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자산업 2세 직업병 문제 한-대만 교류 세미나 후기
: 산업이 생산하는 몸의 손상, 노동하는 몸의 시간성, 생산과 재생산 관계를 새롭게 고민하는 시간
나영정
셰어는 지난달 뉴스레터에서 전한바와 같이 반올림의 초대로 장애여성공감과 함께 2세 산재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있다. 반올림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워 여성노동자의 산재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든 성과에 이어 그동안 제대로 꺼내지 못한 태아 손상, 2세 산재 피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25일에는 전자산업 2세 직업병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한국과 대만의 활동교류 세미나가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대만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타보이(이하 타보이)가 주최하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가 함께 참여해서 온라인에서 두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당초에는 주최측 멤버들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심있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서 40여명이 함께 했다.
반올림과 타보이는 그동안 꾸준히 교류하면서 전자사업 산재 문제에 대해 대응해왔다. 동아시아의 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기에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중반 여성노동자들이 ‘손이 빠르면서 순응적이고, 저임금이 정당화되는 몸’으로 간주되어 전자/반도체 산업 현장에 배치되었다. 타보이에서 대응해왔던 중요한 사례는 대만 RCA 타오위안 공장의 사례였고, 이날 세미나에서도 RCA 산재피해자들이 여러분 참석하셨다. 미국 무선 전기회사인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n)는 1960년대 미국 인디애나 공장에서 심각한 환경오염과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대만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대만 정부는 외자 유치를 위해 면세등의 특혜를 주며 대만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특히나 이 공장 폐수로 인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하고 기숙사에 생활하던 노동자들이 정수되지 않은 오염수를 장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8년 공장은 철수했지만 지하수 정화는 실패하였고, 대만정부는 이 지역을 첫 영구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공장이 철수한 이후 퇴직한 노동자들에게 잇따라 암이 발병하고 산재 피해가 심각한 것이 확인되자 피해자들은 단체를 꾸려서 20년 이상 투쟁하고 있다. [ref]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장시간·저임금·직업병’ 삼중고 시달리는 전자산업 노동자들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 국제심포지엄, 매일노동뉴스, 2010-03-05.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045 [/ref]
한국에서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처음으로 유해 노동환경으로 인한 2세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임신 중의 노동자와 태아가 같이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상보험법의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했던 기존 판결을 뒤집고 10년의 투쟁 끝에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에는 2세 산재에 대한 보험 급여 관련 규정이 없어 판결 후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이향춘 본부장은 그간의 제주의료원 간호사 2세 산재인정 대응활동을 공유하고,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 대한 산재 보상과 법 개정을 위한 투쟁에 계속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은 2세 산재 문제 대응 과정을 공유했다.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넘어서기까지 어려운 지점들을 설명하고, 삼성반도체, LG디스플레이, SK반도체와의 투쟁으로 태아 사망과 유산에 대한 문제를 교섭안에 포함시켜 보상받았던 성과와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의 쟁점에 대해서 소개했다. 법개정을 통해 이전의 피해자들의 2세 산재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 자녀를 돌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유족급여에 포함할 것, 남성노동자의 생식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인정하고, 유해요인을 화학물질에서 더 넓은 차원으로 확대할 것에 대해서도 요구하고 있다.
셰어의 이유림 기획운영위원은 “국가가 나서서 누가 재생산을 할 자격이 있는 시민인지, 누가 자격이 없는 시민인지를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류해온 역사를 문제 제기”해온 낙태죄폐지 운동을 언급하고 “재생산은 누가 이 국가에 속하는지, 누가 속하지 않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Ginsburg and Rapp 1995: 3) 현장”이라고 하며 2세 산재 문제와 성과 재생산 권리가 만나는 것의 중요한 의미를 지적했다.
“모든 노동자가 어떤 형태로든 재생산과 연결된 존재이며, 재생산이라는 ‘미래’를 보장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노동자의 ‘미래’는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내고, 국가는 이를 방임합니다. 유독한 환경에 노동자를 방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노동자를 ‘미래가 없는 존재’라고 다룰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관점에서 2세 산재의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생식(procreation)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노동자들이 성과 재생산을 누리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권리의 내용들을 만들어내고, 국가, 기업, 사회의 책임을 명시하는 것입니다.”라는 발제문의 내용이 그 의미를 핵심적으로 짚어주고 있다.
대만에서는 타보이 활동가 2명과 RCA전자의 피해자 5명이 함께 참여했다(발표자에 따라 앉아있는 대형을 활기차게 바꾸시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셔서 온라인 넘어 내적 친밀감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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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타보이와 RCA 산재피해자 모임에서 참여하고 있는 모습(위)
온라인 교류회를 하고 있는 줌 프로그램 화면(아래)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RCA 전자 피해자들은 현재 1700명의 노동과 가족들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이 소송은 암 발병이나 일하던 당시에 입었던 피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의 산재법에서도 생식(procreation) 건강(유산, 사산, 불임, 월경불순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사회적인 인식도 낮으며, 당사자들도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꺼내는 것이 오랫동안 어려웠다고 했다. 타보이의 활동가들은 RCA 전자의 문제가 단지 과거의 일로 인식되고 있어서 현재 싸움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고, 페미니즘 단체와 연대하거나 재생산권의 이슈와 연결하는 활동도 미진한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타보이 활동가들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2세 산재문제를 다루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하면서 한국 운동과의 교류가 좀더 활발해지고, 서로 배우고 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서 RCA 전자 피해자분들이 전해준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이가 결혼하거나 구직할 때 문제가 생길까봐 쉬쉬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았는데, 그분들이 했던 이야기는 돈을 받아서 좋은게 아니라 드디어 자기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시부모나 남편 조차도 아이가 아픈 것이 엄마 탓일지 모른다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는 산업재해가 가져오는 피해와 삶의 영향을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각도로 이해해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이는 단지 피해가 대물림된다, 여성이라서 더 낙인을 받는다는 주장에서 머물지 않는다. 산재의 피해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구조가 있다는 것은 이 노동에 누가 적합한가를 정하고 배치하는 것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성적 즐거움과 재생산의 의무나 책임을 분리시키고, 생산을 위해 특정한 몸을 훼손하고 소진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과 국가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의 미래를 케어하는가하는 인구정책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단지 가임기 여성의 숫자, 단지 생산가능 인구의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이러한 몸의 위계에 좀더 천착해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시한번 노동권과 성과 재생산권의 만남은 노동의 성별분업구조, 노동 과정과 노동 이후에 찾아오는 몸의 손상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국가의 인구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이 서로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2세 산재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활동을 엄마의 죄책감, ‘기형아’에 대한 우려, 끝없는 보상 요구와 같은 식의 왜곡과 축소를 단호히 거절한다. 2세 산재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은 산업이 생산하는 몸의 손상, 노동하는 몸의 시간성, 생산과 재생산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발휘하고, 관계도를 그려나가는 작업을 요한다. 내가 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권리로서의 정보는 노동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될 수 없고 일의 결과로 미치는 신체적 정신적 영향에 대한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거나 퇴직한 이후에 일어나는 심신의 변화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회에서 미래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와 성과 재생산권리를 박탈하는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도 불가능하다. 2세 산재 인정을 위한 싸움은 이렇게 권리를 위한 시간을 늘이고 연결하며, 재생산을 위한 정의를 넓히는 구체적인 현장이 된다.
반도체 전자산업 2세 직업병 문제 한-대만 교류 세미나 후기
: 산업이 생산하는 몸의 손상, 노동하는 몸의 시간성, 생산과 재생산 관계를 새롭게 고민하는 시간
나영정
셰어는 지난달 뉴스레터에서 전한바와 같이 반올림의 초대로 장애여성공감과 함께 2세 산재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있다. 반올림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워 여성노동자의 산재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든 성과에 이어 그동안 제대로 꺼내지 못한 태아 손상, 2세 산재 피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25일에는 전자산업 2세 직업병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한국과 대만의 활동교류 세미나가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대만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타보이(이하 타보이)가 주최하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가 함께 참여해서 온라인에서 두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당초에는 주최측 멤버들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심있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서 40여명이 함께 했다.
반올림과 타보이는 그동안 꾸준히 교류하면서 전자사업 산재 문제에 대해 대응해왔다. 동아시아의 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성장기에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중반 여성노동자들이 ‘손이 빠르면서 순응적이고, 저임금이 정당화되는 몸’으로 간주되어 전자/반도체 산업 현장에 배치되었다. 타보이에서 대응해왔던 중요한 사례는 대만 RCA 타오위안 공장의 사례였고, 이날 세미나에서도 RCA 산재피해자들이 여러분 참석하셨다. 미국 무선 전기회사인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n)는 1960년대 미국 인디애나 공장에서 심각한 환경오염과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대만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대만 정부는 외자 유치를 위해 면세등의 특혜를 주며 대만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특히나 이 공장 폐수로 인한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하고 기숙사에 생활하던 노동자들이 정수되지 않은 오염수를 장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8년 공장은 철수했지만 지하수 정화는 실패하였고, 대만정부는 이 지역을 첫 영구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공장이 철수한 이후 퇴직한 노동자들에게 잇따라 암이 발병하고 산재 피해가 심각한 것이 확인되자 피해자들은 단체를 꾸려서 20년 이상 투쟁하고 있다. [ref]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장시간·저임금·직업병’ 삼중고 시달리는 전자산업 노동자들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 국제심포지엄, 매일노동뉴스, 2010-03-05.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045 [/ref]
한국에서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처음으로 유해 노동환경으로 인한 2세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임신 중의 노동자와 태아가 같이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상보험법의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했던 기존 판결을 뒤집고 10년의 투쟁 끝에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에는 2세 산재에 대한 보험 급여 관련 규정이 없어 판결 후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이향춘 본부장은 그간의 제주의료원 간호사 2세 산재인정 대응활동을 공유하고,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 대한 산재 보상과 법 개정을 위한 투쟁에 계속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은 2세 산재 문제 대응 과정을 공유했다.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넘어서기까지 어려운 지점들을 설명하고, 삼성반도체, LG디스플레이, SK반도체와의 투쟁으로 태아 사망과 유산에 대한 문제를 교섭안에 포함시켜 보상받았던 성과와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의 쟁점에 대해서 소개했다. 법개정을 통해 이전의 피해자들의 2세 산재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 자녀를 돌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유족급여에 포함할 것, 남성노동자의 생식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인정하고, 유해요인을 화학물질에서 더 넓은 차원으로 확대할 것에 대해서도 요구하고 있다.
셰어의 이유림 기획운영위원은 “국가가 나서서 누가 재생산을 할 자격이 있는 시민인지, 누가 자격이 없는 시민인지를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류해온 역사를 문제 제기”해온 낙태죄폐지 운동을 언급하고 “재생산은 누가 이 국가에 속하는지, 누가 속하지 않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Ginsburg and Rapp 1995: 3) 현장”이라고 하며 2세 산재 문제와 성과 재생산 권리가 만나는 것의 중요한 의미를 지적했다.
“모든 노동자가 어떤 형태로든 재생산과 연결된 존재이며, 재생산이라는 ‘미래’를 보장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노동자의 ‘미래’는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내고, 국가는 이를 방임합니다. 유독한 환경에 노동자를 방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노동자를 ‘미래가 없는 존재’라고 다룰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관점에서 2세 산재의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생식(procreation) 건강의 문제를 넘어서, 노동자들이 성과 재생산을 누리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권리의 내용들을 만들어내고, 국가, 기업, 사회의 책임을 명시하는 것입니다.”라는 발제문의 내용이 그 의미를 핵심적으로 짚어주고 있다.
대만에서는 타보이 활동가 2명과 RCA전자의 피해자 5명이 함께 참여했다(발표자에 따라 앉아있는 대형을 활기차게 바꾸시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셔서 온라인 넘어 내적 친밀감을 느꼈어요).
대만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타보이와 RCA 산재피해자 모임에서 참여하고 있는 모습(위)
온라인 교류회를 하고 있는 줌 프로그램 화면(아래)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RCA 전자 피해자들은 현재 1700명의 노동과 가족들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이 소송은 암 발병이나 일하던 당시에 입었던 피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의 산재법에서도 생식(procreation) 건강(유산, 사산, 불임, 월경불순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사회적인 인식도 낮으며, 당사자들도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꺼내는 것이 오랫동안 어려웠다고 했다. 타보이의 활동가들은 RCA 전자의 문제가 단지 과거의 일로 인식되고 있어서 현재 싸움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고, 페미니즘 단체와 연대하거나 재생산권의 이슈와 연결하는 활동도 미진한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타보이 활동가들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2세 산재문제를 다루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하면서 한국 운동과의 교류가 좀더 활발해지고, 서로 배우고 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서 RCA 전자 피해자분들이 전해준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이가 결혼하거나 구직할 때 문제가 생길까봐 쉬쉬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았는데, 그분들이 했던 이야기는 돈을 받아서 좋은게 아니라 드디어 자기의 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시부모나 남편 조차도 아이가 아픈 것이 엄마 탓일지 모른다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는 산업재해가 가져오는 피해와 삶의 영향을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각도로 이해해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이는 단지 피해가 대물림된다, 여성이라서 더 낙인을 받는다는 주장에서 머물지 않는다. 산재의 피해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구조가 있다는 것은 이 노동에 누가 적합한가를 정하고 배치하는 것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성적 즐거움과 재생산의 의무나 책임을 분리시키고, 생산을 위해 특정한 몸을 훼손하고 소진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과 국가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의 미래를 케어하는가하는 인구정책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단지 가임기 여성의 숫자, 단지 생산가능 인구의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이러한 몸의 위계에 좀더 천착해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시한번 노동권과 성과 재생산권의 만남은 노동의 성별분업구조, 노동 과정과 노동 이후에 찾아오는 몸의 손상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국가의 인구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이 서로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2세 산재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활동을 엄마의 죄책감, ‘기형아’에 대한 우려, 끝없는 보상 요구와 같은 식의 왜곡과 축소를 단호히 거절한다. 2세 산재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은 산업이 생산하는 몸의 손상, 노동하는 몸의 시간성, 생산과 재생산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발휘하고, 관계도를 그려나가는 작업을 요한다. 내가 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권리로서의 정보는 노동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될 수 없고 일의 결과로 미치는 신체적 정신적 영향에 대한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거나 퇴직한 이후에 일어나는 심신의 변화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회에서 미래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와 성과 재생산권리를 박탈하는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도 불가능하다. 2세 산재 인정을 위한 싸움은 이렇게 권리를 위한 시간을 늘이고 연결하며, 재생산을 위한 정의를 넓히는 구체적인 현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