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모자보건법 개정안 심사에 대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의견서

2023-12-21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모자보건법 개정안 심사에 대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의견서


[모자보건법 개정 방향에 대한 기본 원칙과 입장]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은 모자보건법의 개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과 입장을 견지하며 향후 국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여 책임있는 논의를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1. 한국에서 이제 임신중지는 비범죄화가 된 상태이며, 이미 오래 전에 개정입법 시한을 도과한 형법 조항에 관해서는
    재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과거 ‘낙태의 죄’ 조항의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존재했던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삭제와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 명시, 관련 상담 체계와 권리 규정 등을 명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추진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향후 복지위 법안심사 소위 논의에서는 더 이상 형법 개정에 관한 전제나 여지를 두지 말고
    이미 이루어진 비범죄화가 후퇴하여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하면서
    권리 보장 방향을 중심으로 모자보건법 개정안 논의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2. 모임넷은 이와 같은 방향에 어긋나는 어떠한 방식의 타협안에도 반대하며,
    이러한 시도가 진행될 시 즉각 대 국회 투쟁에 돌입할 것입니다.

  3. 건강보험 적용 확대, 유산유도제 도입에 필요한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합니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와 유산유도제 도입은 임신중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접근성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요할뿐만 아니라,
    ‘낙태죄’의 효력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비공식 상태에 있는 임신중지 관련 의료 행위를 공식화하고 통계를 통해
    주요 지표와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향후 임신출산 및 임신중지의 지원을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 체계와 정보 및 상담 체계,
    사회복지 체계 등의 개선 사항을 파악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과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임신중지 관련 의료 행위의 실태와 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련 상담 및 연계 체계를 구축할 토대를 만들어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4.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임신출산 및 임신중지에 관한 포괄적 케어의 방향,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관련 상담 체계와 보건의료 연계 체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규제 속에서 ‘위기임신’을 중심으로 다루어져 온 방향을
    보편적 상담 및 지원 체계로 전면 전환해야 하며, 향후 모자보건법의 개정은 이에 필요한 근거 조항을 담아내야 할 것입니다.

  5. 또한 상담은 임신한 당사자가 임신중지 관련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의 의무로 규정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중지의 시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상담 의무화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더욱 큰 장벽이 됩니다.
    2020년 정부안에서 제시되었던 상담 의무, 임신 기간에 따른 규제, 보호자 및 제3자의 동의 확인, 숙려 기간 등은
    향후 개정 논의에서 다시 고려되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아울러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에만 갇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의 추진, 약사법,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의 제·개정으로 관련 논의에
    다양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세계보건기구의 포괄적 임신중지 케어 원칙, 유산유도제의 안전성과 가이드라인 등에 관한 모든 문서를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s://srhr.org/abortioncare/#translation

[세부 쟁점에 대한 의견]
 

  1. 기본 전제 :
    임신중지는 더 이상 처벌의 영역이 아니며,
    이제는 안전하고 포괄적인 보건의료 체계 구축과 권리 보장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반영 개정안 : 남인순, 권인숙, 박주민, 이은주 의원안

특히, 

  • ‘모자보건법’의 명칭을 ‘임신·출산 등과 양육에 관한 권리 보장 및 지원법’으로 변경하고
    ‘임신·출산 등이란 임신, 출산, 유산, 사산,  인공임신중단을 말한다’고 명시한 이은주 의원안

  • ‘모자보건사업’의 정의에 ‘재생산 건강의 관리와 임신·출산, 인공임신중단, 양육 지원’을 명시한
    권인숙 의원안에 동의

◯ 남인순 의원안을 제외하면 심의대상으로 상정된 발의안의 대부분이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입법 기한(2020년 12월 31일)이 만료되기 전에 발의된 것으로, 해당 형법 조항과 모자보건법 14조의 위법성 조각사유 개정을 맞물려 설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시한을 도과한 2021년 1월 1일 이후로 해당 조항은 법적 실효를 상실한 상태인 바, 임신중지가 더 이상 형법상의 규제나 처벌 대상이 아님을 전제로 하여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 헌법재판소의 2017헌바127 결정에서 헌법불합치 의견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 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재판관 3인의 단순위헌 의견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에 관한 의사결정이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 임신중지에 대한 법·제도적 제약은 지금까지 의료인력의 교육 및 수련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습득하지 못하게 해왔을 뿐만 아니라, 최신 의학기술과 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보건의료인들의 적절한 의료행위를 위축시켜 상담, 진료, 수술, 후유증 관리 등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전 과정에서 의료인들은 환자의 건강과 안전보다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더 많이 신경쓰게 되는 매우 비정상적인 보건의료환경을 형성시켜 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유산유도제를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 또한 ‘낙태죄’로 인해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이 크게 뒤쳐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 이들은 공식 정보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게 되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시기가 지연되면 더 큰 신체적, 재정적 부담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공적인 임신중지 지원체계의 부재로 지금까지 병원에서 공공연한 차별과 모욕적인 발언, 서류 위조, 무리한 진료비 요구와 현금 납부 요구 등 온갖 부당하고 부정의한 처우를 경험해 왔으며 현재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3월 8일 발간한 임신중지 가이드( https://apps.who.int/iris/handle/10665/349316 )에서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와 함께 양질의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 방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 가이드에서 정의하는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는 임신중지에 관한 처벌 조항을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고,
    살인이나 우발적 살인 등을 임신중지에 적용하지 않으며,
    관련 정보나 지원 등을 제공한 이들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이 없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세계보건기구는 이와 함께, 임신 기간이나 사유에 따른 제약, 의무 대기(숙려)기간의 설정, 제3자 동의 의무 등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법률 조항도 삭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결국 임신중지 결정 시기를 지연시키고 이로 인해 건강과 생명,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제약이 강할수록 사회경제적 여건과 보건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더 큰 건강상의 위험을 겪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논의는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임신출산 관련 권리 보장 및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 방안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1.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내과적 임신중지)가 명시적으로 허용되어야 합니다. 

*반영 개정안 : 남인순, 권인숙, 박주민, 조해진, 이은주 의원안, 정부안  

  • 그러나 조해진 의원안과 정부안은 ‘낙태죄’ 처벌 조항과 임신 기간, 사유 등을 전제하고 있어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여건을 침해하는 안임. 

  • 완전한 비범죄화와 안전한 임신중지의 보장을 전제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단’으로 수정하고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적인 방법‘을 명시한 남인순, 권인숙, 박주민, 이은주 안에 동의함

◯ 유산유도제로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핵심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1988년부터 사용이 시작되어 2023년 현재 전 세계 95개국에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Gynuity Health Projects 2023년 3월 최종 업데이트 자료 https://gynuity.org/assets/resources/mife_by_country_and_year_en.pdf)특히 초기 임신중지(임신 10주경까지)의 경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 95~98%의 성공률을 보이며, 심각한 후유증 없이 의료기관에서의 처방을 통해 개인이 편안한 곳에서 복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의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소프로스톨은 의료인이 오프라벨(적응증 외 처방)로 사용하고 있으며, 미페프리스톤은 공식 도입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조차 보다 양질의 안전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페프리스톤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미소프로스톨 단독 요법으로 시행하는 경우 두 약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성공률이 떨어지며 임신 기간이나 상태에 따라서는 약의 복용 이후 불완전 유산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또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메토트렉세이트 등 공식 유산유도제가 아닌 약을 사용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21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도 76.6%의 응답자가 '의사에게 처방 받아서' 약을 구했고, '지인 또는 구매 대행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구매'했다는 응답자는 14.9%에 불과했으나, 74.5%는 '약의 복용(삽입) 방법'을 몰랐으며, 66%가 임신기간에 따른 효과를 알지 못했고, 63.8%는 '약 복용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증상과 후유증'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의사에게 처방을 받았음에도 내과적 임신중지 자체가 아직까지 비공식적인 상황으로 인해 약의 복용법과 임신기간에 따른 효과, 복용에 따른 증상과 후유증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전히 온라인으로 약을 구매하는 경우 약의 성분이나 복용법, 사후관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또 다른 건강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 반면 현재 유산유도제를 공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에서는 안전성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42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미페프리스톤 사용 후 병원 입원, 수혈 또는 심각한 감염과 같은 부작용은 0.01~0.7%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대부분의 부작용은 큰 후유증 없이 치료가 가능한 경우였습니다. (Raymond EG, Blanchard K, Blumenthal PD, Cleland K, Foster AM, Gold M et al. Sixteen Years of Overregulation: Time to Unburden Mifeprex. N Engl J Med. 2017;376(8):790–4.)


◯ 2018년 발행된 WHO의 유산유도제를 이용한 임신중지 가이드에서는 사용 방법에 대한 지침, 합병증을 인식하는 방법,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그간의 연구 결과에 따라 임신 12주 미만인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 뿐만 아니라 숙련된 조산사, 간호조무사도 유산유도제를 이용한 임신중지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의료 지원과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의 제공, 후유증이나 건강상의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보건의료 연계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 2023년 5월 4일 172명의 약사, 6월 21일 59명의 의사, 6월 26일 1625명의 시민들이 각각 유산유도제의 필수의약품 지정과 신속한 도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식약처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유산유도제의 공식 승인 절차가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1. 건강보험을 통한 보장과 접근성 확대, 임신의 유지와 중지, 양육,
    성·재생산 건강에 관한 포괄적 상담·지원 체계 구축의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포괄적 재생산 건강 지원'을 위한 기관을 설치·운영하고
    피임, 임신·출산, 안전한 임신중지, 성교육과 성건강 관련 지원을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영 개정안 : 남인순,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

특히 

  • 의료비 지원 근거를 명시한 권인숙 의원안, 건강보험의 적용을 명시한 남인순 의원안에 동의

  • 임신부의 지원에 관하여 맞춤형 건강관리와 의료비 등의 지원, 장애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의사소통 지원,
    외국어 통번역 서비스, 산후조리 서비스 및 비용 지원, 생활/법률/학업/상담/양육 지원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역할로 명시한 이은주 의원안에 동의 

  •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의 ‘모성 등의 의무’ 삭제 및 모자보건기구의 역할에 ‘임신중지’에 관한 역할을 함께 명시한 조항에 동의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모든 국민이 피임, 월경, 임신·출산, 인공임신중단 등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를 부여한 권인숙 의원안에 동의

  • 장애유형과 특성, 나이, 언어 및 국적 등을 고려하여 모든 사람이 필요한 지원을 받도록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는 한편,
    임산부(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 포함)의 권리와 비밀과 사생활의 보장 권리 등을 명시한 이은주 의원안에 동의

  •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의 ‘재생산 건강 지원 센터‘, ’중앙 임신·출산 건강안전센터‘의 설치와 역할
    (상담 및 교육, 종사자 교육, 관련 기관 간 연계 체계 구축, 실태조사 및 연구 등) 명시에 동의

  • 지방자치단체에서 관할 구역 보건소를 거점으로 지역 재생산 건강 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교육 및 홍보, 종합 상담,
    심리지원, 관련 서비스 연계 등의 역할을 부여한 권인숙 의원안에 동의 

  •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안전한 임신·출산 등 환경 조성의 의무를 부여한 이은주 의원안에 동의

  • 이은주 의원안 제14조의 3에서 의사가 임산부 본인에게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과 상담, 지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연령 및 심신상태,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해야 함을 명시한 점,
    정보의 이해와 의사결정 과정에 조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임산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조력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항을
    명시한 점, 의사가 정보 제공 시 특정한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시한 조항에 동의


◯  세계보건기구는 ‘포괄적 임신중지 케어(Comprehensive abortion care)’의 방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포괄적 임신중지 케어는 임신중지 시술이나 약물의 처방뿐 아니라 임신중지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의 제공에서부터 임신중지 후의 건강 관리와 피임에 대한 안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에 따라 임신중지에 관한 지원과 정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 합니다.

  • 임신중지의 전후와 과정 중 필요한 상담 및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한 장소와 방법

  • 임신의 유지나 중지 시 고려할 수 있는 지원 체계와 의료기관 및 지원 기관에 대한 정보

  • 임신중지의 방법과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 및 회복, 통증 관리에 대한 내용

  • 자율적인 의사결정의 권리와 동의에 관한 정보

  • 성관계와 일상 활동을 언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

  • 임신의 지속, 출혈이나 발열과 같은 합병증, 잠재적인 부작용을 포함한 정보와 후속 치료를 위해 의료진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
    등에 대한 안내


◯ 반면, 현재 우리나라는 임신중지에 관련한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찾기 어려워 접근성(accessibility)이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보장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의 적정성(affordability) 문제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 임신중지를 공식적인 건강보험 체계가 포괄하는 의료서비스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은 일부 산부인과 병의원들로 하여금 온라인에서 비급여수가 고시를 통해 임신중절 수술을 홍보하면서 환자의 알 권리 보장 차원보다 병의원의 상업적 경쟁을 부추기게 만듭니다. 사실상 의료기관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나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임신 관련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이 있고, 비용부담이 커서 임신중지가 지연될 수 있는 취약집단의 고위험 임신중절 수술의 부담을 온전히 임신 여성에게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는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성·재생산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성·재생산 건강은 그 자체로 전반적인 건강권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바, 이를 방관하는 것은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보아야 합니다. 

남성의 여성형 유방 수술의 경우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가 보장되는 반면, 양질의 시술과 사후 관리가 건강에 더욱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신중지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평등권에 대한 침해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향후 모자보건법 개정 법안에서는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근거 조항을 마련해야 하며, 나아가 ‘위기임신’ 지원의 프레임을 넘어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여 임신의 유지와 중지, 양육, 성·재생산 건강에 관한 상담과 지원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 아울러,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난민, 저소득층, 홈리스 등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계층이 의료기관과 관련 시설의 이용, 이동, 의사소통, 비용, 정보 접근 등에 있어 제약을 겪지 않도록 의사소통 및 활동보조 지원, 관련 시설과 인프라 마련, 지원 연계 체계의 구축, 의사결정권 보장 등을 위한 근거를 법에 명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1. 의료인에게는 세계보건기구 가이드에 근거한 정보의 제공과 상담이 권고될 필요가 있으나 상담이 의무조항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며
    의료인의 거부권은 법적 권리로 인정되어서는 안됩니다. 

*관련 개정안 :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 / 조해진, 서정숙 의원안 / 정부안

특히

  •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명시한 권인숙, 이은주 의원안에 동의

  • 설명 의무 위반 시 과태료를 부여하도록 규정한 정부안, 조해진 의원안, 서정숙 의원안에 반대

  • 의사 개인의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한 조해진, 서정숙 의원안에 반대

◯ 조해진, 서정숙 의원안은 의료인의 거부권을 인정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UN 자유권 위원회 일반논평 36호 초안(6조 생명권) 중 9항 (2018.10)은 “당사국은 여성과 여아가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 시술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에 반하는 방식으로 임신 혹은 임신중지를 규율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법은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부정하는 현존하는 장벽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장벽은 개인 의료 제공자의 양심적 거부 행위도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 거부가 심지어  ‘양심적 거부’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의무를 면제하는 타 법률 규정(예컨대 양심적 병역거부)과 비교해 볼 때, 의료인이 의료인으로서의 핵심 의무인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것이 권리로서 용인되고 개인의 신념에 대한 어떠한 증명도 요구받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 의료인의 의료행위 거부권을 인정할 경우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임신중지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여성이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무부도 2021년 7월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의 관련 발의안에 대해, 응급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하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국·공립 병원 등 상급종합 병원의 경우 거부권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공립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지역도 존재하므로, 예외 규정만으로는 온전한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 부적합하여 환자의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아도 의료인의 거부권 인정은 많은 문제를 야기해 왔습니다. 유럽사회권위원회는 2016년 보고에서 이탈리아에서 양심적 거부를 하지 않는 의사는 거부하는 의사에 비해 업무량, 업무의 분배, 경력 개발 기회 등의 측면에서 불이익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의료기관의 의료진에게 초과근무가 증가하였고, 공공의료 기관의 재정난과 인력난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실상 찾아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매우 적어서 제 때 연계가 되지 않고 다른 먼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부담이 환자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상담 이후 진료까지 대기 기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임신중지 시기가 2주 이상 지연되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따라서 의료인의 거부권은 어떠한 이유로도 인정되어서는 안되며, 해당 의료기관의 시설, 의료 인력, 의료진의 특성 등으로 인한 한계로 부득이하게 진료가 어려운 경우 반드시 다른 의료기관에 연계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 거부로 인해 임신중지 시기의 지연이나 건강상의 위험 요인이 증대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의료인 거부권의 인정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  보건당국 차원에서 전국의 임신중지 관련 보건의료 기관 간 연계가 원할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 연계 체계를 구축하고, 공식 정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 한편, 임신중지의 방법에 대한 안내, 임신중지 후의 후유증이나 합병증 관리, 임신중지 후 피임의 시기 및 방법, 향후 계획 임신에 관한 안내 등은 의료적 가이드로 권고할 수는 있으나 이를 법적 의무사항으로 명시하는 것은 의료인 뿐 아니라 임신 당사자에 대해서도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정보는 당사자의 여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여건 하에서,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의 동의 하에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강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담은 여성의 자기 결정을 위한 정보제공의 공적 서비스가 되어야 하며, '재생산건강지원'을 위한 기관 설치·운영 및 피임, 임신·출산, 안전한 임신중지, 성교육과 성건강 관련 지원을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제공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는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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