제적 권리에 대한 보장 체계, 양육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 및 임신중지를 포함한 보건의료 연계 체계가 취약한 상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익명 출산이 증가하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제도를 통해 익명 출산으로 태어난 이들은 건강이나 생명상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후 자신의 친생부/모를 찾고자 해도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전혀 찾을 길이 없다. 법은 ‘아동의 안전한 양육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익명 출산으로 등록되어 지자체장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된 아이들의 양육 환경과 그들의 삶을 이후 어떻게 ‘안전하게’ 보장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 국가는 어떠한 대책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미 지난 2019년 10월 한국 정부의 제05-06차 보고서에 관한 최종견해(CRC/C/KOR/CO/5-6)에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2024년 7월, 이제 한국 정부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아동 인권을 위한 권고에 정확하게 역행하는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임신·출산 및 임신중지, 양육에 관한 권리의 보장과 지원 체계, 성과 재생산 권리의 보장,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한 수많은 과제들을 무시한 채 ‘최후의 수단’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다.
보호(익명)출산제 폐지연대와 고아권익연대는 보호(익명)출산제 시행 첫 날 국회 앞에서 폐지 요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잘못된 전제
익명출산제는 ‘이 제도가 없으면 양육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여성이 출산한 자녀를 유기·살해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추진되었다. 지난 해 6월 감사원이 2015년 이후 8년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2천 236명에 달한다고 발표하고, 이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2구의 영아 시신이 발견되면서 출생통보제와 익명출산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 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출산 후 출생 등록을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 먼저 도입되자 익명출산제 도입을 추진하는 이들은 “출생 등록이 두려운 여성들이 결국 의료기관 밖에서 아이를 낳고 아동을 유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몇 년 전부터 ‘익명출산제’로 추친되어 오던 법안이 ‘보호출산제’로 이름을 바꾸고, 보건복지부의 전례없는 의지와 추진력으로 빠르게 입법이 진행된 것이다.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는 비난을 받아오던 익명출산제 법안은 ‘아동과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되어 새로운 명분을 획득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국회 내에서는 모종의 이상한 ‘딜’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가 통과되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주축으로 추진되어 온 익명출산제를 통과시키고, 대신 양당이 임신중지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검토한다는 일련의 흐름이 총선을 앞둔 시기인 지난 해 여야 간에 서로 맞교환하듯 이어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익명출산제 법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되어 결국 더불어민주당 다수 의원의 찬성과 함께 통과되었다. 익명출산제 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수차례 국회 토론회에 참여하여 우려를 공유했던 의원들조차 대다수 명확한 반대를 표명하지 않고 기권했다.
이 모든 과정은 명백한 오류를 공유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질문과 대안을 회피하고 있다. 출생 등록을 회피하고 결국 아동을 유기·살해하게 되는 상황이 과연 단순히 출산 사실을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누군가의 출산은 비밀이 되어야 하는가. 출산 후 유기·살해에 이르게 되는 상황은 어떤 사회경제적 여건과 압력 속에서 이뤄지는가. 결국 출산 후 유기나 살해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그 이전에 당사자에게 보장되어야 할 법·제도적, 보건의료적 여건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익명출산제를 통해 ‘합법적 유기’를 하게 되면 과연 태어난 아동의 삶에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모든 질문들을 무시한 채 익명출산제를 중심으로 먼저 제도가 구축되었을 때, 결국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들의 삶의 여건도, 결국 태어나 세상을 살아나가야 할 아동의 삶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제도는 과연 무엇을 보호한다고 할 수 있을까.
‘출생등록제와 함께 익명출산제를 시작하지 않으면, 결국 출생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들이 아이를 버릴 것’이라는 전제는 이처럼 애초에 여성과 아동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대로 작동해야 할 수많은 법, 정책, 제도,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질문들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 또한 삭제되어 있다. 임신하고, 낳고, 기르는 일의 모든 과정과 선택의 책임이 오로지 임신한 여성 당사자에게만 남겨져 있는 것이다. 임신의 유지와 출산 여부, 양육 여건, 아동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들-남성, 부모 등 다른 가족 구성원, 회사, 학교, 다른 사회 구성원 등-은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익명출산의 책임도, 양육의 책임도 결국 여성에게만 남게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https://bit.ly/46e5kGT)에 삽입된 통계 그래픽.
익명출산을 신청한 여성의 실질적인 어려움은 학업 문제, 실업, 불안정한 노동 여건 등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신중지 결정도, 양육 지원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도 지연시키게 될 익명출산제
지난 6월 3일에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대한 9차 정례심의 최종견해에서 익명출산제의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미등록 출생의 근본 원인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익명출산제 법을 포괄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익명출산제가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와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 제약, 임신한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의 부족,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 미등록 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미등록 출생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와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 확대, 임신한 여성과 소녀를 위한 지원 서비스의 강화 및 비혼모와 관련된 사회적 낙인을 경감하는 조치 이행”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위원회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 정부가 해야할 근본적인 조치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제들을 뒤로 하고 익명출산제를 서둘러 시행하는 상황은 오히려 이러한 근본적인 조치들을 실행하고 싶지 않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 피임과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 서비스 및 보건의료 시스템의 구축, 일시적, 단편적인 양육 보조금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주거와 학습, 노동 지원에 정부의 예산과 역량을 투여하는 대신, 익명출산제 시행 하의 ‘위기임신상담’ 체계를 통해 한정적이고 선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구색과 명분만 갖추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문제는 익명출산제를 근간으로 하는 위기임신 상담 시스템이 결국 임신 초기의 임신중지 결정을 지연시키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임신 당사자는 오히려 위기임신 상담 시스템에 접근했다가 임신중지 시기를 놓쳐 뒤늦게 임신중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출산 후 준비되지 않은 양육이나 입양, 익명출산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 쉽다.
지난 4월 발표된 보호출산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서에서도 셰어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임산부’에게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익명 출산 제도를 통해 구축되는 ‘위기 임신’ 중심의 상담과 지원 체계가 아닌 임신의 유지와 중지, 출산, 양육에 대한 포괄적인 상담과 지원”이며, “임신의 유지와 중지에 따른 지원이 모두 체계적으로 구축되는 여건 하에서만이 익명 출산이 우선순위의 선택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으나, 이에 돌아온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모자보건법 14조 상담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익명출산제를 통해 시행되는 ‘위기임신상담’에서 임신중지 상담은 이미 ‘낙태죄’ 형법 조항 폐지로 인해 함께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모자보건법 14조를 기준으로 삼아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임신중지 비범죄화의 의미를 탈각시키고, 비범죄화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와 권리 보장을 위해 구축되어야 할 보건의료 시스템을 계속해서 지연시킨 채, 국가가 지난 역사에서 모자보건법 14조를 통해 저질러 온 문제들을 반복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 임신한 당사자 또는 상대방의 장애와 질병을 ‘위기임신’와 임신중지의 당연한 조건으로 삼는 우생학적 인구정책의 역사, ‘강간 또는 준강간’이라는 협소한 성폭력 규정과 선별적 임신중지 지원, 배우자 동의 조항을 통한 자기결정권의 침해 등이 ‘위기임신상담’과 ‘보호출산’이라는 체계 하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경남의 '생명터미혼모자의집', 강원 '마리아의집', 대전의 '대전자모원', 광주 '엔젤하우스' 등 각 지역에서 위기임신 상담 책임을 맡게 된 기관들 또한 모두 종교 기반 시설로 임신중지에 대한 상담은 애초에 배제하고 상담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이나 정보 제공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정부가 임신중지에 관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대해서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담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관련 의료서비스의 제공 여부나 비용 등이 개별 병원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을 바꿀 수가 없다.
보호출산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대한 셰어 의견서 (https://bit.ly/3W9Wt4i)
재생산정의의 프레임으로 익명출산제에 대응하기
지난 7월 18일, 익명출산제 시행을 최대의 치적으로 삼고 싶은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 관련 법·제도 개선 간담회를 하겠다며 법조인, 의료인 등을 모아두고 기자들 앞에서 보호출산제 시행을 홍보한 후 이후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보건복지부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를 했다는 한 여성의 유튜브 영상에 대해 ‘살인죄’로 경찰에 수사의뢰를 한 이후 소집한 회의였다. 현행 법 체계상 출산 후 사망하게 한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중지에 그 자체로 살인죄를 적용할 수는 없음에도, 보건복지부는 굳이 ‘살인죄’를 끌어와 수사를 의뢰했고, 이를 명분으로 후속 입법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열었으며, 그 자리에서 보호출산제를 홍보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겨우 마련된 임신중지 비범죄화의 근간을 흔들고 처벌을 근간에 둔 법 체계를 다시 만드는 한편, 익명출산제로 모든 문제들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보건복지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이후 새롭게 시작된 ‘낙태죄’ 폐지 투쟁의 과정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구조를 삭제하고 ‘생명’과 ‘결정’을 협소한 틀에 가두어 왔던 ‘생명권 대 결정권’의 구도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는 그간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임신중지의 사유, 임신 기간, 상담, 숙려, 제3자의 동의 여부 등을 따져 묻고, 이를 통해 국가가 ‘봐줄만한’, 혹은 ‘차라리 임신중지를 하게 할만한’ 이유들을 합법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법 체계의 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을 ‘여성의 결정’과 ‘태아 생명’의 대립으로부터 국가의 책임으로 이동시켰을 때, 임신중지를 둘러싼 여건들이 보이고 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재생산정의 운동의 방향은 ‘낙태죄’를 넘어 이러한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출산과 양육 또한 이에 연결되어 있다. 출산 이후 양육을 할 수 없는 상황 또한 개인의 책임이나 결정 여부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삶의 여건이 상황을 좌우하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로레타 로스와 리키 솔린저는 재생산정의의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이렇게 제시한다.
1) 자녀를 갖지 않을 권리, 2) 자녀를 가질 권리, 3)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할 권리 [ref]Loretta Ross and Rickie Solinger, Reproductive Justice: An Introduction,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9. / Jamie Marsella, How Safe Haven Laws Fail to Protect Children and Parents, Nursing Clio, September 13, 2023. 에서 재인용.[/ref]
익명출산제는 이 중 어느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임신하면 학교에서 쫓겨나는 청소년, 가정 내 폭력 등으로 탈가정한 이후에는 시설이나 임시 거처 외에 마땅히 안전하게 머물 곳을 찾기가 어려운 여성들,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생계까지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노동 조건이 대부분인 현실, 턱없이 부족한 국공립어린이집, 당연한 듯 자행되는 일상적인 젠더 폭력,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성교육과 더없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하고 낙인 투성이인 성 인식 수준, 오직 법적 혼인관계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와 사회보장 체계, 언제든 일터에서 쫓겨나고 추방될 수 있는 이주민/난민 여성의 취약한 거주지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이 모든 여건들이 출생 미등록, 나아가 유기와 학대로 이어지는 환경적 조건을 만들며 여기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모두 내버려둔 채, 임신의 유지 여부와 양육 여건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출산을 설득하고, 하다 안 되면 익명출산의 선택지를 주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여성뿐 아니라 결국 태어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여건에 놓이게 될 아동에 대한 심각한 무책임을 방증하는 것일 뿐이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여건들이 익명출산제라는 백래시로 인해 더 크게 후퇴하지 않도록, 재생산정의 운동은 이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통합적인 대응을 그려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보호하지 않을 보호(익명)출산제, 무책임한 국가가 불러올 무책임한 미래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이 법은 경제적ㆍ심리적ㆍ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을 지원하고 그 태아 및 자녀인 아동의 안전한 양육환경을 보장함으로써 생모 및 생부와 그 자녀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7월 19일부터 시행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약칭: ‘위기임신보호출산법’)’ 제1조에 명시된 이 법의 제정 목적이다. (이 글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실질적으로는 익명출산제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하 ‘익명출산제’라고 쓰겠다.)
법의 목적이 무색하게도 정작 아동권리 단체, 입양인 단체, 비혼모/한부모 단체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아동과 여성의 권리가 바로 이 법에 의해 침해될 것을 우려하며 익명출산제의 도입과 법 제정을 반대해 왔다. 아무리 사전 상담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당사자의 사회경제적 권리에 대한 보장 체계, 양육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 및 임신중지를 포함한 보건의료 연계 체계가 취약한 상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익명 출산이 증가하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제도를 통해 익명 출산으로 태어난 이들은 건강이나 생명상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후 자신의 친생부/모를 찾고자 해도 친생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전혀 찾을 길이 없다. 법은 ‘아동의 안전한 양육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익명 출산으로 등록되어 지자체장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된 아이들의 양육 환경과 그들의 삶을 이후 어떻게 ‘안전하게’ 보장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 국가는 어떠한 대책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미 지난 2019년 10월 한국 정부의 제05-06차 보고서에 관한 최종견해(CRC/C/KOR/CO/5-6)에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2024년 7월, 이제 한국 정부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아동 인권을 위한 권고에 정확하게 역행하는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임신·출산 및 임신중지, 양육에 관한 권리의 보장과 지원 체계, 성과 재생산 권리의 보장,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한 수많은 과제들을 무시한 채 ‘최후의 수단’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다.
보호(익명)출산제 폐지연대와 고아권익연대는 보호(익명)출산제 시행 첫 날 국회 앞에서 폐지 요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잘못된 전제
익명출산제는 ‘이 제도가 없으면 양육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여성이 출산한 자녀를 유기·살해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추진되었다. 지난 해 6월 감사원이 2015년 이후 8년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가 2천 236명에 달한다고 발표하고, 이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2구의 영아 시신이 발견되면서 출생통보제와 익명출산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 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출산 후 출생 등록을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 먼저 도입되자 익명출산제 도입을 추진하는 이들은 “출생 등록이 두려운 여성들이 결국 의료기관 밖에서 아이를 낳고 아동을 유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몇 년 전부터 ‘익명출산제’로 추친되어 오던 법안이 ‘보호출산제’로 이름을 바꾸고, 보건복지부의 전례없는 의지와 추진력으로 빠르게 입법이 진행된 것이다.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는 비난을 받아오던 익명출산제 법안은 ‘아동과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되어 새로운 명분을 획득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국회 내에서는 모종의 이상한 ‘딜’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가 통과되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주축으로 추진되어 온 익명출산제를 통과시키고, 대신 양당이 임신중지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검토한다는 일련의 흐름이 총선을 앞둔 시기인 지난 해 여야 간에 서로 맞교환하듯 이어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익명출산제 법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되어 결국 더불어민주당 다수 의원의 찬성과 함께 통과되었다. 익명출산제 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수차례 국회 토론회에 참여하여 우려를 공유했던 의원들조차 대다수 명확한 반대를 표명하지 않고 기권했다.
이 모든 과정은 명백한 오류를 공유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질문과 대안을 회피하고 있다. 출생 등록을 회피하고 결국 아동을 유기·살해하게 되는 상황이 과연 단순히 출산 사실을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누군가의 출산은 비밀이 되어야 하는가. 출산 후 유기·살해에 이르게 되는 상황은 어떤 사회경제적 여건과 압력 속에서 이뤄지는가. 결국 출산 후 유기나 살해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그 이전에 당사자에게 보장되어야 할 법·제도적, 보건의료적 여건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익명출산제를 통해 ‘합법적 유기’를 하게 되면 과연 태어난 아동의 삶에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모든 질문들을 무시한 채 익명출산제를 중심으로 먼저 제도가 구축되었을 때, 결국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여성들의 삶의 여건도, 결국 태어나 세상을 살아나가야 할 아동의 삶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제도는 과연 무엇을 보호한다고 할 수 있을까.
‘출생등록제와 함께 익명출산제를 시작하지 않으면, 결국 출생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들이 아이를 버릴 것’이라는 전제는 이처럼 애초에 여성과 아동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대로 작동해야 할 수많은 법, 정책, 제도,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질문들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 또한 삭제되어 있다. 임신하고, 낳고, 기르는 일의 모든 과정과 선택의 책임이 오로지 임신한 여성 당사자에게만 남겨져 있는 것이다. 임신의 유지와 출산 여부, 양육 여건, 아동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들-남성, 부모 등 다른 가족 구성원, 회사, 학교, 다른 사회 구성원 등-은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익명출산의 책임도, 양육의 책임도 결국 여성에게만 남게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https://bit.ly/46e5kGT)에 삽입된 통계 그래픽.
익명출산을 신청한 여성의 실질적인 어려움은 학업 문제, 실업, 불안정한 노동 여건 등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임신중지 결정도, 양육 지원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도 지연시키게 될 익명출산제
지난 6월 3일에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대한 9차 정례심의 최종견해에서 익명출산제의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미등록 출생의 근본 원인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익명출산제 법을 포괄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익명출산제가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와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 제약, 임신한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의 부족,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 미등록 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미등록 출생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와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 확대, 임신한 여성과 소녀를 위한 지원 서비스의 강화 및 비혼모와 관련된 사회적 낙인을 경감하는 조치 이행”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위원회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 정부가 해야할 근본적인 조치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제들을 뒤로 하고 익명출산제를 서둘러 시행하는 상황은 오히려 이러한 근본적인 조치들을 실행하고 싶지 않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 피임과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 서비스 및 보건의료 시스템의 구축, 일시적, 단편적인 양육 보조금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주거와 학습, 노동 지원에 정부의 예산과 역량을 투여하는 대신, 익명출산제 시행 하의 ‘위기임신상담’ 체계를 통해 한정적이고 선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구색과 명분만 갖추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문제는 익명출산제를 근간으로 하는 위기임신 상담 시스템이 결국 임신 초기의 임신중지 결정을 지연시키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임신 당사자는 오히려 위기임신 상담 시스템에 접근했다가 임신중지 시기를 놓쳐 뒤늦게 임신중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거나, 출산 후 준비되지 않은 양육이나 입양, 익명출산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 쉽다.
지난 4월 발표된 보호출산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서에서도 셰어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임산부’에게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익명 출산 제도를 통해 구축되는 ‘위기 임신’ 중심의 상담과 지원 체계가 아닌 임신의 유지와 중지, 출산, 양육에 대한 포괄적인 상담과 지원”이며, “임신의 유지와 중지에 따른 지원이 모두 체계적으로 구축되는 여건 하에서만이 익명 출산이 우선순위의 선택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으나, 이에 돌아온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모자보건법 14조 상담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익명출산제를 통해 시행되는 ‘위기임신상담’에서 임신중지 상담은 이미 ‘낙태죄’ 형법 조항 폐지로 인해 함께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모자보건법 14조를 기준으로 삼아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임신중지 비범죄화의 의미를 탈각시키고, 비범죄화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와 권리 보장을 위해 구축되어야 할 보건의료 시스템을 계속해서 지연시킨 채, 국가가 지난 역사에서 모자보건법 14조를 통해 저질러 온 문제들을 반복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 임신한 당사자 또는 상대방의 장애와 질병을 ‘위기임신’와 임신중지의 당연한 조건으로 삼는 우생학적 인구정책의 역사, ‘강간 또는 준강간’이라는 협소한 성폭력 규정과 선별적 임신중지 지원, 배우자 동의 조항을 통한 자기결정권의 침해 등이 ‘위기임신상담’과 ‘보호출산’이라는 체계 하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경남의 '생명터미혼모자의집', 강원 '마리아의집', 대전의 '대전자모원', 광주 '엔젤하우스' 등 각 지역에서 위기임신 상담 책임을 맡게 된 기관들 또한 모두 종교 기반 시설로 임신중지에 대한 상담은 애초에 배제하고 상담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이나 정보 제공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정부가 임신중지에 관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대해서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담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관련 의료서비스의 제공 여부나 비용 등이 개별 병원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을 바꿀 수가 없다.
보호출산제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대한 셰어 의견서 (https://bit.ly/3W9Wt4i)
재생산정의의 프레임으로 익명출산제에 대응하기
지난 7월 18일, 익명출산제 시행을 최대의 치적으로 삼고 싶은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지 관련 법·제도 개선 간담회를 하겠다며 법조인, 의료인 등을 모아두고 기자들 앞에서 보호출산제 시행을 홍보한 후 이후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보건복지부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를 했다는 한 여성의 유튜브 영상에 대해 ‘살인죄’로 경찰에 수사의뢰를 한 이후 소집한 회의였다. 현행 법 체계상 출산 후 사망하게 한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중지에 그 자체로 살인죄를 적용할 수는 없음에도, 보건복지부는 굳이 ‘살인죄’를 끌어와 수사를 의뢰했고, 이를 명분으로 후속 입법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열었으며, 그 자리에서 보호출산제를 홍보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겨우 마련된 임신중지 비범죄화의 근간을 흔들고 처벌을 근간에 둔 법 체계를 다시 만드는 한편, 익명출산제로 모든 문제들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보건복지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이후 새롭게 시작된 ‘낙태죄’ 폐지 투쟁의 과정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구조를 삭제하고 ‘생명’과 ‘결정’을 협소한 틀에 가두어 왔던 ‘생명권 대 결정권’의 구도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는 그간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임신중지의 사유, 임신 기간, 상담, 숙려, 제3자의 동의 여부 등을 따져 묻고, 이를 통해 국가가 ‘봐줄만한’, 혹은 ‘차라리 임신중지를 하게 할만한’ 이유들을 합법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법 체계의 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을 ‘여성의 결정’과 ‘태아 생명’의 대립으로부터 국가의 책임으로 이동시켰을 때, 임신중지를 둘러싼 여건들이 보이고 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재생산정의 운동의 방향은 ‘낙태죄’를 넘어 이러한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출산과 양육 또한 이에 연결되어 있다. 출산 이후 양육을 할 수 없는 상황 또한 개인의 책임이나 결정 여부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삶의 여건이 상황을 좌우하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로레타 로스와 리키 솔린저는 재생산정의의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이렇게 제시한다.
1) 자녀를 갖지 않을 권리, 2) 자녀를 가질 권리, 3)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할 권리 [ref]Loretta Ross and Rickie Solinger, Reproductive Justice: An Introduction,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9. / Jamie Marsella, How Safe Haven Laws Fail to Protect Children and Parents, Nursing Clio, September 13, 2023. 에서 재인용.[/ref]
익명출산제는 이 중 어느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임신하면 학교에서 쫓겨나는 청소년, 가정 내 폭력 등으로 탈가정한 이후에는 시설이나 임시 거처 외에 마땅히 안전하게 머물 곳을 찾기가 어려운 여성들,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생계까지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노동 조건이 대부분인 현실, 턱없이 부족한 국공립어린이집, 당연한 듯 자행되는 일상적인 젠더 폭력,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성교육과 더없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하고 낙인 투성이인 성 인식 수준, 오직 법적 혼인관계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와 사회보장 체계, 언제든 일터에서 쫓겨나고 추방될 수 있는 이주민/난민 여성의 취약한 거주지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이 모든 여건들이 출생 미등록, 나아가 유기와 학대로 이어지는 환경적 조건을 만들며 여기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모두 내버려둔 채, 임신의 유지 여부와 양육 여건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출산을 설득하고, 하다 안 되면 익명출산의 선택지를 주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여성뿐 아니라 결국 태어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여건에 놓이게 될 아동에 대한 심각한 무책임을 방증하는 것일 뿐이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여건들이 익명출산제라는 백래시로 인해 더 크게 후퇴하지 않도록, 재생산정의 운동은 이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통합적인 대응을 그려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