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이제 인구재생산이 아닌 삶의 재생산을


나영



올해는 건강가정기본계획과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4차 계획을 맞이하게 되었다. 두 계획 모두 혼인과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설정해 온 기존의 정책 방향에서 조금씩 관점을 달리하여 다양한 가족과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내용을 포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일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건강가정’과 ‘출산’을 정책 실현의 목표로 설정하는 틀 자체를 폐기할 필요가 있다. 이 틀이 유지되는 한, 아무리 다양한 가족과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그 틀 안에 추가하여 넣는다고 해도 기존의 ‘이성애 혼인 관계 중심의 건강 가족’과 ‘출산을 위한 성·재생산 건강’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위계화하거나 취약, 위기 지원의 방식으로 설정하는 문제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요 문제설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가족을 통해 해소하겠다는 전제를 바꾸어야 한다. 둘째, ‘출산할 수 있는 몸’과 ‘출산할 수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정책을 고려하는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셋째, 사회구성원의 재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에 관한 관점을 인구 재생산이 아닌 삶의 재생산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단지 기능적으로 사회 구성원이 될 인구를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왔다면 이제 우리는 각 개인들의 삶이 어떻게 온전하게 사회적으로 보장받고 재생산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가야 하는 것이다. 재생산 정책의 관점과 방향이 이렇게 전환될 때, 다양한 관계 안에서 서로의 돌봄이 더 가능해지고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보장 방향도 보다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재생산 정책의 보장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 1인 가구이든 여럿이 함께 사는 가구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가족의 단위가 아니라 개인 삶의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 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 통제와 재생산 비용의 해소를 목적에 둔 가족정책과 저출산 정책의 역사


‘다양한 가족’은 사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가족과 여러 형태의 돌봄 관계가 존재해 왔고 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관계망 또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족들과 관계가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왔을 뿐이다. 이는 사회적 재생산 비용과 돌봄 부담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특정 형태의 관계만을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인구 정책을 만들어 온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사실상 현재의 가족정책은 7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계획 정책이 의도했던 바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결국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정책은 곧 출산 조절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족정책의 목표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특정한 가족의 형태를 근대화된 정상가족으로서 이상화하는 것에 있었고, 이는 곧 근면한 비장애인 부모가 혼인 관계 안에서 비장애인 자녀를 적게 낳아서 잘 키우는 것, 근면성실하게 노동하는 아버지와 수입에 맞춰서 가족 살림을 검소하게 꾸려나가며 가장을 보필하고 자녀 교육에 힘쓰는 어머니. 그리고 성공한 아들,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딸의 모습으로 구성되는 가족을 의미했다. 그리고 자녀에게 이러한 성공한 모델들을 물려줌으로써 노후 돌봄과 경제적 부양을 기대하는 방식으로 가족단위 재생산 비용이 이어지도록 만든 모델인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가족을 이루고 유지하는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 국민으로서의 역할로 설정되어 왔다. 따라서 가족은 단순히 개인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이런 국가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요구된 관계이며, 정상가족, 정상신체, 그리고 국민으로서의 역할과 규율에 잘 따르는 시민을 양성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가족에게 부여된 의무이고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임신·출산과 관련된 섹슈얼리티의 문제 또한 이러한 형태의 가족 관계에 잘 맞춰지도록 통제되어 왔다. 제도적으로 용인된 한국인 비장애인 남성과의 혼인 관계 외의 출산은 낙인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고, 다른 형태의 가족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혹은 자녀와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지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로 시설화와 입양으로 귀결되는 제도를 계속해서 만들어 왔다. 이성 간 결혼을 통해서만 독립을 위한 자원 획득이 가능한 방식도 이런 가족계획 정책을 통해서 만들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저출산 시대에는 이전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출산에 대응하려고 했다. 저출산 정책에서의 핵심 내용은 일·가정 양립, 사회적 돌봄 비용 해소로 압축된다. 이전까지의 가족정책이 남성 생계부양자에 더 많이 기댔던 모델이라면 저출산 시대에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목표를 통해 일터에서의 노동과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재생산 노동은 그대로 비가시화, 비가치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여성들은 슈퍼우먼이 되거나 아니면 둘 모두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애 가족과 혼인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난임지원 정책은 여성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와 함께 결혼 이주를 통해서 인구재생산과 사회적 돌봄 부담을 해소하고자 하였고 이주 여성들의 거주 자격 자체를 한국인 남성과의 출산 여부에 종속되게 만드는 한편, 재생산 노동과 동시에 생계부양을 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서 활용하고자 해왔다.


결국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의 임금에 다른 구성원들이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 정상가족의 모델이었고. 나머지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부여되지 않았던 구조를 지금까지의 가족정책이 만들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아동·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은 삶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단절되는 순간 노동과 주거 조건에서 취약해지고 사회복지 시스템에 의존하거나 시설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자립을 위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취약을 증명하고 위기임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성소수자나 비혼 동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이런 가족으로서 인정되지 않음으로써 제도 밖에서 차별과 낙인이 지속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가족의 인정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관계를 보장하는 정책이 되어야


이미 ‘다양한 가족’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1인 가구, 동성 혹은 이성 간 커플이나 폴리아모리 가족, 다양한 국적의 가족, 자립생활 공동체, 돌봄 공동체 등 여러 형태의 관계와 그 안에서의 양육이나 돌봄이 존재하고, 생애주기에 따라서는 비혼, 동거, 결혼, 이혼, 재혼 등 관계에서의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혼자 살거나, 같이 살거나, 혼자 혹은 둘 이상이 현재의 관계와 과거의 관계에서 이어진 출산과 양육을 함께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한국인 남성과의 혼인 관계 안에서의 임신 출산이 아닌 경우에는 모두 위기임신이나 취약가족이나 비정상가족, 제도권 밖에서 방치되는 가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가족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인구 재생산이 아닌 삶의 재생산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여겨져 온 ‘취약가족’이나 ‘위기임신’이라는 정책의 틀부터 폐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상가족’에서의 인구 재생산을 중심에 둔 가족정책에서는 노동, 주거, 사회보장 정책에서의 사각지대를 취약이나 위기라는 이름으로 관리해 왔고, 선별적 지원과 그에 따른 자격증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차별적 상태를 공고히 해 왔다. 한편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은 선별적 허용과 처벌의 이중통제 방식을 통해 사실상 특정한 삶의 방식과 생명 자체를 국가가 선별하는 장치로서 작동해 왔다. ‘위기임신’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과 제도는 이러한 처벌과 선별적 허용의 틀에서 유지되어 왔던 방식이며 이는 소위 ‘정상가족’ 밖에서의 임신을 낙인으로 유지하면서 개인에게 자원과 역량을 보장하는 대신에 시설과 입양으로 귀결되는 지원 방식을 강화해 왔다. 청소년, 장애인, 이주여성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주변인의 의사에 따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임신중지를 하거나 입양을 보내거나 시설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은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출산과 생식을 위한 성 건강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포괄적인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물론 임신중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출산에 중점을 두면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생애주기에서 단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재생산정의의 관점에서 삶의 재생산으로의 전환을 고려한다면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가족 관계 밖에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가능해야 하고, 개인의 삶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 주거, 사회보장 정책, 보건의료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선별적 지원이나 집단 맞춤형 지원이 아니라 개별 상황과 조건에 따른 지원체계로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주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의 집단별로 취약 집단을 선별하고 그에 따른 위기상황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상관없이 개인의 경제적 상황, 파트너와의 관계,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 등 다양한 개별 상황에 따른 조건을 고려하여 자원과 역량을 마련하는 지원 방향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양한 관계 안에서 돌봄을 모색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 또한 보다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적권리가 이 변화에서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짚고자 한다.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젠더폭력으로부터의 안전이라는 부분을 성·재생산 권리 보장의 영역 안에 넣었지만 폭력으로부터의 안전은 오히려 성적권리의 보장을 통한 효과이지 목표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피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삶에 필요한 역량과 자원을 평등하게 보장받을 권리로서의 성적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의 성적권리의 보장 목표는 성소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지난 달 우리는 세 명의 트랜스젠더 시민을 잃었고, 한편에서는 마치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인정 여부가 성소수자 시민에 관한 정치적 이슈의 전부인양 이슈가 되었다. 성소수자의 삶, 성적권리와 차별 반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협소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성소수자여서, 장애인이어서, 청소년이어서 가족을 구성하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역량이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애초에 그 자격을,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하지 않았고. 부여하지 않아 온 것이다. 우리의 성적권리와 삶에 대한 요구는 단지 어떤 존재로 인정되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그 삶 안에서 노동하고 관계 맺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돌봄을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서의 요구이고 그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가족정책의 전환, 인구 재생산이 아닌 삶의 재생산으로의 전환을 위한 재생산정의의 방향이 될 것이다.



*이 글은 2021년 3월 19일 진행되었던 토론회 <‘가족구성권’을 넘어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가족정책을 제안하며>에서 발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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