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낙태의 죄’와 모자보건법의 역사는 끝났다. 이제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

2019-04-15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한 성과재생산포럼 논평]

‘낙태의 죄’와 모자보건법의 역사는 끝났다.
이제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 제1항, 270조 제1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네 명의 다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단순 위헌’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도 세 명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66년 동안 이어져 온 형법상 ‘낙태의 죄’에 이제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단순위헌 의견과 헌법불합치 의견을 포함하여 결정문에 조목조목 열거된 낙태죄의 위헌 이유는 그 동안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주장되어 온 바를 폭넓게 담고 있어 이번 결정이 분명한 운동의 성과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결정은 2012년 결정(2010헌바402)이 근거로 삼은 공익으로서의 태아의 생명권 대 사익으로서의 여성의 결정권이라는 구도를 폐기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결정이 ‘단순 위헌’으로 모아지지 못하고 ‘헌법불합치’에 머문 점, 형법상의 ‘낙태죄’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의 진전을 이뤘으나 이와 함께 작동 해 온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부족한 점, 그리고 결정권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재생산 권리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매우 협소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한다.

낙태죄의 역사는 형법으로만 작동해 온 역사가 아니며, 경제개발과 성적 통제의 목적에 따른 인구관리의 수단으로서 ‘모자보건법’ 및 제반의 노동, 교육, 보육, 보건의료, 복지, 수용시설 정책 등과 복합적으로 작동해 온 역사이다. 우리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역사는 이와 같은 통제의 역사를 넘어,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이제 두번째 배틀그라운드를 위한 담론과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1. 앞으로의 법 개정과 정책 방향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번 결정의 의미

◾ 태아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립 구도는 더 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결정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공익’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임의적으로 제한가능한 사익’으로 대립 구도에 놓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박탈할 수 있다고 보았던 당시 재판관 네 명의 합헌 의견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천명하였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네 명은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다른 가치나 목적, 법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했고 ,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네 명은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자신의 몸을 임신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씀으로써 임신 유지 혹은 종결에 대한 판단의 권리가 임신 당사자에게 귀속됨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임신중지 감소를 위한 적절한 방안은 “원치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임을 확인함으로써 기존의 대립구도와 처벌을 통한 규제가 아닌 보장과 지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논의구도를 주문하였다.

◾형법상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현행 형법상의 ‘낙태죄’ 조항이

  • 임신기간 전체의 모든 임신중지를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한다는 점
  •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인생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적 삶의 단절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점
  •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 자기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
  • 낙태죄로 인하여 여성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고 오히려 협박과 위협의 빌미가 된다는 점
  •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허용한계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갈등상황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임을 분명히 확인한 것으로, 이는 지금부터 논의해야 할 새로운 법과 정책이 헌법에 근거한 이와 같은 권리를 인구관리 등의 목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구성하고 이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형법 낙태죄 조항에 따른 처벌은 실효성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다수의견에 따라 형법 제 27장 낙태의 죄 중 269조의 자기낙태죄와 270조 중 의사의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단순위헌과 헌법불합치는 기존 법 폐지와 후속 입법조치 사이 공백기의 법적 혼란과 현행법이 갖는 침해성의 경중, 소급 적용 및 국가배상 청구 가능 여부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이 조항이 이미 사문화되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형법 낙태죄 조항의 위헌성은 명백히 인정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단순위헌 의견이 지적하고 있듯 “임신한 여성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간 내의 낙태를 허용할지 여부와 특정한 사유에 따른 낙태를 허용할지 여부의 문제가 결합하는 경우, 낙태의 문제는 다시금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가 있는가의 문제로 수렴하고, 그 결과 오로지 정당화 사유 유무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즉, 임신한 여성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간 내에도 국가가 낙태를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여 줄 뿐이라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 유예기간은 임신중지를 제한하기 위한 특정 시기나 사유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신 당사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고민하기 위한 시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2. 앞으로 진행될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들

◾금지와 규제, 처벌이 아니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두루 고려한 보장과 지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결정 이유에서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건수나 낙태율의 감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네 명과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세 명 모두가 낙태죄 조항이 오히려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등 이 법의 작동이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이 고심 끝에 내린 임신종결 결정은 이미 태아의 생명 박탈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함께 출산 후 양육을 부담해야 할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자신의 신체적·심리적·윤리적 부담을 포함하여 태어날 자녀의 미래의 삶까지 고려한 것이기에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는 데 제한적 효과를 가지는” 상황에서 오직 악의적으로만 작동해 온 형법 낙태죄 조항의 한계와 실태를 인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판단은 처벌을 통한 임신중지 규제가 생명 보호가 아니라 여성 통제에 복무해 왔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며 앞으로의 법 개정과 정책 마련 논의가 처벌과 규제의 틀을 넘어 진행되어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에서는 “낙태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은 형벌의 위하로 말미암아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필요한 사회적 논의 내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단순위헌 의견은 “낙태의 안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로 “낙태 당시 태아의 발달 정도(임신 기간), 의료인의 숙련도, 의료 환경, 낙태 이후의 돌봄과 관리, 낙태에 대한 정보 제공 여부 등”과 함께 “낙태 비용”을 언급하고 있다. 처벌과 규제가 아니라 이런 측면들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가 이후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임신 당사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후기 임신중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한 후 비용 부담 없이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충분한 근거와 함께 확인되고 권고되어 온 바이다.

특히 국가의 경제개발과 인구관리 계획에 따라 형법상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이 이중적으로 작동해 온 지난 역사를 성찰한다면, 처벌이나 규제가 아니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모두 고려하는 방향으로 지원과 보장 체계를 마련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주수나 사유에 대한 논의는 처벌이나 허용을 위한 논의가 아니라 의료적 가이드라인 구축, 차별 해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태아 발달 단계를 기준으로 22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임신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을, 단순위헌 의견은 원칙적으로 전 기간의 임신중지를 허용하되 22주 이후의 경우에 일부 제한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22주’와 같은 특정 시기를 허용/금지 기준으로 법에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 관련 논의에서 주수가 태아와 임신 당사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의료적 기준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임신중지의 사유 또한 국가가 제한하거나 여성에게 증명을 요구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결정문은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이자 종종 언급되는 논점 중 하나인 ‘사회적·경제적 사유(상황, 조건)’에 대한 논평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낙태죄 조항의 위헌 요소를 좁은 의미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조건부 허용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으로 이해함으로써 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따른 결정이 여성 스스로의 신체적·심리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임신 당사자의 신체적·심리적 상황에 대한 고려와 직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 단순위헌 의견은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고 있으며, 제2삼분기 이후의 임신중지에 대해 별도의 장치가 필요한 이유로 다만 선별적 낙태에 대한 우려를 제시함으로써 관련 법규가 임신 당사자의 판단을 의심하고 규율하는 것이 아니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후의 관련 입법 및 정책 마련은 국가가 특정한 사유와 특정한 시기에 제한해 임신중지를 허용하거나 그 정당성을 임신 당사자로 하여금 증명하도록 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존 가능성을 고려하여 임신 후기의 임신중지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나, 이는 징벌이나 규제가 아닌 임신 후기까지 결정이 늦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과 보장 체계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신체적 여건상 보건의료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을수록, 자기결정권을 보장받는 데에 취약할수록,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관계에 있을수록, 초기의 임신중지 결정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 높을수록 결정시기를 놓치고 임신 후기에 이르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가족정책의 변화 필요성, 출산을 할 경우의 지원책이나 입양 정책에 대해서도 통합적인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임신 및 출산 혹은 임신중지에 관련한 법·제도는 국가가 허용 사유를 제한하거나 진단 혹은 상담 의무를 두어 임신 당사자의 판단을 심사하고 재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가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판단을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임신 주수와 중지 사유에 대한 논의는 금지/허용의 기준이 아니라 당사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의료와 사회보장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 임신중지는 ‘거부되어서는 안 될 의료행위’이다.

국제적으로 임신 관련 사망률 및 합병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를 ‘공중 보건’의 문제로 합의한 시기는 1967년 세계보건총회, 1968년 세계인권회의까지 거슬러 간다. 이후 수십 년간 여러 국제 인권 기구와 회의에서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를 예방하기 위한 공중 보건 원칙’이 제시되어 왔고, 세계보건기구는 2003년 “안전한 임신중지 : 보건 체계를 위한 기술과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안전한 임신중지가 ‘인권’임을 분명히 하고, 국가가 ‘인권의 존중, 보호, 실현을 보장’하기 위해서 ‘임신중지에 대한 포괄적인 법적 기반, 안전한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권 보장, 법적·정책적 장벽 제거, 임신중지의 합병증 치료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2018년 10월에 발표된 유엔 자유권 위원회 일반논평 36호 중 6조 생명권 관련 부분 9항은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더불어 당사국은 여성과 여아가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에 반하는 방식으로 임신 혹은 임신중지를 규율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법은 개정해야 한다. 예컨대 비혼 여성의 임신을 범죄화하는 조치, 임신중지를 받은 여성이나 여아를 범죄화하는 조치, 임신중지에 의료적 서비스를 조력한 사람에 형사상 처벌을 가하는 조치는 이뤄져서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조치는 여성과 여아로 하여금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를 받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당사국은 새로운 장벽을 도입해서는 안되며,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부정하는 현존하는 장벽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장벽은 개인 의료 제공자의 양심적 거부 행위도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 ‘신념에 의한 거부’라는 이름으로 임신중지에 대한 시술 거부를 허용하고 있으나, 시술 병원을 찾기 어려워 위험에 처하거나 초기의 임신중지 시기를 놓치는 여성들이 많아 계속해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례를 한국에 도입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원과 조치가 필요한 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란 허용될 수 없으며, 동시에 임신 중의 어떤 시기이든지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적 필요성을 판단하여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적 조치를 제공했다면 이를 처벌하거나 행정조치 등으로 제약해서는 안된다.

◾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경제적 조건이 취약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와 접근성의 충분한 보장이다.

형법의 일괄적 임신중지 처벌 조치는 그간 의료적으로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지만, 단지 법만이 그러한 장벽으로 기능해온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 접근 제한, 제3자의 승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및 시설 제한, 필수의약품으로서의 유산유도제 승인 제한, 사생활과 기밀유지 보장 제한, 개인적 신념에 의한 거부 허용, 숙려기간 및 상담 의무 조건, 건강 정보에 대한 의도적인 검열 및 왜곡” 등을 법 이외의 장벽으로 짚은 다음, “정책 입안은 이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임신중지에 대한 가치중립적이고 충분한 정보 및 포괄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는 제도와 전문가 집단을 내세워 정보를 독점/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 성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그것을 토대로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난민 등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정보에 기반한 동의(informed consent) 측면에서 본다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인 임신중지를 받는 데 있어서 제3자, 예를 들어 전문의, 관련 위원회, 법정, 부모/후견인(보호자), 파트너/배우자 등의 승인이 결정의 조건이 되거나 사생활과 기밀유지의 권리가 박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3자의 승인을 요구하거나 기밀유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결정권을 현저히 제한할 수 있다. “헌법의 인간상은 자기결정권을 지닌 창의적이고 성숙한 개체”이며, “헌법상 자기결정권의 본질은 자신이 한 행위의 의미와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의학적 동의에서 전제하는 인간상이며, 이 권리를 예외적으로 박탈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

하나. 인구통제와 성적 규제의 역사를 청산하라.

  • 정부는 위헌성이 확인된 형법 제 27장 ‘낙태의 죄’에 대한 수사·기소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라.
  •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를 위시한 법적·정책적 수단에 자신의 몸과 권리를 침해당해 온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 국회는 형법 제 27장 ‘낙태의 죄’를 완전 폐지하고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을 마련하라.

하나. 허울뿐인 모자보건의 역사를 끝내고 재생산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라.

  • 모자보건법의 역사를 끝내고 포괄적 재생산 보장법을 제정하라.
  • 성교육, 성관계, 피임, 임신, 임신유지, 임신중지, 출산, 출생등록, 입양, 양육 등 전 과정에 걸쳐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권리에 대한 보장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 노동, 보건의료, 복지, 이주, 가족 정책 전반을 새롭게 재구성할 정부 차원의 논의 체계를 마련하라.
  • 유산유도제 도입, 피임 및 임신중지 의료보험 적용, 실효성 있는 상담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즉각 시행하라.
  • 장애나 질병을 지닌 이들과 아동·청소년, 이주민·난민 등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피임·임신출산·임신중지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보, 교육, 의료, 양육지원 서비스 등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라.
  • 이주민과 성소수자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라.
  • 가족구성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실시하라.

2019년 4월 15일
성과 재생산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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