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위험과 책임의 공동체 ― 『애도와 투쟁』을 읽으며



 

안팎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기존의 지식과 규칙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런 지식과 규칙이 완전히 부재하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한 행동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완전히 제거되어 부재하는 상태. 이런 상태 속에서도 앞으로 묵묵히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책임감’이라고 할 만한 것과 마주한다.

― 토머스 키넌[ref]Thomas Keenan, Fables of Responsibility: Aberrations and Predicaments in Ethics and Politics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pp. 1~2. 더글러스 크림프 지음, 김수연 옮김, 『애도와 투쟁 ―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 (현실문화, 2021), p. 29에서 재인용. 아래에서 제목과 쪽수를 표기한 것은 모두 『애도와 투쟁』에 실린 글을 인용한 것이다.[/ref]

 

 

HIV/AIDS, “애도와 투쟁”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소위 “에이즈 위기”라 불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동성애혐오의 낙인을 떠안은 이 미지의 병으로 신규 감염자와 사망자가 줄을 이었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작되었지만 그 대응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GMHC(1982~), 액트업(ACT UP, 1987~) 등 에이즈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이 단체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학계 등을 통해 감염인 지원, ‘세이프 섹스’ 교육을 비롯한 예방 사업, 정책 연구, 문화 운동 등이 펼쳐졌다.


잃어버린 존재들을 애도하고 누군가를 더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때 잃어버렸거나 잃어버릴지도 모를 존재는 가깝든 멀든 그저 다른 누군가만이 아니다.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애도하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영위해 왔거나 꿈꾸어 온 삶의 방식, 혹은 건강이나 생명 ―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고 여겨 왔으나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들, 더는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없게 된 것들이다.


어떤 이들은 애도에, 어떤 이들은 투쟁에 집중했고 이들은 종종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나아가 비난했다. 이 거대한 상실을 얼른 납득하고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과거의 ― 성해방을 누렸던 ― 자신과 다른 남성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던가 하면, 어떤 이들은 한편으로는 교육과 투쟁에 골몰하고 개인적으로는 에이즈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양 행동함으로써 이 상실에의 두려움을 회피했다. 애도도 투쟁도 혹은 그 사이의 무엇도 쉽지 않았다.


이 고되고도 복잡한 시기를, 애도와 투쟁이 꼬일 대로 꼬인 이 시기를 통과하며 더글러스 크림프는 이렇게 적었다. “투쟁이 [상실의 고통을] 부인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해도, 투쟁은 중요하다. 이 사회에 지금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계속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데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를 이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바로 그 정신적 기제들이 우리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기도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분노뿐 아니라 그 분노에 억눌린 두려움, 죄책감, 깊은 슬픔까지도 억압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투쟁은 마땅히 중요한 것이지만 애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애도 그리고 투쟁이라는 것을” (「애도와 투쟁」, 214-215).

 

위험과 ‘함께 살아가기’


『애도와 투쟁』은 더글러스 크림프(1944~2019)가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쓴 글들을 실은 책이다. 책을 묶으며 쓴 서문 「우울과 도덕주의」를 비롯한 열일곱 편의 글은 길게 이어진 “위기” 속에서 크림프(와 퀴어 공동체)가 어떤 사유의 궤적을 지나며 에이즈라는 사건을, 애도와 투쟁이라는 실천을, 퀴어라는 존재를 이해했는지를 보여 준다. HIV/AIDS 운동가이자 미술이론가였던 그는 이 책에서 당대 HIV/AIDS (운동) 현장을 수기, 언론 보도, 미술 작품 등 다양한 문화적 재현물을 통해 검토한다. 그 출발점에는 동성애자는 에이즈의 원흉인 악한 존재이며 선한 이성애적 삶만이 해답이라는 식의 재현물에 대한 비판이 있다. 하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선한 동성애자나 악한 이성애자를 그려 균형을 맞추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도와 투쟁이 하나를 고르거나 선후를 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삶은 선과 악은 물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도, 또한 안전과 위험으로도, 절망과 희망으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다. HIV에 감염된 후에도 섹스를 욕망하고 행하는 삶, 희망을 호소하고 투쟁하면서도 좌절하는 삶, 동성애자를 비롯한 특정한 이름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이의 삶,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기존의 ― 이분법적인 ― 언어는 무력하다. 이 책을 통해 되짚을 수 있는 HIV/AIDS 운동과 크림프의 사유는 곧, 새로운 재현, 새로운 관점,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규범을 좇는 이들이 HIV에 감염되지 않는 파트너를 찾아 독점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HIV/AIDS의 위험을 피하고자 할 때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쉽게 제어되지만은 않으며 HIV 감염경로는 성행위 외에도 있다) 혹은 자신의 욕망을 지키며 섹스하는 법을 찾아내는 데에 실패할 때, 크림프는 “우리의 문란이야말로 우리를 구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전에 누렸던 자유와 해방을 지키려 아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강박이 없기에 “세이프섹스를 발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 “문란”을 “제도화된 섹슈얼리티의 협소한 틀에 가두지 않는다면 누구나 성적 쾌락을 추구하고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모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염병의 시대에 우리의 문란한 사랑을 계속하는 법」, 96-97.)


HIV 감염인을 가리키는 말 중 하나는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People Living with HIV/AIDS)”이다. 에이즈 환자, 에이즈 희생자 등의 표현과 함께 가해져 온 낙인을 없애는 한편 HIV/AIDS가 더 이상 반드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관리하며 살 수 있는 것임을, HIV/AIDS와 함께 하는 가운데에도 각자의 삶이 있으며 그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개개인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그러나 이 ‘함께 살아가기’는 또한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바이러스 수치나 기회감염을 관리하기 위한 약이 있다고는 해도 그 약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하며 여전한 낙인을 비롯해 여러 장벽이 있다. 경제적, 제도적 장벽을 누구나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다 약효 역시 모두에게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ref] “에이즈와 함께 살아가기”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관한 크림프의 언급으로는 「당신에게 동의해요, 걸프렌드!」, 236쪽 이하 참고. 현재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불검출=전파불가)”가 공식화될 정도로 의학이 발전하였으며 감염 후 관리 뿐 아니라 감염예방 역시 용이해졌다는 점에서 저기서 서술되는 당시의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경제적·문화적 접근성 문제, 국가 간 격차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변함없이 견지되어야 한다.[/ref]


HIV/AIDS는 여전히 위험하므로 더더욱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이를 위해 규범과 낙인을 강화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대신, 우리 모두가 어떤 위험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 그런 가운데 무엇에 좌절하고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 있는 그대로 읽어내고 그와 협상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HIV/AIDS 운동은 HIV/AIDS 예방을 역설하면서도 기존의 감염인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인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HIV/AIDS의 원인이라는 낙인을 썼던 성적 쾌락을 포기하는 대신 ‘세이프 섹스’로 ‘문란’을 재발명할 수 있었던, HIV/AIDS 감염인 인구 중 최대 인구를 차지했던 남성동성애자들의 운동을 만드는 대신 퀴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던 HIV/AIDS 운동이 해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절망 너머, 책임의 공동체


물론 이러한 위험과 함께 살아가기는 그저 상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위험이든 의학적 위험이든, 물론 어떤 개인이 온전히 감수하고 협상할 수는 없다. 어떤 행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미리 알지 못해서 혹은 미리 따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노출된 경우 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ref]이 점에 관한 글로 타리, 「성관계에서의 위험(RISK)과 손해(HARM)를 정의하고 대처하기」(셰어 이슈페이퍼 2020년 1월호)를 참고하라.[/ref] 하지만 사회의 변화는 더디거나 아예 반대 방향을 향한다. 저런 장치까지 갈 것도 없이, 개개인의 의식 수준 역시 오히려 낮아지는 듯 보인다. 운동은 지치고 좌절한다. 그에 따른 결과가 ―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 죽음이라면 그 좌절은 더 클 것이다. 이 역시 HIV/AIDS 운동이 경험한 바다.


실망하고 절망하는 운동을 향해 크림프는 그레그 보도위츠의 다큐멘터리 〈패스트 트립, 롱 드롭〉(1993)을 소개한다. 이 영화에서 보도위츠는 모르는 남성과 섹스를 하고, 상대가 사정하는 순간에서 콘돔을 쓰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이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도위치는 우연과 운명에 관한 이 우스우면서도 오싹한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자신의 역사를 의지에 따라 직접 만들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겪는 고통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의미화할 것인지, 그 역사 속에서 우리의 행위주체성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를 사유해 나간다”. (「운동의 절망을 재현하기」, 373)


삶의 어떤 사건을 이해하는 언어가 달라야 한다면, 희망과 절망의 언어 역시 달라야 한다. 이는 크림프 자신의 이야기와도 닿는다. 그는 1980년대의 에이즈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HIV/AIDS 예방에 필요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1990년대 들어 감염인이 된다. 어째서였을까. 그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HIV에 감열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취약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일”, “우리의 지식, 우리의 이해가 반드시 우리를 HIV로부터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므로 이는 가벼이 긍정할 수 있는 답은 아니다. (「‘섹스와 감성’부터 ‘이성과 섹슈얼리티’까지」, 415-416.) 오히려 더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 절망은 좌절해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위험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언제나 어떤 실패와 절망 위에서만 가능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될 뿐이다. 위험과 함께, 절망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 위험과 절망 위에서 어떻게 서로를 지킬 수 있을지를 ― 고민해야 할 이유이자 비로소 이를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일 뿐이다. 위험과 절망 위에서, 또한 그 너머에서, 어떤 삶을 발명하고 조직할 수 있을 가능성을 『애도와 우울』은, HIV/AIDS 운동은 찾아낸다.


지난해 5월, 소위 ‘이태원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벌어졌고 여기에 들러붙은 낙인은 감염 당사자는 물론 수많은 성소수자의 삶을 위협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성소수자긴급대책본부가 꾸려졌다. 이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단속’하거나 선을 긋는 대신, “오랜 시간 외부의 단속과 비난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성소수자임을 자각하고 사람을 만나고자 고립을 깨고 외로움을 나누기 위해 밖에 나왔을” 마음을 읽고 “우리는 무엇을 더 구축하고 만들고 요청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를 물었다.[ref]코로나19성소수자긴급대책본부, 「커뮤니티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2020.05.14.) [/ref]주위에는 선제적 검사를 권하고 정부에는 익명 검사소 운영을 요구한 구체적인 대응은 물론 이러한 접근방식 자체가 HIV/AIDS 운동의 통찰, 퀴어 운동의 역사와 닿아 있다. 이것이 바로, 위험과 절망 곁에서 서로를 책임지는 퀴어한 방식일 것이다.


‘운동’이나 ‘단체’만의 일이 아니다. 셰어는 종종 낯선 이로부터 익숙한 연락을 받는다.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메일이다. 셰어 뿐 아니라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이, 혹은 누군가의 평범한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 때로는 당사자가 직접, 때로는 주변인이 대신 문의해 온다.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비용은 천차만별이며 낙인도 여전하다. 정보를 구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국가의 방치 속에, 여기저기 묻고 부탁해 방법을 찾는 것은 모두의 일이 된다. 이 모두는, 어째서 피임을 하지 않았는지 따지거나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실망하는 대신 자신의 자원을 나누어 서로를 보살핀다.


이 글 첫머리에 놓은 키넌의 글을 인용하며 크림프는 이렇게 썼다.


“앤드루 설리번은 동성애자들을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이 사회가 게이들이 참조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설리번이 말하는 윤리적 진공 상태라는 조건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진정으로 새로운 윤리적 삶의 방식을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설리번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 위기 때문에 성숙해지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다. 에이즈 위기로 동성애자들이 그 이전부터 얼마나 윤리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는지가 드러났을 뿐이다. 동성애자이기만 하면 자동으로 윤리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이 키넌이 진정한 책임감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한, 삶의 기준이 부재하는 조건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우울과 도덕주의」, 29-30).


‘우리’의 삶과 운동으로부터, 그 역사로부터 위험과 책임의 공동체, 위험과 책임을 나누고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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