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는 초대장: 섹슈얼리티의 권리화와 ‘생산되는 손상’의 교차로에서 노동하는 몸을 다시 생각하기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는 초대장: 

섹슈얼리티의 권리화와 ‘생산되는 손상’의 교차로에서 노동하는 몸을 다시 생각하기



이유림



1. 반올림의 초대장

 

항암약 조제를 담당하던 제주의료원의 간호사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유해한 노동환경으로 인해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산업 재해가 발생하였고, 업무상 재해가 자녀들의 삶에 미치게 된 질병이나 장애의 영향에 대해 국가에게 책임을 요청하는 소송이었다. 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지닌 자녀를 출산하였고, 5명은 유산을 했다. 해당 소송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태아는 노동자로 볼 수 없고,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있는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직접적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급여 신청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결정을 깨고, 임신 중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해석했다. 유해한 노동 환경이 임신 중 태아에게 질병이나 장애 등을 야기하였다면, 그 영향을 받은 자녀 역시도 수급 자격을 지닌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2심 재판부의 결정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문제제기에 따르는 법적인 논쟁은 태아가 해당 사안에서 권리의 체로 인정될 수 있는지, 법은 태아의 지위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 그 권리의 내용은 무엇인지가 주요한 쟁점이다. 태아는 산업재해보호법 안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 산업재해보호법은 태아를 보호해야 하는가? 태아는 노동현장에서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 노동자인 여성과 태아는 어떤 관계인가? 분리될 수 있는 관계인가? 이를 규정하고 정의하는 방식이 다른 법과 권리, 이를테면 임신중단의 권리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질문들과 유사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하지만 법체계 내 논리를 엄밀하게 탐색하는 것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모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체계에서 권리의 주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권리로 보장할 것인지는 민주 사회의 논의와 숙고, 투쟁의 영역이었음을 지각하고,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러한 논의를 하는 것 인지에서 질문을 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은 비단 법제도적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나의 권리의 감각을 성찰하고 확장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새로운 권리의 언어와 주체를 찾아나가는 운동인 것이다. 성과 재생산 건강의 영역에서의 침해는 노동자 개인으로 명시되는 경계와 현재라는 시간성을 넘어 다른 인간 존재의 영역, 그 존재와 연결된 미래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새로운 언어와 관점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유해한 업무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재생산 건강을 보장받지 못하고, 출산한 자녀들에게 건강 피해가 발생한 상황은 반도체 노동의 영역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식건강과 자녀의 건강 손상에 대응하고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투쟁을 하면서, 이에 얽힌 다양한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셰어, 장애여성공감과 공동의 논의 테이블을 구성했다.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넘어서, 어떻게 일하는 존재들의 성과 재생산 건강을 보장할 것이며, 노동의 영역에서 성과 재생산 권리의 내용은 무엇이 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모색해보기 위해는 관점을 전환하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왜 출산하는 몸을 가진 존재가 노동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건강 손상은 기존의 법정책의 체계 안에서 권리의 언어로 다루어지기 어려운가?

 


2. 노동자의 섹슈얼리티

 

이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법윤리적 난제를 의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출산 능력, ‘모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제의 반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노동에 대한 권리가 어떤 몸을 설정하고 하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기존 법체계가 보장하는 권리의 틀, 즉 내용과 규정에서 무엇이 충돌하거나,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애초에 비장애 남성이 아닌 몸이 살아가는 시간성과 육체성이 반영된 권리의 언어가 부족하다. 몸이 가진 질병이나 장애의 상태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정하지 않게 매일 달라지는 몸, 독립과 독립되지 않음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달라지는 임신한 몸, 다양하고 성적인 몸들이 현실세계에서 노동하고 있다. 다양한 몸과 섹슈얼리티를 가진 존재들은 권리의 담론에서 어떤 위치에 서있는가? 노동의 영역에서의 권리의 언어는 이 존재들이 노동, 노동 장소와 과정에서 불화하는 방식에 주목하지 않거나, 또는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재현하는 경우만을 인지한다. 출산하는 휴가는 인정하지만, 임신 중지를 하는 휴가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정서적 돌봄이 결합된 비서노동을 기대하고 업무를 배분하지만, 그러한 노동이 젠더 폭력과 위계에서 취약해지는 지점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것이다.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마치 인간의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듯한 기존의 추상적 권리론에 ‘육체성’과 ‘시간성’을 부여하는 비교적 새로운 권리 담론 중 하나이다. 우리는 아무런 시공간의 제약 없는 백지 상태에서 자기결정을 행하고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펼쳐 나가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의 몸이라는 공간에 기반하여 타인의 몸과 교류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존재이다. 이 새로운 권리론은 나의 몸이 위치한 사회경제적 좌표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논하는 것은 공허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시민사회의 깨달음을 반영한다. 그리하여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그동안 적절하게 대변되지 못했던, 우리가 육체성에 기반하여 가지는 욕구 - 성적 욕구와 친밀감에 대한 욕구, 재생산 활동에 대한 욕구를 긍정하고, 사람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더 솔직한 인권 개념을 정립하는 데 매우 유용한 권리체계이다.   오승이, 2020.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의 제안을 기대하며”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2020년 6월 이슈페이퍼)

 


따라서 출산하는 몸을 가진 존재의 노동을 어떻게 권리로서 보장할 것인지는 기존의 권리의 틀에 이들의 삶과 몸을 편집하여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인간 존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성과 재생산,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권리화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 오승이 판사가 지적한 것과 같이 “몸이 위치한 사회경제적 좌표” 없이 존재하는 추상적 권리의 내용들은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사회 속에서 노동하고 관계 맺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불이익과 폭력을 구제하는 것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셰어를 함께 꾸리고 있는 나영과 나영정은 “국가 권력과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섹슈얼리티 인권 운동”라는 글에서 기존의 사회 담론 및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분열적으로 다루어왔는지에 주목한다. 사실상 섹슈얼리티의 영역은 그 개인의 젠더를 비롯하여 성적 친밀성과 관계들, 그것이 위계적으로 배치되며 발생하는 취약성, 그 취약성에 말미암은 낙인, 폭력, 차별을 포괄하지만 법정책과 관련된 담론 속에서 선택적이며, 분열적으로 구성되어 왔음을 짚어낸 것이다.

 

“남성 중심의 노동과 분배의 구조에서 여성들이 처해 .있는 불평등한 지위와 노동관계에서의 차별 문제는 오랜 시간문제제기가 이루어져 왔어도 섹슈얼리티에 따른 억압과 통제의 ,방식이 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지거나 단지 문화적인 문제로 취급되었다 (87p.)”    나영·나영정, 2021. “국가 권력과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섹슈얼리티 인권 운동.” 인권운동 3호.

 

몸을 가지고 친밀성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고, 어떤 형태로든 인간 재생산 및 사회의 재생산의 굴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서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분리할 수 있다는 관념 속에서 ‘비장애/이성애 남성’이라는 추상성을 기반으로 한 법과 제도가 정당성을 갖는다. 이러한 법제도가 보장하는 권리들은 애초에 그 추상적 존재에서 벗어나는 존재들과 불화할뿐더러, 이는 노동의 장에서 섹슈얼리티에 기반하여 벗어나는 존재들을 ‘(잠재적)위험’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사회적 효과를 만든다.


일례로 이 글에서 나영과 나영정은 비서 노동자가 수행하는 비밀유지, 일상적 돌봄 및 감정 노동과 섹슈얼리티의 교차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비서의 업무 역량인 ‘충성심’이라는 척도 아래에서, 비서의 노동이라고 여겨지고 요구되는 것들이 곧 여성 비서에게는 상사의 성희롱을 견뎌야 하는 ‘위력을 구성’하는 것임을, 따라서 섹슈얼리티와 연동된 취약성을 발생시키는 이 지점을 바로 투쟁의 장으로서 구체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동과 섹슈얼리티가 상호구성적임을 외면하는 법과 제도는, 오히려 여성 비서의 존재를 노동의 장 바깥의 외부인으로 위치시킨다. 여성 비서 개인의 노동이 언제든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배제와 낙인의 전형적인 생산이다.


출산하는 몸, 재생산하는 몸이 노동과 노동현장과 관계 맺는 지점에 대해서 ‘모성’이라는 프레임으로 권리를 상상하는 방식 역시 동일한 기만을 범한다. 모성 보호의 프레임은 여성은 잠재적인 모체로 전제하고, 잠재적 모체인 여성을 노동하는 몸과 대치시키며, 모체를 유해한 노동 환경에서 분리하는 제도이다. 이는 오히려 노동 현장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상황을 초래하여, 결국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몸과 능력의 특질로 수렴시킨다. 출산하는 모체의 노동은 사실상 사회 재생산의 가장 기본을 지탱하지만,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서 그 행위가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는 가치가 계속해서 비가시화 되어 왔다. 사실상 임금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모성과 모체의 ‘노동’을 사회경제의 회로에서 통합적으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노동의 환경’의 문제는 노동의 문제로 모성은 ‘여성의 문제’로 가를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유해한 노동 환경이 재생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성별에 관계없이 발생한다. 현실세계에서의 개인의 노동과 그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좌표가 근본적으로 섹슈얼리티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섹슈얼리티를 권리로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섹슈얼리티를 권리화하는 구체적인 내용 안에서 특정한 섹슈얼리티를 다시 위계화하여서, 피해를 나열하고, 구제를 요청하고, 취약성을 보호하라는 온정적인 요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3. 장애와 산업재해, 생산되는 장애

 

유해한 노동 현장에서 건강상의 손상을 입은 노동자의 2세에게 발생한 질병이나 장애에 대해서 기존 제도 안에서 문제제기를 할 때, 자녀들이자 당사자이기도 한 존재들의 질병과 장애는 ‘피해’로 위치된다. 산업 재해로 인한 장애는 노동의 과정에서 발생해서는 안 되는 건강상의 피해이자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특정한 노동 환경을 방치함으로서 이윤을 얻는 자본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그렇다면 산업 재해의 현장에서의 건강상의 손상과 장애를 피해로서 문제제기 하고, 자본의 책임을 촉구하는 과정은 장애운동 안에서 형성해온 운동의 역사성과 권리의 언어들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스비어 푸아르(Jasbir Puar)[ref]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진 자스비어 푸아르(Jasbir Puar)는 퀴어이론과 탈식민주의적 관점의 장애학 연구자이다. 장애학이 탈식민주의 연구의 큰 줄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지리적으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장애인의 인구와 장애의 생산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의 식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중심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ref]는 Right to Maim (2017)을 통해 푸코의 생명정치논의를 비판적으로 확장한다. 푸코는 지배자가 어떤 존재를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던("make die and let live") ' 통치의 방식에서 어떤 존재들을 ‘죽게 두는 것(“let die”)’으로 이행하며, 생명 정치가 구성되는 기제를 분석한다. 푸아르는 그에서 나아가 ‘죽게 두지 않는 것("will not let die")’, 죽게 두지 않고 어떤 인구 집단이 특정한 상태로 존재 하게하는 정치경제학을 탐색한다. 생사여탈권과 불구로 만들 권리(right to maim)은 대응하며, ‘죽이지 않는 불구화’로 생명정치의 논의를 확장한다. 푸아르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한 현장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i Defense Force)의 공격은 지난 10년간 팔이나 다리를 공격함으로써 ‘죽이지’ 않고, ‘불구화’를 하는 패턴을 보인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가진다. 하나는 부상/손상의 경우 ‘일상적이고 부수적인 피해’의 영역에 있으며, 시급하게 개입하여 해결해야 하는 폭력으로 주목을 끌지 않고,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곳에 사는 존재들을 죽게 하지 않고 불구화하는 것, 그에 더해 병원 등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저항의 가능성을 영속적으로 삭제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즉, 푸아르의 정치경제학적 분석은 죽이지 않는 불구화를 통해 자본과 전쟁이 어떻게 이윤을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를 쇠약의 생명정치(biopolitics of debilitation)로 이론화한다.

 

“장애를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사회적 부정의의 억압적 구조의 강압에 의해 획득된 장애의 생산에 대해 투쟁하는 것 사이에는 생산적인 긴장이 있다. 전자는 장애를 개별적인 불행이나 사적인 비극으로 바라보는 배제적인 관점과 투쟁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동시에 장애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문제로 개념화될 수 없다(70p.).”    Puar, Jasbir K. 2017. The Right to Maim: Debility, Capacity, Disabil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장애와 산업재해,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으로부터 야기된 2세의 질병, 운동이 이러한 손상의 생산을 어떤 투쟁의 언어로 이야기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푸아르의 이론적 작업은 다양한 통찰을 준다. 푸아르의 문제의식은 전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억압적이고 불균등한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장애를 예외화하는 것에 대항한다는 당위로만 구축된 권리운동적 접근이 결국 자유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장애를 “존재론적 우연(ontological contingency)”으로 자연화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에 대한 권리 담론이 적극적 착취 행위로서 쇠약의 생산을 모호하게 하는 문화적 외관에 복무하게 한다는 것이다. 푸아르는 쇠약(debilitation)을 이론화하는 것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경험되는 쇠약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이 쇠약함이 어디에서 오는지/어떻게 생산되는지 비춘다.


예를 들어, 코로나의 상황에서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대면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비대면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장비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원료를 채취하고, 공장에서 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불평등하고 불균형하게 나누어져 있다. 전통적 제반시설 기반의 노동은 계속해서 산재를 통해 특정 지역, 특정 인구집단의 쇠약을 만들어내며, 전쟁의 경제는 손상을 생산함으로써 전쟁의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푸아르는 반자본주의적 관점의 장애학의 계보를 따라가며, 서구 사회에서 장애인이 사회적인 부담에 아닌 돌봄의 대상으로 위치되며 창출되는 서비스 이코노미(service economy)를 전지구적 불평등의 지정학과 결합한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모델은 손상된 몸이 아니라 비장애중심주의/에이블리즘을 지탱하는 사회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중략) 전쟁과 노동은 쇠약화의 과정들로서 이러한 사회 구조에 포괄되며, 그 너머, 계급, 인종, 지리적인 특권들은 이미 구축된 인프라와 그 접근성에 대한 장애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74p.).”    Puar, Jasbir K. 2017. The Right to Maim: Debility, Capacity, Disabil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불구화와 특정 인구집단의 쇠약을 어떤 노동 환경이 야기하는 피해나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로 보는 것을 넘어서, 신체적 쇠약의 생산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근간에 있음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피해의 구제’를 넘어서는 투쟁의 언어와 권리의 언어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신체의 쇠약을 통해 이윤을 만들고, 나아가 사람들이 쇠약을 회복하거나 극복하는 방식 모두에서 이익을 얻는 체제로 정의할 때, 유해한 노동 조건 속에서 발생한 장애, 불구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지구적 불평등의 핵심을 겨냥한다.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는 기제, 휴대폰을 사면되는 국가의 노동현장과 휴대폰을 만드는 원재료를 채취해야 하는 국가의 노동 현장, 어디에 거주하는지에 따라, 어떤 피부색의 몸을 가졌는지에 따라 ‘쇠약화된 인구’로서 구조 속에 존재하는 구조적 억압이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가 제기한 문제 속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새로운 권리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투쟁에 대한 초대장이다. 특정한 몸의 추상적 권리만을 보호하고, 그러한 몸의 노동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 속에서 배제되는 존재들의 권리를 모색하는 과정은 제도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없다. 성적인 몸, 섹슈얼리를 마땅한 권리로서 되찾는 투쟁을 통해 권리의 주체를 확장하고, 추상적 권리의 내용을 우리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산업재해로서 장애를 마주한 이들이 경험한 ‘피해’가 현 산업 구조의 노동 환경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개인의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전지구적 자본의 회로 속에서 불구의 생산을 통해 이윤을 만드는 경제구조의 구조적 억압으로서 투쟁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어떤 사회 정의와 운동을 열어갈 수 있을까.

셰어의 활동 소식과 성·재생산에 관한 뉴스를 받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셰어의 뉴스레터를 신청해 보세요. 알찬 소식으로 가득찬 뉴스레터를 월 1회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