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생사상의 살아있는 역사, 모자보건법 제14조
황지성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박정희 정권(1961-1979)은 유신 선포 직후 19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한국 형법이 낙태를 금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정부는 1960년대부터 국가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족계획사업을 국가 시책으로 추진하려 했다. 이에 가족계획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정부는 낙태의 예외적 허용 사유를 제시한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명시적으로 우생학적 성격을 표방하였다.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지 허용 사유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포함하였다. 더 나아가 동 법은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의사가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불임수술 대상자를 보고하고, 보건사회부 장관이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을 할 수 있는 조항 또한 마련했다.

1997년 민주적인 방식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후, 당시 국회의원 김홍신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 폭력 이슈를 던지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제기한 이슈는 오랫동안 소문은 무성했지만 한번도 구체적 실태가 밝혀진 바 없는 장애인 강제불임수술 문제였다. 의원실은 1999년 전국의 집단수용시설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하여, 총 9개 시설, 170여 명으로 추산되는 비/장애인에게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보고했다. 이러한 피해는 집단수용시설 운영자의 관여뿐만 아니라 보건소, 대한가족계획협회 등 정부 공식 행정기구의 지원과 협조를 통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집단수용시설 내 비/장애인 강제불임수술 실태조사와 폭로
#1. 다수의 지적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직권조사
김홍신 의원실은 전국 60곳 정신지체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고, 몇몇 시설들에서 강제불임수술한 장애인들이 ‘부부’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시설 내에서 결혼한 사례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 바, 10개 시설에서 결혼한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해당 시설들을 표적으로 현장조사 등을 실시했다. 그 결과 10곳 시설 중 8개 시설에서 불임수술이 시행됐음을 확인했다. 피해 규모는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결혼한 정신지체 장애인 총125명(남자 62명, 여자 63명) 중 75명이 불임수술을 했으며, 남자가 48명, 여자가 27명이다. 또 불임수술을 한 75명 중 70명은 미혼인 상태에서 결혼 전에 불임수술을 받았다. 불임수술이 시설 내에서의 결혼과 부부생활의 전제 조건이 된 것을 시사한다. 피해가 발생한 시기는 1985년부터 1997년 사이다.
#2. 정신요양원에서 탈출한 수술 피해 당사자의 제보
의원실이 1차 폭로작업을 벌인 직후, 광주 광역시 소재 정신요양원에 수용된 경험이 있고, 요양원에서 탈출한 후로는 버스 운전기사로 생활하고 있던 한 남성(당시 나이 40대)이 자신도 시설에서 강제불임수술 피해를 당했다며 김홍실 의원실에 제보했다. 이에 의원실은 곧바로 제보자의 협조를 얻어 정신요양원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요양원에서 강제불임수술은 기‧미혼의 구분 없이 무작위로 실시되었고, 상당수가 미혼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제보자에 따르면 17세 가량의 미성년자도 포함되었다). 피해 규모는, 제보자 진술 상 약 100명(남성 약 50-60명, 여성 약 40명), 현장조사 시 담당자들의 진술 상 약 30-40명이다. 의원실이 정확한 피해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불임시술 시행을 지원한 지역 보건소에 관련 서류제출을 요청했으나, 보건소는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피해가 벌어진 시기는 1983년경이다.

1999년 당시 김홍신의원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피해 제보자가 발언하는 모습
(<한겨레신문> 1999.8.23. “양팔 붙잡힌 채 사무실서 수술, 반항하다 몽둥이로 얻어맞기도”)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화된 것은 없다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와 폭로는 한국 사회에서 강제적 불임수술이라는 인권침해가 실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드러낸 것이었다. 집단수용시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수용자의 장애여부나 장애유형, 연령, 성별에 상관 없이 강제불임수술이 빈번하게 실행되었고, 폐쇄적인 시설 환경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들이 더 많이 있을거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시설 내에서 강제불임수술이 행해진 시기가 1980년대 이후 시기인 것도 주목되는데, 1980년대 초 한국 사회는 가족계획사업의 결과로 인구감소율이 어느 정도 목표치에 도달했다고 평가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가족계획사업 시행 주체들은 새로운 대상, 즉 집단수용시설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보건소와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설 내 강제불임수술 실행에 긴밀히 협력했던 정황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홍신 의원실의 조사 보고 이후 후속 작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김홍신 의원실은 1999년 당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국의 집단수용시설을 대상으로 철저한 실태조사와 피해자 배보상 검토 등을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제보자 및 드러난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치 역시 진행되지 않아,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동일한 시설 내에 생존하고 있거나 시설 내에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도 높다. 한국의 집단수용시설은 대부분 수용자의 신체적 자유와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감금적 환경을 특징으로 하는 데다, 가족들 역시 대게의 경우 시설에 보내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김홍신 의원실의 폭로 이후 약 25년의 세월이 지났고, 모자보건법이 최초 제정된 후로는 무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났다. 그 사이 강제불임수술 명령 조항이 삭제되기는 했지만[ref]김홍신 의원실의 폭로가 있기 직전인 1999년 초, 정부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강제불임수술 명령 조항을 전격 삭제했다. 이는 당시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국가 주도 강제불임수술 피해 사실이 폭로되고 정부가 피해보상을 실시해서 화제가 됐다. 스웨덴의 영향으로 1997년 일본 정부 역시 국가 주도 강제불임수술의 근거가 된 우생보호법을 폐지했다.[/ref] 우생학적 사유가 있을 시 임신중지를 허용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생사상에 근거한 모자보건법이 반세기 간 존치되어 온 효과로서 한국 사회 다수의 비/장애인 집단이 부정의한 수용, 배제, 박탈의 조건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야 했고, 여전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앞으로 모두의 재생산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는 모자보건법 상 강제불임수술 등의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와 피해자 구제 작업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가 가장 시급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한국 우생사상의 살아있는 역사, 모자보건법 제14조
황지성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박정희 정권(1961-1979)은 유신 선포 직후 19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한국 형법이 낙태를 금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정부는 1960년대부터 국가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족계획사업을 국가 시책으로 추진하려 했다. 이에 가족계획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정부는 낙태의 예외적 허용 사유를 제시한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명시적으로 우생학적 성격을 표방하였다.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지 허용 사유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포함하였다. 더 나아가 동 법은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의사가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불임수술 대상자를 보고하고, 보건사회부 장관이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을 할 수 있는 조항 또한 마련했다.
1997년 민주적인 방식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후, 당시 국회의원 김홍신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 폭력 이슈를 던지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제기한 이슈는 오랫동안 소문은 무성했지만 한번도 구체적 실태가 밝혀진 바 없는 장애인 강제불임수술 문제였다. 의원실은 1999년 전국의 집단수용시설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하여, 총 9개 시설, 170여 명으로 추산되는 비/장애인에게 피해가 발생하였음을 보고했다. 이러한 피해는 집단수용시설 운영자의 관여뿐만 아니라 보건소, 대한가족계획협회 등 정부 공식 행정기구의 지원과 협조를 통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집단수용시설 내 비/장애인 강제불임수술 실태조사와 폭로
#1. 다수의 지적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직권조사
김홍신 의원실은 전국 60곳 정신지체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고, 몇몇 시설들에서 강제불임수술한 장애인들이 ‘부부’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시설 내에서 결혼한 사례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 바, 10개 시설에서 결혼한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해당 시설들을 표적으로 현장조사 등을 실시했다. 그 결과 10곳 시설 중 8개 시설에서 불임수술이 시행됐음을 확인했다. 피해 규모는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결혼한 정신지체 장애인 총125명(남자 62명, 여자 63명) 중 75명이 불임수술을 했으며, 남자가 48명, 여자가 27명이다. 또 불임수술을 한 75명 중 70명은 미혼인 상태에서 결혼 전에 불임수술을 받았다. 불임수술이 시설 내에서의 결혼과 부부생활의 전제 조건이 된 것을 시사한다. 피해가 발생한 시기는 1985년부터 1997년 사이다.
#2. 정신요양원에서 탈출한 수술 피해 당사자의 제보
의원실이 1차 폭로작업을 벌인 직후, 광주 광역시 소재 정신요양원에 수용된 경험이 있고, 요양원에서 탈출한 후로는 버스 운전기사로 생활하고 있던 한 남성(당시 나이 40대)이 자신도 시설에서 강제불임수술 피해를 당했다며 김홍실 의원실에 제보했다. 이에 의원실은 곧바로 제보자의 협조를 얻어 정신요양원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요양원에서 강제불임수술은 기‧미혼의 구분 없이 무작위로 실시되었고, 상당수가 미혼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제보자에 따르면 17세 가량의 미성년자도 포함되었다). 피해 규모는, 제보자 진술 상 약 100명(남성 약 50-60명, 여성 약 40명), 현장조사 시 담당자들의 진술 상 약 30-40명이다. 의원실이 정확한 피해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불임시술 시행을 지원한 지역 보건소에 관련 서류제출을 요청했으나, 보건소는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피해가 벌어진 시기는 1983년경이다.
1999년 당시 김홍신의원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피해 제보자가 발언하는 모습
(<한겨레신문> 1999.8.23. “양팔 붙잡힌 채 사무실서 수술, 반항하다 몽둥이로 얻어맞기도”)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화된 것은 없다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와 폭로는 한국 사회에서 강제적 불임수술이라는 인권침해가 실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드러낸 것이었다. 집단수용시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수용자의 장애여부나 장애유형, 연령, 성별에 상관 없이 강제불임수술이 빈번하게 실행되었고, 폐쇄적인 시설 환경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들이 더 많이 있을거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시설 내에서 강제불임수술이 행해진 시기가 1980년대 이후 시기인 것도 주목되는데, 1980년대 초 한국 사회는 가족계획사업의 결과로 인구감소율이 어느 정도 목표치에 도달했다고 평가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가족계획사업 시행 주체들은 새로운 대상, 즉 집단수용시설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보건소와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설 내 강제불임수술 실행에 긴밀히 협력했던 정황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홍신 의원실의 조사 보고 이후 후속 작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김홍신 의원실은 1999년 당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국의 집단수용시설을 대상으로 철저한 실태조사와 피해자 배보상 검토 등을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제보자 및 드러난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치 역시 진행되지 않아,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동일한 시설 내에 생존하고 있거나 시설 내에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도 높다. 한국의 집단수용시설은 대부분 수용자의 신체적 자유와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감금적 환경을 특징으로 하는 데다, 가족들 역시 대게의 경우 시설에 보내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김홍신 의원실의 폭로 이후 약 25년의 세월이 지났고, 모자보건법이 최초 제정된 후로는 무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났다. 그 사이 강제불임수술 명령 조항이 삭제되기는 했지만[ref]김홍신 의원실의 폭로가 있기 직전인 1999년 초, 정부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강제불임수술 명령 조항을 전격 삭제했다. 이는 당시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국가 주도 강제불임수술 피해 사실이 폭로되고 정부가 피해보상을 실시해서 화제가 됐다. 스웨덴의 영향으로 1997년 일본 정부 역시 국가 주도 강제불임수술의 근거가 된 우생보호법을 폐지했다.[/ref] 우생학적 사유가 있을 시 임신중지를 허용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생사상에 근거한 모자보건법이 반세기 간 존치되어 온 효과로서 한국 사회 다수의 비/장애인 집단이 부정의한 수용, 배제, 박탈의 조건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야 했고, 여전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앞으로 모두의 재생산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는 모자보건법 상 강제불임수술 등의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 실태조사와 피해자 구제 작업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가 가장 시급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