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위헌심판 제청을 환영하며

2020-01-23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청되었다.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해당 조문은 HIV/AIDS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지와 무능을 상징한다. 우리는 해당 조문이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고 감염인들의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비롯한 제반의 사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번 위헌심판 제청에 적극적인 환영의 입장을 밝힌다.

한국 사회는 그간 HIV감염인에 대해 공포와 낙인을 사회적으로 조장해왔을 뿐 HIV에 대해 최소한의 의학적 지식과 보건학적 제언들에도 주목하지 않아왔다. HIV/AIDS는 더 이상 현대 의학에서 공포와 낙인의 대상이 아니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여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인 경우 상대에게 HIV를 전파할 확률이 없다.

오히려 HIV/AIDS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보를 유통하는 것, HIV감염인을 범죄화하는 것, 이들의 삶과 인권을 존중하는 의료적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 질병의 확산을 가져오는 주요하고, 전적인 요인임을 전세계의 보건학 연구들이 제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무지는 이러한 효과적이고 인권적인 개입 대신 전파매개금지조항을 통해 감염인의 존재를 범죄화하고 낙인을 양산해왔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는 전파매개 행위가 무엇인지도 확실히 규정하지 못하는 법이다. 성관계 시에 HIV감염인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알고 있는 상황,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를 유지하여 상대방에게 HIV를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 성관계에 상호 동의를 하고 콘돔을 사용했다고 했을 때, 19조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악법은 그저 감염인의 성행위를 범죄로 간주하고, 국가가 이를 규율하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의지는 감염인의 존재를 사회로부터 배척하고, 국가 보호의 바깥으로, 사회와의 단절로 내몰아 왔다.

국가의 이러한 무능과 무지로 인해 감염인의 삶과 존재는 상상할 수 없는 인권 침해를 겪어왔다. 국가가 의료인에 대해 적절한 교육을 하지 않고, 적절한 보건정책적 개입 대신 방임으로 일관해온 역사 속에서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절한 의료를 보장받지 못하고 의료 시스템에서 배재되어왔다. HIV/ADIS외에 다른 복합적인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또는 재생산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감염인의 경우 출산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찾는다고 하더라도 낙인과 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의료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졌으며, 감염인이 출산한 아동은 수직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예방접종을 받는 기본적인 의료행위 조차도 여의치 않은 상황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국가적 방임과 사회적 배제의 과정에서 감염인이 경험해야하는 수치심과 죄의식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응답하지 않았다.

국가로부터 배재된 감염인이 사적 영역, 공적 영역에서 협상력을 가지기는 더욱 어렵다. 공적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 많은 부당 행위는 물론 연인, 가족 등 사적인 관계에서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게 되며, 이는 감염인의 삶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질병의 예방의 차원에서도 감염인에게 성적 낙인을 찍고, 이들의 사회적 삶을 취약하게 방임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낙인과 차별 없는 의료 접근성의 보장, 조기 치료와 정보의 충분한 제공, 감염인의 삶을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들을 개선하여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 하는 것이 지금 당장 필요한 개입이며, 전세계적으로 증명되어온 가장 효과적인 접근일 것이다.

그 시작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에 대한 폐지일 것이며, 이는 개인의 성적 권리, 성적 건강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낙인과 오욕을 넘어 삶을 살아오며, 삶을 증언하고,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인권적 방향성을 제시해온 감염인과 인권 시민 사회 단체들의 노력들에 헌법재판소가 19조 폐지로 응답할 차례이다.

2020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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