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의사와 여성을 믿는다면

2020-10-16

[한겨레21] 법이 의사와 여성을 믿는다면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기획위원 기고

두려움은 교육과 시스템으로 두려움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사명감 강요나 방어가 아니라 교육과 시스템으로 해소해야 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게다가 그동안 죄로 낙인받아왔던)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회피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모든 의사가 모든 임신주수에서 임신중단을 할 수 있지도, 할 준비가 돼 있지도 않다. 오래 기다리던 아기를 24주에 조산해 신생아중환자실 대기실에서 석 달을 먹고 잤던 동료 산부인과 의사는, 미숙아였던 아이 모습이 어른거려 후기 임신중단은 못하겠지만 초기 유산유도약 처방은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여러 번 유산한 끝에 입양을 결정한 다른 산부인과 의사는, 외롭게 임신중단을 하려는 여성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신 14주에서의 수술은 임신부 출혈이 많아 정부 법안에 동의할 수 없지만, 유산유도 약물이 도입된다면 좀더 임신중단이 안전해지지 않을까 묻는 동료도 있었다. 일률적으로 ‘너희는 의사니까 일단 해, 근데 거부권은 줄게’ 식으로 무책임하게 법만 만들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와 임신부의 두려움에 대해 듣고, 어떻게 임신중단 시행 의료진 자원자를 보호할지, 의학으로서 의료를 교육할 수 있을지,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선 어떻게 공공의료로 제공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의료인 개개인의 가치관과 신념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신념이 여성의 임신중단 접근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전문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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