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2화 : 후딩예 병원 임신중지 클리닉의 사례

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 연재를 시작하며

"I dream of the day when every new born child is welcome, when men and women are equal, and when sexuality is an expression of intimacy, joy and tenderness." 

“나는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환영받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며, 섹슈얼리티가 친밀함과 기쁨과 친절함의 표현형이 되는 날을 꿈꾼다.” _Elise Ottesen-Jensen(스웨덴의 성교육자겸 여성운동가. 유럽 최대의 성재생산권 NGO인 RFSU 창립자)


‘낙태죄’가 폐지된 지 4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진료현장은 달라진 바 없고, COVID-19 팬데믹과 의료대란 시기의 성과 재생산건강은 ‘필수의료’가 아니라고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셰어의 연구위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윤정원 전문의는 지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스웨덴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스웨덴은 80년 전부터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인권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제도, 정책, 서비스를 상당 부분 실행하고 있는 스웨덴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상황을 8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각국의 재생산클리닉 현장과 성재생산 정책의 맥락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화- 후딩예 병원 임신중지 클리닉의 사례


2024년 1월 15일, 잠잠했던 눈이 다시금 퍼붓기 시작한 날,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소속 후딩예병원Karolinska University Hospital Huddinge(우리나라로 치면 분당서울대병원 정도 되겠다)의 산부인과 병동을 방문하였다.  그 동안은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연구소로 출근을 하고 있어서 9시 출근이면 넉넉했는데, 시 외곽까지 가야 하는데다 8시까지 출근해야 해 오랜만에 별을 보며 출퇴근을 한 주간이다. 이 병원은 스톡홀름지역의 임신중지와 피임과 관련된 2차 병원이다. 나는 이곳에서 3일에 걸쳐 피임/임신중지 병동과 일반 부인과 병동, 수술실을 참관하였다.

중앙 콜센터에서는 10주 미만의 임신중지건은 조산사(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조산사일수도, 병원에 소속된 조산사일수도 있다.)에게 진료를 연계 하고, 10주 이상의 임신중지는 병원 소속의 산부인과 의사에게 연계한다. 10주 미만은 홈처방으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가 가능하기에 조산사는 당일에 바로 유산유도제를 처방하거나 수술을 원하는 경우 수술 일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10주 이상의 임신중지는 산부인과의사에 의해 병원에 입원해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하던지, 수술을 하게 된다.

참고로 후딩예 대학병원에서의 임신중지는 약을 이용한 방법으로는 5주에서 18주까지 가능하며, 수술적 방법은 7주에서 12주 사이까지 가능하다.


후딩예 카롤린스카대학병원 (사진 : 윤정원)


모든 엘리베이터는 픽토그램과 점자, 낮은 높이와 큰 버튼으로 장애/아동친화적이다. 


산부인과는 소아과와 같은 건물을 쓰는데, 복도의 안내 발자국과 곳곳의 조형물들은 아이들 뿐 아니라 이용자 모두를 미소짓게 한다. 


후딩예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의 피임/임신중지 병동
병동 내에 외래클리닉과 일일 입원실, 소수술실이 같이 있다.


반나절은 조산사 린 Lynn의 임신중지상담 진료실을, 반나절은 산부인과 전문의 크리스틴 Kristina의 피임클리닉(Complicated contraception clinic)을 참관했다. Lynn의 진료는 항상 임신을 확실하게 확인했는지, 임신중지를 확실하게 결정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임신중지 이후 어떤 방식으로 피임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진료의 초반에 물어보는데, 중앙 콜센터에서 상담하고 의료기관을 연계할 때부터 미리 피임 정보를 제공하고 읽어보고 오게 하도록 한다고 한다. 산부인과적인 진료 기록과 건강 상태를 문진하고, 초음파로 주수를 확인한 후 성매개 감염 검사를 시행 한다. 임신 9주 이내인 경우에는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우선 권고한다. 수술적 임신중지는 수술실과 마취과 의사와의 예약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1-2주가 소요될 수 있다.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에게는 그 자리에서 바로 미페프리스톤을 주고 복용하게 하고, 나머지 약제들 – 미소프로스톨과 진통제, 항구토제를 약국에서 받아가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복약설명과 함께 안내문을 제공한다. 상담의 말미에는 항상 지금 상황과 관련해서 힘든 것은 없는지, 상담이 필요한지 묻고, 도움받을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절차는 폭력이나 강압으로 인해 임신이나 임신중지를 하게 된 것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모든 진료대기실과 화장실에는 심리상담이 가능한 핫라인, 여성폭력 핫라인, 성매개감염에 대한 정보 사이트의 안내가 제공되고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은 환자는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한 후 초음파 확인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왔던 19세 환자였다. 린은 집에서 미소프로스톨을 먹은 후 통증과 출혈양이 심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고, 초음파로 임신낭이 없어졌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피임을 위해  지난 면담 때 결정했던 자궁내장치 삽입을 바로 진행했다. 환자의 어머니가 자궁내장치를 삽입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장기 지속형 피임의 장점에 대해 딸에게 적극 추천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모든 과정에는 환자가 혼자 있길 원하는지 보호자와 동석하길 원하는지를 물어보았고, 모녀는 둘 다 개의치 않았다.


피임과 임신중지 전문 클리닉이라 진료실에는 피임법에 대한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다.


환자대기실 한켠의 각종 안내문과 정보 브로슈어. 환자단체와 핫라인, 보험정보 등 공공적인 정보들로만 가득하다. 



‘당신이 잘못이 아닙니다.’ 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클리닉 화장실 내 핸드타올 통에 붙어있던 스티커


화장실 내에 부착된 여성폭력 핫라인 포스터


스웨덴연수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조산사였다. 

스웨덴에서 조산사는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최소 1년 이상의 간호사 경험, 18개월 간의 조산사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간호사가 미페프리스톤을 처방할 수 있게 된 것은 2009년부터로, Lynn은 후딩예병원의 산과병동에서 조산사로 근무하다가 1여년 간의 추가 수련을 받은 후 피임과 임신중지 전문병동에서 임신중지와 피임 전문 조산사로 근무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술과 응급실 진료, 외래(피임과 임신중지 전문병동 이외에도 일반 부인과 진료 또는 산과진료) 일정 등으로 1주일에 한 번 정도 이 병동을 방문하는데, 조산사들은 본 병동에 상주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을 방문하는 여성들의 곁을 지킨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Lynn 은 또한 자신이 처방하고 있는 약(미페프리스톤과미소프로스톨)을 개발한 의료진과 그 전통이 있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며, 현재 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연구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었다. 현재 후딩예 클리닉에서는 원격의료 임신중지 처방 연구와, 유산 후 자궁내장치 거치 시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후딩예 병원에서 진행중인 임상시험

1.     Telemedicine 연구

아직까지 스웨덴에서도 첫 방운은 꼭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조산사나 의사를 만나서 임신주수를 확인하고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받아야 한다. 영국이나 호주, 미국에서는 임신중지 원격진료(임신 주수를 확실히 아는 경우 초음파 없이 원격진료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처방받아 인근 약국에서 받아 가정에서 복용하는 방법)의 안전성과 효과성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원격진료도 허용되어 있는 상황이다. 스웨덴에서도 원격진료 임상시험이 이 카롤린스카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신이 완전히 종결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딩예 병원과 카롤린스카병원 등 지정 병원으로 내원하여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를 시행받고 있었다.

 

2.     유산후 자궁내장치 거치 시점 연구

1분기 이내 유산을 했다면, 피임을 원하는 환자에서, 유산시술 시점 직후 또는 약물 복용 후 배출 후 종결을 확인하러 온 시점에 자궁내장치를 바로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산 직후에는 자궁의 수축이 아직 남아 있고, 찌꺼기들이 배출되면서 자궁내장치가 함께 배출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연구팀에서는 유산 직후 48시간 내 자궁내장치 삽입과 4주 후 첫 월경 이후 삽입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린은 와이프와 아들 둘을 함께 키우고 있는데, 한국이 LGBTQ 패밀리가 여행하기 안전한 나라인지를 물어왔다. 나는 한국은 일반적으로 여행하기 안전하며, 사람들이 당신 커플을 친구나 자매로 볼 테니 괜찮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점심시간과 Fika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데, ‘상호’이해를 중요시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들을 말 해 줄 수 있는 시간이라서였다.  한국의 재생산건강과 관련된 상황들을 이야기 할 때 마다, ‘모’두’의 분노 버튼을 누르는 상황이 있었는데, 한국의 모자보건법이 아직도 임신중지에서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다. 린 역시 mad라는 표현을 썼다. 이 클리닉에서 임신중지와 피임, 자연유산과 반복유산 등을 모두 통합적으로 진료하는 것이 인상적이며, 한국은 산과의사들이 임신출산과 자연유산은 다뤄도 임신중지는 터부시하며, 건강보험에서도 임신출산과 자연유산은 커버가 되는데 임신중지는 커버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임신을 한 사람들이 유산도 하는거고, 유산을 한 사람들이 언젠가 임신도 하잖아, 임신중지를 잘 받아야 그 다음에 임신을 하고싶을 때 잘 할 수 있다고 너네 정부에 이야기해봐.’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왜 안 해봤겠냐고요.)

오후 산부인과 의사 크리스티나 Kristina 의 진료에서는 조금 더 다양하고 까다로운 환자들의 케이스를 볼 수 있었다. 자궁내장치를 가진 상태에서, 제거를 위해 여러 군데의 병원을 방문했으나, 폴란드 이민자로서 의사소통이 어려워 제거하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임신 8주를 진단 받은 여성은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먼저 시행하고, 임신종결이 이루어 진 후 자궁내장치와 관련된 진료를 추가로 보기로 했다. 다음으로 고혈압과 갑상선기능항진증을 가진 RH- 혈액형 여성은 임신 9주였으나, 만일의 상황에 수혈을 받아야 하는 경우 특수혈액의 필요성, 유산 후 면역반응에 대한 처치를 위해 입원하여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진행하기로 했다. 환자는 다음주 월-화 입원을 원했고, 크리스티나는 입원시점 24시간 전에 먹고 오라고 미페프리스톤을 먼저 처방해줬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환자는 월경주기가 불규칙하여 예상 임신주수가 확인되지 않는 18세 청소년이었다. 6개월간 무월경이며 자가임신테스트상 임신을 확인했다고 했다. 모든 손가락에 실반지가 반짝였고, 귀걸이와 피어싱은 셀 수가 없었고, 권총 모양의 벨트 버클이 인상적이었다. 원한다면 같이 온 보호자와 같이 진료를 봐도 된다고 했지만 혼자 받겠다고 하면서도, 들어오자마자 진료실에 마련된 말랑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걸 보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환자는 유스클리닉 진료를 받아도 되는 나이이지만, 무월경의 기간이 길어 예약센터에서 바로 산부인과의사의 진료를 추천한 경우이다. 워낙 불규칙한 월경주기라 다낭성난소증후군의 가능성과 피임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하던 중, 환자가 채식주의자라서 아보카도 이외에는 지방 섭취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식생활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초음파를 본 후, 다행히 임신 7주차의 초기임신이라 유산유도제 홈처방으로 진료는 쉽게 마무리되었다. 물론 피임과 유산 후 월경주기 관리에 대한 조언도 함께.  


이번 연수의 멘토인 크리스티나.
후딩예 클리닉에서 월요일 오전 연구미팅, 오후 외래를 보러 일주일에 한번 후딩예로 출근한다. 


크리스티나는 일주일에 한 타임, 월요일 오후에만 후딩예병원에서 진료를 본다. 뒤에서 소개하겠지만 크리스티나는 스웨덴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이름높은 석학으로 수없이 많은 연구소와 연구팀의 수장이다. 그런데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과 연구소의 구성원으로서 공무원인 신분은 다른 여타 의사들과 똑같아서, 1주일에 한 타임 진료를 배정받고, 공동예약센터에서 배정한 환자들을 분배받아 어떻게 보면 소소할 수도 있는 진료를 보고 있었다. 내일은 너가 안 나오는데 이 환자는 그럼 어떻게 입원하나 물었더니, 대학병원은 주치의 개념이 없는데, 외래를 보고 환자와 병원의 사정에 맞춰 수술과 입원을 결정하면, 그 날 근무하는 의사가 담당의가 되는 시스템이다. 퇴원 후 외래 역시 그날 근무하고 있는 의사에게 배정이 된다. 물론 고도로 특화된 전문 분야의 경우는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한명밖에 없다던지) 예외이다. 어느 병원에서도, 어느 의사에게도, 어느 환자도 동일한 진료를 제공받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니, 역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의 모든 유스클리닉과 대부분의 클리닉에 놓여있던 Fidgeting tool (긴장을 풀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지작거릴 수 있게끔 준비해 둔 도구들)을 보고 나도 진료실에 말랑이를 비치해놨다. 


10주 이내 가정에서의 임신중지, 10~12주 사이 병원에서의 임신중지,
12주 이상 병원에서의 임신중지 안내문


일주일 후 후딩예클리닉의 수술실을 다시 방문했다. 전체 임신중지의 96%가 약물로 이루어지기에 수술적 임신중지를 볼 기회가 극히 드문데,  마침 지난 번 린 Lynn의 진료에서 수술을 원하여 예약을 잡은 환자의 케이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잉가 스타인버그 Inga Steinberga의 동선을 함께 다니기로 했다. 

수술을 받기로 한 이 환자는 이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었고, 현재의 남자친구와 임신을 하였는데, 남자친구가 임신을 유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임신중지를 하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떠날거라 자신은 너무 슬프지만 임신중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수술을 원한다고 했다(8주 6일차라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도 가능하나, 집에서 이 과정을 감당할 수 없고, 빨리 잠들었다 깨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갈등이 있는 경우에는 콜센터 진료상담시에도, 초기진료 때에도 심리상담사와의 상담을 권유하는게 원칙이고 제안도 받았지만, 환자는 만약 상담을 받는다면 임신을 유지하는 쪽으로 마음이 바뀔 것 같아, 그러면 자신의 상황이 더 어려워질거라는 생각에 거절했다고 했다. 수술을 받은 후에 심리상담을 받기로 하고, 수술당일 아침이 되었다. 환자에게 아침에 입원하면서 자궁경부를 부드럽게 해 줘 수술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해주는 미소프로스톨을 직접 먹고 오게 하고, 수술은 오후 2시,잉가의 5번째 수술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잉가가 집도하는 앞선 부인과수술을 보고 있었다. 2번째 수술을 마쳤을 때였다. 갑자기 Inga가 전화를 받더니 당일 수술실 환자대기실로 향했다. 아버지와 함께 환자가 입원했는데, 미소프로스톨을 먹어서 배도 아프고, 임신중절도 안받고 싶다고 울면서 과호흡이 왔다는 것이다. 잉가는 먼저 오늘 수술을 담당할 산부인과 의사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 간호사와 나를 소개했다. 미소프로스톨을 먹은 상태에서 임신을 유지하는 것은 태아 기형의 리스크가 어느 정도 있어, 정말 임신을 유지하고 싶다면 추가로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혼란스러운건지 상담이 더 필요한 건지를 묻고, 그 사이 통증 조절을 하여 환자를 조금 진정시켰다. 환자는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였고, 이번엔 환자가 먼저 수술 후 심리상담을 요청하였다.  그 이후는 특별한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수면마취와 흡입술은 모두 다 해서 15분 이내로  끝났고, 잉가와 나는 이전에 D&C(자궁경관 확장 및 소파술)를 할 때는 피가 많이 나서 힘들었는데 흡입술 이후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기록을 녹음하고(이는 나중에 타이피스트가 타이핑을 해 주면 다음날  최종 점검 후 저장한다. 타이피스트가 하던 일을 부분적으로 AI에게 외주를 주고 있어 직원 고용 승계에 대한 노조의 우려도 언급했다.) 레지스트리에 제출할 내용을 기입해 넣는다. 1화에서 본 스웨덴의 임신중지 통계는 이렇게 일선 의사들이 하나하나 다 기록하는것이었다! 좋은 통계는 모두 사람에서 나온다. 


언제든 자유롭게 원하는 병원을 예약하고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웨덴의 시스템을 보면 일견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선택의 자유나 다른 의견을 듣고 싶을 때는? 임신중지 수술을 2주일을 기다린다고? 물론 스웨덴에도 수술이 더 일반적인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이나, 시민권이 없어 어차피 자부담으로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 대기시간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민간(사설) 클리닉들도 존재한다. [ref]실제로 연수 기간동안 만난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 한인 유학생들은 스웨덴에서 제일 불만족스러운스러운 것 중 하나로 의료제도를 꼽았다. 독감으로 너무 힘든데 진료 예약도 안 잡아주고, 진료를 보러 가도 쉬어라, 따뜻한 물을 마셔라는 이야기 밖에 못 듣는다고. 사설 클리닉 이용 경험도 다들 있었다.[/ref]이들 클리닉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고 대신 환자들에게 전액 비용을 청구하기에 훨씬 의료비가 비싸다. 수요가 높을 법도 한데 전체 임신중지의 약 5%가 민간(사설) 클리닉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걸 보면[ref]Jones RK, Henshaw SK. Mifepristone for early medical abortion: experiences in France, Great Britain and Sweden. Perspect Sex Reprod Health. 2002 May-Jun;34(3):154-61. PMID: 12137129.[/ref] 스웨덴 사람들은 본인들의 국영 의료시스템에 이미 많이 적응한 듯 하다. 필수 진료와 중증 진료, 소아청소년과 노인, 임산부는 확실하고 완전히 누구에게나 보장하고, 경증질환에서는 모두가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동등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의료인의 입장에서 병원진료만, 그리고 제도적으로 잘 정비된 성/재생산 진료만 본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환경에서 진료하고, 진료받고 싶다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특히나 연수에서 돌아오자마자 의료대란을 맞닥뜨리고선 더욱 더).


 👉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3화 "(인터뷰) 스웨덴 임신중지법의 현재와 미래"로 이어집니다.

셰어의 활동 소식과 성·재생산에 관한 뉴스를 받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셰어의 뉴스레터를 
신청해 보세요. 알찬 소식으로 가득찬 뉴스레터를 월 1회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