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04월[몸]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필수적인 의료 행위로서의 임신중지

김선혜

전세계 한 해 임신중지는 약 5천만 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산되며, 매일 약 12만 5천 건의 임신중지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WHO). 전체 임신의 4분의 1은 유산으로 종결된다는 사실은 임신중지란 특정한 여성만이 특수한 상황에서 겪게 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중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100% 완벽한 피임방법이란 없는 상황에서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료행위는 언제나 일상적이면서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로 요청된다. 임신중지 시술 그 자체가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법적, 의료적, 사회적 장벽이 여성의 몸과 재생산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고 있다.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로서의 임신중지

이미지 출처
https://www.ctvnews.ca/health/coronavirus/canada-experiencing-shortage-of-abortion-pill-amid-covid-19-outbreak-1.4874666

이러한 점에서 현재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각 국가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의료 시설 자체의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진 지역, 봉쇄령이 내려진 지역, 이동 제한을 두고 있는 지역 등 일상적인 의료 서비스가 제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에 많은 제약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긴급한 개입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4월 16일 “피임과 안전한 임신중지를 포함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는 코로나 19의 상태와 관계없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발표하였으며,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유지하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하였다. WHO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보건시설과 보건의료종사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의료체계는 방치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2015년 에볼라 사태 동안 홍역, 말라리아, 에이즈,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고, 결국 이들 질병에 의한 사망자 수가 결국은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서는 결과가 초래했다는 점을 다시 환기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WHO는 코로나 19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과 함께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계속 제공해 나가야 함을 역설하였다.[ref]https://www.who.int/emergencies/diseases/novel-coronavirus-2019/technical-guidance/maintaining-essential-health-services-and-systems[/ref] 그리고 이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는 정기적인 예방접종, 임신과 출산을 포함한 생식의료서비스, 유아와 노인에 대한 돌봄, 비감염성질환 및 정신질환 관리, 결핵 등 감염병 관리, 중환자 치료, 응급상황 관리, 영상검사‧검체검사‧혈액은행과 같은 지원서비스들이 포함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임신중지 지원을 위한 각국의 대처방안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여러 국가들이 즉각적으로 임신중지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법적 규제들을 바꾸거나 완화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영국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응과 관련된 긴급 법안을 발표하면서 약물 임신중지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이제까지 영국의 경우 약물임신중지의 경우 첫번째 약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클리닉을 방문해야만 했는데, 여성들이 집에서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관련된 규제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될 때까지 완화하겠다고 밝혔다.[ref]https://time.com/5812433/abortion-coronavirus-outbreak-uk/[/ref] 또한 아일랜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응급 시기에 클리닉을 방문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화를 통한 원격 진료를 통한 약물 임신중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승인하였다.[ref]https://www.rte.ie/news/2020/0408/1129326-interim-model-sees-abortion-care-take-place-remotely/[/ref] 프랑스의 경우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서 병원의 인력 등이 충분하지 않고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의 기한을 기존에 임신 7주에서 9주로 확대하는 긴급 법안을 발표하였다.[ref]http://www.rfi.fr/en/france/20200411-france-extends-access-to-abortions-during-covid-19-pandemic[/ref] 이처럼 여러 국가들이 신속하게 약물 임신중지와 관련된 새로운 가이드라인과 기준들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재난 위기의 상황에서도 임신중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로서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각 국가는 각기 다른 의료 환경과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방법이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최선이라고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들 국가들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료적 지원이 실질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방안”과 “대책”을 국가가 고민하고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프진의 도입과 필수의약품 지정을 촉구하며

대표적인 임신중지 약물 중에 하나는 미프진이다. 한국에서도 미프진 도입에 대한 요구는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WHO를 비롯한 여러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미프진과 같은 약물을 통해서 여성들은 자신의 집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의료진에 의한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투약 상담이 이루어진다면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가 요청되는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대면 접촉을 줄이면서 안전하게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여겨지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지난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 269조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물 임신중지와 관련된 법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며, 여전히 팽배한 사회적 낙인 속에서 임신중지를 재생산 건강의 측면에서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의료행위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신규 확진자의 숫자가 감소하는 추세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여전히 2차 대란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또 어떠한 팬데믹을 경험하게 될 지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재난을 대비해야 한다면, 그 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미프진의 필수 의약품 지정이다. 필수 의약품이란 국민보건을 위하여 국가 내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의약품을 의미한다. WHO는 이미 2005년에 임신중지약물을 필수 의약품 목록에 추가하였으며,[ref]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58642/[/ref] 약물임신중지가 팬데믹의 상황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은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수급 자체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ref]https://www.ctvnews.ca/health/coronavirus/canada-experiencing-shortage-of-abortion-pill-amid-covid-19-outbreak-1.4874666[/ref] 더욱 미프진의 조속한 도입과 필수 의약품 지정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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