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미국, 50년만에 '낙태권 폐기'…국내 영향은?

2022-06-27

[연합뉴스 TV] [이슈현장] 미국, 50년만에 '낙태권 폐기'…국내 영향은?



<질문>

이번 판결을 놓고 사실상 미국이 두 동강 났다, 이런 평가가 나올 만큼 미국 공화당 대 민주당, 지역 대 지역 등 찬반 여론이 크게 갈렸고요. 영국 등 서방 국가 지도자들은 ‘낙태권 폐지’ 움직임은 후진적 행보다,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요. 대표님께선 미국의 이번 판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네. 확실히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세계적 추세에 있어서도 크게 후퇴한 것입니다. 

지금 임신중지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는 이제 임신중지를 법적 처벌의 영역이 아니라 건강권과 사회정의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뉴질랜드, 콜롬비아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이 이런 추세로 가고있습니다. 

올해 세계산부인과학회와 세계보건기구에서도 각국에 임신중지에 대한 모든 처벌 조항을 없애고 완전한 비범죄화를 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성명서와 가이드를 낸 바 있습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유는 그 동안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형량이 아무리 높아도, 혹은 임신 기간이나 사유 등을 이유로 제한적인 합법화를 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법적인 처벌이 임신중지를 막거나 출산을 유도하는 데에 아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왔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법적인 제약이 크고 접근성이 낮을수록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시기만 늦춰지고,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건에 있는 여성들일수록 더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입니다. 법적 제약이 보다 안전한 보건의료 체계와 더 나은 양육 환경을 구축하는 걸 방해하기도 하구요. 

지금 미국에서도 이런 상황으로 가게 될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에 따라 허용 조건이나 접근성에 차이가 커서 가난한 여성, 이주민, 유색인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그런 격차도 더 커지겠고요, 의료인들도 위축되기 때문에 보건의료의 질적 수준도 하락하게 됩니다. 


<질문>

한국에선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 이렇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2020년 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 이렇게 이야기했었는데.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 현재까지 대체입법 논의가 안 된 거죠?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 우선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주문 내용은 이전의 낙태죄에 관한 형법 조항들이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 입법을 할 때까지 적용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이 조항들이 실효가 없고, 한국은 이미 세계보건기구가권고하는 비범죄화 상태가 되었다고 봅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내용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그 동안 여성의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권을 제약해 왔던 형법 조항이 위헌적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는 사실상 앞으로 이러한 여성의결정권이 국가의 인구정책이나 다른 국가의 의도에 따라서 좌우되거나 함부로 침해되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결정 취지라고 보고요. 

입법 시한이 만료되기 전에 정부안 외에도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이 여섯 명 정도 되고, 의료법, 건강보험법, 근로기준법도 관련해서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계류 중이고요. 

문제는 이제 비범죄화가 된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국가가 건강보험 보장이나 유산유도제 승인, 보건의료 체계, 상담 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현재 비어있는 것이죠. 


<질문>

이렇게 입법 공백 장기화 속에서, 음지화돼 있는 임신 중지 때문에 여성들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이런 지적들도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입니까?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신다면요?


-우선 저는 현재의 상황을 입법 공백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공백 상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입법 공백이라고 하면 마치 새로운 처벌과 허용의 기준이 법 개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처럼 얘기되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처벌 기준이 아니라 체계적인 권리 보장 방안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비범죄화가 된 이후에도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보건당국이나 정부, 정치권의 책임있는논의와 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고요. 

지금 오히려 의료 현장에서는 입법 공백이라는 말이 진료 거부나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비범죄화가 되었는데도 아직 법적 기준이 없어서 이전의 모자보건법 허용 한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든지하는 식으로 환자에게 이야기를 해서 환자들이 불안감에 병원이 제시하는 금액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죠. 

또 명확한 정보 제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에서 자신에게 처방한 약이나 시술이 어떤 것이었는지를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러면 후유증 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유산유도제 승인도 이제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계속 지연되고 있어서 인터넷에서 성분이 확실하지 않는 약을구해서 복용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유산유도제는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핵심의약품 목록에 있고 전세계 70여개 국가가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만큼, 하루 빨리 공식 의료 체계에서 처방을 받고 안전하게 복용할 수있도록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수가 조정이나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서 비용도 너무 천차만별인 상황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질문>

공식적으로 낙태죄가 사라지긴 했지만, 태아의 생명권 그리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어떤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두 분 보시기에, 어떤 내용의 법안들이 보안돼야 할까요? 


-여성들이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처벌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사회경제적 여건들 속에서 태어나게 될 자녀와 책임있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판단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법적인 처벌 등을 통해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을 조정할 수 있다는 방식의 접근 자체가 사실은 잘못 설정된 것이죠. 

그래서 처벌 보다는 되도록 이른 시기에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 체계를 잘 구축하고, 양육 환경과 돌봄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데에 국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실제 더 나은 임신출산 환경을 만드는데에 필요한 방향입니다. 

국가가 생명권을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처벌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태어난 이후의 삶을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저희 단체 셰어에서는 성 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을 만들어서 국회 등에 제안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형법이나 모자보건법 차원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성 건강부터 월경, 피임, 임신출산, 임신중지, 난임까지 체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인데요, 국가와 지자체가 종합계획도 세우고,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도 하고, 보건의료, 교육, 노동, 사회복지 등 각 영역에서 교육이나 지원 체계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이 기본법 내용에서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본법을 통해서 의료법, 근로기준법 등 여타 필요한 법률들도 정비해 나가자는 것이죠.


<질문>

끝으로,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가 우리 사회엔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고요, 미국이 낙태권을 폐기한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임신 중단권에 대한 논의 어떻게 이끌어 가야한다고 보십니까?


-사실 제가 시작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완전한 비범죄화 방향을 권고하고 있어요. 그얘기는, 처벌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권 보장이라는 것이 처벌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다면이미 진작에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구요. 

낙태죄 폐지 운동의 오랜 구호 중에 “부자는 낙태하고 가난한 사람은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도 연방대법원은 최악의 결정을 내렸지만 여론은 임신중지 권리를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더 많고, 실제 집회도 계속 이어지고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기금에 모금도 엄청나게 되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지난 26일에는 검사들도 부정의한 대법원의 결정에 반대해서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시작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세계적인 추세는 완전한 비범죄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한국의 낙태죄 폐지운동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한계를 넘어서서 임신중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바꾸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미국의 상황이 심각한 것은 맞지만 미국의 법이 기준이 될 필요가 전혀 없고요, 한국은 이미 비범죄화를 이룬만큼더 진전된 방향으로, 오히려 국제 사회의 방향을 좀 더 추동해 나갈 수 있도록 권리 보장 체계와 보건의료 체계를만들고,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모델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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