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4화 :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국가와 의료인의 의무를 재확인한 Grimmark 소송

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 연재를 시작하며

"I dream of the day when every new born child is welcome, when men and women are equal, and when sexuality is an expression of intimacy, joy and tenderness." 

“나는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환영받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며, 섹슈얼리티가 친밀함과 기쁨과 친절함의 표현형이 되는 날을 꿈꾼다.” _Elise Ottesen-Jensen(스웨덴의 성교육자겸 여성운동가. 유럽 최대의 성재생산권 NGO인 RFSU 창립자)


‘낙태죄’가 폐지된 지 4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진료현장은 달라진 바 없고, COVID-19 팬데믹과 의료대란 시기의 성과 재생산건강은 ‘필수의료’가 아니라고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셰어의 연구위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윤정원 전문의는 지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스웨덴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스웨덴은 80년 전부터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인권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제도, 정책, 서비스를 상당 부분 실행하고 있는 스웨덴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상황을 8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각국의 재생산클리닉 현장과 성재생산 정책의 맥락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4화-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국가와 의료인의 의무를 재확인한 Grimmark 소송


이번 지면에서는 2014년에서 2020까지 스웨덴의 재생산건강 씬을 흔들었던 사건을 소개하려 한다. 스웨덴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까지 꽤 회자된 이 사건은 재생산 건강과 권리, 특히 임신중지를 둘러싼 긴장의 전선이 전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이자 동시다발적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스웨덴의 원칙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법정공방의 주인공, Ellinor Grimmark (왼쪽)과  Linda Steen(오른쪽)

사진출처: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51874119


7년간의 소송이 시작되다

Ellinor Grimmark는 스웨덴 옌셰핑Jönköping주에서 태어나 30대 후반에 간호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호글란드병원Höglandssjukhuset에서 노인병 클리닉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2012년 8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조산사 교육을 받기로 주 정부와 계약을 했다. 스웨덴에서는 주정부와 계약하여 일하는 간호사는 공무원에 준하기 때문에, 휴직계를 내고 조산사교육을 받는 동안 학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2013년 봄, 그는 호글란드병원의 여성클리닉에서 여름철 단기근무[ref]스웨덴의 노동자들은 약 한달정도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고 대부분은 그것을 여름에 쓴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새해 휴가가 2-3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은 여름철에 휴가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단기근무 계약직들을 많이 뽑게 된다.[/ref]를 할 예정이었으나, 시작하기 직전 고용주에게 종교적 신념 때문에 임신중지를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호글란드 병원은 임신중지시술이 조산사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이며, 이를 수행할 수 없는 조산사는 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따라 병원은 그의 채용을 취소했다. 2013년 7월, Grimmark는 다시 옌셰핑 주의 Ryhov 주립병원에 채용을 지원했지만 여전히 임신중지와 사후피임약 투약, 자궁내장치 삽입등의 행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여, 직원은 클리닉의 모든 업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한번 채용이 거부되었다. 그 다음달에는 조산사교육을 받기 위해 지급되던 학생급여가 원래대로라면 1년 더 연장되었어야 하지만 취소되었다. 2014년 3월, 조산사 면허를 딴 그는, 자신의 고향인 Jönköping주 보건 당국을 차별 옴부즈맨[ref]옴부즈맨 제도는 스웨덴에서 기원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 ‘보호자’라는 뜻을 가진다. 일반국민을 대리하여 행정부와 사법부의 행위에 대해 감시하는 기능, 국민과 행정기관과의 분쟁을 알선, 조정, 중재하는 기능, 감찰과 시정권고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옴부즈맨 제도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의회옴부즈맨, 소비자옴부즈맨, 언론옴부즈맨, 장애옴부즈맨, 기회균등옴부즈맨, 성적성향에따른차별금지옴부즈맨, 아동옴부즈맨등이 있으며, 그중 평등옴부즈맨Diskrimineringsombudsmannen, Discrimination Ombudsman은 2009년 설립되었으며, 일터에서의 차별금지법 실행상황을 검토하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기관이다. [/ref]에 직접 신고했다. 그는 본인의 기독교 신앙 때문에 채용에 차별을 받았다는 논리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사이 다시 지원한 Värnamo 병원에서도 채용과 관련된 면접이 진행되었지만, 그가 소송을 제기한것이 지역 신문에 알려지자 채용은 취소되었다. 

2014년 4월, 차별옴부즈맨은 그가 종교나 기타 신념으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고 가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만일 어떤 조산사가 종교에 상관 없이 일부 업무를 거부했다 하더라도 병원은 계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종교에 의한 차별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옴부즈맨은, 국가보건복지위원회에 따라 조산사 직업의 정의에 임신중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조산사 직위에 지원한다면 조산사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다음으로 변호사 Ruth Nordström와 함께 주지방법원과 연이어 노동법원에까지 항소를 제기했고, 이번에는 유럽인권협약으로 알려진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위한 협약]을 근거로 자신의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약 3년간의 심리 끝에 지방법원(2014년)과 노동법원(2015년) 역시 차별옴부즈맨의 결론과 동일하게 판결하였고, 유럽인권협약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재판소는 스웨덴 정부가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 시스템에서 낙태 시술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으며,  조직의 업무를 정의할 권리가 있는 고용주에게 특정 업무를 면제해 달라는 직원의 신앙적 요청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내 법원들의 판결 이후, 그와 그의 변호사는 다음으로 2017년 6월, 유럽인권재판소에 스웨덴 국가를 제소하기에 이른다. 이때의 원고는 Ellinor Grimmark와 Linda Steen 였다. Linda Steen은 노르웨이 출신의 간호사로, Grimmark 와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그녀는 2006년부터 스웨덴 Södermanland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2013년 조산사교육을 위해 휴가를 신청했다. 주정부는 휴가를 인정하고 2년동안 학업을 마치고 면허를 취득하면 2016년부터 뉘셰핑의 여성병원에서 조산사로 2년을 근무한다는 조건 하에 학업급여를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만약 학업을 마치지 못하거나 뉘셰핑에서 조산사로 근무하다가 2년 이내에 그만두게 된다면 학업급여를 반환해야 한다) 그런데 2015년 3월, Steen은 니셰핑 여성병원의 산부인과에 연락하여 임신중절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게 된다. 병원에서는 재고를 권유했으나, 그는 다른 여성병원에 채용면접을 보러 갔고, 결국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주 보건당국이 그와의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원래 일하던 건강관리센터 간호사로 발령을 내며 학업급여를 박탈하였다. 이에 그 역시 주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지만 역시나 기각되었고, 2017년 유럽인권재판소에 Grimmark와 함께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유럽 인권조약 제9조(종교 및 신념의 자유)와 제14조(차별 금지)를 근거로 자신들이 차별받았다고 주장했다. 3여년간의 심리 끝에, 유럽 인권재판소는 스웨덴 정부의 공공 의료 서비스 제공 의무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보다 우선한다며, 스웨덴 정부가 유럽인권조약을 어기지 않았다고 이들의 소송을 기각시켰다.  2021년 10월 그들의 항소 신청이 기각되어 최종적으로 소송은 완전히 종료되었다.[ref] https://laweuro.com/?p=10488 https://laweuro.com/?p=10486 [/ref] 법원과 재판소들의 평결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국가와 의료인의 의무를 재확인하고 있다. 산부인과 진료소는 모든 조산사가 수행되는 모든 업무에 참여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조직되어 있고, 임신중지는 산부인과 진료소의 모든 측면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으므로, 고용된 모든 조산사는 임신중지를 포함한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법원은 고용기준이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신속하게 제공한다는 합법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국제적인 반-권리운동의 결집과 확산

어떻게 이 두 명의 조산사들이 6년에 넘는 기간 동안 재판을 끌어나갈 수 있었을까. Ellinor Grimmark와 Linda Steen은 결국 스웨덴의 아무 병원에서도 일할수 없었기에 노르웨이로 이주해서 조산사로 일하고 있다. (스웨덴에 의료진 부족이 심각한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진료만 하겠다는 의료인을 채용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학업급여를 받지 못했기에 자비로 교육비를 내야 했고, 매 재판마다 스웨덴의 법원들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에 와야 하고, 심지어 지방법원에서 패소했을 때는 정부측의 소송비용으로 약 1억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물어줬어야 했다. 이 막대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신념으로만 진행할 수 있었을까. 


Ellinor Grimmark 와 그의 변호사  Ruth Nordström

사진출처: https://www.aftonbladet.se/nyheter/a/OVpEq/abortvagrare-gar-till-europadomstolen 


예상할 수 있겠지만 답은 당연히 아니다. 이 사건이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선 이유는, 임신중지에 대한 여론의 대립이 팽팽해서가 아니었다. 이 사건이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임신중지 반대 단체인 Alliance Defending Freedom(ADF)에서 자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이었다. 지방법원 소송부터 Grimmark 의 변호를 맡은 Ruth Nordström은 Scandinavian Human Rights Lawyers 라는 단체의 회장으로, ADF의 소속변호사이기도 하다. ADF는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 법률로비단체로, 1993년 설립되어 공립학교와 정부 내에서 기독교 종교의 자유를 확대하고, 임신중지를 공격하고, LGBTQ권리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ref]https://en.wikipedia.org/wiki/Alliance_Defending_Freedom[/ref] 미국내에서 이루어진 동성결혼식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제빵사 소송[ref]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1806052047001[/ref]부터,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접근성을 높인 FDA 고소[ref]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312181139001[/ref], 미국의 임신중지권을 대법원에서 뒤집은 최근의 2022년 Dobbs 판결[ref]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208081738001[/ref]까지,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한해 예산이 약 오백억원에 달하며, 2010년부터는 ADF international 이라는 지부 활동을 통해 해외까지 그 활동 영역을 넓이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의 기독교민들에 대한 탄압에 대한 EU 의회 로비부터, 우간다에서 COVID 방역을 위해 정부가 조치한 집합금지와 마스크 의무착용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활동과 국제대회출전을 막는 조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자금과 반권리운동의 전략들이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요 타겟은 현재는 유럽과 아프리카이지만, 자금과 전략, 그리고 선례들이 전 세계의 반권리운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임신중지권리가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백래시도 거센 이유는 반권리운동도 결집하고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회 성재생산권리포럼European Parliamentary Forum for 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EPF)에서 2021년에 발간한 보고서는 이러한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의 자금이 유럽내 성과 재생산 건강과 인권을 후퇴시키는데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세무 자금추적과 조직 분석을 통해 밝혀[ref]https://www.epfweb.org/sites/default/files/2021-08/Tip%20of%20the%20Iceberg%20August%202021%20Final.pdf 기사에서 소개한 내용 이외에도 러시아의 반동성애 운동이 유럽에 미친 영향, 유럽내에서 자생된 극단주의 그룹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들로부터 자금과 영향을 받은 정치인들은 누가 있는지, 그로 인해 제정된 법률들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이 보고서의 이름은 [빙산의 일각Tip of the iceberg] 이다.[/ref]냈다. 보고서에서 설명하는 자금조달 모델에서는, 영향력있는 거물 기부자들이 미국내 활동가 집단을 지원하는 자선재단을 설립히고, 이 재단들은 다시 해외에서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운영된다. 미국의 보수조직 American Center for Law & Justice(ACLJ)는 유럽에 ECLJ를 설립하고 2020년까지 140만달러를 송출했으며, 미국의 ADF가 설립한 ADF International은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ref]본사들의 위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와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엔 사무총장 사무소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로비와 입법활동, 국제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곳들에 전략적으로 위치해있다.[/ref]에 본사를 두고 다양한 유럽 단체와 국회의원들에게 약 27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들의 자금은 청년 리더쉽 프로그램, 반권리 시위와 집회 조직, 각종 미디어 광고, 정치인과 관료들에 대한 로비, 반권리운동에 동참하는 의료인[ref]스웨덴에서는 먹히지 않았지만, 반권리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국제적인 연대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2012년 낙태반대운동을 추진했던 진오비가 2013년 미국생명존중산부인과의사회American Association of Pro-life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의 의사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한 바 있다.http://www.doctor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339[/ref]들의 연구비용에 들어가고 있으며, 스웨덴 Grimmark 사건도 물론 여기에 포함 되었다.


국가의 책임과 의료인의 직무를 다시금 확인하다.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오면, 본 사건에 대해 스웨덴의 의료인들은 스웨덴의 임신중지정책은 항상 환자의 필요가 우선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스웨덴 조산사 협회의 미아 알베르그Mia Ahlberg 회장은 2017년 BBC와의 인터뷰[ref]https://www.bbc.com/news/world-europe-38756567[/ref]에서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와 조산사의 책임성이며, Grimmark가 임신중지에 반대한다면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여러 기관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본 사건에 대해 거듭 질문을 해봤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별로 대수롭지 않다’ 였다.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거치면서 대중이 임신중지에 대해 가지는 입장이 ‘여성의 기본권, 여성의 건강권’으로서 명확하며, 의료인들 역시 임신중지가 성/재생산건강 진료의 필수적인 한 파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중과 의료인에게는 재고의 여지도 없는 터무니없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비영리 성건강 진료소이자 성교육 기관인 RFSU clinic의 총책임자 Catharina Lundgren은 국제적인 반낙태그룹[ref]만나봤던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Anti-choice movement 라는 표현을 썼다. 임신중지클리닉에 폭탄테러를 하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Pro-life라는 타이틀을 줄 수 없다고.[/ref]이  반낙태 신념을 가졌거나 스웨덴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조산사가 되는 과정의 교육비를 지원해주고, 실제 조산사면허를 받은 후 임신중지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도록 하여 이 재판을 의도적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반낙태세력의 입장에서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입법활동이나 합의지향적 보건복지정책에 개입할 여지가 너무 적기 때문에 이런 기획소송들을 만들어내는 수준이고, 그것도 태아의 생명권 vs 여성의 결정권 같은 논리로는 가망이 없기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들어 기획소송을 했지만, 이번 판결은 국가가 국민의 성재생산건강을 보장할 의무와 의료인의 직무범위를 다시 한번 재확인 한 것이었다. 후딩예 카롤린스카대학병원의 임신중지클리닉의 조산사 Lynn도, 당시 취재를 온 기자에게 병동의 조산사들이 함께 단체로 우리는 우리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인터뷰를 했다며, 얼굴도 공개해서 조금 쫄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신념에 기반한 거부, 신념에 기반한 제공

의료인에게 신념에 기반한 거부를 허용할 것인지는 (한국에서도) 첨예한 논쟁 지점에 있다. 많은 서구 국가에서는 의료인에게 신념에 기반한 거부를 허용하고 있으나, 치료를 제공할 다른 의사에게 효과적으로 의뢰하고, 모든 옵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응급상황일 경우에는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절충장치를 동시에 갖도록 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의 북유럽국가들은 공공의료시스템에서 의료인이 신념을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거부하는 것을 아예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이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있더라도 지금까지 본 것 처럼 무산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할까.[ref]이하 단락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였다. Fiala C, Gemzell Danielsson K, Heikinheimo O, Guðmundsson JA, Arthur J. Yes we can! Successful examples of disallowing 'conscientious objection' in reproductive health care. Eur J Contracept Reprod Health Care. 2016 Jun;21(3):201-6. doi: 10.3109/13625187.2016.1138458. Epub 2016 Feb 3. PMID: 26838273.[/ref]

유럽의회가 의료진의 거부할 자유를 명시했음에도, 스웨덴 의회는 지속적인 거부권 입법 시도를 막아왔다. 보건의료당국은 임신중지나 피임시술에 반대하는 사람은 산부인과의사나 조산사가 될 수 없다고 공지하고 있다. 임신중지는 모든 의대생의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으며, 산부인과의사나 조산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임신중지 진료에 대한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을 거부할 수 있는(Opt-out) 방법은 없다. 임신중지를 반대하는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거나 취업을 할 수 없기에, 산부인과학이나 조산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꺼린다. 병원은 임신중지나 피임상담을 거부하는 의사나 조산사의 고용을 거부할 수 있다. 스웨덴을 포함하여 거부권을 허용하지 않는 북유럽국가들을 비교한 이 논문은, 이들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사회안전망이 탄탄하고, 양성평등 수준이 높으며, 종교이 영향력이 적은 국가들이라고 결론내린다.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공공재정 지원, 모든 지역에 서비스 안배)은 높으며, 임신중지가 여성을 위한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와 국가가 이를 제공할 의무가 우선시되는 가치일 수 있게 되었다.

임신중지에 대한 신념에 기반한 거부에 대한 수용이 커질수록, 참여를 거부하는 의료 전문가의 수가 많아지고, 그럴 수록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신념에 기반한 거부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의 선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신념에 기반한 거부자로 등록한 산부인과 의사가 전국적으로 69퍼센트가 넘고, 일부 지역은 90퍼센트에 달한다[ref]Domenici (n 12) 12; Elena Caruso, ‘Abortion in Italy: Forty Years On’ (2020) 28 Feminist Legal Studies 87.[/ref]. 이런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소수의 기관 앞에는 여성과 의료진을 괴롭히는 시위자들이 포진되기 마련이다. 여성에 대한 무례와 편견,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저하, 거부로 인해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생기는 임신중지의 지연, 거부하는 의료인들로 인해 제공하는 의료인에게 과중/편중되는 업무 등, 거부를 허용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스웨덴에서는 볼 수 없다.


나가며

여성의 건강권과 의료인의 직업에서의 자유권, 둘 다 잃지 못해서 절충안들을 가지고 있는 서구 나라들을 보다 스웨덴을 보면, 국민의 건강권과 사회적 합의, 신뢰를 밀어붙이는 스웨덴의 뚝심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임신과 난임은 국가의 책임이지만, 피임과 임신중지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의료인이 임신중지를 제공하든 거부하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한국정부에 뭐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신념에 기반한 거부권 논의는 관행적, 이념적으로 이루어져왔고, 근거나 환자안전에 기반해 오지 않았다. 거부의 동기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생각보다 종교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임신중지가 낙인이고 불법이라 거부가 가능했던 환경만 경험했던 의료진은 비범죄화가 되었다 하더라도,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 몰라서, 그동안 안 해 왔기에 관성적으로 계속 안하고 싶어서, 수지타산이 안 맞기에, 임신중지를 하는 의사라고 낙인받고 싶지 않아서 임신중지를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의과대학에서부터, 전공의수련과정에서부터 임신중지를 의료서비스의 하나로 교육받았다면 어떨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적정 수가를 받는다면 어땠을까. 임신한 여성을 케어를 안할거면 왜 조산사/산부인과의사를 했대? 라는 이야기를 당연하게 듣는 환경에서 의료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실천하고 있는 나라에서, 다시 한번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참고한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law/2020/mar/13/swedish-midwives-who-oppose-abortion-fail-in-rights-case 

https://www.politico.eu/article/roe-vs-wade-us-the-european-activists-taking-inspiration-and-money-from-us-anti-abortion-groups/ 

https://inkstickmedia.com/how-the-us-christian-right-funds-anti-abortion-activities-abroad/ 


👉[윤정원의 스웨덴 재생산건강 탐방기] 5화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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