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정상가족’은 없다
생활과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관계를 인정하라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22일,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기존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혼인, 혈연, 입양 관계로 한정하여 ‘가족’을 정의하는 현행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입니다.
‘건강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가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는 용어이기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변경하도록 권고를 받은 지도 오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가 주도적으로 특정한 가족 구성의 형태를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정상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인구 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저는 법적 가족 밖의 존재들을 정책과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묵인하는 정부와 국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인한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을 규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팬데믹 시기, 가부장적 가족 정책의 문제 드러나
정부와 국회, 여성가족부는 감소하는 혼인율과 출산율을 통해 가족 형태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시민들은 혼인, 혈연, 입양 관계에 제한된 가족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구성할 권리,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과 가족을 이룰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와 국회, 여성가족부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진 보수 세력과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침해하며, 다양한 가족 관계에 관한 논의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난 몇 년간 건강의 위기, 돌봄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를 마주하였습니다. 우리는 혼인과 혈연, 남성 가부장 생계 부양자를 전제한 ‘건강가정’이라는 개념과, 이를 중심으로 시행하는 가족 정책이 재난 대응 정책의 공백을 야기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돌봄’을 여성에게 기대어 온 한국 사회의 돌봄 제도는 팬데믹 상황에서 가족 돌봄 부담을 가중시켜 여성의 노동권을 한층 더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부양과 돌봄을 가족 내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가정한 정책들은 법적 가족 바깥의 존재들을 지워냈습니다. 변화하는 현재의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않고, 논의하지 않은 정책은 가족 정책을 더욱 더 빈껍데기로 만들 뿐입니다.
차별 없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려는 시도와 함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개인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 인구 정책의 도구로, 혼인/출산/양육/돌봄의 도구로 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가족, 파트너, 돌봄 관계에서의 재생산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차별하며,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정부의 행위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국회는, ‘건강가정이 아니면 위기가정’으로 인식하는 가족 정책의 수립을 중단해야 합니다. 실제 시민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기반하여 가족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선별하려는 정책, 인구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생산을 통제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합니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과 억압 없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지속가능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가로막는 법을 폐지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생활과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관계들이 제도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족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합니다.
[필자 소개] 혜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사무국장. 기후위기와 성적권리, 탈성장과 돌봄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일다] ‘정상가족’은 없다
생활과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관계를 인정하라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22일,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기존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혼인, 혈연, 입양 관계로 한정하여 ‘가족’을 정의하는 현행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입니다.
‘건강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가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는 용어이기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변경하도록 권고를 받은 지도 오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가 주도적으로 특정한 가족 구성의 형태를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정상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인구 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저는 법적 가족 밖의 존재들을 정책과 지원으로부터 배제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묵인하는 정부와 국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인한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을 규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팬데믹 시기, 가부장적 가족 정책의 문제 드러나
정부와 국회, 여성가족부는 감소하는 혼인율과 출산율을 통해 가족 형태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시민들은 혼인, 혈연, 입양 관계에 제한된 가족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구성할 권리,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과 가족을 이룰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와 국회, 여성가족부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진 보수 세력과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침해하며, 다양한 가족 관계에 관한 논의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난 몇 년간 건강의 위기, 돌봄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를 마주하였습니다. 우리는 혼인과 혈연, 남성 가부장 생계 부양자를 전제한 ‘건강가정’이라는 개념과, 이를 중심으로 시행하는 가족 정책이 재난 대응 정책의 공백을 야기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돌봄’을 여성에게 기대어 온 한국 사회의 돌봄 제도는 팬데믹 상황에서 가족 돌봄 부담을 가중시켜 여성의 노동권을 한층 더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부양과 돌봄을 가족 내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가정한 정책들은 법적 가족 바깥의 존재들을 지워냈습니다. 변화하는 현재의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않고, 논의하지 않은 정책은 가족 정책을 더욱 더 빈껍데기로 만들 뿐입니다.
차별 없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려는 시도와 함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개인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 인구 정책의 도구로, 혼인/출산/양육/돌봄의 도구로 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가족, 파트너, 돌봄 관계에서의 재생산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차별하며,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정부의 행위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국회는, ‘건강가정이 아니면 위기가정’으로 인식하는 가족 정책의 수립을 중단해야 합니다. 실제 시민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기반하여 가족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선별하려는 정책, 인구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생산을 통제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합니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과 억압 없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지속가능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가로막는 법을 폐지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생활과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관계들이 제도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족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합니다.
[필자 소개] 혜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사무국장. 기후위기와 성적권리, 탈성장과 돌봄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