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속 섹스 이야기를 하는 이유
김보영
2021년 12월 29일, 셰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에서 하루 동안 농성장 지킴이로 활동했다. 50여 일간 농성이 진행되는 중에 농성장에서는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셰어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 <차별없는 섹스 토크>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농성장에서 웬 섹스 토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섹스’라는 행위 또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성별, 나이, 질병, 성적지향, 직업, 장애 등에 따른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섹스 행위를 포함해 성적 즐거움, 성건강, 성적 권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가를 말이다.
이날 토크는 개인적인 고민이나 질문을 보내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번 섹스 토크는 성건강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성건강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지만, 감염이나 질병의 예방이 성적 즐거움이나 성적 권리를 곧바로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건강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섹스 토크가 아닌, 각자의 즐거움이나 어려움을 포함해 섹스의 다양한 부분을 짚어보는 것이, 그리고 그 속에서 차별을 발견해보는 것이 이번 토크의 목적이었다.
섹스 토크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청소년에게 ‘기능성 콘돔’은 판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거나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물건은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판매를 제한하는데, 이 법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요철식 특수콘돔’과 ‘약물주입 콘돔’(사정 지연 콘돔)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청소년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능성 콘돔도 일반 콘돔과 마찬가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성을 허가받은 의료기기임에도 청소년은 구입할 수 없는 현실이다.[ref] 올해 기능성 콘돔의 청소년 판매 금지가 합헌이라는 결정이 있었다. "요철식 특수콘돔 · 약물주입 콘돔 청소년 판매 금지 합헌" https://www.legal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288[/ref] 의도는 명백하다. (기능성 콘돔이 곧 성적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청소년이 섹스를 즐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 때문이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다. 나이에 따라 성적 즐거움의 향유 자격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별은 온갖 방법으로 삶에 끼어들고 즐거움을 방해하며 성적 권리를 저해한다.
성적 권리는 인권의 한 부분으로서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페체스키는 성적 권리 개념이 국제인권규범에서 등장한 흐름을 살펴보며 성적 권리가 왜 중요한지, 성적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성적 권리는 원치 않은 침입, 폭력, 학대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 상황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자유 모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자유는 자주 간과해버리는 인권 운동의 현실도 지적한다.[ref]Petchesky, Rosalind(2000), “Sexual Rights:: Inventing a concept, mapping an international practice”[/ref]

셰어는 부지런히 즐거움을 모으면서 이를 통해 성적 권리에 접근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셰어가 성교육에서 ‘플레져미터’라는 도구를 활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f]플레져미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글을 참조 https://srhr.kr/issuepapers/?idx=6142907&bmode=view[/ref] 플레져미터의 목표는 성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 사이에 효과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자기결정,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대화와 협상, 심신의 즐거움이라는 7가지 항목으로 자신의 성과 관련된 일상을 돌아보고 함께 대화해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성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일상에서 성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대화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를테면 자기결정과 동의, 안전이 충분히 보장된다 하더라도 심신의 즐거움은 낮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단순히 모든 항목의 점수를 높이는 것이 플레져미터의 목표는 아니다. 그보다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성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성적 권리의 내용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앞서 언급한 페체스키의 글에는 ‘성적 권리’ 개념이 갖는 모호성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에서 ‘성’에 관련된 부분이 자주 제외되고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만 집중되곤 하는 운동의 흐름이라든가 이성애 결혼 관계에 집중된 담론 형성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인권규범 또한 여전히 성적지향이나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꺼이 즐거워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두에게 셰어의 활동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함께 성적 권리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2022년을 맞이해보자.
* 2021년 12월 29일 진행한 <차별없는 섹스토크> 라이브 방송은 셰어 홈페이지 활동보고 게시글에서 다시보기 링크와 속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 셰어에서는 2022년 1월, 위에서 설명한 플레져미터가 수록된 성교육 워크북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을 발간할 예정이다. 텀블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계속 섹스 이야기를 하는 이유
김보영
2021년 12월 29일, 셰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에서 하루 동안 농성장 지킴이로 활동했다. 50여 일간 농성이 진행되는 중에 농성장에서는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셰어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 <차별없는 섹스 토크>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농성장에서 웬 섹스 토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섹스’라는 행위 또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성별, 나이, 질병, 성적지향, 직업, 장애 등에 따른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섹스 행위를 포함해 성적 즐거움, 성건강, 성적 권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가를 말이다.
이날 토크는 개인적인 고민이나 질문을 보내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번 섹스 토크는 성건강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성건강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지만, 감염이나 질병의 예방이 성적 즐거움이나 성적 권리를 곧바로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건강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섹스 토크가 아닌, 각자의 즐거움이나 어려움을 포함해 섹스의 다양한 부분을 짚어보는 것이, 그리고 그 속에서 차별을 발견해보는 것이 이번 토크의 목적이었다.
섹스 토크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청소년에게 ‘기능성 콘돔’은 판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거나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물건은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판매를 제한하는데, 이 법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요철식 특수콘돔’과 ‘약물주입 콘돔’(사정 지연 콘돔)을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해 청소년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능성 콘돔도 일반 콘돔과 마찬가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전성을 허가받은 의료기기임에도 청소년은 구입할 수 없는 현실이다.[ref] 올해 기능성 콘돔의 청소년 판매 금지가 합헌이라는 결정이 있었다. "요철식 특수콘돔 · 약물주입 콘돔 청소년 판매 금지 합헌" https://www.legal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288[/ref] 의도는 명백하다. (기능성 콘돔이 곧 성적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청소년이 섹스를 즐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 때문이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다. 나이에 따라 성적 즐거움의 향유 자격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별은 온갖 방법으로 삶에 끼어들고 즐거움을 방해하며 성적 권리를 저해한다.
성적 권리는 인권의 한 부분으로서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페체스키는 성적 권리 개념이 국제인권규범에서 등장한 흐름을 살펴보며 성적 권리가 왜 중요한지, 성적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성적 권리는 원치 않은 침입, 폭력, 학대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 상황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자유 모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자유는 자주 간과해버리는 인권 운동의 현실도 지적한다.[ref]Petchesky, Rosalind(2000), “Sexual Rights:: Inventing a concept, mapping an international practice”[/ref]
셰어는 부지런히 즐거움을 모으면서 이를 통해 성적 권리에 접근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셰어가 성교육에서 ‘플레져미터’라는 도구를 활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f]플레져미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글을 참조 https://srhr.kr/issuepapers/?idx=6142907&bmode=view[/ref] 플레져미터의 목표는 성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 사이에 효과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자기결정,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대화와 협상, 심신의 즐거움이라는 7가지 항목으로 자신의 성과 관련된 일상을 돌아보고 함께 대화해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성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일상에서 성건강, 성적 권리, 성적 즐거움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대화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를테면 자기결정과 동의, 안전이 충분히 보장된다 하더라도 심신의 즐거움은 낮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단순히 모든 항목의 점수를 높이는 것이 플레져미터의 목표는 아니다. 그보다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성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성적 권리의 내용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앞서 언급한 페체스키의 글에는 ‘성적 권리’ 개념이 갖는 모호성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에서 ‘성’에 관련된 부분이 자주 제외되고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만 집중되곤 하는 운동의 흐름이라든가 이성애 결혼 관계에 집중된 담론 형성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인권규범 또한 여전히 성적지향이나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꺼이 즐거워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두에게 셰어의 활동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함께 성적 권리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2022년을 맞이해보자.
* 2021년 12월 29일 진행한 <차별없는 섹스토크> 라이브 방송은 셰어 홈페이지 활동보고 게시글에서 다시보기 링크와 속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 셰어에서는 2022년 1월, 위에서 설명한 플레져미터가 수록된 성교육 워크북 <에브리바디 플레져북>을 발간할 예정이다. 텀블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