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임신중지에 ‘살인죄’ 수사 의뢰한 보건복지부 규탄한다!
복지부는 수사 의뢰 철회하고 명확한 보건의료 가이드와 포괄적 상담, 지원 연계 체계 구축하라.
지난 달 27일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던 한 여성의 임신 36주 차 임신중지 수술 브이로그 영상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살인죄’ 혐의를 두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5년, 형법 ‘낙태죄’가 실효를 잃고 비범죄화가 이뤄진 지 4년 차가 되어 가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보건복지부가 그 어느 순간보다 발 빠르게 임신중지 여성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운운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심하고도 심각한 면피 행위이자 책임 전가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최소한의 보건의료 체계조차 마련하지 않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지는 못할망정, 법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도 없이 임신중지에 ‘살인죄’를 운운하며 수사를 의뢰한 보건복지부를 우리는 강력히 규탄한다.
처벌은 의료환경을 위험하게 만들 뿐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많은 언론이 임신 36주 차의 임신중지에 대해 그 원인을 임신중지 비범죄화나 처벌 가능 법률의 부재로 인해 ‘예외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 임신중지는 ‘낙태죄’가 살아있던 시기에도 존재했으며, 이는 임신 기간에 따라 처벌 기준을 달리하거나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처벌하는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일이다. 처벌은 후기 임신중지를 전혀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은 처벌 여부에 따라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출산과 양육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의 다양한 상황과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또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북아일랜드와 호주, 필리핀, 중남미 및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진행된 연구를 모두 분석하고 이를 종합한 결과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은 ▲더 큰 비용을 야기하고, ▲의료 행위의 음성화와 의료인의 책임 회피로 위험한 임신중지 환경만을 증가시키며,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임신중지 결정 시기를 더욱 지연시킬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2022년 각국에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하는 가이드(https://srhr.org/abortioncare/#translation)를 발표했다. 만약 이번 일을 명분으로 정부가 처벌 조항을 다시 만드는 시도를 한다면 이는 더욱 위험하고 비공식적인 보건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건강권과 인권의 향상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도 심각하게 역행하는 조치로서 비난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책임은 보건의료 체계를 지연시킨 복지부에 있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보건복지부에 비범죄화에 따른 보건의료 가이드와 상담 체계, 보건의료 연계 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해 왔다. 당사자의 보건의료 접근성이 낮을 수록, 사회경제적 여건과 자기결정권 보장 여건이 취약한 상황에 있을수록 초기에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고 결정 시기만 지연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의료 기관에서의 거부, 처벌과 규제 등을 빌미로 한 과도한 병원비 청구와 현금 지급 요구, 파트너나 부모 등 제3자의 개입, 폭력적 상황, 연령이나 거주 지위 등 당사자가 처한 취약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은 임신중지 결정 지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이다. 또한 임신 사실을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 임신 초기에는 출산을 계획했으나 예기치 않은 파트너와의 관계 문제나 경제적 상황, 건강 악화 등으로 양육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후기에라도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임신 중 어느 시기에라도 당사자가 필요한 정보와 상담, 의료 기관 및 지원 체계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임신중지의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를 먼저 시행한 다른 국가에서도 책임부처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먼저 나선 일이 바로 변화한 상황에 맞게 보건의료 여건을 정비하고 이와 같은 연계, 지원 체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했는가. 하다못해 제대로 된 임신중지 보건의료 서비스 현황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임신의 유지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지원할지에 대한 대안과 정책도 준비되지 않았으며, 건강보험 적용을 하지 않아 의료비는 병원마다 부르는 게 값이고, 유산유도제는 여전히 온라인 암시장을 떠돌고 있다. 어떠한 시스템도 구축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익명출산제와 연계된 위기임신 상담 체계를 만들고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상담 수가나 마련한 것이 지금까지 보건복지부가 한 일의 전부이다. 이 정도면 정부가 오히려 후기 임신중지와 익명출산을 양산할 여건을 심화시켜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을 방기한 복지부에 있다.
수사와 처벌이 아닌 명확한 보건의료 가이드와 권리 보장 체계를 마련하라!
우리는 문제가 된 영상의 진위 여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낙태죄’의 폐지 이전에도, 지금도 이러한 상황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이는 생명권과 선택권을 법적 처벌 기준으로 저울질할 문제가 아닌 실질적인 여건을 바꿔나가야할 국가의 책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처벌로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은 수사가 아니라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결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정보, 상담,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임신 기간과 당사자의 상황,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른 명확한 보건의료적 지침과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전국 모든 보건의료기관에 대해 제공 가능한 의료 서비스 수준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약이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가 제 때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료기관 간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체계를 마련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존재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과 유산유도제의 도입은 최우선의 선결과제이다.
궁극적으로 어떠한 임신중지의 상황에서든, 누구나 다양한 지원 체계를 고려하고, 안전하게 임신중지 또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계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자 앞으로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국회는 지금까지의 낡은 형법-모자보건법의 틀을 버리고,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법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생명권의 보장은 태어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과 사회적 여건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이는 임신중지 결정을 둘러싼 상황들 속에 이미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은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에 관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을 위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결코 후퇴를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즉각 수사의뢰를 철회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책임을 다하라!
2024년 7월 17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장애여성공감, 플랫폼C,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홈리스행동
(이상 가나다순)
[공동성명]
임신중지에 ‘살인죄’ 수사 의뢰한 보건복지부 규탄한다!
복지부는 수사 의뢰 철회하고 명확한 보건의료 가이드와 포괄적 상담, 지원 연계 체계 구축하라.
지난 달 27일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던 한 여성의 임신 36주 차 임신중지 수술 브이로그 영상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살인죄’ 혐의를 두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5년, 형법 ‘낙태죄’가 실효를 잃고 비범죄화가 이뤄진 지 4년 차가 되어 가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보건복지부가 그 어느 순간보다 발 빠르게 임신중지 여성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운운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심하고도 심각한 면피 행위이자 책임 전가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최소한의 보건의료 체계조차 마련하지 않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지는 못할망정, 법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도 없이 임신중지에 ‘살인죄’를 운운하며 수사를 의뢰한 보건복지부를 우리는 강력히 규탄한다.
처벌은 의료환경을 위험하게 만들 뿐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많은 언론이 임신 36주 차의 임신중지에 대해 그 원인을 임신중지 비범죄화나 처벌 가능 법률의 부재로 인해 ‘예외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 임신중지는 ‘낙태죄’가 살아있던 시기에도 존재했으며, 이는 임신 기간에 따라 처벌 기준을 달리하거나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처벌하는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일이다. 처벌은 후기 임신중지를 전혀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은 처벌 여부에 따라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출산과 양육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의 다양한 상황과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또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북아일랜드와 호주, 필리핀, 중남미 및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진행된 연구를 모두 분석하고 이를 종합한 결과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은 ▲더 큰 비용을 야기하고, ▲의료 행위의 음성화와 의료인의 책임 회피로 위험한 임신중지 환경만을 증가시키며,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임신중지 결정 시기를 더욱 지연시킬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2022년 각국에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하는 가이드(https://srhr.org/abortioncare/#translation)를 발표했다. 만약 이번 일을 명분으로 정부가 처벌 조항을 다시 만드는 시도를 한다면 이는 더욱 위험하고 비공식적인 보건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건강권과 인권의 향상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도 심각하게 역행하는 조치로서 비난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책임은 보건의료 체계를 지연시킨 복지부에 있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보건복지부에 비범죄화에 따른 보건의료 가이드와 상담 체계, 보건의료 연계 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해 왔다. 당사자의 보건의료 접근성이 낮을 수록, 사회경제적 여건과 자기결정권 보장 여건이 취약한 상황에 있을수록 초기에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고 결정 시기만 지연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의료 기관에서의 거부, 처벌과 규제 등을 빌미로 한 과도한 병원비 청구와 현금 지급 요구, 파트너나 부모 등 제3자의 개입, 폭력적 상황, 연령이나 거주 지위 등 당사자가 처한 취약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은 임신중지 결정 지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이다. 또한 임신 사실을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 임신 초기에는 출산을 계획했으나 예기치 않은 파트너와의 관계 문제나 경제적 상황, 건강 악화 등으로 양육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후기에라도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임신 중 어느 시기에라도 당사자가 필요한 정보와 상담, 의료 기관 및 지원 체계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임신중지의 합법화 또는 비범죄화를 먼저 시행한 다른 국가에서도 책임부처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먼저 나선 일이 바로 변화한 상황에 맞게 보건의료 여건을 정비하고 이와 같은 연계, 지원 체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했는가. 하다못해 제대로 된 임신중지 보건의료 서비스 현황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임신의 유지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지원할지에 대한 대안과 정책도 준비되지 않았으며, 건강보험 적용을 하지 않아 의료비는 병원마다 부르는 게 값이고, 유산유도제는 여전히 온라인 암시장을 떠돌고 있다. 어떠한 시스템도 구축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익명출산제와 연계된 위기임신 상담 체계를 만들고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상담 수가나 마련한 것이 지금까지 보건복지부가 한 일의 전부이다. 이 정도면 정부가 오히려 후기 임신중지와 익명출산을 양산할 여건을 심화시켜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을 방기한 복지부에 있다.
수사와 처벌이 아닌 명확한 보건의료 가이드와 권리 보장 체계를 마련하라!
우리는 문제가 된 영상의 진위 여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낙태죄’의 폐지 이전에도, 지금도 이러한 상황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이는 생명권과 선택권을 법적 처벌 기준으로 저울질할 문제가 아닌 실질적인 여건을 바꿔나가야할 국가의 책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처벌로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은 수사가 아니라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결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정보, 상담,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임신 기간과 당사자의 상황,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른 명확한 보건의료적 지침과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전국 모든 보건의료기관에 대해 제공 가능한 의료 서비스 수준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약이나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가 제 때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료기관 간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체계를 마련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존재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과 유산유도제의 도입은 최우선의 선결과제이다.
궁극적으로 어떠한 임신중지의 상황에서든, 누구나 다양한 지원 체계를 고려하고, 안전하게 임신중지 또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계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자 앞으로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국회는 지금까지의 낡은 형법-모자보건법의 틀을 버리고,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법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생명권의 보장은 태어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과 사회적 여건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이는 임신중지 결정을 둘러싼 상황들 속에 이미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은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에 관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을 위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결코 후퇴를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즉각 수사의뢰를 철회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책임을 다하라!
2024년 7월 17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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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