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11월[국제이슈] 싱가포르에서 HIV 의 범죄화

싱가포르에서 HIV 의 범죄화 


레이너 케이 진 탠 

(Rayner Kay Jin Tan, 노스캐롤라이나대 차이나 프로젝트 박사후 펠로우 & 싱가포르국립대 보건대학 방문연구원)

번역 : 정민우(로욜라 시카고 대학교) 


싱가포르에서 첫 번째 HIV 감염사례는 1985년에 발견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1년 경 HIV 감염사례 증가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92년 감염병 관련법 (Infectious Diseases Act) 제23조를 신설하고 HIV 감염인의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을 규제하기 시작한다.[ref]https://sprs.parl.gov.sg/search/topic?reportid=031_19920227_S0002_T0008/ [/ref] 감염병 관련법 제 23조는 HIV 감염인들이 성관계 이전에 자신의 HIV 감염사실만이 아니라 성관계를 통한 “HIV 감염 위험”을 섹스 파트너들에게 고지할 것을 의무화했다.[ref]https://www.healthhub.sg/a-z/diseases-and-conditions/18/topics_hiv_aids/ [/ref]


감염병 관련법 제23조에 대한 2018년 법원의 판결은 이 법이 싱가포르의 HIV 감염인들이 이미 겪고 있는 어려움에 더해진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감염인이 자신의 HIV 감염사실을 ‘피해자’와 사전에 논의했다고 해서, 성관계로 인해 ‘피해자’가HIV에 감염될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감염인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ref]https://www.thebody.com/article/in-singapore-an-hiv-criminalization-case-tests-the-countrys-outdated-laws/ [/ref] 섹스 파트너들과 감염 위험을 논의하고, 그들이 이러한 위험을 이해하고 숙지하도록 하는 부담은 결국 HIV 감염인들에게 온전히 전가된다.


이 법안을 어길 경우, 감염인들은 최대1만 싱가포르 달러 (약 1천만 원) 의 벌금과 2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었다. 2008년의 법안 개정으로 인해 처벌 강도는 5배나 강화되어, 이제 감염병 관련법 제23조로 인한 처벌은 최대 5만 싱가포르 달러 (약 5천만 원) 의 벌금과 10년의 징역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법안 개정이 “이러한 가해에 대한 사회의 위중한 시선”을 반영한 것으로, “잠재적 가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ref]https://sprs.parl.gov.sg/search/topic?reportid=3_20080422_S0003_T0002/ [/ref]


싱가포르의 감염병 관련법 제23조에는 또다른 규제적 특징이 있다. 이 법은 현재 HIV 음성이지만 “HIV에 감염될 위험이 현저히 높다고 여겨지는” 이들 역시 (감염인과 마찬가지로) 섹스 파트너들에게 의도치 않게 HIV를 전파시키지 않기 위한 적절한 노력 (감염위험 고지, 주기적인 HIV 검사 등) 을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 다만 이 항목으로 인해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2030년까지 싱가포르에서 HIV 전염 및 AIDS를 종식시키기 위한 커뮤니티 청사진 발표 (출처 : https://afa.org.sg/ )


싱가포르에서 HIV의 범죄화에 대항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두 가지 영역에서 전개되어 왔다. 첫째, HIV 와 연관된 낙인에 맞서 대중들이 HIV에 대해 보다 나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HIV를 범죄화하는 법안들의 수정 및 폐지를 위한 직접적 활동이다.


싱가포르에서 HIV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심각한 수준으로, 이는 HIV 감염에 대한 공포 및 HIV에 대한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편견으로 인해 유지되어 왔다.[ref]https://www.channelnewsasia.com/commentary/hiv-data-leaks-public-attitudes-fear-prejudice-myths-debunked-897306/ [/ref] 액션 포 에이즈 (Action for AIDS Singapore) 와 같은 시민사회 단체들은 HIV와 연관된 낙인과 싸우며 HIV 감염위험에 취약한 커뮤니티들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 왔다. “U=U” (미검출=감염불가) 와 같은 의학적 진전과 함께, 소셜 미디어를 통한 노력들 (예컨대 @equalsu_sg[ref]https://www.instagram.com/uequalsu_sg/?hl=en/ [/ref]) 및 HIV 종식을 위한 커뮤니티 차원의 청사진을 그리는 활동들[ref]https://afa.org.sg/ending-hiv/community-blueprint-microsite/ [/ref] 역시 HIV 와 연관된 낙인에 맞서고 HIV를 범죄화하는 법안을 폐지하고자 하는 운동에 힘을 보태왔다. 

 

싱가포르의 커뮤니티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HIV 를 범죄화하는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해 왔다. 첫째, 보건의학적 관점에서 HIV 연구자들은 감염병 관련법 제23조가 시행된 1992년 이래 이 법안이 이후 약 9,000 건에 달하는 감염사례를 막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히려 HIV 의 범죄화는 HIV 감염인을 향한 낙인을 재생산하고[ref]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wpc/article/PIIS2666-6065(22)00203-6/fulltext/ [/ref] , 사람들이 자신의 HIV 감염사실을 확인하고 인지하는 일을 꺼리게 만들며, HIV 검사율을 낮춤으로써, 결국 HIV 의 전파를 통제하려는 보건의학적 노력에 배치된다.


둘째, 법적 관점을 채택한 연구자들 역시 법적 처벌이 HIV의 통제나 관리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나아가 법 전문가들은 의도적으로 타인을 HIV에 감염시키려는 행위가 싱가포르 형법의 다른 조항들로 인해 충분히 처벌될 수 있기에, HIV 특정적인 처벌법이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법안은 이미 다방면에서 취약한 HIV 감염인 집단에게 감염사실 및 위험 고지의 온전한 책임을 떠넘기고 이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부과한다는 점에서도 부당하다.[ref]https://www.singaporelawreview.com/juris-illuminae-entries?offset=1594809691051/ [/ref]


나는 최근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17명의 게이, 바이, 그리고 다른 MSM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연구를 시행했다. 연구 참여자들 대부분은 감염병 관련법 제23조가 HIV 음성인 이들까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HIV 양성인 연구 참여자들 가운데 HIV 미검출 수치를 유지해 온 이들은 미검출 상태의 감염인은 타인을 감염시킬 수 없기에 처벌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한 이 법안은 HIV가 미검출 수치에 이르지 않은 감염인들을 “무책임한 타자”로 만들고 이들을 사회에서 보다 주변화시킨다는 점에서도 재고될 필요가 있었다.


비록 진전은 더디지만, HIV를 범죄화하는 법안들이 정당한 법적,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공포와 차별에 근간하고 있다는 점만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HIV와 관련된 법안들이 보다 정의롭고 평등해지는 날을 희망하며,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 우리는 HIV를 향한 차별과 낙인에 계속해 맞서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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