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3분기 임신중지 시도 후 조산아 사망 사건'에 대한 입장-
지난 1월, 전북 전주에서 3분기 임신부가 유산유도제를 복용한 후 조산아를 출산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당사자 여성 A씨와 이 과정에 협력한 남성 B씨가 구속되었으며, 다수의 주요 언론들은 의도적으로 임신중지와 영아살해를 연결 짓고 ‘불법 낙태약 먹고 영아살해’라는 표제를 앞세운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이를 보도해 왔다. 이에 여론은 특히 여성당사자에 대한 거센 비난을 쏟아내며 사건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2분기(임신주수 14주)·3분기(28주) 임신중지로 내몰리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과 이를 외면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A씨는 임신주수로 인해 병원으로부터 임신중지 수술을 거부당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유산유도제를 이용한 약물적 임신중지를 시도하였고, B씨가 유산유도제를 구입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와 B씨가 구속된 이유는 유산유도제 복용 자체가 아니라 이후 영아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들은 사건의 경과와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유산유도제에 초점을 맞추어 악의적인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실들은, 이러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여성들을 내몰아 온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A씨가 3분기 임신에 이르기 전에 거부당하지 않고 더 빨리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받을 수 있는 병원과 의료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안심할 수 없는 유통 경로를 통해 약을 구하지 않고, 적절한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합법적인 의료시스템 안에서 유산유도제를 복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경제적 조건이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보장되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양육에 대한 지원이나 입양 등의 다른 방안들을 신뢰감 있게 조력하는 공적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더 거슬러 올라가,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피임에 대한 접근성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이토록 필수적인 전제들을 묵살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 앞에 침묵한 채, 오직 여성당사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다면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도록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여성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장벽을 제거해야 하고, 새로운 장벽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국제적으로도 충분한 근거를 토대로 권고되어 각국에서 시행 중이다. 일례로 캐나다의 경우 임신 2·3분기의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을 위해 법률팀·사회복지사·환자를 연계한 주치의·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태아 및 여성의 건강 상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의료적 시술 방향과 사회복지 등의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반면 임신중지에 대한 어떠한 규제와 처벌도 임신중지를 감소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너무도 뚜렷하게 밝혀졌다. 처벌이나 규제가 아닌,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의 보장이야말로 임신중지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낙태에 대한 모든 장애물은 가장 취약한 여성부터 해친다(레베카 곰퍼츠, 위민온웹)”는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임신주수에 따른 제한을 논할 것이 아니라, 2·3분기에 이르기까지 미처 임신중지를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갖는 취약성에 집중하여,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과 안전성을 더욱 높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불법 낙태약’ 근절을 논할 것이 아니라, 세계 67개국에서 공식 허용되었으며 WHO(국제보건기구) 필수의약품으로까지 지정된 유산유도제가 왜 유독 국내에서는 ‘불법’으로 못 박혀 접근성을 차단당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약물적 임신중지를 안전한 의료체계 내에서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나아가 공적 의료서비스로서의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시스템 확립과 건강보험 적용으로 차별 없는 의료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여성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처벌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이 사회가 기꺼이 출산과 양육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인지 성찰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견인해야 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 ‘낙태의 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체입법 시한인 2020년마저 훌쩍 넘긴 지금 대한민국에서, 임신중지는 더 이상 범죄도 불법도 아니다. 그럼에도 낙태죄가 사라진 지 2년째에 접어들도록, 그 빈자리에 여성 시민들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세워졌어야 마땅할 법과 제도의 공백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배척하는 정부와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더는 이대로 묵과할 수 없다. 국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제도의 마련과 의료 체계 구축에 즉각 임해야 한다. 또한 언론과 사회는 여성 개인에 대한 비난과 자극적인 보도의 소비를 넘어, 실질적인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처벌과 낙인이 아닌, 건강권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연대해 나갈 것이다.
2022년 3월 22일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노동당사회운동위원회, 녹색당, 민주노총전북본부여성위원회,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보건의료노조전북지역본부,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SHARE, 성평등한청소년인권실현을위한전북시민연대(준), 언니들의병원놀이, 연대하는교사잡것들, 인권운동사랑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교조경남지부여성위원회“흐름”, 전교조여성위원회, 전교조부산지부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북지부, 전북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사)성폭력예방치료센터 (한글순, 총 24개 단위)
[공동성명]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3분기 임신중지 시도 후 조산아 사망 사건'에 대한 입장-
지난 1월, 전북 전주에서 3분기 임신부가 유산유도제를 복용한 후 조산아를 출산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당사자 여성 A씨와 이 과정에 협력한 남성 B씨가 구속되었으며, 다수의 주요 언론들은 의도적으로 임신중지와 영아살해를 연결 짓고 ‘불법 낙태약 먹고 영아살해’라는 표제를 앞세운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이를 보도해 왔다. 이에 여론은 특히 여성당사자에 대한 거센 비난을 쏟아내며 사건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2분기(임신주수 14주)·3분기(28주) 임신중지로 내몰리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과 이를 외면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A씨는 임신주수로 인해 병원으로부터 임신중지 수술을 거부당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유산유도제를 이용한 약물적 임신중지를 시도하였고, B씨가 유산유도제를 구입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와 B씨가 구속된 이유는 유산유도제 복용 자체가 아니라 이후 영아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들은 사건의 경과와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유산유도제에 초점을 맞추어 악의적인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실들은, 이러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여성들을 내몰아 온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A씨가 3분기 임신에 이르기 전에 거부당하지 않고 더 빨리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받을 수 있는 병원과 의료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안심할 수 없는 유통 경로를 통해 약을 구하지 않고, 적절한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합법적인 의료시스템 안에서 유산유도제를 복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경제적 조건이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보장되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양육에 대한 지원이나 입양 등의 다른 방안들을 신뢰감 있게 조력하는 공적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더 거슬러 올라가,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피임에 대한 접근성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이토록 필수적인 전제들을 묵살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 앞에 침묵한 채, 오직 여성당사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다면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도록 여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여성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장벽을 제거해야 하고, 새로운 장벽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국제적으로도 충분한 근거를 토대로 권고되어 각국에서 시행 중이다. 일례로 캐나다의 경우 임신 2·3분기의 임신중지에 대한 지원을 위해 법률팀·사회복지사·환자를 연계한 주치의·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태아 및 여성의 건강 상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의료적 시술 방향과 사회복지 등의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반면 임신중지에 대한 어떠한 규제와 처벌도 임신중지를 감소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너무도 뚜렷하게 밝혀졌다. 처벌이나 규제가 아닌,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와 재생산권의 보장이야말로 임신중지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낙태에 대한 모든 장애물은 가장 취약한 여성부터 해친다(레베카 곰퍼츠, 위민온웹)”는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임신주수에 따른 제한을 논할 것이 아니라, 2·3분기에 이르기까지 미처 임신중지를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갖는 취약성에 집중하여,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과 안전성을 더욱 높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불법 낙태약’ 근절을 논할 것이 아니라, 세계 67개국에서 공식 허용되었으며 WHO(국제보건기구) 필수의약품으로까지 지정된 유산유도제가 왜 유독 국내에서는 ‘불법’으로 못 박혀 접근성을 차단당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약물적 임신중지를 안전한 의료체계 내에서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나아가 공적 의료서비스로서의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시스템 확립과 건강보험 적용으로 차별 없는 의료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여성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처벌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이 사회가 기꺼이 출산과 양육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인지 성찰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견인해야 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 ‘낙태의 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체입법 시한인 2020년마저 훌쩍 넘긴 지금 대한민국에서, 임신중지는 더 이상 범죄도 불법도 아니다. 그럼에도 낙태죄가 사라진 지 2년째에 접어들도록, 그 빈자리에 여성 시민들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세워졌어야 마땅할 법과 제도의 공백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배척하는 정부와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더는 이대로 묵과할 수 없다. 국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제도의 마련과 의료 체계 구축에 즉각 임해야 한다. 또한 언론과 사회는 여성 개인에 대한 비난과 자극적인 보도의 소비를 넘어, 실질적인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처벌과 낙인이 아닌, 건강권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연대해 나갈 것이다.
2022년 3월 22일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노동당사회운동위원회, 녹색당, 민주노총전북본부여성위원회,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보건의료노조전북지역본부,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SHARE, 성평등한청소년인권실현을위한전북시민연대(준), 언니들의병원놀이, 연대하는교사잡것들, 인권운동사랑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교조경남지부여성위원회“흐름”, 전교조여성위원회, 전교조부산지부여성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북지부, 전북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사)성폭력예방치료센터 (한글순, 총 24개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