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트랜스젠더 부사관은 군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없는가 -변희수 부사관에 대한 성적권리와 노동권 침해를 규탄한다.

2020-01-23

2020년 1월 22일, 국가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한민국 육군본부는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부사관에 대한 전역 결정을 내렸다. 부사관의 확고한 복무 의지에도 불구하고 군은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의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 법령에 근거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해당 결정을 합리화했다. 성 정체성 사안과 별개인 의학적 진단에 따른 결과라고 비겁하게 말을 돌린 것이다. 이에 불복한 변희수 부사관은 부사관 특성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부정해야만 했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지난했던 과정을 통해 트랜스젠더이자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고 군의 부당한 결정에 끝까지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변희수 부사관의 용기있는 결정과 대응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강력한 규탄의 입장을 밝힌다.

전역 결정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군의 무지와 차별의 소산이다.

육군본부의 전역 결정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군의 무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랜 기간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변희수 부사관은 국군수도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으면서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겠다고 결심했고, 변 부사관이 받았던 정신과 상담과 호르몬 치료, 그리고 성별재지정 수술은 성별위화감에 따른 일련의 의료조치였다. 그러나 소속 대대의 허가를 얻어 멀리 태국까지 가서 힘겹게 수술을 하고 돌아온 부사관에게 국군수도병원은 스스로 ‘성기 훼손(음경고환결손)’이라는 장애를 유발했으므로 ‘심신장애 3급’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수술 후에 낸 성별정정 허가신청 결과를 채 기다리기도 전에 국군수도병원의 의무조사에서 육군본부 전역심사위원회의 전역 결정까지는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은 이 모든 절차에서 훼손되고 없었다.

트랜스젠더는 단순히 성기의 유무나 모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는가에  관한 것이며, 2018년 개정된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위해, 기존의 정신질환 하위의 ‘성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는 진단명을 삭제하고, 성건강상태(sexual health)하위의 ‘성별 불일치(incongruence)'라는 진단명으로 재분류하였다. 이는 의료적 관점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상태로 인지하겠다는 취지이다. 국제적이고 다학제적인 전문가협회로 트랜스젠더 건강 분야에서 근거 중심의 의료를 연구해온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에서는 성별 위화감에 대한 의료적 조치는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다양한 방법과 순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와 같은 의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이미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에게 성별재지정 수술을 자의적인 ‘성기훼손'으로 인한 장애로 판정하여 전역을 강요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자 폭력에 해당한다. 

군의 이번 결정은 신체조건에 대한 차별이자 성차별에도 해당한다. 

변희수 부사관에 대한 전역 결정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특정한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군의 복무 역량을 판정한다는 점에서 신체 조건에 대한 차별이자 성차별에 해당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변희수 부사관은 군에 복무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고 전차 조종과 참모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성전환을 위한 의료적 조치를 이유로 군 복무에 부적합한 신체로 간주되었다. 실제 군사 역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성 성기의 온전성이 군 복무의 적합 여부를 가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군이 특정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남성성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남성 신체를 중심으로 정상성을 판정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 구조를 유지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군인의 역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때 남성 군인과 여성 군인의 역량을 차별적으로 가르고 군을 중심으로 남성 중심의 정상성을 강화하는 차별적 인식과 구조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은 변희수 부사관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노동권을 침해했다. 

우리는 군의 이번 결정이 변희수 부사관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노동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점에도 주목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제22호에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사안에 대해 폭력∙강압∙차별로부터 벗어난 자유롭고 책임있는 결정과 선택을 할 권리를 지니며, 성과 재생산 건강권의 완전한 향유를 보장하는 건강관련 시설, 재화, 정보 일체에 대한 방해받지 않는 접근을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이 권리는 적절한 주거,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 및 환경, 건강관련 교육 및 정보로의 접근, 모든 형태의 폭력∙고문∙차별 그리고 기타 성과 재생산 건강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권침해로부터의 효과적인 보호 등과 같은 성과 재생산 건강의 근원적인 결정요인까지 포함한다. 군의 이번 결정은 이와 같은 권리 전반을 명백하게 침해한 것이며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온전히 찾기 위한 조치를 이유로 변희수 부사관의 노동권과 제반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보장 요건을 침해한 행위이다. 

이미 많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군인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육군본부는 그동안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해온 변희수 부사관과 동료들이 보여준 차별없는 군대를 위한 노력, 그리고 트랜스젠더 군인을 포함한 모든 군인들의 역량을 신뢰하며 이 부당한 전역 결정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해당 조치를 철회해야 하며,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적절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을 중시하는 군 문화를 위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용기있게 앞에 나서준 변희수 부사관을 지지하며 우리도 계속해서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2020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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