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욕망 탐험가 되기

2022-07-14

[한겨레] [책&생각] 욕망 탐험가 되기 (홍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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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만든 포괄적 성교육 워크북의 이름은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이다. 책을 앞에 두고 친구가 말했다. “섹스와 즐거움이라니, 당연한 것 같은데 막상 나는 어땠는지 돌아보면 잘 모르겠어. 그간 어떤 섹스를 했던 걸까?” 나에게 섹스와 긴밀한 감정은 슬픔과 공허감이었다. 누군가는 임신이나 폭력과 연결된 두려움을, 누군가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수치심을 떠올렸다. 무엇을 욕망하는지 모르면서 계속 욕망하는 것, 정확하게는 상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느낌’대로 했다가 한숨 새는 것. 모두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비어 있는 것. 섹스 앞에만 서면 실체 없는 몽상가가 되었다.


이 책은 섹스의 비어 있던 부분을 채운다. 에브리바디 플레저. 여기에서 모두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다양한 인종과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성 특징을 가진 사람들, 특별히 성적 낙인이나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다양한 일터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소수자”를 뜻한다. 즐거움은 “관계의 방식이나 정서적 만족감, 자존감, 존중, 또는 시간, 장소, 대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정해진 규범을 벗어나 모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문과 합의의 방식을 안내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사람과 대화했다. 종이에 각자의 몸을 그린 뒤 내가 내 몸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이야기 나눴다. 우리는 대부분 몸을 미워하고 있었다. 나이, 성별, 장애, 성별 정체성,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요건, 지역, 종교 등 각자의 사회적 맥락이 내 몸을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섹스의 시작과 끝을 그래프로 정리하고, 경험을 토대로 즐거움과 자기결정권, 동의, 의사소통 등의 항목에 점수를 매겼다. 성매개감염 정보와 성적 권리의 개념을 익혔다. 안내를 따라 그림으로, 그래프로, 게임으로, 대화로 감각을 확장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탐구했다. 내 욕구를 알아야 적극적인 합의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단지 섹스만이 아니라, 연애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도 각자에게는 기준이 필요하다. ‘예스(YES) 아니면 노(NO)’가 아닌 세밀하게 욕망과 관계 맺기 위해 나는 몽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탐험하기로 했다. ‘당신의 금지를 우리의 긍지로!’ 모두에게 성적 권리가 주어지도록 우리는 계속 떠들며 경계를 비웃어야 한다. 차별과 낙인이 있는 한, 섹스 역시 온전히 즐겁기 어렵기에 계속 저항하며 섹스해야 한다(섹스는 파트너와의 접촉이나 성적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즐거움이 저항으로 연결되는 짜릿한 반란을 ‘모두’와 함께 읽고 살아내고 싶다. 


(전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501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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