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
우리는 정권이 아닌 미래를 선택했다 체제를 전환하라
우리는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이르는 현실에서 여전히 주식과 부동산, 성장 중심주의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짓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과 일상의 변화가 날이 갈수록 더욱 빠르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고 있는데 이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친환경을 내세운 또 다른 이윤 추구의 길을 열어주는 녹색성장의 수사를 거부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빈민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는 대신 우리를 그저 복지와 시혜, 보호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정치를 규탄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직접 열어나가기 위해 정권 교체가 아닌 체제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성장에 대한 분배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자임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책임있는 대안과 전망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대안을 직접 만들고 행동하는 길에 나설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지금 여기서 새로 시작한다.
하나, 자본 시장이 불안정해질수록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한편 젠더 위계를 통해 더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다. 여성들에게 저출산 책임을 전가하고, 가사와 돌봄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무급노동자의 위치를 요구하는 구조 또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터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젠더폭력은 바로 이 구조 위에 놓여있고, 이주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복합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젠더 갈등’을 불쏘시개 삼아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체제 불안의 화살을 돌리려 하는 허구의 프레임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제 그 화살의 방향을 돌려, 젠더 체계와 젠더 위계를 강화하는 현재의 체제를 전환시키고자 한다.
둘.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선진국이 되었다는 상찬 뒤엔 높은 빈곤율과 불평등한 현실이 있다. 43%의 노인빈곤율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 절반이 빈곤의 늪에 빠지는 미래를 예고한다. 이윤만을 위한 개발은 집과 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끊임없이 쫓아내고, 부족한 사회보장제도는 최종적 위기에 빠진 이들조차 외면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빈곤층을 돕겠다는 시혜가 아니라 빈곤문제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는 체제로의 전환이다.
셋. 파견법 도입 이후 불안정·저임금 노동은 모두의 현실이 됐다. ‘노동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실패했고, 일하다 죽지 말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조차 누더기로 시행했다. 이제 혁신을 말하는 기업가들은 노동권 없는 미래를 꿈꾼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지만 이 위협의 실체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권 종말’이다. 반노동의 현실에 맞서, 일터의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 저항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삶을 착취해 유지하는 지금의 제체를 전환하자.
넷. 기후위기가 전면화 되자 정부는 겉으로만 ‘탈탄소 사회’를 말한다. 그 실체는 침체에 이른 자본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개발주의의 반복으로, 자본에겐 새로운 이윤의 기회를, 민중에겐 생존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명목으로 한 지역주민의 희생과 산업전환을 명분으로 한 노동자 해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석탄발전소와 신공항 건설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은 지구생태계를 담보로 한 성장이기 때문에 이를 우회한 해법은 없다. 민주적·생태적 자본통제가 기후위기의 진짜 대안이다.
다섯,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최근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도 전쟁의 포화는 멈춘 적이 없다. 미국과 서방이 독점한 패권과 세계무역체계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이 첨예한 싸움터가 되고 있다. 생명을 빼앗는 무기를 상품으로 팔고, 무력지배를 통한 초법적 착취와 자원 수탈로 이윤을 남기는 자본의 전쟁에 우리의 생명을 뺏길 수 없다. 오로지 제국주의와 자본의 이윤에 종속된 이 체제를 끝내지 않고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인류 평화를 위한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여섯. 차별금지법은 안 되고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 불평등 해결은 나중의 과제로만 미루는 현실에서 하루하루 착취와 불평등을 감내하는 이들이 있다. 현 체제는 상품생산에 유용한 삶의 형태만을 정상으로 인정할 뿐,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윤추구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부정하는 체제에 맞서 모든 이들이 존엄이 존중받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의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과 혐오는 성장 중심주의를 멈추고, 전 세계 1%에게 집중된 자본과 이윤의 시스템을 전환하며, 상품화 된 필수권리를 공공의 책임 하에 기본권으로 보장할 때에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국가와 사회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라. 임금 노동에서의 성별화된 위계를 깨고, 성별이분법에 맞추어진 노동환경을 여성과 성소수자, 다양한 신체 조건을 지닌 이들에게 맞추라. 이성애 혈연 가족 관계만을 전제로 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모든 돌봄 관계에 적용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우리를 계속해서 위계화하고 낙인과 혐오를 조장하는 구조에 맞서며 이성애-비장애-남성 중심의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대안은 실패한 어제를 반복하자는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다. 거리로 모이자. 생산성 논리에 따라 ‘비정상’의 낙인을 강요당한 이들, 존재를 부정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빈곤에 빠진 가난한 이들과, 모든 생산을 책임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빼앗긴 노동자가 함께 싸울 때다!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길 거부하는 존엄의 행진으로 나서자!
2022년 3월 1일
<존엄한 미래를 위한 저항의 행진> 참가자 일동
[선언문]
우리는 정권이 아닌 미래를 선택했다 체제를 전환하라
우리는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이르는 현실에서 여전히 주식과 부동산, 성장 중심주의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거짓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과 일상의 변화가 날이 갈수록 더욱 빠르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고 있는데 이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친환경을 내세운 또 다른 이윤 추구의 길을 열어주는 녹색성장의 수사를 거부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빈민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는 대신 우리를 그저 복지와 시혜, 보호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정치를 규탄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직접 열어나가기 위해 정권 교체가 아닌 체제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는 성장에 대한 분배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자임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책임있는 대안과 전망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대안을 직접 만들고 행동하는 길에 나설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지금 여기서 새로 시작한다.
하나, 자본 시장이 불안정해질수록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한편 젠더 위계를 통해 더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다. 여성들에게 저출산 책임을 전가하고, 가사와 돌봄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무급노동자의 위치를 요구하는 구조 또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터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젠더폭력은 바로 이 구조 위에 놓여있고, 이주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복합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젠더 갈등’을 불쏘시개 삼아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체제 불안의 화살을 돌리려 하는 허구의 프레임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제 그 화살의 방향을 돌려, 젠더 체계와 젠더 위계를 강화하는 현재의 체제를 전환시키고자 한다.
둘.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선진국이 되었다는 상찬 뒤엔 높은 빈곤율과 불평등한 현실이 있다. 43%의 노인빈곤율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 절반이 빈곤의 늪에 빠지는 미래를 예고한다. 이윤만을 위한 개발은 집과 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끊임없이 쫓아내고, 부족한 사회보장제도는 최종적 위기에 빠진 이들조차 외면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빈곤층을 돕겠다는 시혜가 아니라 빈곤문제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는 체제로의 전환이다.
셋. 파견법 도입 이후 불안정·저임금 노동은 모두의 현실이 됐다. ‘노동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실패했고, 일하다 죽지 말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조차 누더기로 시행했다. 이제 혁신을 말하는 기업가들은 노동권 없는 미래를 꿈꾼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지만 이 위협의 실체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권 종말’이다. 반노동의 현실에 맞서, 일터의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 저항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삶을 착취해 유지하는 지금의 제체를 전환하자.
넷. 기후위기가 전면화 되자 정부는 겉으로만 ‘탈탄소 사회’를 말한다. 그 실체는 침체에 이른 자본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개발주의의 반복으로, 자본에겐 새로운 이윤의 기회를, 민중에겐 생존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명목으로 한 지역주민의 희생과 산업전환을 명분으로 한 노동자 해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석탄발전소와 신공항 건설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은 지구생태계를 담보로 한 성장이기 때문에 이를 우회한 해법은 없다. 민주적·생태적 자본통제가 기후위기의 진짜 대안이다.
다섯,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최근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도 전쟁의 포화는 멈춘 적이 없다. 미국과 서방이 독점한 패권과 세계무역체계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이 첨예한 싸움터가 되고 있다. 생명을 빼앗는 무기를 상품으로 팔고, 무력지배를 통한 초법적 착취와 자원 수탈로 이윤을 남기는 자본의 전쟁에 우리의 생명을 뺏길 수 없다. 오로지 제국주의와 자본의 이윤에 종속된 이 체제를 끝내지 않고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인류 평화를 위한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여섯. 차별금지법은 안 되고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 불평등 해결은 나중의 과제로만 미루는 현실에서 하루하루 착취와 불평등을 감내하는 이들이 있다. 현 체제는 상품생산에 유용한 삶의 형태만을 정상으로 인정할 뿐,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윤추구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부정하는 체제에 맞서 모든 이들이 존엄이 존중받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의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과 혐오는 성장 중심주의를 멈추고, 전 세계 1%에게 집중된 자본과 이윤의 시스템을 전환하며, 상품화 된 필수권리를 공공의 책임 하에 기본권으로 보장할 때에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국가와 사회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라. 임금 노동에서의 성별화된 위계를 깨고, 성별이분법에 맞추어진 노동환경을 여성과 성소수자, 다양한 신체 조건을 지닌 이들에게 맞추라. 이성애 혈연 가족 관계만을 전제로 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모든 돌봄 관계에 적용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우리를 계속해서 위계화하고 낙인과 혐오를 조장하는 구조에 맞서며 이성애-비장애-남성 중심의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대안은 실패한 어제를 반복하자는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다. 거리로 모이자. 생산성 논리에 따라 ‘비정상’의 낙인을 강요당한 이들, 존재를 부정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빈곤에 빠진 가난한 이들과, 모든 생산을 책임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빼앗긴 노동자가 함께 싸울 때다!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길 거부하는 존엄의 행진으로 나서자!
2022년 3월 1일
<존엄한 미래를 위한 저항의 행진>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