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정의도 없다.
우리는 단절을 넘어 해방의 언어와 실천을 조직하기 위해 BDS 운동에 동참한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2년 전에 시작된 일이 아니며 78년간의 식민지배와 군사점령으로부터 이어진 과정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땅에 있는 모든 생명, 이들과 연결된 역사 자체를 절멸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울의 절반 면적 안에 7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폭격으로 살해당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수습조차 되지 못한 시신들, 기아로 살해당하고 있는 대다수의 약한 사람들, 스러지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폐허가 된 땅과 물을 보며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집단학살은 이 전쟁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 하에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의 동조와 무기지원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계속해서 무산시키며, 트럼프의 입을 통해 가자지구를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발표하고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해 온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조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는 최악의 제노사이드 앞에서, 여전히 침묵하며 중립을 말하는 것은 이 학살을 지속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 팔레스타인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 공동체를 이어나갈 삶의 근간을 모조리 절멸하고 단절시키는 이 오랜 학살과 식민지배의 논리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함께 저항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무다.
BDS 선언과 담론 투쟁
BDS 운동은 Boycott(거부), Divestment(투자철회), Sanction(제재)의 약어로서 이스라엘 정부나 시오니스트 기업 등과의 경제·문화 교류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셰어는 BDS 운동을 우리의 현실에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담론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우리는 가해자와의 단절에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에 맞서는 연대와 해방의 언어를 발명해내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갈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와 점령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동식물을 포함한 토착 생태계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면서 동시에 이를 통해 점령과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담론과 인식을 강화하는 과정으로서 이루어져 왔다. 국제인권 체제가 설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열성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되었다. ‘문명 대 야만’의 구도로 무슬림과 아랍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2000년대부터 핑크워싱 전략을 통해서 더욱 널리 퍼뜨려졌다. 이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것이자 ‘반유대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낙인 찍혀왔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살해된 언론인의 수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의 사망자 합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동안 쌓아올린 담론 구도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현실에 맞서는 담론 투쟁은 이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해체하고 식민지배의 언어에 맞서며 새로운 해방과 연대의 인식을 구축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실천이다. 또한 이는 ‘문명 대 야만’의 구도, 핑크워싱과 같은 정당화 논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이 제국주의 질서와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담론과 문화 투쟁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 마음, 지향을 바꿔내는 과정이며, 그래야만 우리 각각의 운동이 급진적 전망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탈식민적 실천을 통해 연대의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일이다. 따라서 셰어는 이스라엘 예외주의와 침묵으로서의 공모를 단호히 거부하고, 재생산정의 운동을 팔레스타인 해방의 관점에서 해나간다는 방향을 분명히 세운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재생산 부정의(reproductive injustice)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부정의는 정착민 식민주의를 통해 폭력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자신들이 살지 않던 땅으로 침범하여 들어온 정착민들이 토착민과 그들의 거주환경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점령의 형태로서,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그 땅의 적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토착민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한다. 토착민들이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오랜 시간 이어온 삶의 방식을 재생산해내는 모든 과정이 그 땅을 점령하고자 하는 정착민의 의지에 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 78년의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음식, 물, 위생, 의약품 등을 구할 수 없어 임신 중 건강 관리, 안전한 임신중지, 안전한 출산 및 산후 관리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겨냥하여 살해하고 이를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제거,’ ‘한 방에 두 목숨 효과’로 선전해왔다. 우리는 이것이 무력분쟁 중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절멸을 위한 의도적 전략으로서, 재생산하는 몸을 겨냥한 폭력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의료 접근성을 제한하고, 임신 중 이동권을 제약하며, 출산 후에도 시민권 인정을 어렵게 하여 체계적으로 재생산 억압을 자행해왔다. 또한, 이스라엘과 다수의 서구 언론은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어린이로서 인식시키지 않기 위해 탈아동화(unchilding)를 자행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단지 ‘테러리스트’로만 묘사하며,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성인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표현함으로서 아동학살을 은폐하고 있다. 한편 토착 식생을 파괴하고, 사막화된 공간에 정착민 주도의 녹화 사업을 진행하는 등 이스라엘의 에코사이드(ecocide)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기반을 파괴했으며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팔레스타인 방식으로 길러낼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특정 집단의 재생산을 체계적으로 가로막는 이러한 행위가 모두 집단학살에 해당하며, 따라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더 오랫동안 범해져온 것임을 주목하고 강력히 규탄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살아내고, 투쟁해왔으며, 투쟁에 함께 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분노를 조직하는 증언이다. 우리는 이들 팔레스타인 민중의 요청에 응하여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에 강력히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 참상을 끝내고 모든 삶이 그 자체로 귀하게 여겨지는 세상, 즉 재생산정의가 실현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힘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만드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한국의 윤석열 정권이 그랬듯, 세계 여러 지역의 극우 정치세력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제국주의 질서를 심화시키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차별과 낙인에 근거한 ‘테러리스트’ 몰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한다. 또한, 인권, 평등, 정의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면서, 임신중지 권리를 공격하고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의 삶을 부정하는 혐오 선동을 조직화하고 있다.
진보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통해 ‘국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2019년 문재인 정권은 한국-이스라엘 FTA를 체결하여 무기 등 교역규모를 크게 늘렸고, 이재명 정권에서도 국내 최대 방산전시회인 ADEX가 다가오는 10월, 이스라엘 국방부와 방산기업들이 참여하여 치러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분쟁’으로 프레이밍하는 등 중도적 입장의 탈을 쓰고 이스라엘의 가해에 공모해왔다. 이들은 국제인권규범을 존중한다면서도 국가의 필요에 따라 인권의 원칙을 선택적으로만 차용해왔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전쟁,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때, 우리는 그에 저항하며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내세운 ‘핑크워싱’ 뿐만 아니라,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그린워싱,’ 예술 및 문화 교류 형식의 ‘아트워싱’ 등의 선전 전략은 한국 사회에도, 심지어는 진보적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속에도 깊숙히 침투해있다. 우리는 집단학살의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지워버리려는 움직임이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 내부에 자리잡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재생산 부정의를 지탱해온 제국주의 질서, 자본,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지금 여기의 주변화된 삶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명하고 함께 저항을 조직해내야 한다.
한국에서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위한 운동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생산 억업과 부정의에 맞서는 일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10여년 간 ‘낙태죄’ 폐지 운동과 재생산정의 운동은 국가 주도의 인구조절 및 경제발전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국가의 필요에 따라 자기결정권과 재생산을 통제하고 삶의 가치를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국가 주도의 인구정책과 맞물린 한국의 발전주의는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하려는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식민화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정치적 타자와 소수자들을 생산성과 정상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상해왔다. 또한 한국 정부는 ‘낙태죄’를 통해 임신중지를 처벌하면서도 이들의 장애, 연령, 경제적 상황, 체류 지위 등에 맞물려 있는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 억압의 조건들을 방치하거나 강화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재생산을 통제하고 억압해왔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핵심적 기제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은 이와 같은 삶의 위계화가 제국주의 폭력 속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실이며 결국 그 삶들이 절멸의 위협에 놓이게 되는 현장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의에 침묵한 채 재생산정의는 어디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며 이 선언문을 작성한다. 재생산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는 세계에서, 우리는 제도화된 기구에 기대거나 권력의 인정을 구하기를 멈추고 서로의 손을 더욱 강하게 맞잡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정의도 없다. 우리의 투쟁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2025년 10월 2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정의도 없다.
우리는 단절을 넘어 해방의 언어와 실천을 조직하기 위해 BDS 운동에 동참한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2년 전에 시작된 일이 아니며 78년간의 식민지배와 군사점령으로부터 이어진 과정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땅에 있는 모든 생명, 이들과 연결된 역사 자체를 절멸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울의 절반 면적 안에 7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폭격으로 살해당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수습조차 되지 못한 시신들, 기아로 살해당하고 있는 대다수의 약한 사람들, 스러지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폐허가 된 땅과 물을 보며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집단학살은 이 전쟁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 하에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의 동조와 무기지원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계속해서 무산시키며, 트럼프의 입을 통해 가자지구를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발표하고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해 온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조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는 최악의 제노사이드 앞에서, 여전히 침묵하며 중립을 말하는 것은 이 학살을 지속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 팔레스타인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 공동체를 이어나갈 삶의 근간을 모조리 절멸하고 단절시키는 이 오랜 학살과 식민지배의 논리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함께 저항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무다.
BDS 선언과 담론 투쟁
BDS 운동은 Boycott(거부), Divestment(투자철회), Sanction(제재)의 약어로서 이스라엘 정부나 시오니스트 기업 등과의 경제·문화 교류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셰어는 BDS 운동을 우리의 현실에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담론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우리는 가해자와의 단절에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에 맞서는 연대와 해방의 언어를 발명해내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갈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지배와 점령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동식물을 포함한 토착 생태계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면서 동시에 이를 통해 점령과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담론과 인식을 강화하는 과정으로서 이루어져 왔다. 국제인권 체제가 설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열성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되었다. ‘문명 대 야만’의 구도로 무슬림과 아랍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2000년대부터 핑크워싱 전략을 통해서 더욱 널리 퍼뜨려졌다. 이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것이자 ‘반유대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낙인 찍혀왔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살해된 언론인의 수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의 사망자 합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동안 쌓아올린 담론 구도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현실에 맞서는 담론 투쟁은 이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해체하고 식민지배의 언어에 맞서며 새로운 해방과 연대의 인식을 구축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실천이다. 또한 이는 ‘문명 대 야만’의 구도, 핑크워싱과 같은 정당화 논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이 제국주의 질서와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담론과 문화 투쟁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 마음, 지향을 바꿔내는 과정이며, 그래야만 우리 각각의 운동이 급진적 전망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탈식민적 실천을 통해 연대의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일이다. 따라서 셰어는 이스라엘 예외주의와 침묵으로서의 공모를 단호히 거부하고, 재생산정의 운동을 팔레스타인 해방의 관점에서 해나간다는 방향을 분명히 세운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재생산 부정의(reproductive injustice)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부정의는 정착민 식민주의를 통해 폭력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자신들이 살지 않던 땅으로 침범하여 들어온 정착민들이 토착민과 그들의 거주환경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점령의 형태로서,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그 땅의 적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토착민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한다. 토착민들이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오랜 시간 이어온 삶의 방식을 재생산해내는 모든 과정이 그 땅을 점령하고자 하는 정착민의 의지에 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 78년의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음식, 물, 위생, 의약품 등을 구할 수 없어 임신 중 건강 관리, 안전한 임신중지, 안전한 출산 및 산후 관리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겨냥하여 살해하고 이를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제거,’ ‘한 방에 두 목숨 효과’로 선전해왔다. 우리는 이것이 무력분쟁 중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절멸을 위한 의도적 전략으로서, 재생산하는 몸을 겨냥한 폭력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의료 접근성을 제한하고, 임신 중 이동권을 제약하며, 출산 후에도 시민권 인정을 어렵게 하여 체계적으로 재생산 억압을 자행해왔다. 또한, 이스라엘과 다수의 서구 언론은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어린이로서 인식시키지 않기 위해 탈아동화(unchilding)를 자행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단지 ‘테러리스트’로만 묘사하며,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성인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표현함으로서 아동학살을 은폐하고 있다. 한편 토착 식생을 파괴하고, 사막화된 공간에 정착민 주도의 녹화 사업을 진행하는 등 이스라엘의 에코사이드(ecocide)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기반을 파괴했으며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팔레스타인 방식으로 길러낼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특정 집단의 재생산을 체계적으로 가로막는 이러한 행위가 모두 집단학살에 해당하며, 따라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더 오랫동안 범해져온 것임을 주목하고 강력히 규탄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살아내고, 투쟁해왔으며, 투쟁에 함께 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분노를 조직하는 증언이다. 우리는 이들 팔레스타인 민중의 요청에 응하여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에 강력히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 참상을 끝내고 모든 삶이 그 자체로 귀하게 여겨지는 세상, 즉 재생산정의가 실현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힘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만드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한국의 윤석열 정권이 그랬듯, 세계 여러 지역의 극우 정치세력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제국주의 질서를 심화시키고 그로부터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차별과 낙인에 근거한 ‘테러리스트’ 몰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한다. 또한, 인권, 평등, 정의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면서, 임신중지 권리를 공격하고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의 삶을 부정하는 혐오 선동을 조직화하고 있다.
진보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통해 ‘국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2019년 문재인 정권은 한국-이스라엘 FTA를 체결하여 무기 등 교역규모를 크게 늘렸고, 이재명 정권에서도 국내 최대 방산전시회인 ADEX가 다가오는 10월, 이스라엘 국방부와 방산기업들이 참여하여 치러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분쟁’으로 프레이밍하는 등 중도적 입장의 탈을 쓰고 이스라엘의 가해에 공모해왔다. 이들은 국제인권규범을 존중한다면서도 국가의 필요에 따라 인권의 원칙을 선택적으로만 차용해왔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전쟁, 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때, 우리는 그에 저항하며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내세운 ‘핑크워싱’ 뿐만 아니라,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그린워싱,’ 예술 및 문화 교류 형식의 ‘아트워싱’ 등의 선전 전략은 한국 사회에도, 심지어는 진보적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속에도 깊숙히 침투해있다. 우리는 집단학살의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지워버리려는 움직임이 사회변혁을 위한 운동 내부에 자리잡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재생산 부정의를 지탱해온 제국주의 질서, 자본,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지금 여기의 주변화된 삶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명하고 함께 저항을 조직해내야 한다.
한국에서의 재생산정의 실현을 위한 운동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생산 억업과 부정의에 맞서는 일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10여년 간 ‘낙태죄’ 폐지 운동과 재생산정의 운동은 국가 주도의 인구조절 및 경제발전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국가의 필요에 따라 자기결정권과 재생산을 통제하고 삶의 가치를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국가 주도의 인구정책과 맞물린 한국의 발전주의는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하려는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식민화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정치적 타자와 소수자들을 생산성과 정상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상해왔다. 또한 한국 정부는 ‘낙태죄’를 통해 임신중지를 처벌하면서도 이들의 장애, 연령, 경제적 상황, 체류 지위 등에 맞물려 있는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 억압의 조건들을 방치하거나 강화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재생산을 통제하고 억압해왔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핵심적 기제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은 이와 같은 삶의 위계화가 제국주의 폭력 속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실이며 결국 그 삶들이 절멸의 위협에 놓이게 되는 현장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의에 침묵한 채 재생산정의는 어디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며 이 선언문을 작성한다. 재생산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는 세계에서, 우리는 제도화된 기구에 기대거나 권력의 인정을 구하기를 멈추고 서로의 손을 더욱 강하게 맞잡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재생산정의도 없다. 우리의 투쟁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2025년 10월 2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