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없다고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된 건 아니다

2022-02-23

[일다] ‘낙태죄’ 없다고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된 건 아니다
2022 대선 기획: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⑦ 성과 재생산의 권리


김보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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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함께 해 온 많은 이들이 ‘임신중지의 전면 비범죄화’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일 뿐임을 강조해왔다. 성·재생산 권리는 의료, 교육, 노동, 사회복지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고, 이를 보장할 의무 국가에 있다고. 국가는 더 이상 인구 정책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건강 보장’의 차원으로 성과 재생산에 관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구와 제안이 반영되어, 이제는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내용이 여러 정책에서 언급된다. 2020년 12월 발표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에는 성·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 새롭게 포함되었다. ‘저출산’ 현상을 해결하는 데에만 중점을 두었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고려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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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시작 단계이며 한계도 많다.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21~2030)에는 인구집단별 관리 내에 ‘모성건강’을 ‘여성건강’으로 개편하고, ‘여성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건강정책 추진’을 표방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과 유사한 틀에서 ‘남녀가 함께하는 생애주기별 성·재생산 건강증진 강화’를 포함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부족하며 여전히 여성건강에 관한 대표 지표를 ‘모성사망비’로 설정하고 있다. 모든 시민의 전 생애에 걸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책임지고 달성해야 할 것은 ‘모성사망비’ 감소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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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나, 여전히 관련 정책이 표방하는 관점은 많은 경우에 ‘저출산 위기 극복’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법과 정책의 준비는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셰어에서 만든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은 포괄적으로 성·재생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월경, 피임, 성별확정 및 성별정정, 보조생식기술, 임신, 출산, 임신중지, 포괄적 성교육, 일터·교육기관·보호 및 복지시설에서의 성·재생산 권리의 보장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제시하고 있고, 종합계획의 수립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과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이 의제가 미미하게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 유감스럽다.

 

그 와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을 제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점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동시에 여전히 채워져야 할 부분도 많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셰어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서 우회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부분들을 짚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반차별’의 원칙 하에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가령, 이 후보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사회적 합의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은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점이다. 성별이나 연령, 장애, 인종, 이주 지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과 낙인으로 인해 고용이나 노동, 교육, 관련 시설, 정보와 자원 등에 제약을 받는 이들은 차별금지의 원칙 없이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성·재생산 권리의 보장이 단순히 보건복지나 여성 영역이 아니라 노동, 주거, 교육 등 사회 전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때문에 셰어의 기본법(안)에서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성·재생산 권리 보장 종합계획’이 세워져야 할 때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경우 유산·사산 휴가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제외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74조 3항의 단서 규정을 삭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임신중지 상담서비스를 표준화하고, 임신중지 시술 방법과 지침을 마련하며,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통한 선택권을 확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경우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과 여성건강기본법 제정 공약을 제시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의 경우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 모든 여성에게 월경용품 바우처 제공, 산부인과를 젠더건강의학과로 변경, 유산유도제 신속 도입, 임신중지 시술 건강보험적용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도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고,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지정, 임신중지 시술 건강보험적용, 근로기준법 유산·사산휴가 적용 범위에 임신중지 포함 등을 공약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후보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대한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길 바란다. 모든 시민의 삶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차별 없이 성·재생산 권리를 누리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공약을 만날 수 있길, 선거 기간 내내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의제가 널리 이야기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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