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을 퀴어커뮤니티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 차량 참여에 유감을 표하며
서울퀴어퍼레이드 차량으로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이하 길리어드)가 나온다는 소식이 공지되었다. 길리어드는 초국적 제약회사다. 퀴어커뮤니티에는 HIV 노출전 예방요법(프렙, PrEP)에 사용하는 ‘트루바다’를 생산하는 초국적 제약회사로 익숙하다. 최근에는 퀴어커뮤니티에 캠페인과 후원 등을 이어가며 접면을 넓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제 이름을 걸고 행진 차량을 가져가는 것은 몇가지 우려와 실망을 남긴다.
사람의 목숨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금
초국적 제약회사는 대학, 연구소에서 혹은 공적투자로 연구개발된 신물질 중에서 성공할 만한 혹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독점계약한다. 더불어 의약품의 주된 성분, 혼합제, 약의 생김새, 적응증 등에 걸쳐 수많은 특허를 등록하여 독점기간을 20년 이상 연장하며 높은 약가를 유지한다. 이들의 독점은 값싼 제네릭(복제약)의 생산을 가로막아 의약품 접근권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에이즈치료제가 본격 사용된 1996년부터 전 세계 에이즈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당장 치료하라(Treat Now)”를 외치며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항한 이유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며 이윤을 우선시 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때문에 살기 위해 필수적인 의약품을 먹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다.
국내에도 에이즈치료제 공급 촉구와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투쟁이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HIV감염인수가 적고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한국에 신약을 공급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푸제온’이다. 푸제온의 당시 약가는 연간 1천8백만원으로 정해진 보험약가가 낮다며 공급을 하지 않았다. 당시 에이즈활동가들은 왜 약값을 비싸게 매기는지, 왜 약을 공급하지 않는지 문제제기했다. 돌아온 대답은 “의약품 공급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제약회사에게 사람의 생명과 건강권은 구매력과 동의어였던 셈이다.
같은 시기 국내 HIV/AIDS 활동가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새로 개발된 의약품이 필요했다. 하지만 약가는 너무도 비쌌고, 보험적용도 되지 않았다. 이에 활동가들은 제약회사 앞에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추고 아픈 이들에게 제공하라는 시위와 캠페인을 이어갔다. 하지만 해당 제약회사 사장은 면담자리에서 ‘돈을 갖고 와서 사면 된다’는 냉담한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사람의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비윤리적인 운영방식을 기업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해선 안된다.
여전히 이들은 의약품 보급에 있어 건강보험공단에 요구하라고 책임을 돌린다. 자신들은 특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건강보험공단 또한 필요한 의약품에 보험료를 온전히 책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의 높은 약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함의한다.
최근의 PrEP은 어떠한가. PrEP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데는 여러 사회,경제, 문화적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트루바다’의 높은 가격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달 약값은 약 40만원이고 보험적용이 되더라도 개인이 쉽게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다. 길리어드는 최근 몇 년동안 제한된 인원에게 무상공급을 하다가 현재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여 공급한다. 한데 왜 길리어드는 프로모션 할인율만큼 공식약가(보험약가)를 인하하지 않는가. 약값을 한시적으로 할인하면 PrEP을 알리고 그 효과를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약가를 비롯한 의약품접근권을 요구하는 성원들을 소비자 개인의 위상으로 축소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에이즈대응의 교훈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많은 공적 지원이 있었지만, 그 성과를 몇몇 초국적 제약회사가 독점하는 실정이다. 전세계 인구대비 필요량에 비해 생산량이 충분할 수 없었고 가격도 공개하지 않았다. 백신 접종과 치료제 공급의 불평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중이던 ‘렘데시비르’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승인받은 길리어드는 긴급한 와중에도 미국에 해당 약품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7년의 독점판매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전세계 활동가들의 비난이 따르자 길리어드는 희귀의약품 신청을 철회하였다. 그뿐인가. 길리어드는 미국 외에도 렘데시비르를 높은가격으로 책정하고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로 선택한 일부 국가에만 우선 공급했다. ‘제약회사가 생명보다 이윤을 취한다.’ ‘남의 생명을 걸고 장사한다’는 비판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인하하여 공급하라는 집단행동이 이뤄졌다. 전지구적으로 질병이 등장하고 확산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치료제의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서 가난한 나라 성원들의 목숨을 볼모로 사로잡는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어져온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따지지 않고 퀴어커뮤니티를 향한 초국적제약회사의 후원과 참여를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마땅히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길리어드가 코로나19 유행에 대처하는 전세계, 특히 중저소득국가의 노력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살피고, 특허권을 내세우며 의약품을 독점하며 높은 약가를 유지했던 행위가 에이즈치료와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한다면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길리어드가 전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긍정메시지 ‘Live, Love, Liberate’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을 터.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질문을 제기하고 온당하지 않은 답변을 비판하며, 피상적 선의가 감추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저항해야 한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스폰서십을 내세워 행진의 선두를 점하는 것은 온당한가
2007년 성소수자인권운동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에이즈와 연대 AIDS & Solidarity+’ 행진단을 꾸려 행진에 참가했다. 당시 행진단은 차별과 편견에 반대한다는 구호 외에도 ‘HIV/AIDS 확산의 주범은 초국적 제약회사’를 구호로 만들어 외쳤다. 지금은 이 구호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퀴어커뮤니티는 초국적 제약회사와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이들의 선의와 후원을 갈구하며 기다려야 하는가. 오히려 커뮤니티 안에서 기업을 상대로 성원들의 건강을 이윤의 볼모로 삼지 말 것을, 국가를 상대로 차별받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와 더불어 돈이 많이 없어도 일상에서 언제라도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건강과 인권은 의약품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국적 제약회사는 이윤을 앞세워 시민들의 결정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진차량은 음악을 틀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단순한 도구 너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행진이 지향하는 방향을 시각화할 수 있는 전시와 광고의 효과를 갖는다. 행진이 기업의 스폰서십을 받아 차량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퀴어프렌들리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부각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길리어드가 HIV인식개선을 위해 ‘레인보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소위 공익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약값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특허를 연장하는 한 HIV인식개선은 길리어드의 수익을 높이는 데에 동원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퍼레이드를 길리어드 차량이 이끈다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자원을 지원하며 커뮤니티에 친밀한 거리를 좁혀갈수록 성소수자와 HIV/AIDS운동은 공동체를 구축하고 지킬 수 있는 역량을 잃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도 있다. 하지만 HIV/AIDS와 성소수자 인권운동 안에서만 삭히고 넘어갈 감정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언컨대 초국적 제약회사의 퀴어 커뮤니티를 향한 활동은 단순히 공익사업일 수 없으며, 제약회사에 쓰는 소비자의 돈은 핑크머니로 윤색될 수 없다. 우리는 이들이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지, 이러한 명분을 공익으로 포장하며 커뮤니티에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위가 강조하는 바 ‘무지개를 휘날리며 우리의 존엄과 평등을 드러내는’ 행진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 인권과 평등을 지지하는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행사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무엇을 지켜내왔는가를 입증하고 실천하는 장이기를 바란다. 행진의 선두에 행렬을 이끄는 차량의 주체를 선정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수 없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겠는가.
2022.7.7.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대구경북HIV/AIDS감염인자조모임 해밀, 레드리본 사회적 협동조합,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이 성명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토론하고 마련하였습니다. 네트워크 내 연명에 동의하는 단체들의 명의로 발표합니다.
[공동성명]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을 퀴어커뮤니티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 차량 참여에 유감을 표하며
서울퀴어퍼레이드 차량으로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이하 길리어드)가 나온다는 소식이 공지되었다. 길리어드는 초국적 제약회사다. 퀴어커뮤니티에는 HIV 노출전 예방요법(프렙, PrEP)에 사용하는 ‘트루바다’를 생산하는 초국적 제약회사로 익숙하다. 최근에는 퀴어커뮤니티에 캠페인과 후원 등을 이어가며 접면을 넓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제 이름을 걸고 행진 차량을 가져가는 것은 몇가지 우려와 실망을 남긴다.
사람의 목숨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금
초국적 제약회사는 대학, 연구소에서 혹은 공적투자로 연구개발된 신물질 중에서 성공할 만한 혹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독점계약한다. 더불어 의약품의 주된 성분, 혼합제, 약의 생김새, 적응증 등에 걸쳐 수많은 특허를 등록하여 독점기간을 20년 이상 연장하며 높은 약가를 유지한다. 이들의 독점은 값싼 제네릭(복제약)의 생산을 가로막아 의약품 접근권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에이즈치료제가 본격 사용된 1996년부터 전 세계 에이즈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당장 치료하라(Treat Now)”를 외치며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항한 이유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며 이윤을 우선시 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때문에 살기 위해 필수적인 의약품을 먹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다.
국내에도 에이즈치료제 공급 촉구와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투쟁이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HIV감염인수가 적고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한국에 신약을 공급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푸제온’이다. 푸제온의 당시 약가는 연간 1천8백만원으로 정해진 보험약가가 낮다며 공급을 하지 않았다. 당시 에이즈활동가들은 왜 약값을 비싸게 매기는지, 왜 약을 공급하지 않는지 문제제기했다. 돌아온 대답은 “의약품 공급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제약회사에게 사람의 생명과 건강권은 구매력과 동의어였던 셈이다.
같은 시기 국내 HIV/AIDS 활동가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새로 개발된 의약품이 필요했다. 하지만 약가는 너무도 비쌌고, 보험적용도 되지 않았다. 이에 활동가들은 제약회사 앞에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추고 아픈 이들에게 제공하라는 시위와 캠페인을 이어갔다. 하지만 해당 제약회사 사장은 면담자리에서 ‘돈을 갖고 와서 사면 된다’는 냉담한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사람의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비윤리적인 운영방식을 기업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해선 안된다.
여전히 이들은 의약품 보급에 있어 건강보험공단에 요구하라고 책임을 돌린다. 자신들은 특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건강보험공단 또한 필요한 의약품에 보험료를 온전히 책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의 높은 약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함의한다.
최근의 PrEP은 어떠한가. PrEP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데는 여러 사회,경제, 문화적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트루바다’의 높은 가격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달 약값은 약 40만원이고 보험적용이 되더라도 개인이 쉽게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다. 길리어드는 최근 몇 년동안 제한된 인원에게 무상공급을 하다가 현재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여 공급한다. 한데 왜 길리어드는 프로모션 할인율만큼 공식약가(보험약가)를 인하하지 않는가. 약값을 한시적으로 할인하면 PrEP을 알리고 그 효과를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약가를 비롯한 의약품접근권을 요구하는 성원들을 소비자 개인의 위상으로 축소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에이즈대응의 교훈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많은 공적 지원이 있었지만, 그 성과를 몇몇 초국적 제약회사가 독점하는 실정이다. 전세계 인구대비 필요량에 비해 생산량이 충분할 수 없었고 가격도 공개하지 않았다. 백신 접종과 치료제 공급의 불평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중이던 ‘렘데시비르’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승인받은 길리어드는 긴급한 와중에도 미국에 해당 약품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7년의 독점판매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전세계 활동가들의 비난이 따르자 길리어드는 희귀의약품 신청을 철회하였다. 그뿐인가. 길리어드는 미국 외에도 렘데시비르를 높은가격으로 책정하고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로 선택한 일부 국가에만 우선 공급했다. ‘제약회사가 생명보다 이윤을 취한다.’ ‘남의 생명을 걸고 장사한다’는 비판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인하하여 공급하라는 집단행동이 이뤄졌다. 전지구적으로 질병이 등장하고 확산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치료제의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서 가난한 나라 성원들의 목숨을 볼모로 사로잡는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어져온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따지지 않고 퀴어커뮤니티를 향한 초국적제약회사의 후원과 참여를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마땅히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길리어드가 코로나19 유행에 대처하는 전세계, 특히 중저소득국가의 노력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살피고, 특허권을 내세우며 의약품을 독점하며 높은 약가를 유지했던 행위가 에이즈치료와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한다면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길리어드가 전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긍정메시지 ‘Live, Love, Liberate’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을 터.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질문을 제기하고 온당하지 않은 답변을 비판하며, 피상적 선의가 감추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저항해야 한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스폰서십을 내세워 행진의 선두를 점하는 것은 온당한가
2007년 성소수자인권운동은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에이즈와 연대 AIDS & Solidarity+’ 행진단을 꾸려 행진에 참가했다. 당시 행진단은 차별과 편견에 반대한다는 구호 외에도 ‘HIV/AIDS 확산의 주범은 초국적 제약회사’를 구호로 만들어 외쳤다. 지금은 이 구호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퀴어커뮤니티는 초국적 제약회사와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이들의 선의와 후원을 갈구하며 기다려야 하는가. 오히려 커뮤니티 안에서 기업을 상대로 성원들의 건강을 이윤의 볼모로 삼지 말 것을, 국가를 상대로 차별받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와 더불어 돈이 많이 없어도 일상에서 언제라도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건강과 인권은 의약품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국적 제약회사는 이윤을 앞세워 시민들의 결정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진차량은 음악을 틀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단순한 도구 너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행진이 지향하는 방향을 시각화할 수 있는 전시와 광고의 효과를 갖는다. 행진이 기업의 스폰서십을 받아 차량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퀴어프렌들리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부각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길리어드가 HIV인식개선을 위해 ‘레인보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소위 공익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약값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특허를 연장하는 한 HIV인식개선은 길리어드의 수익을 높이는 데에 동원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퍼레이드를 길리어드 차량이 이끈다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자원을 지원하며 커뮤니티에 친밀한 거리를 좁혀갈수록 성소수자와 HIV/AIDS운동은 공동체를 구축하고 지킬 수 있는 역량을 잃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도 있다. 하지만 HIV/AIDS와 성소수자 인권운동 안에서만 삭히고 넘어갈 감정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언컨대 초국적 제약회사의 퀴어 커뮤니티를 향한 활동은 단순히 공익사업일 수 없으며, 제약회사에 쓰는 소비자의 돈은 핑크머니로 윤색될 수 없다. 우리는 이들이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지, 이러한 명분을 공익으로 포장하며 커뮤니티에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위가 강조하는 바 ‘무지개를 휘날리며 우리의 존엄과 평등을 드러내는’ 행진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 인권과 평등을 지지하는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행사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무엇을 지켜내왔는가를 입증하고 실천하는 장이기를 바란다. 행진의 선두에 행렬을 이끄는 차량의 주체를 선정할 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수 없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겠는가.
2022.7.7.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대구경북HIV/AIDS감염인자조모임 해밀, 레드리본 사회적 협동조합,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이 성명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토론하고 마련하였습니다. 네트워크 내 연명에 동의하는 단체들의 명의로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