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의 범죄화와 인종화된 불평등, 그리고 비범죄화를 향한 노력
정민우(로욜라 시카고 대학교)
이 글은 질병의 범죄화에 관해 연구해 온 북미의 사회학자들인 트레버 하피, 알렉산더 맥클랜드, 케네스 패스의 최근 논문 “범죄화를 넘어서: 개혁의 시대에 HIV 범죄화를 재고하기” 를 참고로 (Hoppe et al. 2022), 이 논문에서 다루는 다양한 쟁점들과 자료들을 통해 북미에서 HIV의 범죄화를 둘러싸고 어떤 논의가 법, 학계, 사회운동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중심으로, HIV 의 범죄화와 그 불평등한 효과들, 이에 대항하려는 노력들을 살피려 한다.
1980년대 초 발견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 는 북미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단지 공중보건만이 아니라 성적/도덕적인 패닉을 불러 일으켰고, 이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HIV) 및 HIV 감염인들을 향한 범죄화를 정당화했다. 미국에서는 1986년부터 2011 년까지 약 25년 간 총 33개 주에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HIV) 감염인들을 타겟팅한 형벌죄가 적용되었다. 비록 그 세부사항은 다를지언정 이 형법들은HIV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상태를 알리지 않고 다른 이들과 섹스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 감염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위험률이 낮거나 전혀 위험하지 않은 행위가 수년간의 구금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국 내 HIV 범죄화" The Center for HIV Law & Policy에서 2018년 5월 18일에 발표한 지도
(출처 : https://www.thebody.com/article/map-hiv-criminalization-in-the-united-states-1)
HIV 의 범죄화는 기존에 “우범률이 높은” 집단으로 명명된 주변화된 집단들 (예컨대 게이 남성, 성노동자, 유색인종, 약물 이용자 등) 을 향한 성적/도덕적 낙인을 한층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다시금 주변화된 집단을 향한 범죄화를 정당화했다. 미국에서 특히 HIV 범죄화의 주된 타겟이 된 것은 흑인 남성이다.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MSM) 가운데 흑인 남성은 인종차별적 교육 및 주거 환경, 노동시장, 의료접근성 등으로 인해 HIV 감염과 구속/수감에서 이중적으로 인종화된 취약성에 노출되기 쉬우며, 이는 흑인 MSM 남성을 HIV의 범죄화에서 손쉬운 타겟 집단으로 낙인찍는다. 감염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HIV 감염인이 성관계를 갖는 것을 5천 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10년 미만의 구금으로 처벌하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지난 10여년 간 (2009-2019) 관련법 위반으로 고소된 이들의 45%가 흑인 남성이었다 (Cann, Harrison & Qiao 1999). 윌리엄스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HIV 범죄화와 관련한 법이 가장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미주리 주에서 지난 30여년 간 (1990-2019) 관련법 위반으로 기소된 200여 명 가운데 60%가 흑인 남성이었으며 (Sears, Goldberg & Mallory 2000), 루이지애나 주에서 10여년 간 (2011-2021) 기소된 이들 가운데 91%가 흑인 남성이었다 (Cisneros & Sears 2022).
HIV 감염사례를 둘러싼 재판과 이를 둘러싼 선정적인 미디어 보도는 HIV 감염인을 비난받아 마땅한 변태적인 존재로 재현하곤 하며, 이 역시 성애화된 인종주의와 그 차별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에이즈 판데믹 초기, 미디어는 주로 성노동에 종사하는 흑인 여성 HIV 감염인을 이상적인 악당으로 삼아 집중보도하곤 했다. 2015년 미주리 주에서 HIV 관련법으로 기소된 마이클 존슨은 성적 파트너들을 감염시켰거나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전원 백인 배심원단에 의해 최초 30.5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미디어는 젊은 흑인 게이 남성인 마이클 존슨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부도덕한 범죄자”로 부각시켰다 (Campbell et al. 2022). HIV 감염 관련 보도에서 캐나다 미디어의 주된 관심 역시 HIV 흑인 남성, 특히 흑인 이주민 남성으로, 성애화된 인종주의 프레임에 따라 이들은 “성적으로 지나치게 활동적이며 따라서 위험하고 두려운” 성적 침범자들로 그려진다 (Mykhalovskiy et al. 2021).
2010년대 들어 HIV/AIDS 와 연관한 의료적 개입의 진전은 북미에서 HIV 의 범죄화에 대한 HIV/AIDS 운동의 대응방식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통해 성관계를 통한 HIV 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견 (“예방으로서의 치료”) 에 이어 비감염인들을 대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처방해 HIV 전파를 막는 노출 전 예방법 (PrEP, 프렙) 및 U=U 캠페인 (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를 유지하는 감염인은 성관계를 통해 HIV를 전파시킬 수 없다는 캠페인) 이 성공을 거두며, HIV 범죄화에 대항하는 HIV/AIDS 운동의 메시지가 보다 정당성을 얻기 시작한다. 위험률이 지극히 낮거나 HIV 감염과는 무관한 행위들 (예컨대 침뱉기, 깨물기, 오랄섹스, 콘돔을 착용한 섹스, 미검출 수준의 바이러스량을 가진 감염인의 섹스) 까지도 강도높게 처벌하는 많은 주의 HIV 관련 형법들은 HIV 에 대한 의료적 지식이 척박하던 1980년대에 만들어졌기에 이를 현대의 의료 지식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2년 이래 현재까지 미국 내 약 10여 개 주에서 HIV 관련 형법들이 개정되거나 폐지되었다 (The Center for HIV Law & Policy 2021). 예컨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개정법은 콘돔을 사용하거나 바이러스 수치가 6개월 이상 미검출 수준을 유지할 경우 HIV 감염인의 감염상태 미고지 성관계를 더이상 처벌하지 않는다.
북미의 HIV/AIDS 운동은 이러한 법 개정을 반기면서도, 바이러스 수치 미검출 혹은 지속적 치료라는 의료적 기준에 기반한 부분적인 비범죄화에서 더 나아가 HIV 감염인과 이들의 성 행위를 전면 비범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많은 주들의 개정 법들은 여전히 HIV 감염인 가운데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범죄자로 보고 처벌한다. 많은 경우 이들은 보건의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로 높은 HIV 감염율과 취약한 의료접근성으로 인해 지속적 치료를 받기 어렵고, 바이러스 수치를 통제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의료적 위험 뿐 아니라 법적 처벌의 위험에 이중으로 노출된다 (Thrasher 2019). 결국 의료적 개입의 진전을 기반으로 한 법적 진전은 오히려 HIV 감염인들 가운데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에게 감찰과 처벌을 집중시켜 이들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몬다. 미국의 HIV 법정책 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HIV/AIDS 단체들은 2017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개인의 건강관리의 성공 혹은 실패에 기반해 유무죄를 따지는 형벌은 법적으로 부당하고 부적절하며 또한 보건의료 체계에서 배제된 이들 (예컨대 유색인종, 저소득층, 미등록 이주민, 성노동자 등) 을 인종과 계급에 따라 가중처벌한다고 지적했다 (The Consensus Statement 2017).
HIV 의 치료와 연관한 의료적 진전은 때로 HIV 감염인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촘촘한 통제와 감찰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적 연구를 통해HIV 유전형질의 변이를 모니터링하고자 하는 다양한 보건의료 실천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이른바 분자적 HIV 감시 (molecular HIV surveillance) 의 부상을 이끌었다. HIV 바이러스의 전이와 약물저항 패턴, 새로운 감염경로를 파악하고자 하는 분자적 HIV 감시에 대해 HIV/AIDS 활동가들은 이 ‘과학적’ 연구실천이 특히 감염인 커뮤니티와의 협업 없이 이뤄질 때 어떻게 HIV 감염인들의 동의와 자율성,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나아가 감염경로의 규명이라는 미명 하에 어떻게 트랜스 여성, 이주민, 약물 이용자 등 주변화된 집단을 예비 범죄자로 보고 사전감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주변화된 집단을 향한 낙인과 차별, 범죄화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지 지적한다 (Trejo & McClelland 2021).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에 의료 및 감찰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HIV 감염인들과 다른 주변화된 커뮤니티에 어떤 법적, 의료적, 윤리적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보다 많은 연구들이 요청된다.
한국에서 1987년 입법된 에이즈예방법 상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은 HIV/AIDS 에 관한 의료적 지식의 부재와 감염인들을 향한 도덕적/성적 패닉에 기반해 마련된 낡은 법안이다. HIV 와 관련된 의료적 개입의 진전과 발맞춰 HIV 관련 처벌법들을 개정해 온 북미의 경험은, 낡은 법안의 개정이 단지 처벌기준의 완화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HIV 감염과 의료체계를 둘러싼 다양한 불평등을 고려한 전면적인 비범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범죄화의 체계를 보살핌의 체계로 변화시켜 갈지” (Hoppe et al. 2022, 104) 에 관한 고민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참고자료]
1) Campbell, Chadwick K., Florencia Rojo, Naina Khanna, and Shari L. Dworkin. 2022. “Sex, Lies, and Videotape: A Content and Textual Analysis of Media Coverage of the HIV Criminal Prosecution of Michael Johnson.” Crime, Media, Culture 18.1: 52-69.
2) Cann, Deanna, Sayward E. Harrison, and Shan Qiao. 2019. “Historical and Current Trends in HIV Criminalization in South Carolina: Implications for the Southern HIV Epidemic.” AIDS and Behavior 23.3: 233-241.
3) Cisneros, Nathan, and Brad Sears. 2022. Enforcement of HIV Criminalization in Louisiana. The Williams Institute, UCLA School of Law.
4) Hoppe, Trevor, Alexander McClelland, and Kenneth Pass. 2022. “Beyond Criminalization: Reconsidering HIV Criminalization in an Era of Reform.” Current Opinion in HIV and AIDS 17.2: 100-105.
5) Mykhalovskiy, Eric, Chris Sanders, Colin Hastings, and Laura Bisaillon. 2021. “Explicitly Racialised and Extraordinarily Over-represented: Black Immigrant Men in 25 Years of News Reports on HIV Non-disclosure Criminal Cases in Canada.” Culture, Health & Sexuality 23.6: 788-803.
6) Sears, Brad, Shoshana K. Goldberg, and Christy Mallory. 2020. The Criminalization of HIV and Hepatitis B and C in Missouri: An Analysis of Enforcement Data from 1990 to 2019. The Williams Institute, UCLA School of Law.
7) The Center for HIV Law and Policy. 2021. HIV crimin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 A Sourcebook on State and Federal HIV Criminal Law and Practice. The Center for HIV Law and Policy.
8) The Consensus Statement on HIV “Treatment as Prevention” in Criminal Law Reform. 2017.
9) Thrasher, Steven W. 2019. “Tiger Mandingo,” a Tardily Regretful Prosecutor, and the “Viral Underclass.” Souls 21.2-3: 248-252.
10) Tredo, Alfredo, and Alexander McClelland. 2021. Molecular HIV Surveillance: A Global Review of Human Rights Implications. HIV Justice Worldwide and the Positive Women’s Network.
HIV 의 범죄화와 인종화된 불평등, 그리고 비범죄화를 향한 노력
정민우(로욜라 시카고 대학교)
이 글은 질병의 범죄화에 관해 연구해 온 북미의 사회학자들인 트레버 하피, 알렉산더 맥클랜드, 케네스 패스의 최근 논문 “범죄화를 넘어서: 개혁의 시대에 HIV 범죄화를 재고하기” 를 참고로 (Hoppe et al. 2022), 이 논문에서 다루는 다양한 쟁점들과 자료들을 통해 북미에서 HIV의 범죄화를 둘러싸고 어떤 논의가 법, 학계, 사회운동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중심으로, HIV 의 범죄화와 그 불평등한 효과들, 이에 대항하려는 노력들을 살피려 한다.
1980년대 초 발견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 는 북미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단지 공중보건만이 아니라 성적/도덕적인 패닉을 불러 일으켰고, 이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HIV) 및 HIV 감염인들을 향한 범죄화를 정당화했다. 미국에서는 1986년부터 2011 년까지 약 25년 간 총 33개 주에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HIV) 감염인들을 타겟팅한 형벌죄가 적용되었다. 비록 그 세부사항은 다를지언정 이 형법들은HIV 감염인이 자신의 감염상태를 알리지 않고 다른 이들과 섹스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 감염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위험률이 낮거나 전혀 위험하지 않은 행위가 수년간의 구금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국 내 HIV 범죄화" The Center for HIV Law & Policy에서 2018년 5월 18일에 발표한 지도
(출처 : https://www.thebody.com/article/map-hiv-criminalization-in-the-united-states-1)
HIV 의 범죄화는 기존에 “우범률이 높은” 집단으로 명명된 주변화된 집단들 (예컨대 게이 남성, 성노동자, 유색인종, 약물 이용자 등) 을 향한 성적/도덕적 낙인을 한층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다시금 주변화된 집단을 향한 범죄화를 정당화했다. 미국에서 특히 HIV 범죄화의 주된 타겟이 된 것은 흑인 남성이다.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MSM) 가운데 흑인 남성은 인종차별적 교육 및 주거 환경, 노동시장, 의료접근성 등으로 인해 HIV 감염과 구속/수감에서 이중적으로 인종화된 취약성에 노출되기 쉬우며, 이는 흑인 MSM 남성을 HIV의 범죄화에서 손쉬운 타겟 집단으로 낙인찍는다. 감염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HIV 감염인이 성관계를 갖는 것을 5천 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10년 미만의 구금으로 처벌하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지난 10여년 간 (2009-2019) 관련법 위반으로 고소된 이들의 45%가 흑인 남성이었다 (Cann, Harrison & Qiao 1999). 윌리엄스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HIV 범죄화와 관련한 법이 가장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미주리 주에서 지난 30여년 간 (1990-2019) 관련법 위반으로 기소된 200여 명 가운데 60%가 흑인 남성이었으며 (Sears, Goldberg & Mallory 2000), 루이지애나 주에서 10여년 간 (2011-2021) 기소된 이들 가운데 91%가 흑인 남성이었다 (Cisneros & Sears 2022).
HIV 감염사례를 둘러싼 재판과 이를 둘러싼 선정적인 미디어 보도는 HIV 감염인을 비난받아 마땅한 변태적인 존재로 재현하곤 하며, 이 역시 성애화된 인종주의와 그 차별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에이즈 판데믹 초기, 미디어는 주로 성노동에 종사하는 흑인 여성 HIV 감염인을 이상적인 악당으로 삼아 집중보도하곤 했다. 2015년 미주리 주에서 HIV 관련법으로 기소된 마이클 존슨은 성적 파트너들을 감염시켰거나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전원 백인 배심원단에 의해 최초 30.5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미디어는 젊은 흑인 게이 남성인 마이클 존슨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부도덕한 범죄자”로 부각시켰다 (Campbell et al. 2022). HIV 감염 관련 보도에서 캐나다 미디어의 주된 관심 역시 HIV 흑인 남성, 특히 흑인 이주민 남성으로, 성애화된 인종주의 프레임에 따라 이들은 “성적으로 지나치게 활동적이며 따라서 위험하고 두려운” 성적 침범자들로 그려진다 (Mykhalovskiy et al. 2021).
2010년대 들어 HIV/AIDS 와 연관한 의료적 개입의 진전은 북미에서 HIV 의 범죄화에 대한 HIV/AIDS 운동의 대응방식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통해 성관계를 통한 HIV 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견 (“예방으로서의 치료”) 에 이어 비감염인들을 대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처방해 HIV 전파를 막는 노출 전 예방법 (PrEP, 프렙) 및 U=U 캠페인 (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를 유지하는 감염인은 성관계를 통해 HIV를 전파시킬 수 없다는 캠페인) 이 성공을 거두며, HIV 범죄화에 대항하는 HIV/AIDS 운동의 메시지가 보다 정당성을 얻기 시작한다. 위험률이 지극히 낮거나 HIV 감염과는 무관한 행위들 (예컨대 침뱉기, 깨물기, 오랄섹스, 콘돔을 착용한 섹스, 미검출 수준의 바이러스량을 가진 감염인의 섹스) 까지도 강도높게 처벌하는 많은 주의 HIV 관련 형법들은 HIV 에 대한 의료적 지식이 척박하던 1980년대에 만들어졌기에 이를 현대의 의료 지식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2년 이래 현재까지 미국 내 약 10여 개 주에서 HIV 관련 형법들이 개정되거나 폐지되었다 (The Center for HIV Law & Policy 2021). 예컨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개정법은 콘돔을 사용하거나 바이러스 수치가 6개월 이상 미검출 수준을 유지할 경우 HIV 감염인의 감염상태 미고지 성관계를 더이상 처벌하지 않는다.
북미의 HIV/AIDS 운동은 이러한 법 개정을 반기면서도, 바이러스 수치 미검출 혹은 지속적 치료라는 의료적 기준에 기반한 부분적인 비범죄화에서 더 나아가 HIV 감염인과 이들의 성 행위를 전면 비범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많은 주들의 개정 법들은 여전히 HIV 감염인 가운데 바이러스 수치가 미검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범죄자로 보고 처벌한다. 많은 경우 이들은 보건의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로 높은 HIV 감염율과 취약한 의료접근성으로 인해 지속적 치료를 받기 어렵고, 바이러스 수치를 통제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의료적 위험 뿐 아니라 법적 처벌의 위험에 이중으로 노출된다 (Thrasher 2019). 결국 의료적 개입의 진전을 기반으로 한 법적 진전은 오히려 HIV 감염인들 가운데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에게 감찰과 처벌을 집중시켜 이들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몬다. 미국의 HIV 법정책 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HIV/AIDS 단체들은 2017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개인의 건강관리의 성공 혹은 실패에 기반해 유무죄를 따지는 형벌은 법적으로 부당하고 부적절하며 또한 보건의료 체계에서 배제된 이들 (예컨대 유색인종, 저소득층, 미등록 이주민, 성노동자 등) 을 인종과 계급에 따라 가중처벌한다고 지적했다 (The Consensus Statement 2017).
HIV 의 치료와 연관한 의료적 진전은 때로 HIV 감염인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촘촘한 통제와 감찰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적 연구를 통해HIV 유전형질의 변이를 모니터링하고자 하는 다양한 보건의료 실천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이른바 분자적 HIV 감시 (molecular HIV surveillance) 의 부상을 이끌었다. HIV 바이러스의 전이와 약물저항 패턴, 새로운 감염경로를 파악하고자 하는 분자적 HIV 감시에 대해 HIV/AIDS 활동가들은 이 ‘과학적’ 연구실천이 특히 감염인 커뮤니티와의 협업 없이 이뤄질 때 어떻게 HIV 감염인들의 동의와 자율성,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나아가 감염경로의 규명이라는 미명 하에 어떻게 트랜스 여성, 이주민, 약물 이용자 등 주변화된 집단을 예비 범죄자로 보고 사전감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주변화된 집단을 향한 낙인과 차별, 범죄화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지 지적한다 (Trejo & McClelland 2021).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에 의료 및 감찰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HIV 감염인들과 다른 주변화된 커뮤니티에 어떤 법적, 의료적, 윤리적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보다 많은 연구들이 요청된다.
한국에서 1987년 입법된 에이즈예방법 상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은 HIV/AIDS 에 관한 의료적 지식의 부재와 감염인들을 향한 도덕적/성적 패닉에 기반해 마련된 낡은 법안이다. HIV 와 관련된 의료적 개입의 진전과 발맞춰 HIV 관련 처벌법들을 개정해 온 북미의 경험은, 낡은 법안의 개정이 단지 처벌기준의 완화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HIV 감염과 의료체계를 둘러싼 다양한 불평등을 고려한 전면적인 비범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범죄화의 체계를 보살핌의 체계로 변화시켜 갈지” (Hoppe et al. 2022, 104) 에 관한 고민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참고자료]
1) Campbell, Chadwick K., Florencia Rojo, Naina Khanna, and Shari L. Dworkin. 2022. “Sex, Lies, and Videotape: A Content and Textual Analysis of Media Coverage of the HIV Criminal Prosecution of Michael Johnson.” Crime, Media, Culture 18.1: 52-69.
2) Cann, Deanna, Sayward E. Harrison, and Shan Qiao. 2019. “Historical and Current Trends in HIV Criminalization in South Carolina: Implications for the Southern HIV Epidemic.” AIDS and Behavior 23.3: 233-241.
3) Cisneros, Nathan, and Brad Sears. 2022. Enforcement of HIV Criminalization in Louisiana. The Williams Institute, UCLA School of Law.
4) Hoppe, Trevor, Alexander McClelland, and Kenneth Pass. 2022. “Beyond Criminalization: Reconsidering HIV Criminalization in an Era of Reform.” Current Opinion in HIV and AIDS 17.2: 100-105.
5) Mykhalovskiy, Eric, Chris Sanders, Colin Hastings, and Laura Bisaillon. 2021. “Explicitly Racialised and Extraordinarily Over-represented: Black Immigrant Men in 25 Years of News Reports on HIV Non-disclosure Criminal Cases in Canada.” Culture, Health & Sexuality 23.6: 788-803.
6) Sears, Brad, Shoshana K. Goldberg, and Christy Mallory. 2020. The Criminalization of HIV and Hepatitis B and C in Missouri: An Analysis of Enforcement Data from 1990 to 2019. The Williams Institute, UCLA School of Law.
7) The Center for HIV Law and Policy. 2021. HIV crimin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 A Sourcebook on State and Federal HIV Criminal Law and Practice. The Center for HIV Law and Policy.
8) The Consensus Statement on HIV “Treatment as Prevention” in Criminal Law Reform. 2017.
9) Thrasher, Steven W. 2019. “Tiger Mandingo,” a Tardily Regretful Prosecutor, and the “Viral Underclass.” Souls 21.2-3: 248-252.
10) Tredo, Alfredo, and Alexander McClelland. 2021. Molecular HIV Surveillance: A Global Review of Human Rights Implications. HIV Justice Worldwide and the Positive Women’s 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