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연재 |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월경 경험으로부터 건강을 재구성하기 | 최예훈


월경 경험으로부터 건강을 재구성하기


최예훈

yhoon13@naver.com 

산부인과 전문의, 색다른의원 원장,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에브리바디 플레져랩팀


👉오늘의 교육에서 전체 보기 : https://bit.ly/3BoquXU 


들어가며


앞서 본 연재의 취지를 밝히는 글 서두에서 ‘건강’이라는 개념을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특히 건강이 섹슈얼리티[ref]유네스코의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와 관계, 감정적 애착과 사랑, 섹스, 젠더, 젠더 정체성, 성적 지향, 성적 친밀감, 쾌락과 재생산을 포함하는 인간됨(being human)의 핵심적 차원”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으로 여기에서 누구도 예외란 없다. UNESCO(2018), International technical guidance on sexuality education: an evidence-informed approach.(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260770)[/ref]  와 연결될 때, 건강으로 포장된 정책이나 법률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기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모자보건법」[ref]1973년 당시 가족 계획 사업과 발맞추어 제정된 「모자보건법」의 제1조(목적)는 “모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보건향상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였다. 이후 저출산 대책으로 전환되면서 2009년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개정되었는데, 이때 ‘모성’을 처음으로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이라 정의하고, 사업 범위를 ‘모성’의 “생식건강 관리와 임신·출산·양육 지원”, “난임극복 지원”까지 포함시켰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ref] 의 목적과 정의 조항을 살펴보자. 이 법률은 목적부터 수상한데,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호”하겠다고 한다. 이어서 ‘모성’을 정의하는데, 비법률적 용어를 법문의 주체로 가져오다 보니 특수한 생물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간주하는 개인을 지칭하는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으로 신박하게 인격화되었다. ‘가임기 여성’은 섹슈얼리티 관점에서 볼 때 더욱 문제적이다.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차원을 무시하고 섹스, 젠더, 젠더 정체성 및 성적 지향을 단일한 성질인 양 일축한 뒤에, 친밀감이나 쾌락을 배제하고 오직 재생산을 목적으로 한 성적 실천을 전제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법률에 근거한 사업은 출산을 목적으로 한 지원에만 집중되고, 피임 및 임신 중지, 갱년기 등 생애주기를 고려한 건강 지원은 전무하다. 이른바 ‘모성’들은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야 하며, 임신과 출산이야말로 국가적 발전을 위한 그들의 임무이다. 섹슈얼리티와 건강을 교차해서 볼 때, 전 생애주기 중 일정 기간 월경 하는 사람의 섹스, 젠더 정체성, 쾌락 및 친밀감과 관련한 건강은 법률 뒤편으로 빠져 있다. 이처럼 한 인간을 재생산에 필요한 신체 기관으로 축소해 버릴 때, 최소한의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한 다채로운 활동은 가려지고 삶의 형상은 한없이 단조롭고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이번 글에서는 월경이 사회적으로 의미화되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실제 월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포괄적 성교육에서 지향하는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 및 가치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로 보아도 좋다. 더불어 의료 지식 및 정보의 편향성을 최대한 제거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최대한 쉽게 제공하려는 노력이 어떻게 공동의 삶을 확장하고 변화시킬지 상상해 보기를 기대한다.


월경을 경험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월경은 특정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의 개별화된 단독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특정한 신체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바로 그 공통성으로 인해 규범화된 서사가 있다.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월경은, 자궁과 난소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월경을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사실로 설명하는 방식은 대부분 임신이 그 중심에 놓인다. 가령 대한산부인과의사회[ref]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관리하는 사이트인 ‘WISE WOWAN 피임·생리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다. “수정란은 자궁으로 들어와 푹신한 자궁내막에 파고들어 착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난소에서 이 두 호르몬을 더 이상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자궁내막을 키우고 유지하는 호르몬이 떨어지면 쌓여 있던 자궁내막이 자궁의 벽에서 분리되어 혈액과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이것을 ‘생리’ 혹은 ‘월경’이라고 부릅니다.” “여성이 생리를 시작하는 것은 임신이 가능한 성숙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생리를 처음 시작하여 폐경기를 맞을 때까지의 여성을 ‘가임 여성’이라 합니다. 이 말에는 초경 이후 폐경까지의 모든 여성들은 임신이 가능하므로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항상 임신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www.wisewoman.co.kr/piim365/index.html) [/ref]는 월경을 “수정 실패로 인한 자궁내막의 탈락”으로 설명한다. 의학 용어들이 등장하면 얼핏 객관적인 묘사인 것 같지만, 다른 설명에서도 월경의 최종 목적은 역시 임신으로 간주된다. “에스트로겐은 생리 주기의 전반부에 증가하여 자궁내막을 두텁게 하고, 프로게스테론은 생리 주기의 후반부에 증가하여 두텁게 준비된 자궁내막을 유지, 발달시켜 수정란의 착상이 잘되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 두 호르몬이 감소하여 자궁내막이 탈락되어 몸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되며……”. 즉 월경은 임신을 전제한 생물학적 과정이자 사실로서 설명된다. 게다가 정보 전달을 넘어 미래에 있을지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항상 임신에 대비”하여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여기”라며 윤리적 판단자를 자임한다. 

과학적 지식의 생산 주체와 의료 권력에 대한 비판은 논외로 두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월경을 생애 전반에 걸친 건강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어떻게 다른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가. 생애주기 동안 임신 기간보다 임신하지 않는 기간이 훨씬 길고, 한 번도 임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ref]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여성’의 기대 수명은 87.1세이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인구변동 모니터링 및 연보〉에 따르면 재생산율(가임기 여성 1명당 여아 수)은 2020년 0.40으로 추산한다.[/ref] 실제 월경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서사가 축적된다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상 이야기되는 월경에서 소외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지는 힘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임신을 전제하지 않은 월경 경험을 말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사회 제도와 법률을, 나아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ref]임신과 출산을 중심으로 한 여성 신체의 대상화를 넘어 스스로의 건강, 삶의 질, 자기 돌봄의 측면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제안한 시도도 있다. 예를 들어, 권순택·김세옥(2023), 《여성들의 자궁 이야기 - 임신 출산은 빼고》, 탐탐. [/ref] 

지난 ‘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월경 건강 편에 참여한 이들은 통상 이야기되는 월경과 괴리된 개별 경험들을 나누었다. 자신이 경험한 월경을 증상으로 말하거나 대처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다양했고, 사회적으로 부착된 월경의 이미지나 고정관념에서 촉발된 감정들이 뒤섞여 있기도 했다. 특히 젠더에 대한 탐색과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월경에 대한 위화감은 극대화되기도 하고, 월경 경험을 재현하고픈 욕망을 추동하기도 한다.[ref]희원,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퀴어의 삶을 연속선상에서 사유하고 재현하기”,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4년 5월 1일. [/ref]


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들 - “나의 한 달에서 없는 며칠이야”[ref]‘무엇이든 물어보셰어’ 월경 건강 편 후기를 바탕으로 하였다.(srhr.kr/announcements/?idx=56968645&bmode=view)[/ref]


월경과 관련된 증상은 다양하여 모두 나열하기 어렵다. 월경 기간을 포함해서 전후에 구역, 구토, 설사, 변비 등 위장관계 증상도 있을 수 있고, 우울, 불안이나 감정 기복 등 심리적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통증만 하더라도 복부, 골반, 허리, 다리, 머리 등 통증을 느끼는 부위도 다르고, 고통의 정도 및 양상도 다 다르다. 통증을 숫자, 그림과 같은 척도를 사용하여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해도[ref]Numerical Rating Scale, Visual Analogue Scale 등 [/ref] 각자의 느낌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월경 과다로 인한 빈혈은 만성적인 피로, 무력감, 운동 시 호흡 곤란 등을 유발하고, 자궁이나 난소 질환에 의해 생기는 빈뇨, 변비, 진통제로 조절되지 않는 악성 통증과 같은 2차적 증상까지 열거한다면 끝도 없겠다. 이러한 증상들은 월경 기간이 아닌 때에도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월경에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은 월경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한·양방 통틀어 의료인들이 직접 홍보하는 건강 기능 식품, 온라인 쇼핑 광고부터 자신의 체험담을 엮어 증상 완화와 관련한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는 블로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종종 증상 완화 방법에 대한 부작용은 어느새 괴담이 되어 두려움과 공포를 유발하는데, 유독 ‘여성들’이 먹는 약과 치료에는 이런 두려움과 공포의 이미지가 강하다. “여자 몸에 안 좋을 것 같다”처럼 막연한 두려움 말이다. 여기서 잠깐, 부작용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부작용은 모든 약이나 치료에서 나타나며, 의미 그대로 몸에 해로운 작용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고, 한편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나타난 효과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여자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은 앞서 이야기한 임신 가능성에 대비해서 조심해야 하는 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잠재적인 임신 가능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 가진 증상을 참고 견디도록 강제하는 힘이 있는 말이다. 그 예로 피임약은 월경 증상을 조절하고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임의 효과만이 강조되어 ‘피임약’으로만 호명되어 왔다. 그래서 임신할 일이 없거나 청소년처럼 임신하면 안 된다고 간주되는 이들에게 사용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오래 복용하면 불임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기도 한다. 

두려움이나 공포는 환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월경을 나의 삶에서 떨어뜨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곧장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월경에 부착된 임신 가능성, 여성성과 같은 사회화된 의미에서 거리 두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클수록 완벽한 무월경을 꿈꾼다. 증상만이 아니라 월경 자체에 대한 위화감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로 월경 중단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 “월경을 하는 나의 몸과의 불화”, “월경 그 자체, 매달 피를 봐야 되고 통증을 느끼고 어떤 신체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난 월경과 관련된 아무것도 연관되고 싶지 않고, 나의 한 달에서 그냥 없는 며칠이야 정도의 느낌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호르몬 요법이나 수술과 같은 의학적 기술을 이용할 방법을 스스로 탐색한다. 큰맘 먹고 찾아간 의료 기관에서 ‘호르몬 루프를 하면 임신하기 어렵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이 자궁을 제거하는 것은 안 된다’는 식의 언사를 듣고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젠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월경 경험은 어떤 이에게 “분명 나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로 인해 내가 삭제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월경이 일상을 영유할 권리가 박탈되는 경험이 된다. 이들에게 현재의 의료 기술로 가능한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월경 지식의 재구성


한편 월경 경험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 두려움, 공포, 억울함, 분노이기도 한 감정들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저마다 다른 월경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일정 부분은 이미 만들어진 의료 지식을 배경으로 형성된다. 월경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자궁으로 불리는 ‘여성’만의 특수한 신체 기관에서 비롯되며 마치 재생산이라는 목적성 있는 행위(行爲)처럼 오인되고 있는 지식 형태 말이다. 의료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긴 역사 속에서 전문성과 권력을 획득하게 된 서구 의학 및 거대한 의료 체제부터 진료실에서 개별 의사가 사용하는 언어, 비유와 태도 같은 미세한 활동까지 수많은 작용들이 개입된다. 의학 관련 도서, 동영상, 포털 사이트, SNS 등 여러 전달되는 매체도 지식 형성 과정에 주요한 개입 요소일 수 있다. 지식과 정보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고 전달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기존에 유통되는 월경 지식에 개입하여 우리 몸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재구성할 수 있을까. 소외된 월경 경험을 바탕으로 월경을 이해한다면 어떻게 설명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월경에 대한 설명 방식을 바꾸는 것이 월경 경험을 하는 이들의 일상을,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바라고 있는가.

이제부터는 임신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월경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 가능한지 시도해 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임신은 월경 가능한 약 35년 기간 중에 유일하게 질환이 아니면서 무월경이 지속되는 상태이다. 피임 방법이 현대화되고 삶의 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출산을 택하는 일도 줄어들어 임신 기간은 전 생애 기간 중 극히 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임신에 비해 절대적으로 긴 기간 동안 나타나는 생리 현상인 월경을 ‘수정에 실패하면’ 일어난다거나 ‘임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 등 임신을 중심으로 설명해 온 관습은 지속되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이제까지의 과학적 발견에 의해 밝혀진 바, 월경은 난소, 자궁, 뇌와 같은 특정한 신체 기관들이 신경 전달 물질, 분자 및 세포생물학 수준에서 외부 환경과 조우하여 만들어 내는 결과이다. 그중에서도 호르몬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생애주기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를 이해하면 임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월경을 설명할 수 있다. 


성 호르몬(sex hormone)에 대한 오해


우선 호르몬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호르몬은 혈액을 통해 이동해서 어떤 기관 및 조직에 작용하여 특정한 영향을 끼치는 화학 물질을 일컫는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장소는 신체 전반에 걸쳐 분포하는데 뇌하수체, 갑상선, 부신, 췌장, 난소 및 정소 등이 있으며 기관에 따라 분비되는 호르몬의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몸의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중 뇌하수체는 뇌의 신경조직인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물질에 의해 호르몬을 분비하여 갑상선, 부신, 난소 및 정소와 같은 다른 호르몬 분비 기관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소와 정소는 뇌하수체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에 의해 작용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호르몬을 분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성 호르몬(sex hormone)이라 하고, 난소와 정소를 생식샘이라 부르는데, 이는 성적 특성 변화에 기여하는 역할에 주목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러한 이름으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난소와 정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하는 역할을 조금 더 살펴보자. 흔히 난소에서는 에스트로겐, 정소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며 각각 ‘여성호르몬’, ‘남성호르몬’으로 통한다. 우선 에스트로겐은 자궁, 질, 유방뿐만 아니라 뇌, 뼈, 심혈관계, 폐, 간, 비뇨기계 등 신체의 많은 장소에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에스트로겐이 자궁에 작용하면 월경이 나타나고, 유방에 작용하면 유선 성장과 발달이 일어난다. 또한 뼈에 작용하여 골밀도를 유지하고,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며 뇌의 인지 기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갱년기 이후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 월경이 멈추고 질 분비물이 감소하며, 특히 골다공증과 심혈관계 질환의 빈도가 증가한다. 한편 테스토스테론도 마찬가지로 음경과 같은 성기뿐 아니라 부신, 뼈, 근육, 혈관, 뇌 등 신체의 많은 부분에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근육에 작용하여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뼈에 작용하여 뼈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호르몬이 성적 특성 말고도 신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또 한 가지 하기 쉬운 오해가 있다. 바로 에스트로겐은 난소에서, 테스토스테론은 정소에서만 분비된다는 것이다. 난소와 정소가 호르몬이 분비되는 주요 장소임은 맞지만, 부신, 말초 지방 조직처럼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관에서도 분비된다. 조금 상세히 들어가면 에스트로겐, 안드로겐(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한 ‘남성호르몬’의 총칭)은 유사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특정한 효소에 의해 안드로겐이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은 당연히 난소에서도 에스트로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난소를 가진 사람에서도 적은 양이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 부신에서도 안드로겐이 생산되며, 피부의 지방 조직에서는 안드로겐이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이들 호르몬은 생식샘이 난소인지 정소인지에 따라 우세한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여성호르몬’, ‘남성호르몬’이라는 명칭은 달리 쓰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은 그 역할이 성적 특징 이외에 신진대사, 심혈관계, 골격계와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생리 현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월경 주기에 대한 설명


사실 월경을 묘사하는 비유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에밀리 마틴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생산의 비유를 사용하여 월경을 생산에 실패하거나 잘못된 생산의 이미지로 묘사해 왔던 것에 비해 위액이나 정액의 경우에는 그러한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 경향에 대해 지적했다. 후자에는 ‘퇴화, 쇠약, 퇴보, 복원’보다 중립적인 ‘분비, 재생, 벗겨짐, 대체’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가 월경을 설명한 문장을 세심하게 살펴보자. 

이전에 상당히 높았던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짐으로써 자궁내막 조직의 과도한 층을 감소시키는 적절한 환경이 창조된다. 모세혈관의 수축은 낮은 수치의 산소와 영양물을 유발하여 월경액의 왕성한 생산으로 길을 터 준다. 남아 있는 자궁내막이 재생되는 일환으로, 모세혈관은 다시 열리기 시작하고 약간의 혈액과 혈장은 이미 흐르기 시작한 다량의 자궁내막 물질로 보내진다.[ref]에밀리 마틴, 김희선 옮김(1987), 〈여성의 몸에 관한 의학적 비유 : 월경과 폐경〉,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케티 콘보이 외, 고경화 외 옮김), 도서출판 한울, 55쪽. [/ref]

월경은 단지 자궁내막의 일부가 벗겨지고 대체되는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위의 설명에서 임신이라는 목적론은 발견할 수 없다. 월경혈의 생산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에밀리 마틴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월경에 대한 설명을 월경 주기 전체로 확장해서 보태 보겠다. 

호르몬과 월경 주기[ref](왼쪽) Kong, L. et al.(2014), Nickel nanoparticles exposure and reproductive toxicity in healthy adult rats,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15(11), pp. 21253-21269; (오른쪽) drfionamcculloch.wordpress.com/2010/03/16/hormones-and-mood-pms/  [/ref]


월경 주기 첫날 에스트로겐은 낮은 상태였다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난포자극호르몬(FSH)에 의해 난소에서 난포들의 성장이 자극되면서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점차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자궁내막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여러 난포들 중에 하나의 난포만 선택되어 자라게 되는데 배란 직전 에스트로겐의 분비를 최고치에 이르게 하고 뇌하수체의 황체형성호르몬(LH)의 급격한 증가를 유도하여 배란이 일어난다. 배란 이후의 난소는 황체를 형성하는데, 특히 황체에서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에 의해 자궁내막이 계속해서 증식되는 것을 중단하고 분비기로 접어들게 한다. 일정 기간 황체의 역할이 다하게 되면 시상하부-뇌하수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동시에 감소한다. 이때 자궁내막의 발달된 모세혈관으로 가는 혈액과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서 자궁내막의 일부가 혈액과 함께 벗겨지게 되는데, 이것이 월경이다.

다시 약간의 인내심을 가지고 월경이 있기 약 2주 전에 배란 현상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만약 내가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한다면, 월경 전에 배란이 규칙적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자궁에만 작용하는 것을 넘어 신체 전반에서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에스트로겐이 뼈와 심혈관계, 뇌, 심장, 간 등 여러 기관과 조직에서 하는 다양한 생명 현상 유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뜻이다. 역으로 무월경은 무배란의 가능성이 크므로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몸에 필요한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경을 임신과 상관없이 한 달에 한 번 신체에서 보내는 건강 신호로 볼 수 있다.


호르몬을 이용한 증상 조절


월경이 규칙적인 배란과 짝지어진 생리 현상이라면, 이에 착안하여 월경 증상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진통제를 복용해도 효과가 없다면 다음 단계로 할 수 있는 방법은 호르몬을 이용한 증상 조절이다. 즉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작용을 이용해서 월경 주기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경구피임약, 미레나(호르몬 자궁 내 장치), 임플라논(피하 장치) 등은 외부에서 합성된 호르몬으로 월경 증상의 치료 목적, 특히 통증과 양을 감소시키고 자궁내막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무월경을 유도하는 방법도 완벽하지 않지만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용량의 합성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으로 이루어진 복합 경구피임약은 3주 복용과 1주 휴약하는 주기적 복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휴약기 없이 연속으로 사용하면 무월경이 가능해진다. 합성 프로게스테론으로 만들어진 자궁 내 장치나 피하 장치도 일부에서는 무월경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호르몬을 이용한 방법은 어떤 이유로든 무월경을 필요로 하는 경우 자궁 제거술을 할 수 없는 경우나 수술하기 전에 선택할 수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 만들기


월경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화하기 위해 임신이라는 목적론적 설명 없이 월경을 설명하는 시도를 해 보았다. 성교육 현장에서 월경에 대한 설명은 교육 대상에 따라 달라져야 하지만, 특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에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장애, 이주 상태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일상과 노동, 삶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지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보겠다. 

앞서 이야기한 경구피임약, 미레나, 임플라논 등은 호르몬을 조절함으로써 월경과 관련한 증상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피임 효과는 당연히 따라오지만, 임신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효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모두 피임법으로 분류되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접근성이 낮고 궁극적으로 국가적 의료비 상승의 원인이 된다.[ref]미레나 시술은 월경 과다나 통증이 심한 월경곤란증일 경우 예외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ref] 피임법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이는 월경을 오직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만 인식하는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월경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제도적 변화로 바로 달려오는 것은 아닐지언정, 경험을 지식으로 만드는 일이 보건 의료 관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에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으리라 기대한다.

얼마 전 한 대학에서 생리 공결을 인정받으려면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하고 이를 시행했다는 문구가 기재된 진단서 및 진료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공지를 해서 논란이 된 적 있다. 소변 검사로 생리 중임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한편 이 황당한 에피소드는 단순히 행정처의 무지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의 생리 공결, 노동자의 생리 휴가의 궁극적 취지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월 1일 생리 휴가는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에는 일부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지 몰라도 실제 월경을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월경과 관련한 증상이 월경 기간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월경을 경험하는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앞서 토크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월경 주기에 따른 몸의 변화가 어떤 사람에게는 매 순간 일상에 영향을 줄 만큼의 고통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참고 넘어갈 수준의 증상일 수 있다. 다양한 월경 경험을 제도로 반영하려 할 때, 그 목적으로 생산성 향상보다 개인의 건강할 권리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월경이나 몸에 관련된 정보를 얻고 재구성하는 데 어려움은 의료의 특수성에서 생기는 정보의 비대칭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적이고 근거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유통 관리하는 국가 시스템이 부재한 탓도 크다. 「모자보건법」에서 명시한 목적처럼 국가가 월경을 다룰 때 임신에만 초점을 맞춰 접근하기 때문에 생애주기에 따른 변화를 무시하며 피임 및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성마저 가로막아 성·재생산 건강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월경 경험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노동, 돌봄, 복지, 의료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 월경에 대한 분노, 억울함, 무력감과 같은 감정을 넘어 우리의 경험을 공통된 지식으로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월경하는 몸이 살아가기에 적절한 제도를 구상하고 논의할 수 있다. 서로의 월경을 이야기하고 새롭게 설명하는 방식을 고안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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