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09월[국제이슈] 이주민들은 이미 ‘로 대 웨이드’가 의미없는 세계를 살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이미 ‘로 대 웨이드’가 의미없는 세계를 살고 있었다


이유림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미국연방대법원에서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 이 뒤집혔다. 미국 사회에서 보수 정치 세력이 임신 중지할 권리를 계속해서 부정하고, 위협해온 역사와는 별개로 임신 중지 권리 운동의 주요한 법적 분기점인 판결이 뒤집혔다는 것 그 자체로 사회적 충격이 상당하다. 이 결정으로 임신할 수 있는 몸들은 포스트-로의 세계(post-Roe world, 임신중지의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세계)에 놓인 것이다. 포스트-로의 세계 안에서도 임신 중지는 일어날 것이다. 임신 중지 권리 운동이 외쳐온 것처럼, 임신 중지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임신 중지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안전한 임신 중지를 금지할 뿐이다. 포스트-로의 세계에서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각 주의 재량에 따라 임신 중지가 제공될 때, 개인은 더 비싼 비용을 부담하고, 임신 중지가 허용되는 주로 이동을 해야 하고, 더 큰 사회적, 경제적, 건강 상의 댓가를 치루며 임신 중지를 받게 될 뿐이다. 


"You can't ban abortion, You can only ban safe abortion."
당신들은 임신 중지를 금지하지 못한다. 당신들은 오직 안전한 임신 중지를 금지할 뿐이다.

사진 출처 PBS Wisconsin https://bit.ly/3x6b7Ok


그리고 이러한 부가적인 비용은 사회적으로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에게 더욱 반향이 클 것이다. 폭력과 위험은 불평등의 구조를 타고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서류미비자들은 이미 포스트-로의 세계에 살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ref]Undocumented people have already been living in a post-Roe world https://prismreports.org/2022/06/03/undocumented-people-already-living-post-roe/ [/ref]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법적 요건을 지니지 못한 이주민, 서류미비자(undocumented people)들은 인종 폭력과 젠더 폭력, 국가 폭력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위의 기사는 미국 인구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약 천 만에서 천 백만 명) 서류미비자들이 저임금 노동 조건 속에서 건강 보험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포스트-로의 세계에서 임신 중지의 비용이 상승하거나, 임신 중지를 특정한 상황에서만 할 수 있다고 제약할 때, 이에 맞추어 비용을 감당하고, 신분을 증명하고, 적절한 서류를 구비하여 제출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가능하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가능하지 않다.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위험한 저임금의 노동을 하지만,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치료 받을 수 없고, 특히 임신 중지와 같이 시간의 지체 없이 의료적 조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서류미비자에게 재난과 다르지 않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와 국경순찰대는 이미 재생산 건강 클리닉(reproductive health clinic)을 주요 타켓으로 삼아왔다. 피임약이나 임신 중지, 검진 등을 위해서 병원을 방문할 때를 노려서 서류미비자들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것이다. 가족 중에 서류미비자가 있을 경우, 또는 서류미비자들이 많은 일터에서 일하는 경우 등, 나의 위험이 곧 나의 커뮤니티 전체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병원 방문은 더욱 쉽지 않다. 임신 중지를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하는 선택지에도 다양한 위험이 따른다. 허용되는 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이동 수단이 있어야 하며, 돌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가거나 돌봄을 해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일을 하고 있다면 휴무를 받아야 하고, 만약 국경 지대에 살고 있다면 이동 과정에서 국경 순찰대를 만나서 검문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적법한 서류가 없을 경우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구금 시설에 수감되어 임신 주수의 경과를 견디거나, 원치 않는 출산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 운동의 말해온 것과 같이, 안전한 임신 중지에 대한 법적 제약은 사회적 불평등, 이미 존재하는 다층적인 사회 구조적인 억압을 통해서/결합해서/회로로 작동한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는 포스트-로 세계 이전에도 이미 불평등하게 분배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유색 인종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한 재생산 정의 운동은 사생활(프라이버시) 권리라는 구도에서 임신 중지를 논의하는 것은 다층적인 억압과 폭력을 비가시화 하며, 임신 중지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에 오랜 시간 문제를 제기해 왔다. 


블랙 페미니스트이자 폐지론자(abolitionist)이며, 재생산, 우생학, 미국의 아동 보호 시스템 체계에서 벌어지는 인종 폭력을 연구해온 도로시 로버츠(Dorothy Roberts)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프라이버시"만으로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킬 수 없었음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고 수정헌법 14조의 본질로 인식되어야 하는 자유 개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한 자율권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 사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재생산 정의 운동이 최전선에 있었다면 현재의 상황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임신 중지 권리 운동/담론이 본격적으로 구조적인 인종 차별과 우생학적 논리를 논의해가야 함을 보인다. 


로 대 웨이드 결정이 무너지고 임신 중지라는 것이 정치적 전쟁터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눈감을 수도 없는 현 상황에서, 미국 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다층적인 사회 구조적인 억압'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밖에 없는, 재생산 정의 운동으로의 주요한 분기점을 맞이했다. 재생산 정의 운동은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안전한 임신 중지 제공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정책적 비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 속의 인종, 젠더, 계급 폭력의 다층성을 그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사회 정의 운동을 이끈다. 한국의 재생산 정의 운동 역시도 바로 이 지점을 돌파해 가고 있다. 안전한 임신 중지의 보장과 보편적인 인권으로서 재생산 건강 정책을 그리는 과정은 사회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주자와 소수자들의 삶을 애워싸고 있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이 임신 중지 권리 운동의 중심이 될 때에 가능하다. 






셰어의 활동 소식과 성·재생산에 관한 뉴스를 받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셰어의 뉴스레터를 
신청해 보세요. 알찬 소식으로 가득찬 뉴스레터를 월 1회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