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곁에, 함께> 온라인 시범 워크숍 참여 후기

셰어에서는 4월 12일과 19일 두 번에 걸쳐 <곁에, 함께> 임신중지 상담 온라인 시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첫 시도인만큼 현재 직접 상담과 지원 활동을 하시는 단체의 상담자, 활동가 분들과 비공개 형태로 진행하였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워크숍에 참여하신 선 님의 글을 싣습니다. 워크숍 진행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srhr.kr/announcements/?idx=6383150&bmode=view

 

선(언니들의병원놀이/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현장상담센터 활동가)

 

그동안 나는 지역에서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여성들을 다수 만났다. 대부분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이 효력을 상실하기 이전이었다. 내담자가 원하는 것은 ‘임신중지’였으나 우리는 어느 지원의 대상인지 확인하는 상담, 즉 여성이 겪은 일을 묻고 확인해야만 했다. 법률적 해석이 가능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 관련 기관으로 연계하여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성폭력을 입증할 수 없거나 소액이라도 대가성 금품을 받은 경우 성매매로 해석되어 임신중지가 불가능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9조 제5항에 따르면 성매매로 인하여 임신한 성매매피해자 등의 검사 및 출산 등 임신과 관련한 비용을 의료지원 비용으로 쓸 수 있으나, 임신중지에 대한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기관과 활동가의 법리를 넘은 관점으로 진행되는 상담, 의견서, 그리고 네트워킹만이 우리의 대안이었다.

 

이렇듯 상담은 내담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사회구조적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다. 상담이 단순히 어떠한 상황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의 문제로만 고려된다면 그 과정에서 드는 감정과 고민 또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영역이 되고 만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측면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내담자의 문제는 개인의 것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 되며, 시민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되며, 불합리한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의 동력이 된다.

 

임신중지 상담 또한 마찬가지다. 넓게는 ‘낙태’라는 부정적 함의의 용어를 법에 명시하고 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조항이 오랜 시간 존재했고, 잘못된 통념으로 낙인의 시선을 교육하는 동시에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아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힘들게 고려할 상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안에 내담자가 속해 있다는 이해부터 주거, 경제적 상황, 직업 유무, 인적·물적 자원의 유무 등 셀 수 없이 교차하는 상황들까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자면 내담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 상담자의 역량까지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를 가진 상담자들이 현장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감수성 있는 가이드가 존재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던 중 셰어에서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를 내셨다고 하여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은 되었으나 명확한 언어로 정리되지 못했던 것들이 누구든 펼치기만 하면 전달되어질 수 있도록 많은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가이드북이었다. 이번 <곁에, 함께> 온라인 시범 워크숍에도 참여하게 된 덕분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첫날 워크샵에서는 각자 소개를 한 뒤 한 내담자를 둘러싼 많은 상황들을 연결해 보는 임신중지 상황 트리 그리기를 했다. n명의 내담자는 n개의 상황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담자가 가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가정하고 또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을 연결해 보며 상담자가 보다 더 다양한 상황들에 열려 있을 수 있도록 준비되는 시간이었다. 또 신청하면서 미리 받은 상담의 경험과 고민들에 댓글을 다는 익명의 롤링페이퍼 작업을 했는데,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현장에서 길어올린 고민들은 정말로 날것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을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 정보가 맞는 것인지, 언어적 한계가 있을 때 정보를 제공하여 상담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할지, 내담자의 불안, 낙인, 죄책감 등을 어떻게 덜어 줄 수 있을지, 결정을 위임하려 하거나 소통이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등. 그동안 현장에서 품었지만 쏟을 곳이 없었던 고민들이 나왔다.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자들은 공감과 지혜를 모아 댓글을 남겼다.

 

두 번째 워크샵에서는 의료 가이드 중 상담자가 알아야 할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 정보를 듣는 시간과 상황별 시나리오를 설정해 소그룹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황은 크게 성폭력, 이주, 장애, 청소년이었는데 시나리오마다 임신 주수 그리고 주변인과의 관계 설정이 달랐다. 이러한 상황의 내담자가 왔을 때 임신중지 상담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파악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며,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각 그룹에서 나온 내용을 공유한 것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주여성 파트였는데, 다중의 취약한 상황들이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진행하기 위한 통역 지원, 연계 가능 여부부터 보호자와의 분리가 어렵고, 사회경제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이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쓰고 보니 언어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많은 여성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이 겹쳐져 마음이 아프다. ‘임신중지에 대한 모든 장애물은 가장 취약한 여성부터 해친다’던 레베카 곰퍼츠의 말이 떠오른다.

 

워크샵 동안 나온 실질적인 고민들을 들으며 내담자가 불안으로 인해 상담자에게 임신중지/유지 여부를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거나 판단을 어려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초기 과정에서 상담의 목표를 함께 잘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신중지 상담은 임신의 유지나 중지 여부만을 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 제공으로 다양한 자원과 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이를 행사하는 데 걸림이 되는 것들을 사회적 자원을 연결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자, 상담 자체로 내담자가 임파워링 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서, 나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 상담이 이러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과 상담자의 역할, 내담자의 권리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다. 이 과정이 상담의 방향과 속도를 과도하게 벗어나지 않는 데 도움을 준다.

 

현장에서 여성을 만나는 더 많은 상담자들이 이번 워크샵과 같은 장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나만 상담자로서 부족한 건가 싶었던 고민, 답이 없는 고민이라고 혼자 생각했던 것들을 나누는 장은 상담자의 회복을 위해서뿐 아니라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과 토론들이 모여 내담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리라 의심치 않는다. 좋은 장을 열어 주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번 워크샵이 시범이었다고 하니 정식 워크샵이 열리면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필요한 정보와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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