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01월[성] 성관계에서의 위험(RISK)과 손해(HARM)를 정의하고 대처하기

나영정

우리는 위험한 성관계와 안전한 성관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위험’과 ‘안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 표현은 권리를 지향할 수 있지만, 권리를 침해하기도 합니다. 이 표현이 보호주의와 금지주의를 넘어서 성적 건강과 권리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중립적인 정의에서 출발

먼저 위험(RISK, 이하 리스크)와 손해(HARM)의 사전적인 의미를 정리할까요? 위험은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음. 또는 그런 상태’입니다. 손해는 ‘1.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밑짐. 2. 해를 입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ARM은 위해, 피해로도 번역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위험(RISK)과 (성적)피해가 가지고 있는 확립된 정의로부터 변별력을 두기 위해서 좀더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 성관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성관계로 인한 좁은 의미의 건강상 리스크는 성병(HIV와 STIs)과 원치않는 임신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는 대부분 예방이 가능한데, 예방의 방법은 콘돔사용과 프렙(HIV 예방약), 사전/사후 피임약 복용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를 좀더 확장해보면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포함됩니다. 특히 성관계 안에서 의사소통의 실패는 이 모든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질적인 조건으로서 지적될 수 있고, 알콜을 비롯한 약물은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추동할 수도 있고 저해할 수도 있는 요소입니다. 이러한 약물이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은 약물의 성분 자체보다 약물이 성관계를 둘러싼 동의를 형성하는데 어떠한 작용을 하는가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리스크는 불법이 아니다

성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예상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준비와 적기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나 제공되고 있는 성교육에서는 성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무엇인지 나열하는 것에 그쳐서 실제로는 성행위의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콘돔을 통해서 성병이나 HIV, 임신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유의미한 정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콘돔을 구할 수 있는지, 상대방과의 관계안에서 어떻게 콘돔을 사용할 수 있는지, 콘돔을 사용하는데 실패할 경우 어떠한 후속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예방의 주체가 예방적 실천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가를 질문해야 하고, 그 실행을 가로막는 상황, 비용, 접근성, 권력관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취약성과 같은 것이 성관계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로서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앞서 언급했던 의사소통의 실패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리스크를 가진 상황을 상상해볼까요? 불특정 다수와 하는 것, 콘돔 없이 하는 것, 타인의 시선이나 개입으로부터 차단되지 않은 장소에서 하는 것, 알콜 등의 약물이 개입된채 하는 것, 감정적으로 분노, 우울감이 큰 상황에서 하는 것, 금전이 거래되는 상황에서 하는 것 등 수많은 상황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지적해야 하는 것은 리스크를 가진 성관계는 불법이라는 판단과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법적인 피의자가 피해자라고 전제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구분할 것은 리스크를 가진 성관계에 참여하게 될때 누군가가 이에 대한 인지를 못한 상황, 그래서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 결과적으로 강요된 상황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이것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리스크가 있는 성관계에 참여한 사람 자체를 범죄시하고, 문화적으로 큰 낙인을 찍음으로써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 드러내거나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리스크를 예상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돕고, 동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성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콘돔없는 성관계는 위험한 성관계”라는 구호를 넘어서  사후피임약과 HIV예방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성관계 형태 자체를 불법화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역량을 더욱 박탈하고, 과학적으로 전혀 실현될 수 없으며, 사람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성적 낙인을 심화시키며, 공중보건을 저해할 따름입니다. 



3. 손해는 근절이 아니라 줄이는 것

리스크가 가능성이라면 손해(HARM)는 잠재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해에 대해서 고민하고,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는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교통사고라는 손해는 운전이라는 행위에서 발생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졸음, 빙판길 등의 리스크를 예방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운전행위 자체를 그만두기 전에는 수많은 리스크가 공존하며, 완벽한 예방이 불가능하고 손해가 발생하는 것 자체는 막기가 어렵습니다. 이 점을 명확히하면 우리는 운전행위를 금지하는 대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최소화하고, 조기에 끝내고자 노력하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적인 영역에서 손해감소를 고민하는 이유는 성적 행동 자체를 금기시, 범죄시 함으로써 손해를 막으려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고, 발생하는 손해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건강을 비롯해 손해를 가중시키고, 사회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관계를 통해서 발생하는 손해는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성병에 걸린 것, HIV에 감염된 것, 임신이 된 것, 약물에 의존성이 생겨서 건강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 성관계 과정에서 신체적인 상해를 입은 것, 성관계의 결과로 협박을 받는 것, 성관계 장면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되는 것 등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한 모든 것의 총체이자 총량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손해 또한 불법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성적 건강의 측면에서 생각했을때 이러한 손해가 발생한 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과 법적인 피해를 구제하는 방법 등 여러갈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해감소(HARM REDUCTION) 전략은 국제적으로도 성적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하고 유효한 전략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이 가능하지만 성 건강의 측면에서 적용해보자면 원치않는 임신이 발생했을때 당사자에게는 최상의 방법으로 임신을 중지하고, 이 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 안에 성행위금지/금욕이 선택지로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성행위를 얼마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와 예방의 방법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성행위를 중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수 있기에 성병 치료의 전제 조건으로 성행위를 그만두는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되는 다는 것 또한 손해와 위해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4. 차별이 만드는 리스크와 손해

리스크와 손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발생하지 않고, 동일한 효과를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성적 권리에서 취약성(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나이, 인종, 사회경제적 조건 등) 을 가진 존재들을 떠올렸을때 이들은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을 더욱 가지기 어렵고, 대처하기 위한 역량을 기를 기회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손해가 발생했을때에도 그 손해가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며, 다시 복구할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취약성을 가진 존재들은 성적 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고 동의에 기반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자신이 결정한 성적 행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해서도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감당하기를 요구받기 때문에 성적 권리가 특권화되는 것입니다. 

차별의 예방과 철폐, 차별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입니다. 성적 낙인과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고, 차별 철폐와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실행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성교육 표준안이 미치고 있는 해악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손해는 아직 파악조차 어렵습니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정책적, 의료적 공백으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리스크에 대처하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의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안전한 성관계, 위험한 성관계, 성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리스크와 손해를 성적 권리의 언어로 재정의하고 차별 철폐의 관점과 단단하게 결합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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