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임신’ 불법 아닌데…“시험관 하려면 결혼하고 오세요”

2022-12-01

[한겨레] ‘비혼 임신’ 불법 아닌데…“시험관 하려면 결혼하고 오세요”

[한겨레S] 커버스토리
국내 ‘비혼 시험관 시술’ 불허 논란
아이 원하는 비혼 여성들…합법인데도 국내 병원서 “불가능하다”
복지부 “불법 아니”라는데, 산부인과학회가 ‘윤리지침’으로 막아
시술병원 찾아 외국 향하기도…“혼인관계 넘어 가족 다양성 문제”


2022년 10월 6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를 지켜보던 ㄱ(30대 중반)씨는 가슴이 답답했다.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에 대한 질의가 오가는 중이었다.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인공수정·체외수정 등 보조생식술의 시술 대상을 비혼자에게도 확대하도록 윤리지침을 개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박 이사장 말의 요지는 비혼자는 난임의 대상이 아니기에 난임 시술, 즉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현재 산부인과학회(학회) 윤리지침은 법률혼·사실혼 부부에게만 보조생식술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학회는 지난 4월 인권위로부터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허용하지 않는 학회의 윤리지침은 법률로 위임받은 바 없는 자의적 기준“이라며 윤리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받았지만 거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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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의 윤리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일선 병원에서 어긴다고 해도 학회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회의 윤리지침이 일선 병원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정부의 방치 탓이다. 실제 ㄱ씨는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에 대해 공감하는 의사를 찾았지만 병원으로부터 “보건복지부에 문의했지만 ‘책임질 수 없다’는 답을 받아 ‘시술할 수는 없겠다’”는 답을 들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으론 문제가 없으니 병원 지침에 따라 판단하라는 해석을 받았다. 병원 입장에선 주무부처가 ‘시술을 하라’는 명확한 답을 주는 게 아닌 애매한 판단을 내리는 상황에서 추후 발생할지 모르는 법적 분쟁 부담을 안고서 시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입법 공백 상태에서 보수적인 병원들이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권위가 학회의 윤리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자의 재생산권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산부인과학회를 움직이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선혜 교수는 “현실의 갈등과 새로운 요구가 있을 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복지부가 해야 하는데, 책임을 안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정부는 불법이 아니라고만 할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의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개별 여성이 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영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도 보건복지부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낙태죄와 마찬가지로 비혼 여성 보조생식술도 보건복지부가 산부인과학회에 휘둘리고 있다. 복지부가 나서서 명확히 건강권·재생산권 지원에 필요한 영역이라고 메시지를 주고, 학회를 설득하고 의료현장에서 안전하고 법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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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건수는 줄어들고,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와 달리 정부는 제자리걸음이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현행 유지”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4월 민법상 가족의 정의와 범위를 개정하고,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정책방향을 논의하겠다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뒤집은 것이다. 나영 대표는 “비혼 여성 시험관 시술 문제는 비혼 여성 출산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 구성 인정할 것인지 관련된 문제다.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지 않다는 건, 비혼 여성뿐 아니라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관계를 맺고 자녀 양육·돌봄을 하는 걸 제약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가족 구성까지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비혼 출산이 저출산의 대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한다. 김선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억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을 누군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 아이를 낳아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2016년 행정자치부에서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었던 것처럼 저출산의 해결책으로 보는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출산 때문에 비혼 출산을 허용하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89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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