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퀴어와 불구의 자리에서 친밀성·돌봄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퀴어와 불구의 자리에서 친밀성·돌봄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황지성


한국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듯하면서도 어떤 것들은 매우 느리게 변화하거나 아예 멈춰 서 있는 듯하다. 2019년 낙태죄 위헌판결로 성과 재생산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리임이 천명되었고, 연이은 COVID-19 재난으로 집단면역과 공중보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특정한 존재들의 성과 재생산, 웰빙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서 박제되어 변화하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탄생한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의 성과 재생산을 ‘위험’으로 간주하고 이를 예방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에게 그러한 우생학의 시각은 오늘날에게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친밀한 관계, 출산, 사회적 존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사회정화’를 빌미로 가난과 ‘무질서’를 무차별로 단속·제거하던 시기 탄생한 에이즈예방법은 HIV를 비롯한 성매개감염과 그 ‘위험인자’로서 성판매자와 동성애자 등에게 사회적 낙인과 배제를 강화했다. 이러한 낙인은 오늘날에도 보건의료영역을 비롯해 사회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심지어 HIV 감염인은 ‘전파매개행위’라는 모호한 규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이처럼 많은 소수자들은 존재자체로 범죄화되고 병리화 되어 차별과 배제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친밀성과 돌봄이 자리한 ‘일상’의 위기

 

우리 애들이 사회의 부담이 된다고만 생각하면 히틀러하고 우리하고 다른게 뭐 있어요? 

아무래 부족해도 거둘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죠. -한 발달장애아동 어머니의 말[ref]강민희(2016), “윤리적 돌봄 관점에서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당사자경험에 대한 사례연구”, 한국장애인복지학(34).[/ref]

 

죽음을 많이 생각해요. 거의 몇 달 동안 뭘 어떻게 해야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그냥 그런 방법을 막 찾는거.

그게(병수발을 한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봐요. 너무 오래돼서 지칠 때가 돼서. -한 HIV 감염인 아내의 말[ref]서보경 외(2020), “한국의 HIV 낙인과 장기 요양 위기”, 비판사회정책(67).[/ref]

 

먹고, 자고, 쉬고, 친밀함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상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적인 영역이다. 이러한 활동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에 원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거나 ‘사소화’된다. 그러나 소수자들, 특히 장애나 질병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일상이 전혀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위에서 인용한 발달장애인과 HIV 감염인 가족의 말은 장애나 질병을 가진 가족구성원의 돌봄이 주로 가족(많은 경우 여성)에게만 떠넘겨진 채 적절한 사회적 인정이나 지원이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폭로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극악한 폭력인지를 일깨운다.


낙인찍히고 배제당하는 이들은 엄청난 사건의 뉴스거리로만 소비되기 쉽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인권과 사회적 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경우 매우 선언적이고 형식적인 틀에 갇혀 더 나아간 논의를 멈추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과 질환자들이 평등한 시민이며 치료와 케어를 받을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매일의 일상’이 자리한 영역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매 순간 매일이 위기이자 삶의 부정이다. 법적이고 형식적 평등의 진일보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관계와 돌봄의 영역이 평등해지지 않는다면 소수자의 배제와 주변화는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2000년대 이후로 저출산과 고령화 등에 따른 ‘재생산의 위기’를 진단하고 돌봄의 영역을 국가 의제화해 개혁하는 행보를 지속해 왔다. 재생산 위기는 한국이 오랜 시간 경제개발에만 치중하며 복지와 돌봄을 가족(여성)의 희생에 떠넘겨온 역사적 상황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가 이미 닥친 뒤 뒤늦게 수습하려 한들 그것이 단숨에 성공할리는 만무했다. (주로 비장애)아동, 노인, 장애인 등 대표적 돌봄 필요자들에 대한 복지가 양적인 측면에서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돌봄을 받는 당사자나 유급 돌봄노동자, 가족 등 누구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속에서 노인, 장애인, 질환자 등 ‘미래가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은 친밀한 관계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족 안에서 돌봄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그때 대안은 삶을 부정당하고 관계를 차단당한 채 생물학적인 존재만을 유지하는 집단시설뿐이다(HIV 감염인들은 낙인으로 인해 치료시설 입소 마저 거부당한다).

 

 

소수자의 일상으로부터 시민권을 다시 정립하기

 

페미니즘은 ‘독립성’, ‘자기주권(이성)’, ‘생산성’을 가진 추상적 개인을 상정한 근대적 시민권 개념이 취약성과 돌봄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지워버린 부정의라는 것을 오랜 시간 지적했다. 그리고 시민권, 공공성의 영역을 그러한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재구조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투쟁이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경험’ 안에 누구의 경험이, 어떤 목소리가 담겨야 하는지는 여전히 더 많은 논쟁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동안 존재 자체로 차별과 배제를 겪어온 이들,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을 ‘보편’, ‘우리’ 안에 통합하는 작업은 정치 안의 또 다른 정치다.


당장 모자보건법의 전면적 개정과 차별금지법 제정 등 산재한 과제들이 놓여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소수자들을 ‘매일의 일상’에 돌려놓는 작업은 매우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정책에서부터 사회문화적․지리적 환경 모두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매우 힘들고 더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 개인에 기반한 근대적 시민권 개념에 균열을 내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복지국가를, 전혀 다른 공동체와 삶의 방식을 도출해 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덧붙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구 에이즈예방법) 제19조 등의 ‘전파매개행위죄’ 위헌소송이 현재 계류 중이다.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날/HIV 감염인 인권의날 기념 기자회견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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